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치, 헌터가 되다! 12화
2서클(2)
“후우우우…….”
마나 집적진의 한가운데에서 숨을 몰아쉬던 최진혁의 두 눈이 번쩍 떠졌다.
“역시 내 계산대로군.”
최진혁은 자신이 생각한 대로 사용된 마석을 보면서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쓰임이 다한 수십여 개의 중급 마석은 파사삭 소리와 함께 먼지로 변해 버렸다.
수억은 가뿐히 넘을 마석이 먼지로 변하는 모습을 보고도 최진혁은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못했다.
그저 새로 얻은 두 번째 서클을 생각하면서 앞으로의 일정을 고민할 뿐이었다.
“흐음…… 일단 김혜진과 도경수에게 이 집으로 들어오라고 말을 해둬야겠군. 김혜진은 무리이려나…….”
성인 남성인 도경수야 최진혁의 집에 얹혀살아도 별문제 될 것이 없었지만 현역 여고생인 김혜진은 문제가 많았다.
일단 도경수가 들어오게 되면 남자 둘이 사는 집에 들어오는 셈이었기에 주변에서 말이 많을 것이고 결정적으로 그녀의 부모님이 허락할지도 미지수였다.
하지만 최진혁에게 김혜진이 들어오든 말든 그리 중요하진 않았다.
들어오면 좋고 안 들어오면 말고 정도? 지금의 김혜진은 최진혁에게 딱 그 정도였다.
쓸모가 있으니 곁에는 두지만 딱히 크게는 상관하지 않는.
최진혁은 그런 생각을 하다가 이내 고개를 내저으면서 상념에서 빠져나왔다.
“후우, 일단은 먼저 할 일부터 해야겠군.”
그리 말하면서 최진혁은 심장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는 두 개의 서클을 활성화시켰다.
“분명 집 안에 먼지가 많다고 했으렷다…… 이거 승부욕이 솟아오르는군.”
김민식이 건넨 편지에 적혀 있었던 먼지가 많다는 말을 상기해 낸 최진혁은 심장 주위를 팽팽 돌고 있는 서클을 보면서 낮게 읊조렸다.
“클린, 클린, 클린, 클린…….”
본격적인 먼지와의 전쟁이었다.
* * *
“이걸로 대충 끝났나?”
그리 말하면서 최진혁은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닦아냈다.
대충 끝났다라고 말하는 최진혁의 말과는 다르게 최진혁의 집은 몇 시간 전과는 달리 때깔부터가 달라져 있었다.
2서클에 오르면서 간단한 속성 마법들(워터, 파이어 등)을 다룰 수 있게 되었기에 클린만으로 지워지지 않는 얼룩 등을 완벽하게 지울 수 있게 되면서 한층 더 완벽한 청소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아르말딘 대륙에서 다른 마법사들이 보면 기겁할 만한 일을 한 최진혁은 만족스럽다는 얼굴로 의자에 주저앉아서 손님들을 기다렸다.
그렇게 믹스커피를 타서 홀짝이고 있을 무렵에 현관벨이 울렸다.
띵-동!
“흠, 왔나 보군.”
벨소리에 최진혁은 현관을 향해 걸어가 문을 열었다.
철컥.
“오우! 빨리 나오시는구만. 이건 빈손으로 오기 뭐해서 사왔수다. 혼자 사는 남자들에게 이건 필수지 필수. 고맙다는 말은 안 해도 돼요.”
그리 말하면서 도경수는 멍하니 서 있는 최진혁에게 두루마리 휴지 묶음을 던져주고는 집 안으로 쏙 하고 들어갔다.
그런 도경수의 모습에 최진혁은 자신의 손에 들린 두루마리 휴지 묶음을 한 번 내려다보고는 문을 닫고 도경수의 뒤를 따랐다.
휴지 묶음을 들고 거실로 간 최진혁은 어느새 소파에 앉아 있는 도경수의 모습에 헛웃음을 터뜨렸다.
“허, 네놈의 안방인 줄 아느냐?”
“에헤이, 손님한테 그러는 거 아니야. 응? 그리고 우리 이제는 한배를 탄 거잖수 응? 나 오늘 사표도 쓰고 왔어. 이제 당신한테 빌붙어 살아야 한다고.”
“그러면 내가 쫓아내면 네놈은 백수겠군.”
“……그런 큰일 날 소리 하지 말고. 그건 내려놓고 당신도 앉지? 이거 겁나 푹신푹신하네. 우리 집 침대보다 좋아. 그런데 정말이야?”
“뭐가 말이야?”
“이 집에 같이 살아도 된다는 거 말이야.”
