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치, 헌터가 되다! 13화
수련(1)
툭.
“우물우물…… 이게 뭐예요?”
소파에 누워서 빈둥대고 있던 김혜진에게 최진혁이 종이 뭉치를 던지자 김혜진이 종이 뭉치를 받아들면서 물었다.
“필기 문제들이다. 내가 주석까지 전부 달아놨으니 아무리 멍청하더라도 이것만 외우면 만점은 쉬울 거다.”
“저 안 멍청하거든요!!”
“그럼 이건 필요 없나 보군. 그러면 내가 가져가야…….”
“스토오옵!! 헤헤, 아저씨가 만드신 정성을 봐서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충성!”
최진혁의 손에 들린 문제집을 낚아챈 김혜진이 충성 자세를 취하면서 헤실헤실 웃었다.
그 모습에 최진혁이 피식 웃고는 김혜진에게 말했다.
“그건 그렇고 내가 가르쳐 준 수련은 하고 있나?”
“아~ 그 정령들의 속성에 맞는 곳에서 정령들과 놀아주라고요?”
“그래, 정령들은 친화력이 마나 다음으로 중요하다.”
“그건 잘하고 있어요!”
최진혁이 김혜진이 알려준 수련법은 매우 간단했다. 각 속성의 맞는 정령에게 친숙한 장소에서 그 정령과 놀아주는 것이었다.
정령사들의 경지는 자신의 정령들과 함께 성장해 간다. 아무리 뛰어난 정령사일지라도 처음은 하급 정령으로 매한가지였다.
개중에는 특별하게 중급 정령과도 계약하는 이도 있지만 그건 정말 극소수…… 아니, 몇십 년에 한 번 정도 나올 법한 일이고 대부분 하급 정령과 계약을 한다.
그리고 정령을 성장시키는 방법 또한 간단했다. 바로 정령과의 친화력 그리고 마나였다.
이 친화력은 정령과 많이 붙어서 생활하고 놀면서 늘어나게 되고 거기에 일정량 이상의 마나가 갖춰진다면 정령은 다음 단계로 성장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최진혁은 마당 한편에 산의 정기가 가득 담긴 흙으로 된 구역을 만들어 땅의 정령과의 친화력을 높이게 도와주고, 수영장도 매일매일 깨끗한 1급수들로 갈아주었다.
다만 불과 바람은 최진혁이 따로 손을 쓸 방법이 없었기에 김혜진의 자의에 맡기고 있었다.
“마나는 잘 모으고 있나?”
“예! 아저씨가 설명해 준 대로 집적진? 거기에 앉아서 마나를 모으고 있어요! 그런데 원래 마나가 이렇게 빨리 모이는 거예요? 마나 추출기로 마나 모으는 거 보니 엄청 느리게 모이던데.”
“그러니까 너가 복 받았다는 사실에 감사하도록. 열심히 마나를 모으도록 해라. 그게 너의 목숨 줄이니까.”
정령사는 따지고 보면 마법사의 상위호환적인 직업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사대 속성의 정령을 전부 다룬다는 가정하에 말이다.
불의 정령으로 하는 공격은 어지간한 마법사들의 파이어 볼보다 강력한 파괴력을 자랑했고, 바람의 정령으로 몸을 가볍게 해 기사급의 몸놀림을, 땅의 정령으로 만들어낸 골렘은 성벽과도 같은 방어력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물의 정령으로 성직자와 같이 치유의 능력 및 식수의 생성이 가능해 사막과도 같은 지역이나 전쟁터에서 어마어마한 능력을 발휘했다.
그렇기에 정령사들은 마나를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왜냐하면 정령 마법은 마법사들이 사용하는 마법들보다 마나 소모량이 컸기 때문이다.
정확하게는 정령을 유지하는 마나와 마법을 사용하는 데에 사용하는 마나가 따로 사용되기에 그렇다.
그래서 사람들은 우스갯소리로 사대 속성의 정령을 모두 다루는 정령사가 드래곤급의 마나를 가지고 있다면 정말 세계도 정복할 거라는 말을 괜히 하는 게 아니었다.
그리고 그 정도는 아니어도 1인분, 아니, 그 이상을 하게 만들기 위해서 최진혁은 눈물을 머금고 김민식이 준 중급 마석들을 사용해서 두 개의 영구 마나 집적진을 더 만들었다.
