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치, 헌터가 되다! 24화
군단 제작(3)
“……끝났다.”
거친 숨을 내뱉는 최진혁의 눈앞에는 도합 스무 구가 넘는 본 워리어와 열 구가 넘는 본 나이트들이 질서정연하게 서 있었다.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를 것 같은 모습에 평소 표정의 변화가 적은 최진혁조차도 함박웃음을 지을 정도였다.
쿵!
-주인님을 뵙습니다.
-주인님을 뵙습니다.
-주인님을…….
-주인님을…….
도합 서른 구가 넘는 스켈레톤들이 무릎을 꿇으며 인사를 하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었다.
그리고 그 인사를 받는 최진혁의 기분은 말로는 도저히 표현 못 할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내 최진혁은 미소를 지우고는 손가락을 튕겼다.
따악- 투두둑.
손가락을 튕기는 소리와 함께 무릎을 꿇고 있던 스켈레톤들이 뼛조각들로 변했다.
뼛조각들을 아공간 주머니에 쓸어 담으면서 최진혁은 손에 쥐고 있던 중급 마석 하나를 깨뜨렸다.
이내 중급 마석 안에 깃들어 있던 마나가 최진혁의 몸속으로 흡수되고 나자 최진혁은 거친 숨을 토해냈다.
“후우…… 아슬아슬했군.”
아무리 최진혁이 마나를 다루는 능력이 뛰어나다지만 고작해야 2서클인 최진혁에게 도합 서른 구가 넘는 스켈레톤 모두를 운용할 마나는 없었다.
그랬기에 고작해야 십여 분이었지만 마나 탈진 증상이 올 뻔했다.
다행히 그전에 소환을 취소하고 마석을 깨서 마나를 보충했기에 다행이지 아마 조금만 더 스켈레톤들이 유지되었다면 마나 탈진으로 기절했을 것이었다.
“빨리 3서클에 들어가야겠군. 이래서야 제대로 된 군단이라고 부를 수도 없겠어.”
시한부 군단이라니 이 얼마나 웃긴 말인가? 아르말딘 대륙에서는 스켈레톤 따위보다 고위 언데드인 듀라한이나 데스나이트 그리고 둠 나이트 등을 수십 기씩 끌고 다닐 때도 마나 탈진을 겪어본 적이 없었다.
물론 그때에는 마석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라이프 베슬이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조금 아쉽군, 알맞은 시체만 있었다면 데스나이트도 만들어봄 직했는데 말이야.”
그리 말하면서 최진혁은 품속에 고이 잠들어 있는 마족의 심장을 만지작거렸다.
아쉽게도 데스나이트로 쓸 정도의 시체는 성지혁 협회장급 인물의 시체는 있어야 했기에 지금으로써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SS급 정도 되면 잘 죽지도 않기에 어디 가서 구할 방법이 없었다.
전투와 죽음이 마치 대기 중에 떠 있는 공기처럼 존재하는 아르말딘 대륙이 아니라면 말이다.
“뭐, 지금은 듀라한으로 만족해야겠지. 만든다고 해도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듀라한도 오래 사용하지 못할 마당에 데스나이트는 만용이었다.
지금의 경지로 데스나이트를 만들어봤자 고작해야 1분도 사용하지 못하고 마나 탈진이 올 것이 뻔했다.
전투 중이라면 마나 역류까지도 감수해야 했다.
그런 위험부담을 안고 싸우느니 차라리 스켈레톤들과 듀라한 하나로 싸우는 것이 나았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듀라한의 매개체가 될 시체의 심장 쪽에 꽂혀 있는 상급 마석을 새것으로 갈아주고는 최진혁은 무려 6일 만에 저택에서 나섰다.
뚜르르. 딸칵!
-여보세요?
“나다. 데리러 오도록.”
-최진혁 씨? 그게 무슨…….
뚝.
하지만 집으로 가기 위해선 차가 필요했고, 최진혁은 자신이 아는 이들 중에서 가장 좋은 운전기사를 불렀다.
* * *
“……타시죠.”
“화났나?”
“제가요? 화가 나요? 그럴 리가요! 절대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전화 한 통으로 오라 가라 해서 화가 날 리가 있겠습니까?”
“화났구만.”
예의 검은 세단을 타고 등장한 김민식의 투덜거림에 최진혁이 피식 웃으면서 검은 세단의 시트에 몸을 묻었다.
