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치, 헌터가 되다! 9화
김혜진(2)
최진혁의 위로 같지 않은 위로를 받은 김민식과 그런 위로를 한 최진혁은 사람이 없는 으슥한 곳에서 사람이 많이 모여 있는 곳으로 나왔다.
밝은 곳으로 나온 최진혁의 귀로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어머, 저게 각성인 거 뭔가 하는 건가?”
“오메, 그런갑네! 신기하구만!”
‘각성? 아! 김혜진이라고 했었나?’
멀리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를 들은 최진혁은 그제야 각성 중이던 김혜진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런데…… 아직도 각성이 안 끝났나?’
김민식과의 대화는 족히 30분 넘게 이어졌었다.
대략 한 시간쯤 되었을까? 그런데 아직까지 각성이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의아해진 최진혁이 자신의 옆에서 걷고 있는 김민식에게 물었다.
“각성이라는 게 원래 이렇게 오래 걸리나?”
“예? 오래 걸리다니 그게 무슨 소립니까?”
웅성거림에 누군가 각성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김민식이 질문의 의도를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보통 각성은 얼마나 걸리지?”
“각성 말입니까? 대부분 삼십 분…… 길어야 한 시간 정도로 끝나죠. 그런데 그건 갑자기 왜……?”
“아니, 너랑 말을 하러 가기 전부터 각성을 하고 있었는데 너와 내 대화가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아서 물었다.”
“……우리가 얼마나 얘기를 했죠?”
“이제 한 시간…… 아니, 한 시간 반쯤 되었나?”
최진혁의 그 말에 김민식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리고 이내 빠르게 뛰어가기 시작했다.
S급 강화형 헌터답게 김민식의 달리기 속도는 무척이나 빨랐다.
그런 김민식의 뒤를 최진혁이 바짝 쫓으면서 물었다.
“왜 그렇게 급하게 가는 거지? 한 시간이 넘은 게 그렇게 중요한가?”
“……중요합니다. 제가 방금 말씀드렸죠? 보통은 삼십 분에서 한 시간 사이로 각성이 끝난다고요.”
“흠…… 분명 그렇게 말했었지? 그런데 그게 무슨 문제라도 있나?”
“네, 있습니다. 제가 말했죠? ‘보통’은 말입니다 ‘보통’은. 특별한 사람은 한 시간이 넘게 각성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예로 제가 있죠.”
“보기보단 꽤 잘난 척하는 편이군…… 아니, 그래서 김혜진이라는 아이가 특별한 것을 알았다. 그런데 왜 이렇게 급하게 가는 거지? 뭐 그 아이가 주변 사람들을 해치기라도 하나?”
농담 삼아 던진 최진혁의 말에 김민식이 얼굴을 딱딱하게 굳히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농담으로 던진 말에 수긍하자 오히려 말을 꺼낸 최진혁이 당황해했다.
“갑자기 그 아이가 주변 사람들을 공격한다고? 그게 대체 무슨…….”
“정확하게는 갑자기 얻은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폭주하는 겁니다. 제 경우에는 협회장님이 제 곁에 있어서 일격으로 기절했었죠. 그때 제 나이가 아마 19살이었나…….”
“쯧, 일단은 내가 거기에 내 본 나이트들도 돌려놓았고, 도경수 그자도 있으니 어지간해선 괜찮…….”
김민식의 말을 끊고 말을 하던 최진혁은 자신들이 왔던 곳에서 느껴지는 어마어마한 힘에 눈살을 찌푸리면서 옆에서 달리고 있는 김민식에게 말했다.
“……조금만 더 속력을 올리지.”
“괜찮은 생각이십니다.”
탓!
그와 함께 김민식은 마나를 끌어올려 신체를 강화시켰고, 최진혁도 다리에 마나를 불어넣어서 속력을 높였다.
그렇게 두 사람은 빛살처럼 자신들이 왔던 곳으로 달려갔다.
* * *
“시벌, 저게 뭐야…….”
컵라면을 다 먹고 입에 핫바를 물고 우물거리던 도경수는 한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각성을 하던 김혜진이 각성이 끝나고 나서 벌인 일을 보면서 물고 있던 핫바를 바닥에 떨궜다.
각성을 마친 김혜진은 척 보기에도 정령형 각성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쩌저적. 쏴아아. 화르륵. 후오옹.
지하철 역사의 바닥에 갈라지고 갑자기 허공에서 물이 생기거나 불이 넘실거리고 거센 바람이 불어 닥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혜진의 능력을 본 도경수는 떨어진 핫바를 주울 생각도 하지 않고 멍하니 그 모습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사대…… 정령 적합자라고? 미친 거 아니야?”
