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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치, 헌터가 되다-30화 (30/149)

리치, 헌터가 되다! 30화

윌리엄 에반스(1)

“……지금 얼마나 됐습니까?”

찰칵- 찰칵-

자신의 옆에 간이 의자에 앉아서 물어보는 기자의 물음에 김민식이 찰칵 찰칵 돌아가는 자신의 타이머를 보면서 말했다.

“……30분입니다.”

“정말로 한 시간 내에 나올까요? 저야 들어가기 전에 잠깐 했던 거로 기사를 내보내도 상관은 없는데…… 팀장님은 정말 그분이 한 시간 내에 나오실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기자의 걱정 어린 물음에 김민식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보아온 최진혁은 확신이 있을 때에만 말을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김민식은 타오르는 불에 기름을 붙기로 결정했다.

“먼저 씁시다.”

“예? 뭐…… 뭐를 씁니까? 아직 최진혁 씨는 나오지도 않았고 한 시간도 안 되었는데요?”

갑자기 기사를 쓰자고 말하는 김민식의 말에 기자가 당황했다.

최진혁이 던전에 들어간 지 고작해야 삼십 분밖에 지나지 않은 데다가 만약에 최진혁이 정말 클리어를 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최진혁의 행보를 막는 악수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김민식은 강행했다. 아니, 한술 더 떴다.

“……협회장님 부르죠.”

“예? 갑자기요?”

“네, 그래야 보증이 될 거 아닙니까.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보증이 말입니다.”

그리고 김민식은 기자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휴대전화를 꺼내 협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협회장님? 접니다. 김민식. 저 여기 최진혁 씨가 들어간 던전에 잠시 좀 와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설명은 일단 오시면 하겠습니다. 그리고 협회장님 이름 좀 빌리겠습니다.”

자신의 할 말만 하고 전화를 끊은 김민식이 이제는 기자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시작부터 A급이 된 헌터, 최진혁. A급 던전 솔로 클리어 한 시간 내에 공략 선언.”

“……네?”

“기사 제목입니다. 제목은 제가 정해줬으니 내용은 기자님이 적어보시죠. 그게 기자가 해야 할 일 아닙니까?”

“예…… 예!”

무언의 압박에 화들짝 놀란 기자는 곧장 자신의 노트북을 꺼내 들고는 김민식이 말한 그대로 제목을 작성하고 기사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허겁지겁 기사를 쓰는 기자의 모습을 보면서 김민식은 눈을 감고 생각했다.

‘제 도박이 부디 성공했으면 좋겠군요.’

그리고 김민식이 그런 생각을 할 때, 마침 기자의 타이핑이 멈췄다.

<시작부터 A급이 된 헌터, 최진혁. A급 던전 솔로 클리어 한 시간 내에 공략 선언!!>

최근 처음부터 A급 헌터가 된 최진혁 씨가 세간의 관심을 모으고 있을 때, 최진혁 씨가 이번에 영등포에 나타난 A급 던전 ‘리치의 연구실’을 솔로 클리어, 그것도 한 시간 내로 타임어택을 하겠다는 선언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 말을 보증하기 위해 한국 헌터 협회장님이 직접 이 자리에…….

* * *

“으음…….”

미셸이 가지고 있던 게이트 석을 부수고 게이트를 빠져나온 최진혁은 자신의 뒤에서 사라지는 던전 게이트를 내버려 두고 내리쬐는 태양 빛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런 최진혁의 뒤를 이어 빠져나온 미셸은 그저 좋은 듯 방긋방긋 웃고 있었다.

“이곳이 지구군요! 지금 최진혁 님이 기거하고 있는 차원! 흐으읍…… 하아아…….”

최진혁과 같은 공기를 마신다는 사실 자체가 기쁜지 미셸은 연신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기를 반복했다.

그런 미셸을 내버려 둔 채, 최진혁은 멀리서 자신을 바라보면서 입이 찢어져라 웃고 있는 김민식과 성지혁, 그리고 그들의 옆에서 입을 떡 벌리고 있는 기자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얼마나 걸렸지?”

그리고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김민식이 자신이 손에 들고 있던 타이머를 최진혁에게 보여주었다.

“59분 48초입니다. 축하드립니다. 또다시 세계 기록을 세우셨네요.”

“축하하네! 축하해! 흐허허허!!”

“그러면 들어가기 전에 약속하신 인터뷰를······.”

자신을 바라보며 웃는 그들에게 최진혁은 자신의 뒤에 서 있는 미셸을 소개해 주었다.

“이렇게 기쁠 때에 나도 한 명 소개해 줄 사람(?)이 있지.”

“사람? 그러고 보니 최진혁 씨…… 던전에 혼자 들어가지 않으셨습니까?!”

