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치, 헌터가 되다! 26화
공략이라 쓰고 학살이라 읽는다(2)
-달그락!
-구어어억!
-캬아아악!
어두컴컴한 동굴 안, 리치의 연구실이라는 이름답게 연구실의 심처로 향하는 곳에는 각종 언데드 몬스터들로 가득했다.
살점 하나 없이 새하얀 뼈로만 이루어진 언데드인 스켈레톤.
썩어 문드러진 살점, 허연 뼈가 드러난 팔을 가진 좀비.
사람과 똑같이 생겼지만 새하얗게 변해버린 피부와 날카로운 손톱을 가진 구울까지.
다행히 그 이상의 상위 언데드는 없었지만 세 종류의 언데드는 막대한 물량을 자랑했다.
가히 언덕, 아니, 약간의 과장을 보태서 작은 산이라고 표현해도 무방할 정도로 살인적인 물량이었다.
왜 ‘일반적인’ 헌터들이 기피하는지 이유를 알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그들의 앞에 있는 최진혁은 일반적인 헌터가 아니었다는 것이 그들에게는 최악이었다.
-주인님의 앞길을 막는 녀석들에게 자비란 없다. 돌격!
-돌격!!!
맨 앞에 서 있는 듀라한의 외침과 함께 듀라한이 돌격했다.
그리고 가장 처음 최진혁의 언데드가 된 본 하운드를 탄 본 나이트가 그런 듀라한의 뒤를 따랐다.
타앗!
어느 정도 언데드 무리와 가까이 붙자 듀라한이 땅을 박찼다.
-스걱.
그리고 최진혁이 듀라한에게 건네준 검이 검집에서 빠져나오더니 빛살과도 같은 속도로 휘둘러졌고, 그 검의 궤적에 들어가 있던 모든 언데드들의 목이 달아났다.
좀비, 구울 그리고 스켈레톤 할 것 없이 말이다.
스켈레톤은 머리를 부수지 않으면 죽지 않는 특성 탓에 바닥에서 구르면서 턱뼈를 달그락거리며 듀라한의 다리를 깨물었지만…….
-스켈레톤 따위가 감히 어딜!
콰직-
듀라한의 거친 발길질에 뼛가루만을 남긴 채로 박살 났다.
하지만 적진의 한가운데에 뛰어든 탓에 듀라한은 금세 다른 언데드들에게 둘러싸인 신세가 되었다.
그렇게 둘러싸인 채로 분전했지만 파도처럼 몰아치는 언데드들을 모조리 처리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최진혁의 군단은 고작 듀라한 하나가 아니었다.
화르륵.
세 개의 머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화염 브레스가 듀라한을 공격하고 있는 언데드 무리를 휩쓸었다.
본 하운드의 화염 브레스에 휩쓸린 언데드들은 타닥타닥 타들어 가는 자신의 몸을 바라보면서 괴성을 내질렀다.
-끼에에엑!!!
그리고 그들의 목이 본 하운드를 타고 어느새 다가온 본 나이트에 의해서 허공을 날았다.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본 나이트의 그 말을 기점으로 본 나이트와 듀라한의 뒤를 따라온 최진혁의 충성스러운 본 워리어와 본 나이트 군단이 언데드 무리를 휩쓸었다.
그리고 이어진 것은 언데드 대 언데드의 싸움이 아니라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구아아악!!
본 하운드의 화염 브레스에 전신이 타들어 가는 좀비와,
-끼에에엑!!
본 나이트의 검에 목이 날아가면서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내지르는 구울과,
퍼석.
본 워리어의 방패에 머리가 박살이 나서 단말마조차 내지르지 못하고 죽은 스켈레톤까지.
고작해야 스무 기가 살짝 넘는 최진혁의 군단은 수백 기가 넘는 리치의 언데드 군세를 학살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최진혁은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다.
“……훌륭하군.”
약간의 감탄을 곁들이면서 말이다.
* * *
어마어마한 물량의 언데드의 군세를 소탕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바퀴벌레처럼 언데드들이 계속해서 쏟아져 나왔다.
물론 방금 나온 언데드와 같은 하급 정도의 언데드들이었지만 물량 하나만큼은 정말로 압도적이란 말이 어울릴 정도였다. 하지만…….
-그 무엇도 주인님의 앞길을 막을 순 없다!!
최진혁의 자랑스러운 군단은 그런 물량에도 굴하지 않고 오히려 그 물량의 벽을 뚫어버리는 기염을 토했다.