적합자, 다른 각성자들과는 다르게 정령형 능력을 각성한 사람들에게는 특이하게도 적합자라는 말이 있다.
바로 자신과 맞는 정령을 두고 적합자라고 한다.
불의 정령과 맞으면 불의 정령 적합자, 이렇게 말이다. 정령의 종류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대표적으로 어둠, 빛, 불, 물, 땅, 바람 이렇게 여섯 종류가 있었다.
어둠의 정령이나 빛의 정령의 적합자는 악인 혹은 선인으로 매우 알기 쉬웠지만 나머지 사대 정령들의 적합 원리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그리고 여태껏 가장 많은 정령과 적합자 판정을 받은 것은 불, 바람, 땅 이렇게 세 종류였다.
그런데 김혜진은 네 개 속성 모두 적합으로 그 기록을 깨버린 것이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김혜진이 사대 정령과 적합자라는 게 아니었다.
“시벌! 그런데 갑자기 왜 폭주하고 지랄이야 지랄이!!”
다름 아니라 지금 김혜진이 그 능력을 제대로 컨트롤 하지 못하고 폭주를 하는 것이 문제였다.
땅의 정령의 능력으로 지하철 역사의 바닥에 실금은 점점 커져만 갔고, 허공에서 생겨나고 있는 물들은 어느새 발목까지 잠겨 있었다.
거기에 거센 바람은 사람들의 체온을 점점 낮추었고, 활활 타오르는 불들에 화상을 입는 사람들마저 생겨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도경수는 결국 선택을 했다.
“야! 시민들 전부 대피시켜!!”
다른 곳에서 지원이 올 때까지 시민들을 모아둘 곳이 마땅치 않아서 역 안에 모아두려고 했었지만 상황이 바뀌었다.
결국 도경수는 아직 역 안에서 몸을 추스르던 바깥으로 시민들을 피신시키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였다.
“어…… 어어, 시X. 저거 왜 저래!!”
과도한 능력의 사용으로 정령들의 소환자인 김혜진은 이미 기절한 지 오래였다.
그리고 그런 김혜진의 주위로 흙, 물, 불, 바람으로 이루어진 화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시민들을 대피시키던 도경수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시발! 강화형! 강화형 헌터 어디 있어!!”
필사적으로 강화형 헌터를 찾았지만 마법형 강화형 가릴 것 없이 모든 헌터들이 시민들을 대피시키고 있었기 때문에 역사 안에 남아 있는 헌터들 중에 강화형은 보이지 않았다.
“젠장…… 나는 방어 마법도 쓸 줄 모르는데.”
손 쓸 방법이 없어 허탈한 음성을 내뱉은 도경수가 자신을 자책하고 있을 때, 김혜진의 주위를 맴돌던 화살들이 주변을 향해 마구잡이로 쏘아지기 시작했다.
목표도 없이 쏘아진 화살들이었기에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날아간 화살들은 별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몇몇 화살들은 정확히 피신을 하고 있는 시민들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하필이면 그 옆에 있는 헌터는 치유형 헌터였다. 즉 방어 능력이 전무한 헌터였다.
“꺄아아아악!!”
“젠장! 기다리세요! 제가 금방……!”
꽝!
어쩔 수 없이 도경수가 직접 가서 몸으로 때우려고 할 때, 시민의 앞을 막아선 이가 있었다.
그리고 막아선 그 사람에게 바람의 화살과 물의 화살이 날아갔다. 하지만 방패를 앞세워 공격을 막아낸 탓에 피해는 전무했다.
갑자기 나타나서 막은 이 덕택에 도움을 받은 시민과 치유형 헌터가 감사 인사를 하다가 흠칫했다.
달그락-
그들을 도와준 것은 다름 아니라 본 나이트였기 때문이다.
“히…… 히익! 가…… 감사합니다!!”
“……으아아, 괴물이다!!”
그래도 치유형 헌터는 기겁을 하긴 했으나 감사 인사를 했다.
하지만 각성을 하지 않은 일반인인 시민은 창백한 얼굴로 감사 인사도 없이 등을 돌리고 도망쳤다. 그 모습을 보던 도경수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주인이 없어도 자동으로 움직이는 건가? 아니면 미리 내려놓은 명령인가? 위험한 상황이 생기면 방어하라는?’
