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치, 헌터가 되다! 29화
마족 샬리트(3)
부들부들 떨어대며 손가락질을 해대는 샬리트의 모습에도 최진혁은 아무런 감정이 없는 얼굴로 미셸을 향해 손짓했다.
자신을 부르는 최진혁의 손짓에 미셸은 감격스러운(?) 얼굴을 하고는 최진혁에게 달려갔다.
“부, 부르셨습니까 죽음의 군주 아르만 님.”
그리고 미셸의 대답에 눈살을 찌푸렸다.
“너무 길다. 거기에 지금은 죽음의 군주도 아니고 아르만도 아니다.”
“……그러면 제가 뭐라 불러드리면 되겠습니까?”
“그냥 최진혁이면 족하다.”
“알겠습니다. 최진혁 님. 부르신 이유를 말씀해 주십시오.”
최진혁의 말 한마디에 곧장 수긍하고는 공손한 자세로 최진혁의 명을 기다리는 미셸의 모습이 최진혁의 마음에 쏙 들었는지 최진혁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너에게 내 듀라한을 비롯한 내 군단들의 지휘권을 임시로 주겠다. 네 언데드들까지 합쳐서 저 마족 나부랭이를 잡아서 내 앞에 대령시키도록 해라.”
“아르…… 아니, 최진혁 님을 절대로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자신을 믿어주고 중요한 명령까지 내려주는 최진혁의 모습에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미셸의 안와에서 타오르고 있는 귀화가 거세게 흔들렸다.
그리고 마음을 정리했는지 꿇었던 무릎을 펴고 뒤를 돌아 샬리트를 쳐다보는 미셸의 눈빛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나의 주인께서 명하셨다.”
“이런 망할 놈들이 쌍으로 지랄을 하는구나! 미셸! 내 마기로 빌어먹던 놈이 네놈의 마기의 근원인 나를 어찌할 성싶으냐!”
“물론이지. 내 부하들은 소모품이니까 말이야.”
“뭐, 뭐라고?”
미셸이 만든 언데드들에게 모두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샬리트의 마기가 품어져 있었다.
그렇기에 샬리트는 당차게 호통을 쳤지만 미셸의 말에 크게 당황했다.
미셸의 옆에서 미셸이 얼마나 자신의 언데드들을 소중히 여기는지를 똑똑히 보았기에 그 당황은 더더욱 커다랬다.
일반 언데드들도 그럴진대 듀라한과 같은 언데드들까지 소모품으로 쓰겠다는 말에 샬리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을 무렵 뼈만 남은 미셸의 손가락이 까닥여졌다.
그리고 그와 함께 동굴 바닥에서 미셸의 언데드 군단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최진혁에게서 무사히 도망친 듀라한들도 미셸의 옆에서 위풍당당하게 등장했다.
손짓과 함께 등장한 미셸의 언데드 군단은 포효를 하면서 샬리트를 향해 썩어 문드러진 자신의 몸과 뼈만 남은 몸을 이끌고 달려갔다.
그런 그들의 앞에는 앞선 최진혁과의 전투에서 살아남은 듀라한들이 달리고 있었다.
샬리트를 향해 달려가는 미셸의 언데드 군단의 뒤에는 최진혁이 명령권을 넘겨준 언데드 군단들이 서슬 퍼런 기세를 뿜어내고 있었고, 그 맨 앞에 서 있는 듀라한은 눈빛만으로도 살인을 할 수 있다고 주장이라도 하듯이 어마어마한 기세를 뿜어내고 있었다.
듀라한이 전장에 합류하기를 간절히 바람과 동시에 먼저 미셸의 듀라한이 샬리트와 충돌했다.
콰앙-
하지만 최진혁의 듀라한만큼의 완성도를 가진 듀라한은 아니었기에 샬리트가 검을 한 번 휘두르자 훨훨 날아 구석에 처박혀 버렸다.
최진혁의 듀라한이 안정적으로 샬리트의 공격을 막은 것과는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미셸의 언데드는 최진혁의 듀라한과 다른 점이 있었다.
-주인님의 명령대로…….
-죽인다…….
-명령은 절대적…….
바로 수였다.
듀라한이 한 기밖에 존재하지 않는 최진혁과는 달리 미셸은 최진혁보다 3기는 더 많은 듀라한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4기에 달하는 듀라한이라면 현재 최진혁의 듀라한보다도 더욱 막강한 힘을 보여줄 수 있었고, 그 사실을 샬리트를 통해 여실히 보여주었다.
“크아아악! 내 마기에 몸을 맡기는 어리석은 언데드들이 감히!!!!”