김민식의 그 말에 인터뷰를 위해 녹음기를 꺼내던 기자는 기겁을 하면서 몸을 뒤로 뺐고 김민식과 성지혁은 마나를 끌어모았다.

던전에 혼자 들어간 최진혁이 나올 때는 한 명을 더 데리고 나왔다는 말은 곧 던전 안에 있는 몬스터를 데리고 나왔다는 소리였으니까.

하지만 그런 이들을 최진혁이 제지하며 말했다.

“이런…… 아직 내 소개가 끝나지 않았는데 말이야. 소개하지 내 새로운 부하이자 현직 리치인 미셸이다.”

“반갑다. 위대하신 최진혁 님의 첫 번째 종, 미셸이라고 한다.”

“…….”

그런 최진혁의 폭탄 발언에 모여서 즐거워하던 이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김민식이 떠듬떠듬 최진혁에게 물었다.

“……최진혁 씨, 그 말은 던전의 몬스터를 길들였다는…… 말이십니까?”

“정확하다.”

“……맙소사 이거 세계 최초 A급 던전 타임어택이 문제가 아닌데…….”

그 말을 끝으로 김민식은 급히 전화를 걸면서 어딘가로 향했고, 그의 뒤를 성지혁도 함께 따라갔다.

그렇게 김민식과 성지혁이 사라지자 이제는 사라진 게이트 앞에는 기자만이 멀뚱멀뚱 서 있었다.

“……인터뷰해도 될까요?”

“마음대로.”

미셸을 두려워했던 방금과는 달리 기자는 금세 활짝 웃으면서 녹음기를 다시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옆에 놓인 간이 의자를 최진혁에게 건네고는 인터뷰를 시작했다.

“최진혁 씨, 일단은…….”

“최진혁 님이라 불러라. 어딜 감히 하찮은 평민이…….”

“조용히 해라. 미셸.”

“죄, 죄송합니다.”

인터뷰는 시작부터 난항을 겪었다. 기자가 최진혁에게 말을 놓는 것에 분개한 미셸 탓이었다. 하지만 이내 최진혁에 의해 제압된 미셸이 얌전히 최진혁의 뒤에 서면서 다행히 인터뷰는 다시 진행될 수 있었다.

“그, 그럼 다시 인터뷰를 시작하겠습니다. 최진혁…… 씨. 일단 약속대로 1시간 이내 타임어택 공약을 성공적으로 완수하셨는데요. 혹시 던전을 클리어하시면서 힘드셨던 점이 있으십니까?”

“아니, 없었다.”

“그, 그렇군요! 그러면! 다음 질문입니다. 그…… 방금 뒤에 계신 분이 리치라고 하셨는데 혹시 증거가…… 히이익! 예 알겠습니다. 다, 다음!”

기자의 입에서 나온 증거라는 말에 최진혁이 손짓했다.

최진혁의 손짓에 최진혁의 뒤에 서 있던 미셸이 곧장 아티펙트를 해제했다.

아티펙트의 효과가 사라지자 본래의 뼈만 남은 리치의 모습이 되어 사이한 기운을 풍기는 미셸의 모습에 기자가 기겁을 했다.

하지만 직업 정신인지 카메라로 최진혁의 뒤에 서 있는 미셸의 모습을 찍는 것을 잊지 않았다.

사진을 찍고 난 뒤, 미셸이 다시 아티펙트를 사용해 금발 미남의 모습으로 돌아가자 그제야 기자가 안도의 한숨을 쉬고는 인터뷰를 이어나갔다.

그렇게 약 한 시간은 더 인터뷰를 한 뒤에야 최진혁은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최진혁이 집에 도착할 때쯤에는 방금 인터뷰한 기사들이 실시간 검색어를 차지하고 있었다.

1. 최진혁

2. 최진혁 A급 던전 솔로 클리어

3. 최진혁 세계 던전 클리어 기록 갱신

4. …….

5. …….

이렇게 가득 채우는 기사들을 보면서도 최진혁은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애당초 최진혁은 그런 것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최진혁이 관심 있는 것은 오로지 9서클 그 뒤의 단계뿐이었다. 하지만 최진혁과 같이 사는 이들은 관심이 무척 많았다.

“아저씨! 실검 1위예요!”

“역시 최진혁 씨답습니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쫑알대는 둘의 모습에 최진혁이 저절로 인상을 썼다. 그런 최진혁의 반응에 미셸이 곧장 반응했다.

“감히! 최진혁 님을 곤란케 하는 것이냐! 썩 꺼져라!”

“어라? 이 사람은 누구예요?”

“나도 처음 보는 얼굴인데…… 생긴 걸 보니 우리나라는 아니고 미국인인가?”