온몸에 시독이 가득한 좀비들도,
머리가 부서지지 않는다면 죽지 않는 스켈레톤들도,
단단한 피부와 날카로운 손톱으로 헌터들의 공포의 대상인 구울들도,
군단 앞에서는 무의미했다.
-구어어어!
좀비의 최강의 무기인 시독은 애당초 죽은 존재들인 최진혁의 군단에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케에엑!
머리만 부서지지 않는다면 살아날 수 있는 스켈레톤들은 본 워리어의 발길질에 박살이 났다.
-캬아아악!
단단한 피부를 믿고 돌진하는 구울들은 본 나이트의 검격 안에 들어오자마자 몸과 머리가 분리되었다.
압도적인 물량을 압도적인 폭력으로 때려 부수고 있을 때였다.
-주인님의…… 적을…… 죽인다…… 돌격……!
이 던전의 보스인 리치의 듀라한 기사단이 나타났다.
* * *
“……만만치 않군.”
좀비와 스켈레톤 무리를 헤치고 나온 열 기 정도 되는 듀라한들의 모습에 최진혁이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얼굴을 찌푸리면서 중얼거렸다.
언데드 무리를 헤치고 나온 듀라한들의 상태는 썩 좋지 못했다.
최진혁의 듀라한처럼 말을 유창하게 하는 것도 아니었고, 자아도 완벽해 보이지 않았다.
군데군데 썩어 들어간 살점들이 눈에 보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듀라한은 듀라한이었다.
상태가 아무리 좋지 못해도 열 기의 듀라한이면 상상 이상의 전력이었기 때문이다.
고작해야 A등급이라도 치기에는 너무나도 과한 전력에 최진혁이 인상을 쓰면서 중얼거렸다.
“쯧, 여기도 트랩 던전인 건가?”
그렇기에 최진혁이 자신이 들어온 던전도 트랩 던전인지 의심하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어차피 들어온 이상 트랩 던전이든 트랩 던전의 할아버지든 클리어해야 하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나가서 한소리 해야겠군.”
클리어 후,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김민식에게 한소리 할 생각을 하면서 최진혁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냈다.
“어쩔 수 없군.”
바로 중급 마석들이었다. 손가락 사이에 세 개의 마석을 끼운 최진혁은 그 상태로 주먹을 꽉 쥐었다.
파사삭-
최진혁의 힘에 손가락에 끼인 마석들은 별다른 저항 없이 파삭 소리와 함께 가루가 되어 휘날렸다.
껍데기가 박살 나자 그 안에 뭉쳐 있던 마나들은 자유롭게 풀려나 최진혁의 몸에 흡수되었다.
중급 마석 세 개분의 마나가 동굴 안을 메우자 흡사 태풍이라도 분 듯 동굴 안이 흔들렸다.
하지만 그런 바람들도 모든 마나가 최진혁에게 흡수당하자 언제 불었냐는 듯이 잠잠해졌다.
그런 마나들을 흡수한 최진혁의 두 눈이 퍼렇게 빛났다.
“내가 처리해야겠군.”
그 말과 동시에 최진혁의 심장에 있는 세 개의 서클이 키이잉 소리를 내면서 회전하기 시작했다.
-주인님의…… 적은…… 모조리…… 죽인…… 컥!
시작은 본 스피어였다.
세 번째 서클을 만들게 되면서 쓸 수 있게 된 본 스피어는 그전까지 최진혁이 유용하게 사용하던 본 애로우나 본 미사일과는 궤를 달리하는 위력을 보여주었다.
나름대로 언데드 계열 몬스터 중에서 상위에 속하는 듀라한이었지만 최진혁의 본 스피어에 제대로 된 저항을 하지 못하고 날아가 벽에 처박혔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파아앙!
빛살처럼 날아가면서 생긴 공기 터지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어김없이 듀라한들의 잘린 머리에선 신음 소리가 터져 나왔다.
-주인…… 컥!
-말살…… 켁!
-죽인다…… 켁!
변변찮은 대사 한 번 치지 못하고 퇴장하는 듀라한들의 모습에도 최진혁은 묵묵히 본 스피어를 만들어내고 던졌다.
그리고 본 스피어에 맞고 퇴장한 듀라한들은 다시 등장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니라 최진혁의 본 스피어들은 정확히 듀라한들의 근원을 박살 냈기 때문이다.
모든 존재에게는 근원이 있다. 그리고 근원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심장이다.
인간은 심장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고, 아르말딘 대륙에서 최강의 생명체인 드래곤의 힘도 심장에서 나온다.