자신이 쓸 것과 도경수와 김혜진이 쓸 것 이렇게 총 세 개의 영구 마나 집적진을 그리게 되면서 최진혁의 집에는 더 이상 빈방이 남아 있지 않았다.
물론 자신이 쓸 것에는 상급 마석을 박아 넣었기에 다른 두 개보다 성능이 월등히 좋지만 말이다.
“예입! 알겠습니다! 그러면 전 이만 공부하러 가볼게요~”
“그러고 보니 도경수는 어디 있지?”
“그 아저씨요? 그 아저씨는 아마 마나 모으고 있을걸요? 평소에 마나에 맺힌 게 많았나 봐요. 요즘 밥 먹는 시간하고 자는 시간 빼면 다 집적진 방에 있을걸요?”
“그런가? 알겠다. 가봐라.”
“네~ 모르는 거 있으면 물어보러 올게요.”
김혜진은 최진혁이 준 족집게 문제들이 적힌 A4 종이를 한 번 흔들어 보이고는 이내 자신의 방으로 사라졌다. 최진혁은 도경수를 찾아 몸을 옮겼다.
똑똑.
마나를 모으는 와중에 벌컥 들어가게 돼서 혹여 도경수가 놀라 정신력이 흐트러진다면 곧장 마나 역류, 나아가서 마나 폭주까지 이어질 수 있기에 최진혁은 문을 두드려 인기척을 냈다.
“으으음…… 김혜진이냐?”
짜증이 가득한 도경수의 물음에 최진혁이 입을 열었다.
“나다.”
“오오!! 최진혁 씨셨습니까? 난 또 김혜진 그 살쾡이 같은 앤 줄 알고. 헤헤, 들어오시죠.”
도경수는 최진혁이 그려준 마나 집적진에 들어가 마나를 한 번 모아보고는 그 뒤로 최진혁에게 꽤 공손해졌다. 아니, 받들어 모셨다라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극진히 대했다.
도경수의 평생의 염원이던 A급 헌터. 그를 넘어서 S급까지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최진혁의 영구 마나 집적진은 일반 헌터들이 사용하는 마나 추출기와는 효율 자체가 달랐다.
마나 추출기가 더하기라면 영구 마나 집적진은 곱하기였다.
마나 집적진에 박아놓은 마석들이 서로 공명하여 자연에 퍼져 있는 마나를 집적진 안으로 끌어모으기 때문에 중급 마석 이상의 마나를 흡수할 수 있었다.
물론 매일매일 그 정도의 마나를 모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헌터들도 매일매일 중급 마석을 마나 추출기에 갈아 넣지는 않았으니 다를 바는 없었다.
거기에 영구 마나 집적진은 한 번 마석을 박아 넣으면 거의 반영구적으로 가동되기에 경제적으로 덜 부담이 되는 장점도 있었다.
“그래서 마나는 잘 모이나?”
“암요! 크으…… 이거 정말 물건이네요. 마나 추출기로 모으는 것보다 약 1.5배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계속 그 정도의 양이 들어오는 건 아니지만 하루 종일 앉아 있으면 중급 마석 두 개 분량의 마나 정도는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 말하면서 도경수는 바보처럼 웃었다. 지금 이 상황이 꿈만 같았기 때문이다.
도경수가 아무리 잘나가 봐야 좋은 집 하나에 외제차 하나 정도가 고작(?)이었다.
거기에 다달이 나가는 돈들도 만만치 않았다. 헌터는 자신의 몸이 재산인 만큼 마법형, 강화형, 치유형 가리지 않고 자신의 몸을 지키는 장비들에 돈을 어마어마하게 쓰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마나 추출기에 못해도 천만 원인 중급 마석을 갈아 넣을 수 있는 상황은 협회 지부장 자리를 맡고 있던 도경수에게도 그닥 많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하루에 중급 마석 두 개분의 마나를 꽁으로 얻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물론 비밀 엄수를 하지 않는다면 죽이겠다는 최진혁의 말이 있기는 했으나 어디 가서 떠벌리고 다닐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기에 도경수는 그저 좋을 따름이었다.
“그러면 얼마나 더 지나면 A급이 될 것 같나?”
“흐음…… 제가 원래 가지고 있던 마나에 여기 들어오면서 집이랑 차도 다 처분했었는데, 그 돈까지 다 갈아 넣으면…… 한 한 달에서 두 달 정도면 될 것 같습니다.”