자신의 호통에도 불구하고 겁먹기는커녕 더욱 달라붙는 둘의 모습에 미셸이 당황해하더니 이내 폴리모프를 풀고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나는 리치다! 고작 인간 따위가 감히 어딜 달라붙는 것이냐!”

뼈만 남은 몸뚱어리에 눈 대신 푸른 귀화가 있는 리치의 모습은 일반 사람들이 보았다면 겁을 집어먹고 걸음아 나 살려라 도망을 갔겠지만 아쉽게도 미셸의 앞에 있는 이들은 일반 사람들이 아니었다.

“리치? 와! 나 리치 처음 봐요! 되게 신기하게 생겼네. 본 나이트랑은 다르게 말도 잘하네요.”

“그러게나 말이다. 여태껏 본 리치들은 다 쇳소리 나는 목소리였는데.”

“이이익, 이 자식들이 꺼지란 말이 들리지 않느냐!!”

자신의 본 모습을 드러내도 겁을 먹고 뒷걸음질 치기는커녕 더더욱 달라붙는 둘의 모습에 미셸이 광분하며 자신의 스태프를 꺼내 들고 붕붕 휘둘렀다.

하지만 그런 모습조차 둘에게는 전혀 위협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오! 뭐야? 싸우자고 저러는 거죠?”

“그런 거 같은데? 리치랑은 또 처음 싸워보는데…… 기대되네!!”

그리 말하면서 둘은 곧장 전투태세로 돌입했다. 김혜진은 사대정령을 모조리 소환했고, 도경수는 곧장 온몸에 버프 마법을 사용했다.

자신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싸울 준비를 하는 모습에 미셸은 화를 내는 것도 잊은 채 멍하니 둘의 모습을 보면서 말했다.

“대체…… 저놈들은 뭐야……?”

“내가 키우고 있는 녀석들이니 앞으로 잘 지내라.”

그 말과 함께 최진혁은 미셸을 내버려 두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최진혁이 집 안으로 사라지자 김혜진과 도경수는 눈을 빛내서 미셸에게 달려들었다.

“그럼! 한 수 배우겠습니닷!”

“이하동문!”

“이런 망할 인간 놈들이이이!!!”

* * *

그 시각 최진혁의 집에서 한바탕 소란이 있을 때, 급하게 협회로 돌아온 김민식과 성지혁은 누군가와 통화 중이었다.

-그러니까 미스터 성, 한국에 나타난 루키가 던전 안에 있는 몬스터를 길들였다…… 이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에반스 씨.”

-……흐음, 거기다가 A급 던전을 솔로 클리어한 것도 모자라서 타임어택까지? 확실히 대단한 인재로군요. 알겠습니다. 제가 곧 한국을 방문하도록 하죠.

“……에반스 씨가 직접 오신다는 말씀이십니까?”

-하하하! 당연히 세상을 구할 루키가 나타났다는데 이렇게 엉덩이를 붙이고 있어서야 되겠습니까? 내일…… 아니, 오늘 당장 출발하도록 하죠. 그럼 내일 공항에서 뵙겠습니다. 미스터 성.

“알겠습니다. 내일 뵙죠.”

쾌활한 목소리로 통화를 마친 성지혁이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면서 옆에서 초조하게 자신을 지켜보는 김민식에게 말했다.

“……그 양반이 직접 온다는데?”

“직접이요? 하, 이거 완전 발칵 뒤집히겠군요.”

“그렇겠지. 미국 총 헌터 협회의 협회장인 윌리엄 에반스가 직접 내한하는 일이니까 말이야. 그것도 한국의 한 헌터 때문에.”

“…….”

윌리엄 에반스.

이 이름이 가지는 의미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기 때문에 김민식의 표정은 어두웠다. 물론 그가 악인이라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선인. 나아가서는 영웅이라 불리는 이였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니라 윌리엄 에반스, 그는 처음 게이트가 생기고 마왕들이 나타나 몬스터들을 부리면서 세계를 파멸로 이끌어 갈 때 최전선에서 싸운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아마 그가 없었다면 정말 나라 한두 개 정도는 사라졌다고 사람들이 우스갯소리로 말할 정도였다.

거기에 현재 헌터 협회와 헌터 라이센스라는 시스템을 만들어 헌터를 통제한 것도 그였다. 아니, 앞서 말한 것들을 다 제치더라도 그는 세상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 이였다.

그는 세계에 단 하나뿐인 SSS급 헌터였다. 그렇기에 혹시라도 그의 눈 밖에 난다면 헌터 생활은 끝이나 다름없었기에 김민식은 마음속으로 간절히 기도했다.

‘제발…… 총협회장과 싸우지 말아 주십시오. 최진혁 씨.’

최진혁이 윌리엄에게 제발 빌미를 주지 않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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