자신을 공격하는 듀라한들이 움직이는 원동력이 자신의 마기라는 사실이 원통한지 샬리트는 고함을 치면서 듀라한들의 몸속에 마기를 조종했다.
본래 그 마기의 주인이 샬리트이기에 가능한 기예였다. 마나로 비유를 하자면 다른 사람의 몸속에 있는 마나를 원격으로 움직이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기예였다.
자신의 마기를 조종해 듀라한들의 검 끝을 미셸을 향해 돌리려고 하는 샬리트의 눈에 뼈만 남은 미셸이 턱뼈를 달그락거리면서 즐거워하는 모습이 들어왔다.
“미셸…… 네놈, 왜 기뻐하는 거지? 컥……!”
콰앙-
그리고 미셸이 즐거워하는 이유는 얼마 가지 않아서 밝혀졌다.
다름 아니라 턱뼈를 달그락거리던 미셸이 자신의 손가락뼈를 튕김과 동시에 샬리트와 초근거리에 붙어 있던 듀라한들이 일제히 폭탄처럼 터져 버린 것이다.
바로 최진혁에게 사전에 막혀 버린 콥스 익스플로젼이었다.
마기에 정신이 팔렸던 샬리트는 미셸의 마나가 듀라한에게 흐르는 것을 미처 보지 못했고, 설사 알았다고 하더라도 최진혁처럼 곧장 디스펠할 능력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콥스 익스플로젼은 터지는 시체가 품고 있는 마나량의 따라 피해량이 더욱 커지기에 초근거리에서 그 충격을 받은 샬리트의 몸은 성한 곳이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샬리트의 목숨은 붙어 있었고, 마족 특유의 회복력 덕택에 지금 이 순간에도 회복은 진행 중이었다.
그런 샬리트의 모습에 미셸이 고개를 내저으면서 아쉬워했다.
“아쉽군. 그걸로 안 죽다니. 그래도 괜찮아. 폭탄들은 아직 많거든.”
“뭐라고……? 크아아악!!”
미셸의 말에 샬리트가 땅을 짚고 의아함을 표했지만 이내 자신의 몸 위에 쌓이는 미셸의 언데드 군단의 모습에 신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콰아아아아앙-!
방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폭발 소리가 동굴을 가득 메웠다.
“예술은…… 폭발이다! 흐하하하!!”
미셸의 웃음소리와 함께 말이다.
* * *
“크흑, 퉤……!”
폭발 속에서 살아남은 샬리트가 검은 피가 섞인 침을 바닥에 탁 뱉었다.
먼지가 걷히고 드러난 샬리트의 모습은 만신창이였다.
미셸의 경지가 불안전하게나마 6서클이었고 콥스 익스플로젼의 재료가 다름 아니라 듀라한이었던 점 때문이다.
그렇기에 샬리트의 고고하게 펼쳐져 있던 박쥐 날개의 피막은 갈기갈기 찢겨져 대만 남은 상황이었다.
왼팔이 있던 자리에는 휑하니 아무것도 없었고 샬리트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마기만이 마치 피처럼 주륵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샬리트는 굴하지 않고 이를 빠득 갈았다.
“미셰에에에엘!!!”
하지만 그런 샬리트를 반겨준 것은 미셸이 아니라 미셸에게 명령권이 넘어간 최진혁의 언데드 군단들이었다.
-주인님의 적에게 죽음의 안식을…….
-공격!!
선두에서 자신의 검을 뽑고 달려오는 듀라한과 그런 듀라한의 옆에서 본 하운드를 타고 달려오는 본 나이트.
그리고 그런 그들의 뒤에서 자신들의 병장기를 뽑은 채 쫓아오는 본 워리어들과 본 나이트들의 모습의 샬리트는 자신의 하나 남은 오른팔을 축 늘어뜨렸다.
“망할 마족 학살자…… 내가 곱게 죽어줄 것 같으냐!!!”
그 말과 함께 샬리트는 자신의 데몬 하트를 터뜨릴 것처럼 사용해 전신에 마기를 공급했다.
평소와 달리 전신을 가득 채우는 마기들은 샬리트의 몸을 빠르게 회복시켰다.
하지만 이미 잘려 나간 팔은 돌아오지 않았고, 상처들만 치료한 샬리트가 치료하고 남은 마기들을 모조리 자신의 오른손에 모으고는 자신에게 달려오는 언데드들의 무리 속으로 몸을 던졌다.
* * *
“끝났군요.”
미셸의 그 말과 함께 미셸의 앞에 부들부들 떨리고 있는 몸을 가지고 간신히 서 있던 샬리트의 몸이 허물어졌다.
“끄으윽…… 미셸…… 네놈은 마왕님들의 손에 죽음보다 더한…….”
