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치, 헌터가 되다! 28화
마족 샬리트(2)
“크으윽…… 감히 인간 따위가!”
“아직도 그런 소리를 하는군. 그깟 인간 따위에게 당하고도 그런 소리가 나오다니. 쯧, 이래서 마족들이란.”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미셸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샬리트는 눈을 감고 마기를 모으기 시작했다.
심상치 않아 보이는 샬리트의 모습에 최진혁이 흥미로운 표정을 지으면서 그 모습을 팔짱을 끼고 지켜보았다.
마기를 모으는 모습을 보면서도 수수방관하는 최진혁의 모습에 샬리트가 분통이 터졌는지 고함을 쳤다.
“감히! 내가 만만해 보이는 거냐!”
“아니, 오래간만에 보는 마족의 변신 모습이 흥미로워서 말이야.”
“……인간이 그걸 어떻게 아는 거지?!”
자신이 마기를 모으는 이유를 들킨 샬리트가 깜짝 놀라 하면서 최진혁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으면서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미셸 또한 마찬가지로 고개를 치켜들고 최진혁을 쳐다보았다.
지구인들은 아직 마족을 제대로 아는 이들이 없기에 마족에게 변신이라는 것이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마족이 변신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이미 침략이 꽤 진행된 아르말딘 대륙인 정도였다.
그런데 아르말딘 대륙인도 아닌 최진혁이 그 사실을 알자 둘은 꽤나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정작 당사자인 최진혁은 시큰둥했다.
“명색이 데스엠퍼러라고 불렸는데 마족의 변신도 모를 거라고 생각했냐?”
“데스…… 엠퍼러라고……? 네, 네가 그 망할 놈의 이름을 어떻게 알지?!!!”
“데스엠퍼러……? 죽음의 군주? 아르만…… 님……?”
그리고 최진혁의 그 말은 앞서 마족의 변신을 안다는 사실보다 더욱더 큰 충격을 그들에게 선사했다.
물론 둘에게는 다른 의미로 다가왔지만 말이다. 샬리트는 공포를, 그리고 미셸은 경외를 말이다.
“네, 네가 아르만이라고? 그 마족 학살자 아르만?”
“아아, 그런 별명으로 불렸던 시절도 있었지. 꽤 그리운 추억이군.”
“설마…… 그럴 리가! 분명 아르만은 루더슨 그 정신병자에게 죽었을 텐데!!”
샬리트의 그 말에 최진혁이 이마를 찡그리며 불쾌함을 표현했다.
“쯧, 루더슨 그놈은 아직도 잘 살아 있나 보군. 아직도 그 망할 정화 순례는 계속하고 있나?”
“……정말 아르만이 맞는 건가?”
설마설마했지만 정말 아르말딘 대륙인이 아니라면 알지 못하는 일까지 말하는 최진혁의 모습에 샬리트가 얼이 빠진 얼굴로 최진혁을 쳐다보았다.
그런 샬리트의 모습에 최진혁은 손을 내저으면서 샬리트를 향해 말했다.
“어쨌건 이제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니 마저 변신이나 해보지 그래? 오랜만에 마족의 변신 모습을 봐야겠어. 그래야 더욱 순도 높은 심장을 얻을 수 있으니까 말이야.”
“이이익…… 네가 아르만이였다고 해봐야 그거야 아르말딘 대륙에서의 얘기일 뿐! 지금은 환생을 했는지 몰라도 그때의 9서클 흑마법사인 아르만이 아니라 평범한 지구인이라면 나 샬리트가 변신을 한 후에는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다! 크아아악!!”
벌써부터 자신을 전리품으로 생각하는 최진혁의 오만한 태도에 샬리트가 응축시킨 마기를 전신에 퍼뜨렸다.
일순간에 농축된 마기 폭탄이 터지듯이 전신으로 퍼져 나감과 동시에 꽤 호리호리한 몸을 하고 있던 샬리트의 몸이 단숨에 보디빌더와도 같은 거구로 바뀌었고, 등 뒤에는 박쥐 날개가 생겨났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방금과는 달리 샬리트의 주위에는 칼날과도 같이 벼려진 마기들을 풀풀 흘리고 있었다.
마치 가까이 다가가면 금방이라도 베일 것처럼 날카로운 마기가 말이다.