최진혁의 안배 덕분에 시민들은 모두 무사히 대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김혜진의 폭주는 멈추지 않았다. 아니, 이제 시작이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화살의 형태를 취하던 공격들이 이제는 미사일의 형태를 취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개중에는 창의 형태를 가진 것들도 몇 개 있었다.
“이런 젠장 맞을…… 무슨 방금 각성한 애가 마나가…… 저거 딱 봐도 마나 다 쓴 것 같은데…….”
도경수의 말처럼 방금 각성한 이가 가지고 있을 만한 마나량이 아니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기절해 있는 김혜진의 얼굴이 실시간으로 창백해지고 있었다. 마나 고갈이었다.
당연히 마법형 헌터인 도경수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지금 도경수가 손 쓸 방법이 없었다.
그저 대화를 나누러 간 김민식과 최진혁이 빠르게 돌아오길 바랄 뿐이었다.
마나 고갈인 상태로 저렇게 마나를 끌어다 쓰면 정말로 생명이 위험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도경수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허공을 가득 수놓은 미사일들과 스피어가 또다시 마구잡이로 쏘아지기 시작했다.
‘이거 잘못 맞으면 최소 사망이다.’
마법형이지만 명색이 B급 헌터라 몸뚱이는 꽤 튼튼했지만 지금 날아오는 미사일들과 스피어에 담긴 힘과 압도적인 물량은 B급이고 F급이고 할 것 없이 천국행이었다.
하지만 이런 도경수의 걱정은 어느새 앞에 나타난 본 나이트와 본 하운드에 의해서 눈 녹듯이 사라졌다.
“하…… 하하하!! 내가 살다 살다 스켈레톤한테 경호도 받아보네! 세상 살 만하다!!!”
본 나이트는 왼쪽 손에 든 방패를 도경수의 전면에 서서 날아오는 미사일들과 스피어들을 막아내기 시작했다.
자리에 우뚝 서서 우직하게 공격을 막아내는 본 나이트에게 연신 강화마법을 걸어주면서 희희낙락하던 도경수의 안색이 점점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니라 본 나이트가 들고 있는 방패가 점점 종잇장처럼 구겨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헬 나이트 시절부터 들고 있던 꽤 쓸 만한 방패였지만 압도적인 물량 앞에서 방패는 본연의 의미를 점점 잃어가고 있었다.
쩌저저적.
본 나이트가 들고 있던 강철 방패에 거미줄 같은 실금이 그어지더니 이내…….
파아앙!!
폭발음과 함께 터져 나갔다. 본 나이트야 원래부터 강철 갑옷을 입고 있고 단단한 뼈다귀로 이루어져 있었기에 터져나간 방패 조각들에도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하지만 평범한(?) 마법형 헌터인 도경수는 아니었다.
“으아악!! 어라……?”
-컹컹!
본 하운드가 몸을 던져서 막아준 덕택에 도경수는 상처 하나 없이 깨끗한 몸으로 서 있을 수 있었다.
방패 조각에 피해를 입지 않은 것은 다행이지만 아직까지도 미사일들과 스피어는 남아 있었다.
이제는 자신의 앞에서 막아줄 방패가 사라졌다는 생각에 도경수는 짧게 체념했다.
“하아…… 결국 이렇게 죽는구나. 그래도 지부장까지 해보고 죽었으니 누릴 건 누린 건가?”
젊은 나이에 헌터로 각성한 덕택에 인생의 낭비라는 군대도 가지 않았고, 버프 마법 덕택에 헌터로서 누릴 수 있는 특권이란 특권은 다 누리면서 대기업이나 마찬가지인 헌터 협회에서 지사의 지부장 자리까지 꿰찼으니 그래도 누릴 건 다 누렸다는 생각을 한 도경수가 눈을 감고 체념하며 생각했다.
‘시벌…… 그래도 S급…… 아니, A급 명찰은 한번 달아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잘나가던 도경수에게 언제나 따라붙던 꼬리표인 B급 헌터라는 명찰을 꼭 떼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도경수가 하고 있을 때였다.
눈을 감고 한참을 기다려도 고통이 느껴지지 않자 도경수가 의아해하면서 실눈을 뜨고 앞을 보았다.
그리고 그런 도경수의 눈에 보이는 것은 전면을 완벽하게 틀어막고 있는, 뼈로 만든 거대한 벽이었다.
“이…… 이건 또 뭐야?”
“늦지 않아서 다행이군.”
“응? 당신?!”
기다리던 목소리가 들리자 도경수는 고개를 홱 돌려서 목소리가 들린 곳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창백한 얼굴을 한 최진혁이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