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치, 헌터가 되다! 14화
수련(2)
3서클을 목표로 잡은 뒤로 최진혁은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삐 움직였다.
일단 서클을 만들기 위해서 필수인 마나 연공을 아침에 일어나서 자기 전에 했고, 마나 연공을 하고 나서는 김혜진의 정령 마법 수련과 도경수에게 배틀메이지들의 박투를 가르쳐 주었다.
“흐아아압!!”
그그극.
최진혁이 준비해 둔 흙 위에 앉아서 땅의 정령을 이용해서 작은 흙 인형(골렘)을 만들어낸 김혜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폴짝폴짝 뛰면서 좋아했다.
“꺄아! 이거 왜 이렇게 귀여워요?”
“그게 골렘이다. 땅의 정령들은 파괴력이 강하지 않기에 이런 골렘 종류를 만들어서 싸우는 게 다른 공격 마법을 사용하는 것보다 효율이 좋다.”
“우음…… 그렇구나……. 그러면 다른 것도 해보죠!”
“나쁘지 않은 생각이군. 이번엔 물의 정령으로 해보지.”
“옙! 그러면 저 옷 갈아입고 올게요!”
“옷? 그게 무슨…….”
분명 수련을 하는 것일 텐데 옷을 갈아입는다는 김혜진의 말에 최진혁이 무어라 말을 하기도 전에 김혜진 집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어쩔 수 없이 최진혁은 김혜진이 옷을 갈아입고 나올 때까지 물의 수질을 점검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물이 없이도 정령을 소환하고 다룰 수는 있지만 초보인 김혜진은 물, 거기에 수질까지도 따져가면서 수련을 하는 것이 나중을 위해서 좋았다.
그래야 정령을 소환할 때에 부담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저 왔어요!”
“그래, 참 빨리도 나오는군……?”
“헤헤헤, 수영복을 분명 챙겨서 왔는데 안 보여서 찾느라고 늦었어요!”
김혜진의 말에 최진혁이 고개를 돌려 김혜진을 바라봤다. 그리고 움찔했다.
“…….”
“어라? 왜 그래요? 얼굴이 빨간데?”
“큼, 요즘 어린 것들은 이래서…….”
“와~ 방금 말투 진짜 꼰대 같은 거 알아요? 그리고 아저씨도 그렇게 나이는 안 많아 보이는데…….”
“됐다. 수영장에나 들어가라.”
“쳇, 재미없어. 그럼 들어갑니다~”
풍덩!
최진혁의 미적지근한 반응에 김혜진은 혀를 베에 내밀고는 수영장을 향해 다이빙했다. 작은 물보라가 몰아치고 가라앉았다. 이내 물 위로 떠오른 김혜진이 물에 젖은 머리를 뒤로 넘기면서 최진혁에게 말했다.
“그래서 물에 들어왔는데 이젠 어떻게 해요?”
말과 함께 물빛을 띄는 최진혁의 손바닥만 한 정령이 나타나서 김혜진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그런 물의 정령을 보면서 김혜진이 방긋 웃으면서 물장구를 치면서 즐거워했다.
“물의 정령의 특성이 무엇 같나?”
“으음…… 귀엽다?”
“……그런 것 말고 전투적인 상황에서의 특성을 물은 것이다.”
“전 잘 모르겠는데……. 운디네! 넌 뭐 할 수 있어?”
“하아…… 하급 정령은 자아가 없…….”
-운디네는 물을 만들 수 있어! 아픈 것도 낫게 할 수 있고!! 헤헤헤.
“……?!”
“어라? 아저씨 말이랑은 다른데요?”
“어떻게 이런 일이……. 분명 내가 연구했을 때에는 단 하나의 하급 정령도 자아를 갖추지 못했는데…….”
자신의 틀렸다는 것보다 최진혁은 하급 정령이 자아를 가졌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대체로…… 아니, 모든 하급 정령들은 자아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자아를 가진 것은 중급 정령부터였다. 그래서 대부분의 전투 정령사들은 중급 정령을 다루었다.
그때부터 의사소통이 가능해졌으니까. 하지만 하급 정령도 자아를 가지고 정령사와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하급 정령사도 전투에서 쓸모가 생긴다.