그렇게 변신을 마친 샬리트가 박쥐 날개를 펄럭여 허공에 둥둥 떠서 최진혁을 향해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흐하하하!! 이제 바로 나! 마계의 백작인 샬리트 님의 변신이다!! 뒤에 돋아난 날개는 더욱더 빠른 비행을 가능케 하고 내 주위에 결계처럼 흩뿌려진 칼날 같은 마기들은 네 몸을 갈기갈기 찢어놓을 것이다! 내 손으로 아르말딘 대륙에서 전설로 불리며 우리 마계의 침공을 막아낸 아르만을 죽이게 되다니! 백작 위가 멀지 않았군! 흐하하하!!”
이미 백작 위에 오른 것처럼 말하는 샬리트의 모습에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최진혁이 기분이 나빠졌는지 손가락을 까닥였다.
최진혁의 부름을 받은 최진혁의 언데드 군단이 척척 걸어와 최진혁의 앞에 오와 열을 맞춰서 방벽을 만들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런 그들의 선두에는 듀라한과 본 하운드를 탄 본 나이트가 위풍당당하게 서 있었다.
-감히 주인님께 살기를…… 찢어 죽여주마.
-……죽인다!
두 언데드의 말에 샬리트는 코웃음 쳤다.
최진혁의 듀라한은 샬리트의 공격을 막은 전적이 있던 만큼 다른 언데드와 비교를 불허하는 뛰어난 언데드였지만 그뿐이었다.
변신을 마친 자신은 가히 7서클 대마법사 혹은 소드마스터의 준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언데드로 치면 듀라한보다 한 단계 높은 데스나이트급이었다.
그랬기에 샬리트는 자신보다 못해도 한 단계는 낮은 듀라한의 그 말에 비웃음을 머금고는 입을 열었다.
“고작해야 듀라한 따위가 감히 마계의 귀족 앞에서 입을 여는구나! 네놈이 뛰어난 언데드란 사실은 인정하지만 고작해야 그 정도…….”
희희낙락해하며 말을 이어나가던 샬리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니라 최진혁의 앞에서 무릎을 꿇은 뼈만 남은 리치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뼈만 남은 리치는 당연히 샬리트와 계약이 되어 있는 리치 미셸이었다.
“아르만 님! 저는 아르만 님의 편입니다! 저를 부하로 삼아주십쇼! 이 뼈다귀만 남은 몸, 부서지기 전까지 아르만 님을 보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런 말을 외치는 미셸의 눈, 아니, 안와에서 타오르는 귀화는 그런 미셸의 마음을 대변하듯이 거세게 타오르고 있었다.
* * *
‘이건 뭐 하는 놈인지 잘 모르겠군.’
방금까지 적으로 싸우다가 갑자기 무릎을 꿇고 자신의 편이라 주장하는 이 젊은(?) 리치를 보면서 최진혁은 생각에 잠겼다.
말하는 모습을 보아하니 자신이 아르만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 마음을 바꾼 것으로 보였기에 마냥 내칠 필요는 없어 보였다.
존경을 이유로 충성을 맹세한 것이라면 배신을 할 일은 현저히 적기 때문이다.
물론 샬리트를 배신하고 최진혁의 편에 붙은 것이기만 하지만 흑마법사와 마족은 철저한 비즈니스 관계다.
흑마법사는 제물을 바치거나 마족을 현계를 불러내 주고 그 대가로 마기를 받는다.
마족은 마기를 주는 대가로 현계에 몸을 드러내거나 제물을 받고 힘을 불리는 그런 비즈니스 말이다.
하지만 그래도 사상 검증은 해볼 필요가 있었기에 최진혁은 곧장 미셸에게 질문을 던졌다.
“갑자기 충성 맹세를 하다니 무슨 꿍꿍이지?”
“꿍꿍이라뇨! 그런 거 전혀 없습니다! 아르말딘 대륙에서 살아가는 모든 흑마법사, 혹은 리치라면 당연히 저처럼 행동할 겁니다!”
“음? 그게 무슨 소리지?”
“아르만 님이 루더슨 그 창녀의 자식에게 죽음을 맞이했다는 소식에 아르말딘 대륙에 모든 흑마법사들이 눈물을 흘리면서 리치의 길을 택했습니다. 물론 저도 그중 하나였죠. 벌써 20년이 넘게 흘렀네요.”
“뭐라고? 20년?”
미셸의 말에서 최진혁의 이목을 잡아끄는 것이 있었다.
“예? 아르말딘 대륙에서 아르만 님이 영면에 드신 지 20년이 흘렀습니다. 제가 아르만 님이 영면에 드시고 바로 리치의 길을 택했으니까요. 제가 리치가 된 지 20년 차입니다.”