포근한 시트에 몸을 누이고 있으니 최진혁은 지난 6일간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옴을 느꼈다.
그래서 들려오는 김민식의 잔소리에도 불구하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렇게 눈을 감은 최진혁의 눈이 다시 떠졌을 땐 이미 집 앞이었다.
“내리시죠. 최진혁 씨.”
“이런, 문까지 열어주다니 정말 고맙네. 김민식 군.”
“……으으으.”
익살맞게 웃으면서 정말 운전기사라도 된 것처럼 뒷문을 열어주는 김민식을 당연하다는 듯이 바라보며 말한 최진혁은 김민식의 어깨를 툭툭 쳐주고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에 괜히 했다는 생각을 하면서 김민식은 다시 자신의 세단에 올라탔다.
“에휴, 일이나 하러 갑시다. 협회로 갑시다.”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최진혁의 운전기사(?)가 협회로 다시 향할 때, 최진혁은 매우 오랜만에 자신의 수강생들을 만나게 되었다.
“어라? 아저씨!”
“음? 길드장님 오셨습니까?”
마당에서 대련을 하고 있던 둘은 최진혁이 나타나자 바로 알아채고는 대련을 멈추고 걸어오는 최진혁을 반겼다.
“대련을 하고 있던 건가?”
“네! 근데~ 저 아저씨 너~ 무 약한 거 있죠?”
“뿌득, 봐준 거다. 어디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게!”
“헹! 약하면 약하다고 인정하라구요! 내 공격을 피하느라고 땅바닥이랑 찐한 사랑을 나누신 분이 어디 사는 누구였더라~”
“이이익……!!”
방금까지 몸으로 싸운 걸로는 부족했는지 이제는 입으로 싸우는 둘의 모습에 최진혁이 한숨을 쉬면서 자신의 아공간 주머니를 뒤적였다.
“어라? 우리 선물 사 왔어요? 뭐에요? 먹을 거? 놀 거리? 전 개인적으로 먹을 게…… 히이익!”
“뭐야? 왜 그래? 취두부라도 사 왔…… 허어억!”
앞에 서 있는 김혜진 덕택에 최진혁이 꺼낸 것을 보지 못한 도경수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김혜진을 제치고 앞으로 나와 최진혁의 손에 든 것을 확인했다. 그러고는 눈을 까뒤집고 기절했다.
기절한 도경수를 밀어내고 김혜진이 벌벌 떨리는 손가락으로 최진혁의 손에 든 것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 그거 설마…… 다 본 나이트예요?”
“아니, 그럴 리가 있나.”
최진혁의 말에 다행이라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에이, 괜히 걱정했네. 경수 아재 일어나 봐요. 저거 다 본 나이트 아니래요. 왜 일반 뼛조각들이랑 같이 꺼내 가지고 사람 놀라게 해요.”
장난치지 말라는 듯이 최진혁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툭툭 건드리는 김혜진의 모습에 최진혁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말했다.
“내가 언제 일반 뼛조각이라고 했지?”
“에? 다 본 나이트 아니라면서요?”
“그래, 본 나이트는 아니다. 열 기 정도를 제외하고는 다 본 워리어다.”
“꼬로록…….”
그리고 최진혁의 말에 김혜진도 앞서 기절한 도경수의 뒤를 따라 입에 게거품을 물고는 기절했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 최진혁만이 왜 이러냐는 듯한 표정을 지은 채 서 있었다.
* * *
6일 만에 집으로 돌아온 최진혁은 오랜만에 도경수와 김혜진의 수련을 봐주었다.
그리고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곧장 마나 집적진이 있는 방으로 향했다.
내일은 듀라한을 만드는 역사적인(?) 날이었기에 오늘 세 번째 서클을 만들 생각 때문이었다.
지난 6일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마나를 모은 탓에 최진혁은 다행히도 날이 바뀌기 전에 심장에 세 번째 서클을 만들 수 있었다.
물론 얇디얇은 실처럼 가는 서클이었지만 서클은 서클이었다.
듀라한을 만들 최소한의 준비를 마친 최진혁은 그제야 여태까지 쌓아둔 피로가 몰려오는지 곧장 침실로 직행하고는 몰려오는 수마에 몸을 맡겼다.
