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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치, 헌터가 되다-27화 (27/149)

리치, 헌터가 되다! 27화

마족 샬리트(1)

듀라한들을 무찌르고 난 뒤부터는 탄탄대로였다.

리치가 있는 곳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아까보단 나은 언데드들이 나타났지만 약간 나을 뿐이었다.

그리고 고작 그 정도로는 최진혁의 앞길은커녕 최진혁의 군단의 앞길조차 막지 못했다.

스걱-

무언가가 잘려 나가는 듯한 섬찟한 소리가 들릴 때면 어김없이 한 마리의 강화 좀비나 강화 구울의 목이 날아갔고.

파사삭…….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릴 때면 어김없이 스켈레톤 한 마리가 고꾸라졌다.

그리고 그런 일들을 주도하는 것을 당연하게도 최진혁이 손수 만든 듀라한과 본 하운드를 탄 첫 번째 본 나이트였다.

듀라한의 경우에는 오랜 시간 마석의 마나를 받아들인 탓에 방어력 자체가 다른 언데드들에게 비할 바가 되지 못했다.

거기에 단단한 몸과 숙련된 검술 앞에서는 어떠한 언데드도 3합 이상을 버티지 못했다.

거기에 본 나이트의 경우에는 다른 본 나이트보다 약간의 힘과 방어력이 있었을 뿐, 그렇게 특출난 점은 없었다.

하지만 그와 일심동체처럼 움직이는 본 하운드가 그를 뒷받침해 주었기에 일반 본 워리어와 본 나이트를 제치고 듀라한과도 비빌 정도의 능력을 가지게 된 것이다.

세 개의 머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화염 브레스 앞에서는 좀비든 구울이든 할 것 없이 새까맣게 타버린 통구이가 되었고, 스켈레톤마저도 뼛가루도 아닌 잿가루만을 남기고 사라져야만 했다.

그런 그들이 선봉대장처럼 앞장서서 리치의 군단들을 박살 내고 그들의 뒤를 따르는 본 워리어와 본 나이트들이 다시 한번 지르밟고 가니 그들의 뒤에 남은 거라고는 개미 새끼 한 마리 없었다.

“나쁘지 않군.”

듀라한들을 상대하느라 잠시 나섰지만 그래도 그 뒤부터는 자신의 군단들이 알아서 처리하는 모습에 최진혁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흠, 시간은 이제 20분 정도 되었군.”

손목에 걸려 있는 아날로그 형식의 시계로 현재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를 확인한 최진혁이 기분 좋은 미소를 입가에 그리고 있을 때였다.

“……이건?”

갑자기 동굴 깊숙한 곳에서부터 느껴지는 찐득찐득한 어두운 기운에 미소가 지어지려던 최진혁의 얼굴은 이내 딱딱하게 굳었다.

“마기!”

바로 최진혁이 느낀 것은 마기였기 때문이다. 그것도 일반 흑마법사들에게서 느껴지는 마기가 아닌 마족들이나 가지고 있을 법한 순도 높은 마기가 말이다.

* * *

“후…… 시X, 겨우 다 그렸네.”

내심 수정구 속에서 자신의 군단들을 상대로 손가락 까딱하지 않고 학살을 하고 있는 최진혁의 모습에 똥줄이 탔던 리치는 자신의 발밑에 그려져 있는 오망성의 마법진의 모습에 힘든 것도 잊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렇게 한숨을 쉬는 것도 잠시, 리치는 이내 마법진의 자신이 마족에게 받은 마기를 불어넣기 시작했다.

리치의 마기를 받은 마법진은 이내 붉은빛을 토해내면서 가동하기 시작했다.

우우웅!

“……마계의 백작 위를 받은 귀족, 샬리트시여. 이곳에 나타나소서.”

마법진이 가동되는 모습을 본 리치가 뼈만 남은 턱을 달그락거리면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리치가 주문을 외우자 마법진에서 나오는 붉은빛이 더욱더 강하게 터져 나왔다. 그리고 마법진에서 붉은 연기가 뭉게뭉게 뿜어져 나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연기가 사라지자 마법진 위에는 검은색 슈트를 차려입은 흑발의 미남자가 서 있었다.

“쯧, 진작에 좀 그릴 것이지. 고집은.”

“이 마법진 그리는 데에 당신에게 받은 마기의 3분지 1가량을 썼어! 당연히 고민하는 게 정상 아니야?”

“아~ 알았어. 알았다고. 돌아가면 마기 채워줄 테니 화내지 말라고. 짜증 나니까.”