이미 자기 집처럼 굴고 있으면서 그런 질문을 하는 도경수의 말에 최진혁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도경수에게 말했다.
“그렇게 말하면서 몸은 이미 자기 집처럼 행동하고 있는 것 같다만?”
“아…… 아하하, 내가 원래 좀…….”
최진혁의 핀잔에 도경수는 머리를 긁적이면서 무안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소파에서 나올 생각은 없어 보였기에 최진혁은 한숨을 쉬면서 휴지 묶음을 바닥에 내려놓고는 방금까지 마시던 커피잔을 집어 들었다.
“어라? 혼자 맛있는 거 먹기 있기? 이거 손님한테 너무한 것 아니…… 내가 타 먹을게요.”
최진혁이 마시는 커피를 보더니 평생 앉아 있을 것처럼 굴던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최진혁에게 나도 달라면서 땡깡을 부리려던 도경수는 어느새 최진혁의 주위에서 맴돌고 있는 본 애로우에 입을 닫고 부엌으로 총총총 사라졌다.
도경수가 믹스커피를 찾고 있을 때, 또다시 현관벨이 울렸다.
띵-동!
“마지막 손님이 왔군.”
자신이 초대한 마지막 손님, 김혜진을 맞이하기 위해서 최진혁이 다시 현관으로 향했다.
후룩.
달달한 커피를 마시면서.
* * *
“이건 다 뭐지……?”
“이거요? 아저씨가 여기서 같이 살자면서요! 우와…… 여기 집 진짜 좋네요. 마당도 있고. 오면서 보니까 수영장도 있는 것 같은데…… 수영해도 돼요? 제가 진짜 수영 잘하거든요. 제가 친구들 사이에서 물개라고 불렸거든요!”
“하아…….”
방금 봤지만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는 김혜진의 화술에 최진혁은 김혜진이 정신 계열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 아닌지 의심했다. 하지만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마법사는 정령을 다룰 수 없고, 정령사는 마법을 쓸 수 없다. 이것이 학계의 정설이었다. 그 이유는 마법사와 정령 사이에 관계 때문이다.
마법사는 자연에 퍼져 있는 마나를 인위적으로 조종하여 마법을 사용하는 반면에 정령은 자연 그 자체의 존재이기 때문에 마나, 즉 자연을 인위적으로 바꾸는 마법사들을 질색한다.
그렇기에 김혜진이 마법을 쓴다는 것은 있을 수 없었다.
실제로 9서클에 도달했던 최진혁조차도 정령만은 다룰 수는 없었다.
그랬기에 김혜진이 마법을 쓸 수 있다면 그런 자신보다 뛰어나다는 증거가 되기에 만약 김혜진이 마법을 쓸 줄 알더라도 최진혁은 인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단 들어와라.”
“옙! 그런데…… 이것 좀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 이게 진짜로 보기보다 무겁거든요…….”
“하아…….”
김혜진의 말에 최진혁은 다시 한번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으면서 손가락을 튕겼다.
휘오오옹!
그와 함께 바람이 불어와 김혜진이 들고 온 짐들을 싣고 집 안으로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보면서 박수를 치고 있는 김혜진을 최진혁이 노려보면서 말했다.
“정령을 이럴 때 써라.”
“에엑! 정령들은 제 친구인걸요~”
“…….”
그리 말하면서 정령들과 꺄르륵거리는 김혜진의 모습에 입을 열면 자신이 손해라는 생각을 한 최진혁은 김혜진을 버려두고 홀로 집 안으로 들어왔다.
집으로 돌아오자 어느새 커피믹스를 찾았는지 커피를 홀짝이고 있는 도경수가 최진혁을 반겨주었다.
“어라? 누구 온 거 아니야? 그런데 왜 혼자 와?”
“자기 친구들과 노느라 바쁘니 알아서 올 거다.”
“친구? 놀아? 그건 무슨 소리래?”
후루룩.
최진혁의 말에 도경수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자신이 타놓은 커피를 후룩 마시는 것을 잊지 않았다.
“아저씨도 있었네요?”
“푸훕! 뭐야? 너였어? 저기요, 최진혁 씨? 저 애랑도 같이 사는 겁니까? 예? 아니라고 해주세요…….”
“에엑! 한 떨기 꽃 같은 여고생과 한집에서 같이 살면 오히려 고마워해야죠! 그 반응은 뭐예요!!”
만나자마자 툭탁거리는 둘의 모습을 보면서 최진혁은 벌써부터 눈앞이 캄캄해졌다.
* * *
“흐음~~ 흥흥~”
부엌에서 콧노래를 부르면서 요리를 하는 김혜진의 모습을 본 도경수가 인터넷으로 헌터 라이센스 필기 책을 주문하는 최진혁에게 말했다.