애초에 하급 정령사를 전력 외로 치는 것은 의사소통의 문제가 컸기 때문이다.
‘김혜진이 사대 정령을 모두 다룰 줄 알아서인가? 아니면 뛰어난 정령 친화력? 하아…… 머리가 아프군.’
자신이 모르던 새로운 지식은 반가웠지만 그만큼 골치가 아픈 지식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래도 나쁜 쪽이 아니라 좋은 쪽의 지식이었기에 최진혁은 고개를 내저으면서 상념을 털어냈다.
그리고 최진혁이 이렇게 골머리를 앓고 있을 때, 김혜진은 운디네의 물빛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칭찬해 주고 있었고, 운디네는 그런 김혜진의 손길을 즐기면서 헤헤 웃고 있었다.
“헤에…… 우리 운디네는 특별하구나~”
-응! 운디네 특별해! 헤헤헤.
그런 둘의 행동을 지켜보던 최진혁의 입이 이내 열렸다.
“그만. 어찌 됐든 운디네에게 들어서 알겠지만 물의 정령들의 대표적인 특성은 치유와 물의 생성이다. 그리고 이 두 능력은 전장, 그러니까 던전 내에서 중요한 능력이다.”
던전에서 몇 날 며칠 혹은 식수가 없는 곳으로 들어가게 될 수도 있었다.
그럴 때 물의 정령이 있다면 물 걱정 따윈 안 해도 된다.
물론 물을 생성하는 것도 정령사의 마나를 쓰지만 어쨌든 마나는 시간이 지나면 다시 차오르기 때문에 상관없었다.
그때 동안 정령사가 전력 외가 된다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물을 구할 수 있다는 점은 그런 디메리트를 모조리 상쇄할 만큼 컸다. 그리고 이런 물의 생성보다 중요한 능력이 있었다.
바로 치유 능력이었다.
치유 능력은 당장 부상으로 전력 외가 된 인물을 전력으로 쓸 수 있게 만드는 능력이었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헌터들은 던전에 들어갈 때 치유형 헌터를 무조건 한 명은 데리고 들어갔다.
막상 전투에서는 별 쓸모없는 헌터를 구할 수 없다면 비싼 돈을 주고서라도 데려갈 정도로 치유라는 능력에는 엄청난 메리트가 있었다.
그렇기에 다른 정령들의 능력들보다도 물의 정령을 능력으로 가장 집중적으로 개발해야만 했다.
스으윽.
그렇기에 최진혁은 곧장 본 애로우 하나를 소환해서 자신의 손바닥을 스윽 그었다.
날카로운 본 애로우의 촉에 연한 최진혁의 손바닥에 실선이 생겼고 이내 그 실선에 새빨간 피가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최진혁의 돌발행동에 김혜진이 당황했고 김혜진과 감정을 공유하는 운디네도 허공에서 우뚝 멈춰 서서 피가 뚝뚝 흐르는 최진혁의 손바닥을 쳐다봤다.
“아, 아저씨 미쳤어요?! 갑자기 자기 손바닥은 왜 그어요!! 빨리 치료해요 치료!! 그 아저씨 마법이면 되죠? 빨리 해요!”
“아니 난 안 한다. 치료는 네가 해야지. 당장 치유 능력을 개발해야 하는 것은 너다, 내가 아니라. 너의 몸에 상처를 내라고는 할 수 없으니 내가 해야지. 한번 치유시켜 봐라.”
“우으으…… 갑자기 하라고 해봐야…….”
“정령사의 능력은 정령과의 교감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너는 이미 그 교감의 단계를 넘었다. 그러니 충분히 능력의 발현도 가능하다. 음…… 대충 포근하고 치유한다는 이미지를 그리면서 너의 마나를 내 상처에 불어넣어 봐라.”
“하아…… 제가 실패하면 바로 아저씨가 치료해야 돼요? 알았죠?”
“알겠으니 빨리 해라. 슬슬 머리가 어지럽군.”
말을 하는 동안에도 최진혁의 손에서 피가 줄줄 흘러나오고 있었다. 깊게 베었는지 꽤 많은 양의 피가 끊임없이 솟구쳐 올랐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수영장에서 상체만 내밀고 있던 김혜진이 눈을 감고 무어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부글부글.