리치의 재촉에 샬리트가 고운 아미를 찡그리면서 말하자 여지껏 화를 내던 리치가 흠칫하면서 입을 닫았다.

평소엔 욕도 하면서 편하게 지내지만 실제 서열로 따지자면 리치는 샬리트보다 한두 단계 낮은 서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샬리트의 마기를 받는 처지이기에 더더욱.

그렇게 리치가 화를 내는 샬리트의 눈치를 보고 있을 때, 샬리트가 리치의 연구실에 있는 문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턱을 쓰다듬더니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왔네.”

“……?”

“왔다고. 그놈.”

샬리트의 그 말에 리치가 화들짝 놀라며 문을 향해 고개를 돌릴 때였다.

콰앙!

연구실의 문이 터져 나가면서 최진혁이 연구실 안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왔다.

지금 상황이 무척이나 마음에 안 드는지 인상을 쓴 채로 말이다.

“쯧, 더러운 마기 같으니.”

최진혁의 그 말이 샬리트의 심기를 건드렸다.

“하…… 하하하하!!! 지금 한낱 인간 따위가 마신께서 내리신 은총인 마기를 폄하해? 네놈이 곱게 죽고 싶지 않나 보구나!!”

마기는 마족들의 신인 마신이 마족들을 위해 하사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마족들은 마기를 무시하는 것을 자신들의 주인인 마왕을 욕하는 것보다 싫어했다. 아니, 증오할 정도였다.

오죽하면 마족들의 심기를 건드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마왕을 욕하는 것이 아니라 마기를 욕하라고 하는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물론 최진혁이 마기를 욕한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라 실제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러운 마기를 더럽다고 하지 그러면 뭐라고 하지? 신성한 마기라고 불러줘야 하나?”

“이런 망할 인간 따위가!!”

그 말이 샬리트의 한 가닥 남은 정신 줄을 끊어버렸다. 두 눈이 뒤집힌 채, 마기를 풀풀 뿜어내면서 자신에게 달려드는 샬리트의 모습에 최진혁은 혀를 찼다.

“쯧, 고작해야 백작급 따위가 덤벼들다니. 예전 같으면 눈도 못 마주쳤을 저급한 것들이.”

“무어라? 저급? 지금 내게 저급하다고 말한 것이냐 인가아아안!!!”

자신의 백작이라는 꽤나 높은 계급에 무척이나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샬리트에게 최진혁의 그 말은 치명타였다.

미약하게 남아 있던 이성조차 날려 버릴 치명타 말이다.

이제는 샬리트의 마기는 샬리티의 주위에만 머무르지 않고 유형화되기 시작했다.

순식간의 거무죽죽한 날개를 달고 마기로 이루어진 검을 쥔 샬리트가 가히 빛살과도 같은 속도 최진혁에게 날아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샬리트는 자신의 이 공격으로 최진혁의 심장을 꿰뚫어 버릴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어느새 최진혁의 앞에 뼈로 만든 방패를 들고 있는 듀라한에 의해서 사라졌다.

콰앙!

“……믿을 수 없어. 고, 고작해야 듀라한 따위가 내 공격을 막아?!”

물론 샬리트의 공격을 막은 대가로 듀라한이 들고 있던 뼈 방패는 산산조각이 났지만 애초에 그건 별문제가 되지 않았다.

최진혁이 손을 한 번 내젓자 곧장 다시 생겨났으니까 말이다.

“내 듀라한을 고작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나 저급한 마족?”

“이이익…….”

최진혁의 말에 분한지 샬리트는 발을 구르면서 화를 표출했지만 재차 달려들지는 못했다.

어차피 샬리트가 할 수 있는 공격에는 한계가 있었고 대부분 방금 공격과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샬리트는 입을 열어 소리쳤다.

“미셸! 너도 합류해라! 그렇지 않으면 소드마스터의 시체는 내가 다시 가져가겠다!”

샬리트의 호통에 뒤에 멀뚱히 서서 싸움을 지켜보던 리치, 미셸이 화들짝 놀라며 화를 냈다.

“시X! 주기로 한 걸 왜 뺏어가!”

“내가 여기서 이렇게 당하면 너라고 무사할 것 같으냐! 빨리 합류하지 못해?!”

“이런 시X!”

협박 아닌 협박이었지만 샬리트의 말이 옳았기에 미셸은 욕지거리를 하면서도 자신의 스태프를 들고 샬리트의 옆에 섰다.

