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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치, 헌터가 되다-25화 (25/149)

리치, 헌터가 되다! 25화

공략이라 쓰고 학살이라 읽는다(1)

이제는 시체의 가슴팍에서 마석 특유의 영롱한 빛이 아니라 거무튀튀한 빛을 내뿜고 있는 상급 마석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최진혁은 이내 가슴팍에 꽂힌 상급 마석을 뽑아냈다.

그리고 뽑아낸 상급 마석은 대충 바닥에 던졌다.

최진혁이 던진 마석은 바닥에 닿음과 동시에 파사삭 소리와 함께 깨져 나갔다.

누가 본다면 기겁을 할 만한 장면이었지만 정작 당사자인 최진혁은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애초에 껍데기만 남은 것이기도 했고 말이다. 마석에서 가장 중요한 마나는 모조리 시체 안에 빨려 들어간 지 오래였다.

값비싼 상급 마석 하나, 아니, 지난 6일 동안 하루당 하나씩 썼으니 도합 여섯 개의 상급 마석을 사용했다.

하지만 이내 최진혁은 주머니에서 또 하나의 상급 마석을 꺼내 들었다.

“쯧, 이걸로 마지막이군.”

어차피 모두 김민식에게서 뜯어낸 공짜였지만 그래도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최진혁의 사전에 대충이란 없었기에 이내 한숨을 내쉬고는 마석을 쥔 손을 시체 위에 올려놓고 힘을 주었다.

파사삭.

예의 유리 부서지는 소리가 남과 동시에 상급 마석이 가루가 되어서 시체 위에 흩뿌려졌다.

마석 가루가 시체에 스며들어 가자 최진혁은 곧장 서클을 돌리면서 마나를 끌어 올렸다.

그리고 끌어모은 마나를 누워 있는 시체에 불어넣었다.

“흐으읍…….”

마나를 불어넣으면 불어넣을수록 점점 최진혁의 안색은 창백해졌지만 최진혁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마나를 불어넣었다.

하지만 필요한 마나량에 도달하기도 전에 마나가 고갈되었고, 결국 최진혁은 주머니에서 중급 마석을 꺼내서 부쉈다.

파삭. 파사삭. 파삭.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세 개씩이나 말이다. 세 개나 깨뜨린 만큼 최진혁의 두꺼운 서클 하나를 가득 채우고도 남을 만큼의 마나가 최진혁의 몸에 흡수되었다.

물론 그렇게 흡수된 마나는 곧장 누워 있는 시체에 빨려 들어갔다.

그렇게 마석을 깨고 마나를 모으고 마나를 전달해 주는 작업은 수 시간 동안 반복되었다.

하지만 그런 길고 지루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최진혁은 처음과 전혀 다를 바 없는 얼굴로 기계처럼 마석을 깨고 마나를 불어넣는 작업을 반복하고 있었다.

“흠?”

그리고 그런 최진혁의 노력이 빛을 발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주인님.

옥구슬이 굴러가는 목소리, 예의가 느껴진다는 표현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목소리에 무표정했던 최진혁의 얼굴에 미소가 맺혔다.

“듀라한.”

그 목소리의 주인은 다름 아니라 자신의 머리를 옆구리에 낀 언데드 몬스터. 듀라한이었다.

* * *

“끝났다. 이제 출발하도록 하지.”

“음? 끝났습니까?”

세단에 비스듬하게 기대어 서 있던 김민식이 저택 안에서 걸어 나오는 최진혁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데 결국 뭘 만든 겁니까?”

“듀라한.”

“아~ 그렇습니…… 뭐라고 하셨습니까?”

대수롭지 않게 말하면서 조수석에 올라타는 최진혁의 모습에 김민식도 마찬가지로 대수롭지 않게 대꾸하고는 운전석에 앉으려고 했다.

최진혁이 한 말을 이해하기 전까진 말이다.

“지…… 지금 듀라한을 만드셨다고 하신 겁니까?”

“뭐가 잘못되었나?”

“……역시 괴물.”