그리고 그와 함께 수영장에서 기포가 올라오더니 물풍선만 한 크기의 물덩이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떠오른 물덩이는 이내 최진혁의 손을 감쌌다.
최진혁의 손을 감싼 물덩이는 밝은 빛을 내뿜으면서 조금씩 크기가 줄어들더니 이내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고 물덩이가 사라지고 난 뒤, 최진혁의 손에는 상처는커녕 흉터조차 남지 않았다.
“어라? 진짜 되네?”
“느리지만 그래도 처음치곤 잘했다. 그걸 반복하면 너는 눈 깜짝할 사이에 치유를 할 수 있을 거다. 이제 반복해라. 땅의 정령으로 골렘을 만드는 것과 물의 정령으로 물의 생성 및 치유를 말이다.”
“알겠어요! 그런데 바람의 정령이랑 불의 정령은요?”
“두 정령은 공격에 관련된 정령들이니 내가 따로 수련할 공간을 만들어주마. 일단은 두 정령의 능력만을 개발해라. 어차피 한꺼번에 수련을 하면 능률만 떨어질 뿐이다.”
“네!!”
최진혁의 말에 당차게 대답한 김혜진은 이내 흙밭과 수영장을 오가면서 수련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최진혁이 구해온 1급수의 물이 흙탕물로 변해 버렸으나 성과만 있다면 아무래도 상관없는 최진혁이었다.
‘이걸로 김혜진은 됐군.’
이제는 다음 수련생을 보러 갈 시간이다.
* * *
“준비는 다 됐나?”
“예! 준비 다 됐습니다!”
최진혁의 말에 도경수가 군기가 바짝 든 표정으로 최진혁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최진혁과 마주 보고 있는 도경수의 차림은 던전에 들어가기 전에 장비들을 모조리 입은 모습이었다.
던전에서 나오는 몬스터의 가죽을 무두질해서 만든 가죽갑옷에 한 손에는 방패를 든 모습에 최진혁은 실소를 머금었다.
“그게 배틀메이지의 장비라고 생각하나? 물론 가죽갑옷은 괜찮은 선택이지. 가볍지만 적당한 방어력 거기에 몬스터의 가죽으로 만들어져 있으니 질기기까지 하지. 하지만 한 손에는 방패라…… 그건 나쁜 선택까진 아니어도 현재의 너에겐 좋지 못한 선택이다.”
“예? 왜죠? 일단 막아야 공격을…….”
“그 전제가 잘못되었다는 거다. 왜 맞아주고 시작하려고 하지? 상대는 몬스터다. 너보다 작고 힘이 약한 특수 능력으로 싸우는 몬스터도 있지만 당장에 C급 몬스터로 평가되는 오크만 보아도 너보다 힘이 강하다. 그런 몬스터들을 상대로 한 대 맞아주고 시작한다? 죽고 싶은 건가? 그리고 강화 마법…… 그러니까 버프 마법을 네 몸에 두른다고는 해도 아직 네 마나량과 활용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한 방만 정통으로 맞아도 너는 죽는다. 그런데도 맞아주고 시작한다는 말이 나오나?”
“……아닙니다.”
“방패는 일단 넣어둬라. 나중에 훗날 네 마나량이 많아지고 네 능력을 잘 활용할 수 있게 된다면 그때 다시 꺼내도록 해라. 그리고 이걸 받아라.”
“예…… 옙!”
최진혁의 말과 함께 날아오는 무언가를 받아 든 도경수가 의아한 얼굴로 물어왔다.
“이건 뭐죠?”
“완드다. 대충 봤을 텐데?”
“예, 뭐. 보긴 했습니다. 전투마법사라고 불리는 이들이 쓰는 물건 아닙니까?”
“맞다. 하지만 그들과 너는 질적으로 다르지. 그들은 강화 마법을 사용할 수 없고 넌 있으니까. 그 마법이 있고 없고가 매우 중요하다. 강화 마법이 없는 배틀메이지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의 차이가 있으니까. 일단 완드든 스태프를 들고 있으면 네 마법을 사용하기 훨씬 수월할 거다. 완드나 스태프에 달린 마석이 네 마법을 보조해 줄 테니까. 하지만 스태프를 들고선 빠른 기동력을 가질 수 없지. 그래서 배틀메이지가 완드를 애용하는 거다. 거기 완드에 끈이 달려 있지?”