그렇게 잠이 든 지 몇 시간 뒤 일어난 최진혁은 아침 같은 새벽을 맞이했다.
그러고는 곧장 침대에서 일어나 대충 씻고는 자신의 방에 걸려 있는 평범한 검은색 후드를 입고는 밖으로 나갔다.
아직 해조차 제대로 뜨지 않은 새벽에 쌀쌀한 공기를 느끼면서 최진혁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뚜르르. 딸칵!
“김민식.”
-으으. 최진혁 씨. 지금 몇 신지 아십니까? 지금 새벽 네…….
“데리러 와라. 오늘이 가장 중요한 날이다.”
-아으, 알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전화가 끊어지고 약 한 시간 정도 싸늘한 새벽 날씨를 온몸으로 맞으면서 기다리던 최진혁의 앞에 언제나 보던 검은 세단이 나타나 멈췄다.
이번에는 뒷자리가 아닌 운전석에서 내리는 김민식의 모습에 최진혁이 피식 웃었다.
“그 자리가 제법 잘 어울리는군. 기사는 어디 갔지?”
“……이 시간에 기사 부르면 잡혀가요. 빨리 타기나 하시죠.”
김민식의 독촉에 최진혁은 알겠다며 고개를 까닥이고는 조수석에 앉았다. 최진혁이 자리에 앉자 김민식도 다시 운전석에 앉았다.
“그럼 출발합니다. 그런데 대체 무슨 일 때문에 꼭두새벽부터 부르신 겁니까?”
“매우 중요한 일.”
“어휴, 그러니까 그게 뭐냐고 지금 묻는 거 아닙니까?”
“가서 보면 알 거다. 아, 그리고 일이 끝나면 바로 리치의 연구실 던전에 들어갈 거다.”
“바로요? 으음. 알겠습니다. 노력해 보죠.”
“노력이 아니라 무조건이다.”
노력을 무조건으로 바꿔 버리는 최진혁의 환상적인 화법에 김민식은 결국 백기를 들었다.
“에휴, 알겠습니다. 제가 아주 그냥 최진혁 씨 종입니다. 그죠?”
“잘 아는군.”
“……말을 말죠.”
이러다 진짜 종 취급을 당할까 봐 두려운 김민식이었다.
그런 김민식의 걱정과 최진혁을 태운 세단은 어느새 최진혁의 연구실(?)에 도착해 있었다.
연구실 앞에 도착하자 최진혁은 아무 말 없이 차에서 내려서 성큼성큼 연구실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저도 같이 가도 됩니까?”
“마음대로.”
그리고 그런 최진혁의 옆에는 김민식이 찰싹 붙어서 걷고 있었다.
* * *
“……허어, 결국 전부 다 만드신 겁니까?”
최진혁을 따라 연구실 안으로 들어온 김민식은 일주일 사이에 확연하게 바뀐 내부 모습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본래 일주일 전만 해도 서른 구가 넘는 시체들이 쌓여 있던 공간이 이제 가장 안쪽에 놓인 시체를 제외하고는 깨끗하게 비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당연한 것 아닌가? 일주일 정도면 충분하지.”
“……역시 괴물.”
“지금 뭐라고 했지?”
“아하하, 대단하다고요. 역시! 한국의 미래를 책임지실 헌터답습니다!”
자신의 혼잣말을 귀신같이 듣고 반응하는 최진혁의 모습에 김민식은 실로 오랜만에 식은땀을 흘렸다.
S급, 아니, 실제로는 SS급에 비견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최진혁의 눈에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한기는 S급이든 SS급이든 가리지 않고 동등하게 적용되었다.
옆에서 열심히 변명하는 김민식을 제쳐두고 최진혁은 가장 안쪽에 놓인 시체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아, 그리고 혹시라도 방해할 시에는…… 아마 네가 여기 위에 올라갈지도 모르겠군…….”
“하…… 하하하, 농담이시죠?”
“글쎄……? 궁금하면 한번 방해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
데스나이트도 나쁘지 않지. 라고 중얼거리는 최진혁의 모습에 또다시 소름이 돋은 김민식은 조용히 연구실 밖으로 빠져나갔다.
던전 입장 시간을 잡기 위해서라는 변명을 대면서 말이다.
그런 김민식이 사라지고 조용해진 연구실 안에서 최진혁의 마나가 요동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