“……정말 죽고 싶어서 그러는 건지 심히 의심되는군. 정 의심되면 한번 싸워볼 텐가?”

최진혁이 인상을 찌푸리자 김민식이 어색하게 웃으면서 운전석에 올라탔다.

“아하하, 장난입니다. 장난. 그래서 이제 어디로 가면 됩니까? 최진혁 씨의 집?”

“아니, 곧장 던전으로 간다.”

“역시 최진혁 씨 답군요. 그럼 바로 가겠습니다.”

당연히 최진혁이라면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김민식은 방긋 웃더니 이내 액셀을 밟았다.

그리고 둘을 태운 세단은 빠르게 저택에서 멀어졌다.

* * *

최진혁과 김민식을 태운 세단은 영등포에서 멈춰 섰다.

“여긴가?”

“예, 영등포에 있습니다. 최진혁 씨가 원하던 그 던전은 말이죠.”

“그러면 여기서 지체할 거 없이 바로 들어가도록 하지.”

마치 뒷산에 소풍이라도 가는 것처럼 쉽게 말하는 최진혁의 모습에 김민식은 어이가 없었지만 이내 수긍했다.

원래 최진혁이 저랬다는 것을 상기해 냈기 때문이다.

A급 던전 이상의 던전들은 들어가기 전 대부분 기자회견을 하거나 그 구역의 지부장을 만나서 그 던전에 대한 정보들을 얻어가지만 최진혁은 그 무엇 하나 하지 않았다.

애당초 처음에 던전을 나왔을 때도 질색하던 기자회견을 지금에 와서 좋아할 이유도 없었고, 지부장을 만나서 얻는 정보들도 이미 김민식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만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던전 게이트 앞에는 이미 기자 한 명이 대기를 하고 있었다.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기자의 모습에 최진혁이 인상을 쓰면서 무어라 말을 하려 할 때, 그런 최진혁을 김민식이 막았다.

“잠시만요. 최진혁 씨. 저 사람은 제가 부른 겁니다.”

“네가?”

“예, 저 사람은 우리 쪽 사람입니다. 저희 쪽에 좋은 기사를 쓰기 위해서 미리 불러놓은 겁니다. 그리고 최진혁 씨가 할 거라고는 저기 게이트를 등지고 사진 한 방만 찍어주시면 됩니다. 아, 그리고 짤막한 질문 몇 개만 받아주시면 더 좋고요.”

사정을 하는 김민식의 모습에 최진혁은 결국 한숨을 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간 김민식에게 받아먹은 것이 워낙 많다 보니 이마저도 거절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김민식의 부탁에 최진혁은 게이트를 등진 채 사진도 찍고 질문도 받았다.

“최진혁 씨. 헌터 라이센스를 받고 처음 들어가는 던전이 A급 던전인 데다가 악명 높은 리치의 연구실인데 혹시 소감이 어떠신지?”

“1시간.”

“예?”

“그 소감, 1시간 뒤에 다시 말하도록 하지. 기다린다면 1시간 뒤에 너에게 그 소감을 말해주도록 하지.”

마치 삼국지에서 나오는 관우처럼 말하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최진혁의 모습에 질문을 던지려던 기자는 멍하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자신의 뒷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는 기자와 김민식을 뒤로한 채로 최진혁은 넘실거리는 게이트에 몸을 던졌다.

최진혁이 게이트 너머로 사라지자 최진혁에게 질문을 던졌던 기자가 정신을 차리고 김민식에게 질문했다.

“……지금 현재 A급 던전 솔로 클리어 최단 기록이 몇 시간이었죠?”

“제가 알기로 아마 못해도 열두 시간 이상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것도 S급 헌터가요.”

“그런데 최진혁 씨는…….”

“한 시간이라고 하셨죠. 이제 막 A급인 사람이. 그런데 신기한 건 최진혁 씨가 저렇게 말하니까 뭔가 허무맹랑하게만은 느껴지지 않네요.”

김민식의 그 말에 공감이 된다는 듯이 기자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수긍했다.