“예, 예예.”
“그 끈을 팔목에 묶는 거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완드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도경수는 바로 완드에 달린 끈을 팔목에 단단하게 묶었다.
도경수가 손목에 끈을 묶고 완드를 손에 쥐자 최진혁은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너의 마나의 부족 및 숙련도를 보완해 줄 방법이 있다고 했지?”
“네, 분명 그런 말을 하셨었죠. 그런데 이 완드만 있어도 딱히 그런 건 필요 없을 것 같은데…….”
“말도 안 되는 소리. 그 완드는 그저 너를 보조해 주는 물건이다. 너는 상대에게 강화…… 아니, 버프 마법을 걸어줄 때 어떻게 걸어주지?”
“어떻게 긴 뭘 어떻겝니까. 그냥 몸 전체에다가 걸어주는 거죠.”
“그리고 너에게 사용할 때도 전신에다가 사용하겠군?”
“예, 그렇죠. 그런데 이게 잘못된 겁니까?”
“잘못됐지. 그 방패로 한번 내 주먹을 막아봐라.”
아직 왼팔에 달려 있는 방패를 보면서 최진혁이 말했다.
그 말에 도경수는 자세를 잡고 방패를 앞으로 내밀면서 방어 자세를 잡았다. 자세를 잡자 최진혁이 주먹을 쥐고 방패를 후려쳤다.
꾸웅.
하지만 일반인의 신체를 가진 최진혁의 주먹이었기에 약간의 충격만 있었을 뿐, 도경수는 한 발자국도 물러나지 않았다.
“그럼 이번에는 네 방식대로 버프 마법을 걸었을 때다.”
“예?”
버프 마법? 이라는 생각을 할 때, 도경수 자신이 버프 마법을 사용할 때와 마찬가지로 밝은 빛무리가 최진혁의 몸을 감쌌다.
그리고 빛무리가 사라지자 최진혁은 곧장 도경수에게 달려들었다.
버프 마법이 적용되어서인지 방금보다 더 빠르고 묵직한 일격이 방패에 꽂혔다.
“크윽…….”
카가각.
방패에 느껴지는 충격과 함께 도경수는 땅바닥을 끌면서 뒤로 두어 걸음 밀려났다.
“이게 내가 사용한 버프 마법이다. 그리고 이게 네가 앞으로 추구해야 할 버프 마법이다.”
그와 함께 다시 한번 빛무리가 최진혁의 몸을 휘감았다. 이번에는 희한하게도 최진혁의 다리에만 빛무리가 감쌌다.
그리고 다시 한번 최진혁이 달려들었다. 하지만 전과는 확연히 다른 속도로 최진혁이 도경수에게 쇄도했다.
전보다 가히 1.5배는 빠른 속도에 도경수가 어어 하는 사이에, 최진혁은 도경수의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최진혁의 다리에 있던 빛이 사라지고 최진혁이 주먹을 쥐고 있는 오른팔에 빛무리가 맺혔다. 그리고 그 주먹으로 도경수의 방패를 후려쳤다.
꽈아앙!
“크어어어억!!”
아까와는 전혀 다른 충격이 도경수의 방패를 강타했고, 그 충격을 제대로 흘려내지 못한 도경수는 허공을 훨훨 날더니 이내 땅바닥에 처박혀서 데굴데굴 굴렀다.
“쯧, 역시 연비가 나쁘군.”
그 말과 함께 최진혁의 팔에 맴돌던 빛줄기가 픽 하고 사라졌다.
본디 3서클은 되어야 사용 가능한 마법을 억지로 사용한 것이기에 짧은 시간 동안 사용된 마나는 상상 이상이었다.
두 번째 서클에 담긴 마나가 모조리 사용된 것이다.
짧은 시간에 다량의 마나가 사용되어서 생긴 약간의 탈력감에 최진혁은 바닥에 주저앉으면서 앉은 채 아직까지도 바닥을 구르고 있는 도경수를 보면서 말했다.
“여기가 네가 도달해야 할 첫 번째 지점이다.”
그런 최진혁의 말을 들으면서 흙바닥을 굴러 먼지투성이인 도경수가 힘차게 대답했다.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