“적당하군.”
한 달에서 두 달 정도면 김혜진과 최진혁이 실기시험까지 마칠 시간이었기에 딱 맞아떨어졌다.
지금 상황으로 보면 김혜진은 D~C급 정도를 받을 것 같았고 최진혁 자신은 A급 정도를 받을 것 같았기에 시험이 통과된 후 바로 길드를 만들어도 되겠다 생각한 최진혁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도경수에게 말했다.
“네 말대로 두 달 뒤에 우리 둘이 시험에서 합격하고 난 뒤, 우리는 바로 길드를 창설한다.”
“길드요? 그건 좀 빠르지 않을까요? 길드원도 최진혁 씨를 포함해서 셋인데…….”
“내가 A급 헌터가 된다면? 그래도 부족할까?”
“……미리 길드 창설 준비를 하고 있겠습니다.”
“좋아, 너만 믿고 있겠다.”
“옙!”
“그러면…… 흠 한 시간 정도 뒤에 마나 축적을 마치고 거실로 나와라. 배틀메이지의 전투법을 가르쳐 주지.”
“오오!! 드디어 전투법을 배우는 겁니까?”
최진혁의 말에 도경수는 눈을 반짝이면서 좋아했다.
평소 다른 이들에게 버프만 걸어주고 자신은 뒤에만 빠져서 눈만 뒤룩뒤룩 굴리던 상황은 도경수의 성향과는 맞지 않았다.
그나마 돈은 잘 줬기에 참았을 뿐. 도경수의 본성은 강화형 헌터들처럼 전방에서 치고받는 성격이었다.
하지만 그런 도경수의 꿈은 자신에게 버프 마법을 걸었을 때 씻은 듯이 사라졌다.
다름 아니라 자신에게 버프 마법을 걸면 다른 이들에게 버프를 걸었을 때보다 마나가 빠르게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도경수는 눈물을 머금고 후방에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 혼자서 전방에서 싸우는 것보다 셋의 동료들이 전방에서 버텨주는 것이 사냥에서 더 효율이 좋았기 때문이다.
그런 효율 때문에 떠나보냈던 도경수의 꿈이 최진혁의 말 때문에 긴 여행에서 돌아오고 있었다.
“그래, 너의 약점인 마나는 집적진으로 보완을 했으니 전투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어야겠지. 그리고 분명 너 자신에게 쓰면 마나가 빨리 닳는다고 했지? 마나가 충분해질 때까지 사용할 만한 팁도 알려주지.”
“크으, 알겠습니다! 그러면 전 이만 제 단점을 없애러 가보겠습니다.”
아까 전의 김혜진과 마찬가지로 도경수는 충성 자세를 하고는 방문을 닫았다.
그리고 닫힌 방문을 보던 최진혁은 등을 돌리고 자신의 마나 집적진이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다른 방의 마나 집적진보다 족히 1.5배는 커다란 집적진의 중앙에 털썩 주저앉아 가부좌를 틀은 최진혁은 이내 눈을 감고 집적진으로 모여드는 마나를 느끼면서 심장에 마나를 쌓기 시작했다.
‘목표는 3서클 그리고 듀라한이다.’
목 없는 기사, 듀라한이 최진혁의 다음 목표였다.
보통의 흑마법사들이라면 4서클 정도는 되어야 시도를 하고 5서클은 되어야 만들 수 있는 듀라한을 고작 3서클로 만드려는 최진혁을 보면 다른 이들은 코웃음 쳤겠지만 정작 당사자인 최진혁은 자신 있었다.
아니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보다 더욱 강력한 듀라한을 만들어낼 자신이 있었다.
일단 최진혁은 눈을 감고도 듀라한을 만들 정도로 듀라한을 만들었고 나중에는 자동으로 듀라한을 제작하는 공장마저 만들 정도로 듀라한 제작에 능통했다.
거기에 마기보다 한층 윗단계의 마나인 음차원의 마나 덕택에 안 그래도 완벽한 언데드에 플러스알파가 더해졌다.
물론 아직까지는 듀라한을 만들 마나도 시체도 없었지만 A급 헌터 라이센스만 따면 다 해결될 문제였다.
‘……다른 이들이 보면 좀 그러니 지하실에 하나 만들어야겠군.’
벌써부터 자신만의 연구실 구조에 대해 생각하는 최진혁의 입가엔 옅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