그렇게 둘은 한참을 최진혁을 집어삼킨 게이트를 지켜보았다. 그리고 이내 간이 의자까지 가져다 놓고 본격적으로 최진혁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한 손에는 타이머를 든 채로 말이다.

* * *

탓.

어두컴컴하고 습한 기운이 감도는 동굴 안, 불길하게 일렁거리는 게이트가 거세게 출렁이더니 이내 사람 하나를 토해냈다.

“쯧, 이건 두 번째인데도 기분이 이상하군.”

처음 트랩 던전에서 나올 때도 느꼈던 사실이지만 게이트를 지나칠 때마다 속이 진탕되는 듯한 기분은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 최진혁이었다.

하지만 이내 진탕된 속을 다 잡고 최진혁은 자신의 허리춤에 매달려 있는 주머니를 풀어서 손에 쥐었다.

그 주머니는 다름 아니라 김민식이 선물로 준 아공간 주머니였다.

주머니의 입구를 열고 바닥을 향해 돌리고는 탈탈 털자 이내 자신의 머리를 옆구리에 끼고 있는 듀라한이 가장 먼저 튀어나와 최진혁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주인님을 뵙습니다.

생김새와는 차원이 다른 목소리에도 최진혁은 아무렇지 않은 듯 손을 휘저었고, 듀라한은 자리에서 일어나 한쪽 구석에 우두커니 섰다.

듀라한이 빠지자 이내 그 뒤로 새하얀 뼛조각들이 동굴 바닥에 쌓이기 시작했다.

일정량의 뼛조각들이 나오자 그제야 주머니를 터는 것을 멈추고 다시 주머니를 허리춤에 매단 최진혁이 자신의 심장에 있는 서클들을 빠른 속도로 돌렸다.

그와 함께 최진혁의 특유의 음차원의 마나 최진혁의 주위로 뿜어져 나왔고, 이내 바닥에 흩어져 있는 뼛조각들에게 흡수되었다.

그리고 음차원의 마나를 흡수한 뼛조각들은 본 워리어와 본 나이트로 변했다.

-주인님을 뵙습니다.

-주인님을 뵙습니다.

-주인님을 뵙…….

“그만. 너희들 인사 다 받으려면 한도 끝도 없다. 본 워리어는 5명씩 한 줄로, 본 나이트는 2명씩 한 줄로 서라. 그리고 듀라한. 너는 이들의 맨 앞에 서도록. 네가 선봉이다.”

-주인님의 뜻대로…….

막지 않으면 정말 한 시간 내내 인사를 할 것 같았기에 최진혁이 손을 들고 저지했다.

그리고 최진혁이 손을 들자마자 정말 본 워리어와 나이트의 인사에 시끄럽게 울리던 동굴이 삽시간에 고요해졌다.

그런 고요함에 최진혁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는 빠르게 본 워리어와 본 나이트 그리고 듀라한의 배치를 마쳤다.

자신만만하게 한 시간 내로 던전을 클리어하겠다고 말해놓았기에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배치를 마친 최진혁의 입이 다시 열렸다.

“이곳의 리치가 어느 정도의 수준인지는 모르겠지만…… 군단의 힘을 보여줘라.”

-모든 것은 주인님의 뜻대로…….

특유의 옥구슬이 굴러가는 듯한 목소리로 답한 듀라한에게 최진혁이 고급스럽게 세공된 검을 던져주었다.

“받아라. 군단의 대장이라면 응당 그에 맞는 검 또한 필요한 법이지.”

-주인님…….

감정이라곤 없는 언데드의 감동을 직격으로 먹은 듯한 표정에도 최진혁은 딱히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사실 김민식에게 선물 받은(선물 받았다고 쓰고 강탈했다고 읽는다) 꽤 쓸 만한 검을 가장 잘 다룰 수 있는 이에게 준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최진혁의 마음을 알지 못하는 듀라한은 썩어버린 입술을 비틀면서 광소를 터뜨리더니 어두컴컴한 동굴 안으로 돌격했다.

그리고 그런 듀라한의 뒤를 스무 기가 넘는 본 워리어와 본 나이트들이 뒤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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