그리고 그 말에 최진혁은 아르말딘 대륙과 지구의 시간 차가 다르거나 어쩌면 차원이동을 곧장 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지금 당장은 중요한 일은 아니었으니 최진혁은 손을 내저으면서 다시 질문을 했다.
“아아, 일단은 알겠다. 그래서 왜 내게 충성 맹세를 한 거지?”
“성국을 등지고 성국과 싸움을 한 점과 흑마법사임에도 불구하고 마족들과 계약을 맺지 않은 점! 그리고 4서클에서 5서클 사이의 쩌리 리치였던 이들을 가디언으로 삼아 7서클 대마법사급의 리치로 끌어올린 아르만 님의 업적이라면 그 누구라도 저처럼 행동할 게 분명합니다! 아니, 그렇지 않다면 그놈은 흑마법사도 아닙니다!”
마치 광신도와 같이 중얼거리는 미셸의 모습에 그제야 최진혁은 자신이 아르말딘 대륙에서 어느 정도의 위상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깨달았다.
아르말딘 대륙에서 살고 있을 때는 몰랐던 사실을 알자 최진혁은 꽤 놀라워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해가 안 가는 점이 하나 있었다.
“그런데 아르말딘 대륙의 인물인 네가 여기에 왜 있는 거지?”
바로 아르말딘 대륙 사람인 미셸이 지구에 있는 던전 안에 있다는 사실 이었다.
“아! 그건 말입니다. 다른 마왕들이 아르말딘 대륙을 침…….”
“미셰에에에엘!!! 네가 감히 나와 마왕님들을 배반하겠다는 것이냐!!”
하지만 최진혁의 앞에 무릎을 꿇고 즐거워하며 미주알고주알 모든 비밀들을 털어놓으려던 미셸은 변신 상태의 샬리트의 호통에 중단되었다.
이제 막 중요한 정보를 들으려던 최진혁은 인상을 팍 찌푸리면서 미셸의 머리통을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그 뒤의 내용은 좀 있다가 말하자꾸나.”
“그…… 그 말씀은 설마?! 가, 감동입니다. 아르만 님!”
최진혁의 그 행동이 자신을 인정하겠다는 의미였기에 미셸은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뼈만 남은 몸을 부르르 떨어댔다.
그런 미셸을 뒤로한 최진혁이 샬리트를 향해 입을 열었다.
“쯧, 한창 중요한 얘기를 하는 도중에 끼어들다니 역시 마족들이란…….”
“아르마아아아아아안!!!!”
어김없이 들어오는 최진혁의 도발에 결국 참다못한 샬리트는 마기를 거칠게 뿜어냈다.
자신의 커다란 박쥐 날개를 빠르게 펄럭이면서 최진혁을 향해 날아간 샬리트를 막아선 이가 있었다.
-주인님을 공격하려 하다니…… 네 목숨으로 사죄하라!
“이 망할 듀라한 따위가아아아!!!”
말끝을 길게 늘어뜨리면서 샬리트는 마기로 이루어진 검을 연신 휘둘렀다.
변신 전에도 단 한 방으로 뼈 방패를 부숴 버렸기에 이 공격으로 자신의 눈앞에 서 있는 건방진 듀라한이 가루가 되어 휘날릴 것이라고 샬리트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실드!”
최진혁의 옆에 서서 실드 마법을 영창하는 미셸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받아먹을 것은 다 받아먹고 이제 와서 뒤통수를 때리는 것이냐, 미셰에에엘!!”
절규와도 가까운 샬리트의 분노에 미셸은 자신의 턱뼈를 달그락거리면서 즐거워했다.
뼈만 남은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올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거나 먹어라 이 새꺄! 어휴, 옆에서 쫑알쫑알 시끄러워서 없던 귀도 터질 뻔했다. 그리고 뒤통수는 무슨 뒤통수. 우리가 언제 계약서라도 쓴 적 있어? 넌 마기를 주고 나는 제물을 바친다. 이거잖아? 난 여태까지 받은 만큼 줬다. 그리고 나는 내 영혼의 주인을 만났으니 당연히 이쪽에 서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평소 아르만을 목 놓아 부르던 미셸의 모습을 기억하는 샬리트이기에 몸을 부들대는 것을 빼곤 샬리트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최진혁을 향해 소리치는 것밖에 없었다.
“아르만…… 이 악마 새끼야!!”
마족에게 악마 소리를 듣는 최진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