“후우…… 싸우고 싶진 않았는데……. 이봐! 네가 지구의 흑마법산가 본데 나도 흑마법사인데 우리 좀 좋게 좋게 넘어가면 안 되겠어?”

“이 자식이! 저놈을 안 죽이면 네놈이 대신 죽을 줄 알아라!”

최진혁의 실력을 눈앞에서 보았기에 미셸은 최진혁과 싸우고 싶지 않았으나 옆에서 분노를 토해내고 있는 샬리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스태프에 마나를 모으기 시작했다.

“에휴, 후회하지 말라고 나도 반쪽이지만 6서클이니까 말이야.”

“소드마스터의 시체라…….”

“뭐라고?”

하지만 자신의 말에도 최진혁이 턱을 괴고 혼잣말을 중얼거리자 미셸이 자신의 뼈만 남은 머리를 갸웃거렸다.

“그거 마음에 드는군. 내가 가져야겠어.”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도는지 최진혁이 혀로 입가를 훔쳤다.

그리고 한시라도 빨리 가지고 싶은지 최진혁은 듀라한과 본 나이트를 옆에 대동한 채 스태프를 빼 들고 전장에 합류했다.

최진혁의 그 모습에 샬리트는 어이가 없는지 자신의 손가락을 빙글빙글 돌리며 말했다.

“너 미쳤냐? 니 듀라한이 내 공격을 막았다고 네놈도 막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거냐? 한낱 인간 따위가?”

샬리트의 말처럼 인간이 마족의 공격을 맨몸으로 받아내는 것은 자살행위였다.

각종 방어 마법을 두르더라도 마족의 마법 활용도가 대부분의 인간보다도 높기 때문에 디스펠당하기 일쑤였고 방어 마법이 하나도 없는 채로 마족의 공격에 적중당하면 연약한 인간의 몸은 풍선처럼 터져 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샬리트의 말에도 최진혁은 피식 웃으면서 샬리트를 비웃었다.

“저급한 마족이 누굴 걱정하는 거냐.”

“……오냐. 그렇게 죽고 싶으면 오늘 죽여주마.”

자신의 말을 귓등으로 흘려듣는 최진혁의 모습에 샬리트는 자신의 마기로 이루어진 검을 휘둘렀다.

검이 휘둘러지자 마기로 이루어진 파도가 최진혁을 향해 날아갔다.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마기의 파도에 최진혁이 입술을 달싹였다.

“……본월.”

드드드득!

“좋은 판단이긴 하다만…… 감히 마족의 앞에서 마법을 써? 오만하구나! 디스펠!”

물질로 이루어진 본월이기에 마기의 집합체나 다름없는 마기의 파도를 막아낼 수 있었지만 그것도 제대로 실현이 되어야 가능하기에 샬리트는 코웃음 치며 최진혁의 본월을 디스펠 하려 했다.

하지만 이내 자신의 생각대로 되지 않는 모습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해제가 안 됐다고?”

다름 아니라 자신의 디스펠에도 최진혁의 본월은 아무런 제지 없이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실이 의미하는 것은 단 하나였다.

“……디스펠에 간섭했다고? 고작해야 3서클, 잘 쳐줘야 4서클의 인간 마법사 따위가 위대한 마계의 백작인 나 샬리트의 디스펠을?!”

믿을 수 없는 사실에 샬리트가 망연자실해하고 있을 때, 미셸이 공격을 감행했다.

“정신 차려! 그대로 있다가 죽을 생각이야?! 콥스 익스플로젼!”

주문과 함께 미셸의 마나가 최진혁이 밟고 있는 땅 밑에 스며들었다.

바로 최진혁이 오기 전부터 땅속에 묻어둔 시체들에 말이다.

이내 성대한 폭음과 함께 최진혁이 오체분시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던 미셸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자 눈에 띄게 당황했다.

“어…… 어라? 이게 왜 그래! 콥스 익스플로젼! 콥스 익스플로젼!!!”

계속되는 주문 영창에도 마나만 소모될 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자 미셸이 설마 하는 얼굴로 최진혁을 쳐다보았다.

“서…… 설마?”

그리고 그런 미셸의 기대에 최진혁은 부응해 주었다.

“내가 간섭했다. 허접하기 그지없는 마법이로군. 먼저 발현시키기 전에 네 마나가 온전히 마법에 사용될 수 있도록 보호를 했었어야지. 멍청하군.”

“이건 말도 안 돼……. 고작해야 4서클 마법사가 6서클 마법사의 마나를 파훼한다고……?”

일어날 수 없는 사실을 목도한 미셸은 그만 동굴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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