“됐고, 죽어라.”
스걱-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날아온 듀라한의 검에 샬리트는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눈에 생기가 사라진 샬리트를 물끄러미 지켜보던 미셸은 이내 자신의 손을 들어 샬리트의 가슴팍을 꿰뚫었다.
그리고 샬리트의 가슴 안으로 사라진 미셸의 뼈만 남은 손이 다시 나타났을 때는 조그마한 마석 하나가 들려 있었다.
“그게 샬리트의 심장인가?”
무심한 눈으로 마석을 내려다보던 미셸은 자신의 등 뒤에서 들려오는, 이제는 자신의 주인이 된 최진혁의 목소리에 뒤돌아 말했다.
“예, 그렇습니다.”
그 말과 함께 미셸은 샬리트의 심장을 최진혁에게 공손하게 건넸다.
미셸이 건넨 샬리트의 심장을 물끄러미 보던 최진혁은 이내 심장을 품속에 잘 갈무리했다.
“좋군. 나가도록 하지. 그런데 너를 안 죽이고 나갈 방법은 있겠지?”
“예,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없다면 곧바로 자신을 처리할 생각을 하고 있는 최진혁의 모습에 미셸이 급히 어딘가로 가더니 무언가를 들고 다시 나타났다.
“두 개?”
“하나는 제 라이프 베슬이고 하나는 이 던전의 게이트석입니다. 이 게이트석을 깨뜨리면 아르만…… 아니, 최진혁 님이 현재 살고 계시는 지구로 나갈 수 있습니다.”
“그래? 그런데 라이프 베슬은 왜 들고 온 거지?”
“제 주인이시니 제 생사여탈권을 가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서…….”
“그리고 저기 놓여 있는 소드마스터의 시체도 들고 와라.”
“알겠습니다!”
자신의 명령에 후다닥 제단으로 향해 뛰어가 소드마스터의 시체를 들고 온 미셸의 모습에 최진혁이 피식 웃으면서 미셸의 라이프 베슬와 소드마스터의 시체를 자신의 아공간 주머니에 던져 넣었다.
그리고 나머지 언데드들도 뼛조각으로 변환시켜 같이 넣었다.
“일단 게이트석을 부수기 전에…… 그 모습을 바꿀 방법이 있나?”
“제 모습 말씀이십니까?”
“그래, 네 모습이면 바깥에서 생활하기엔 불편하니 말이야.”
“흐으음, 아! 그게 있군요. 잠시만 기다려 주십쇼. 금방 오겠습니다.”
다시 한번 동굴 깊숙한 곳으로 향한 미셸이 어떤 목걸이를 목에 건 채 다시 돌아왔다.
“그건 뭐지?”
“아, 이건 폴리모프 마법이 내장된 목걸이입니다.”
“……폴리모프?”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미셸의 말에 최진혁이 당황했다.
그도 그럴 것이 폴리모프는 모습을 변환시켜 주는 고위마법이었다.
그런 마법이 내장된 목걸이는 아르말딘 대륙에서의 최진혁 자신 정도는 되어야 만들 수 있기에 더더욱 놀라며 제작자를 궁금해했다.
하지만 이내 미셸의 대답을 들은 최진혁은 눈에 띄게 실망했다.
“드래곤?”
“예, 마왕의 손에 죽은 드래곤의 레어에 남아 있던 거를 제가 몰래 가져온 겁니다.”
“쯧, 혹시 내가 사라지고 9서클의 마법사가 등장했나 싶었건만. 흥이 깨졌군.”
“하하하, 최진혁 님 정도의 마법사는 아마 인세에 다시없을 겁니다. 아! 그리고 아까 말하던 아르말딘 대륙의 이야기는…….”
“그건 나가서 듣도록 하지. 아티팩트를 발동시켜라.”
“알겠습니다.”
명령을 받자마자 곧장 아티팩트를 작동시킨 미셸은 금발의 푸른 눈을 가진 이국적인 미남의 모습이 되어 있었다.
정상적으로 아티팩트가 작동한 것을 확인한 최진혁은 곧장 게이트석을 깨뜨렸다.
쿠오오.
그와 함께 게이트석에 모여 있는 마나들이 휘몰아치면서 최진혁의 눈앞에는 들어올 때 보았던 것과 똑같은 게이트가 생겨났다.
게이트를 확인한 최진혁은 지체하지 않고 게이트에 몸을 던졌고 그의 뒤를 따라 미셸도 따라 들어갔다.
이내 최진혁과 미셸이 던전 안에서 사라지자 게이트도 마찬가지로 사라졌다.
아무도 없는 던전 안에서 심장이 뽑힌 샬리트의 시체만이 쓸쓸히 식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