그리고 듀라한 같은 언데드들에게도 근원이 있었다. 물론 다른 이들처럼 근원이 심장은 아니었다. 바로 뭉쳐진 마나(마기) 덩어리였다.
근원 위치는 모든 언데드마다 제각각이지만 어찌 되었든 모든 언데드에게 근원은 존재했다.
그리고 최진혁은 그런 근원의 위치들을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거긴가?”
푸슝!
바로 마나(마기)를 볼 수 있는 눈이었다.
듀라한의 근원이 잘린 머리통에 있든 몸통에 있든 마나를 볼 수 있는 최진혁에게 그런 사실은 별반 중요하지 않았다.
그것들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었으니까 말이다.
던졌다 하면 맞는 백발백중의 투창 실력과 근원을 볼 수 있는 최진혁의 눈이 결합하자 A급 헌터, 아니, S급 헌터들도 상대하기 꺼려 하는 듀라한들이 맥없이 쓰러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섯 기의 듀라한들이 전투 불능으로 변하자 리치의 명령이 떨어졌는지 살아남은(?) 듀라한들이 꽁지가 빠지게 후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최진혁은 후퇴하는 듀라한들을 곱게 보낼 생각이 전혀 없었다.
“갈 땐 가더라도 한 놈은 더 죽어라.”
푸슝!
깔끔하게 6번째 듀라한까지 행동 불능을 시켰을 때, 동굴 안에 남은 듀라한은 없었다.
남은 것은 오직 고약한 냄새를 뿜어내고 있는 언데드 몬스터들의 시체들뿐이었다.
“별거 없군.”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시체들에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최진혁은 곧장 동굴 안으로 향했다.
아까부터 안쪽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마족이라도 소환하고 있는 건가? 쯧, 느낌이 좋지 않군.”
정말 리치가 마족이라도 소환한다면 골치 아파지기에 최진혁은 빠르게 동굴 안으로 모습을 감췄고, 그런 최진혁의 뒤를 따라 본 워리어와 본 나이트들이 동굴 안으로 사라졌다.
* * *
“젠장! 저딴 놈이 있다는 말은 없었잖아!”
수정구 속에서 자신의 작품인 듀라한들이 고작해야 3서클에서 4서클 흑마법사나 쓰는 본 스피어 따위에 학살당하는 모습에 수정구를 보고 있는 사내는 발을 동동 구르면서 어찌해야 할지를 몰라 했다.
놀랍게도 사내의 몸은 뼈로 이루어져 있었다. 바로 그가 이 던전에 보스 몬스터인 리치였다.
하지만 던전 내에 모든 몬스터의 위에 서 있는 그가 당황하고 있는 이유는 다름 아니라 최진혁 때문이었다.
“저런 놈이 있다는 말이 있었으면 나는 안 넘어왔을 거라고!”
아무도 없는 허공에다가 소리치는 그의 모습은 누군가 보았다면 미쳤다고 생각했겠지만, 아쉽게도 리치는 혼자가 아니었다.
-가소롭구나. 고작해야 저런 초짜 마법사에게 당한다면 네 쓸모가 없다는 꼴을 네가 증명하는 것 아니냐?
“말이 다르잖아! 이 세계에는 소드마스터급도 귀하다더니 저놈은 대체 뭔데?”
자신의 듀라한보다도 강력해 보이는 듀라한과 자신의 듀라한을 일격에 행동불능으로 만드는 능력은 절대 불완전하기는 하지만 6서클 마법사인 자신보다 더하면 더했지 전혀 덜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그의 호소에도 허공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냉혹했다.
-쯧, 그러면 닥치고 내 소환진이나 그리면 되는 것 아니냐? 아니면 내가 건네준 소드 마스터의 시체로 데스나이트라도 만들면 되는 문제인 것을 쯧쯧쯧.
자신을 계속해서 질책하는 목소리에 리치는 자신의 뼈만 남은 몸뚱어리를 부들부들 떨어대며 바닥에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절대…… 절대 데스나이트는 여기서 안 만든다. 내가 저거 얻으려고 여기 왔는데 듀라한들처럼 대충 만들라고? 젠장, 죽으면 죽었지 절대 그렇게 안 한다.”
-정했느냐? 그러면 빨리 그려라!
또다시 질책하는 목소리의 말에 리치는 이를 뿌득 갈면서 마법진을 빠르게 그려 나가기 시작했다.
수정구 속의 최진혁이 점점 자신이 있는 곳에 가까워지고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