“쟤는 왜 저럽니까?”
“나도 모른다. 저녁을 만들어주겠다고 하던데 맛은 나도 잘 모르겠군.”
“저거 사실은 우리를 독살하려고 하는 게 아닐깝쇼?”
“뭔 독살이에욧!!! 저 요리 잘하거든요? 흥! 싫으면 먹지를 말던가!”
“……하여튼 귀는 밝아가지고.”
도경수의 말에 김혜진은 버럭 소리치더니 이내 식탁 위에 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큰 냄비를 가져와 받침 위에 얹은 김혜진이 밥그릇에 흰쌀밥을 듬뿍 담아다가 최진혁과 도경수에게 건네줬다.
최진혁이 받침 위에 얹어놓은 냄비의 뚜껑을 열었다.
뚜껑을 열자 뜨거운 김과 함께 맛있는 카레의 향이 부엌을 가득 채웠다.
독살이니 뭐니 하던 도경수조차 깜짝 놀랄 정도로 맛있는 향이 말이다.
“허…… 냄새 죽이는데?”
“하! 봤죠? 저 요리 잘한다니까요? 앞으로 밥은 제가 해드릴게요. 엣헴!”
도경수가 감탄하자 김혜진을 그 모습을 보면서 실실 웃더니 국자로 카레를 퍼서 도경수와 최진혁의 그릇에 부어주었다.
“방금해서 뜨거우니까 식혀서 드세요. 그래도 이건 우리 엄마가 가서 먹으라고 준 김치! 적당하게 익어서 맛있다구요?”
“크으. 뭘 좀 아시는 어머니시군. 그런데 너네 어머니는 용케 네가 여기 와서 사는 걸 허락하셨네?”
“헤헤, 김민식 아저씨가 엄마를 설득하셨거든요. 그 아저씨 꽤 유명한 사람이라면서요? 냠냠.”
김혜진의 말에도 최진혁은 묵묵히 밥과 카레를 섞더니 입안에 넣었다.
그리고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빠른 속도로 카레를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물론 중간에 잘 익은 김치를 얹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어라, 아저씨 은근 잘 드시네요. 더 드릴까요?”
“……괜찮다. 꽤 맛있군.”
“헤헤헤, 고마워요.”
“난 한 그릇 더 줘!”
“……아저씨는 아저씨가 가져다가 먹어요!”
“왜 나만…….”
의기소침해하면서 밥공기를 들고 밥솥으로 향하는 도경수와 더 먹을지 말지 고민하는 최진혁과 그런 둘을 보면서 배시시 웃는 김혜진 이렇게 셋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되었다.
* * *
김혜진과 도경수가 최진혁의 집에서 같이 살게 된 지 며칠쯤 되었을 때, 최진혁의 집으로 택배가 왔다.
“어라? 이건 무슨 택배예요?”
“헌터 라이센스 필기 기출 문제집이다. 일단 참고 삼아서 하나 사봤다.”
“하나? 저는요? 뭐 저는 제 돈 주고 따로 사라는 그런 거예요?”
“아니, 어차피 내가 한 번 훑어보고 설명해 줄 것이니 굳이 네 것까지 살 필요가 없었을 뿐이다.”
택배를 뜯자마자 안에는 든 책을 훑어보는 최진혁의 모습에 김혜진이 물개박수를 치면서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최진혁을 바라보았다.
“아저씨, 아저씨! 공부 잘해요?”
“공부? 수석을 놓쳐본 적이 없다.”
“……우와, 재수 없어.”
실제로 최진혁은 아르말딘 대륙 시절, 왕립 마법 아카데미 재학 시절 수석을 놓쳐본 적이 없는 천재였다.
연산 능력, 캐스팅 속도, 마법의 위력, 마나의 축적 이 모든 것을 말이다.
그랬기에 공부는 최진혁에게 무척이나 쉬운 문제였다. 거기에 자신의 전공인 몬스터의 약점 및 생태와 같은 몬스터 관련 문제라면 더더욱.
“그럼 전 아저씨만 믿고 있을게요!”
“대신 내가 알려준 정령 수련법을 연습하고 있어라.”
“칫, 그런 건 제가 알아서 잘하고 있네요~ 베에~”
하지만 최진혁은 혀를 삐죽 내밀고 사라지는 김혜진을 쳐다도 보지 않고 눈앞에 있는 헌터 라이센스 필기책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책을 보면서 자신이 알고 있던 사실들을 하나하나 정리해 나가는 최진혁의 입가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재밌군.’
그렇게 정리하면서 김혜진에 눈높이에 맞게 풀어서 밑에 주석을 다는 것도 잊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