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치, 헌터가 되다! 8화
김혜진(1)
“어머니, 진정하세요. 저건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각성이라고 아시죠?”
“예? 우리 혜진이가 각성을 했다는 말씀이신가요. 지부장님?”
비명 소리의 근원이었던 김혜진의 어머니를 도경수가 사람 좋은 미소와 함께 달래주었다.
헌터 협회 신도림 지부장이라는 명함이 잘 먹혔는지 김혜진의 어머니는 빠른 속도로 평정을 되찾았다.
김혜진의 어머니가 진정하자 도경수는 한숨을 한 번 쉬고는 최진혁에게로 걸어갔다.
“휴우…… 이런 경우가 없는 건 아니지만 내가 겪으니까 당황스러운걸.”
“이런 경우가 흔하지 않나 보군?”
“당연하지. 대부분 그냥 일상생활을 하다가 갑작스레 각성을 겪으니까. 뭐 애초에 이런 일이 많이 일어나지도 않지만.”
“그런가? 그런데 저건 언제쯤 끝나지?”
“당신도 겪어보지 않았나? 대충 삼십 분? 길어야 한 시간이면 끝날 테니까 우리도 좀 쉬자고. 나도 마나가 오링이야 오링.”
“……확실히 힘들긴 하군.”
본 나이트와 본 하운드를 운용한 것도 모자라 직접 마법을 사용해서 전투까지 했으니 최진혁의 몸 상태도 정상은 아니었다.
안색은 창백하고 마나 고갈로 인해 손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최진혁은 도경수의 말에 거절하지 않고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서 비닐봉투를 뒤적거렸다.
“오! 맛있어 보이네. 나도 하나ㅁ…….”
“네 건 네가 가서 사먹어라. 저기에 편의점도 있는데 굳이 내 걸 뺏으려는 이유가 뭐지? 죽고 싶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되는 건가?”
“쯧…… 같이 싸운 사람끼리 거 너무하네.”
최진혁이 인상을 팍 쓰면서 말하자 도경수는 상처받았다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킬킬거리면서 편의점을 향해 휘적휘적 걸어갔다.
편의점을 향해 걸어가는 도경수를 잠시 바라보던 최진혁은 비닐봉투로 시선을 옮겼다.
“허기가 지는군.”
그 말과 함께 비닐봉투에서 산 것들을 꺼내 하나씩 까먹기 시작했다.
삼각김밥부터 시작해서 각종 과자와 음료수들을 꺼내 마시던 최진혁에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집이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최진혁 씨?”
“음?”
익숙한 목소리에 먹던 것을 멈추고 고개를 든 최진혁의 눈에 보인 것은 다름 아닌 김민식이었다.
“네가 여긴 어쩐 일이지?
“이번에도 긴급이라서요. 방출형 던전은 긴급 중에서도 긴급인 일인데…… 지원팀도 다른 곳에 전부 지원 나가버려서 제가 직접 왔습니다.”
“당신 혼자서?”
“제가 여기 온 것만으로도 이미 낭비입니다.”
“과연…… 자신 있다 이건가?”
“그렇다고 해두죠. 그런데 홀로 C급 오크 무리를 전멸시키다니 대단하십니다. 그런데 저기에 있는 저 아이는 뭐죠? 척 보니 각성 중인 것 같은데…….”
김민식의 시선을 따라 최진혁도 고개를 돌려서 아직도 각성 중인 김혜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도 모른다. 그저 위험에 처해 있기에 구해줬을 뿐이다.”
“호오……? 최진혁 씨가 말입니까? 최진혁 씨는 그런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았는데…….”
“네 눈이 정확한 거다. 실제로도 그러하니까.”
“그런데 왜……?”
“핫바.”
“예? 뭐라고 하셨습니까?”
“오크 놈들 때문에 내 핫바를 떨어뜨렸다.”
“…….”
최진혁의 말에 김민식의 표정이 오묘해졌다.
김민식이 최진혁에게 무어라 한마디 하려 할 때, 김민식의 뒤에서 도경수가 컵라면을 후루룩 먹으면서 다가왔다.
“음? 이 사람은 누구…… 헉! 당신은?”
“어라? 도경수 씨. 오랜만입니다. 지부장 자리는 마음에 드십니까?”
“예? 예예!! 마음에 들고 말고요! 이게 다 김 팀장님 덕입니다.”
“하하하, 그렇게 말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자신은 안중에도 없이 말하는 둘의 모습에 최진혁이 기분 나쁘다는 듯이 인상을 쓰면서 김민식에게 말했다.
“뭐지? 아는 사이인가?”
“예, 뭐 제가 보낸 사람이니까요. 도경수 씨의 능력은 특이하거든요. 등급으로 그의 가치를 판단을 다 할 수 없을 만큼 말입니다. 그래서 그 능력에 맞는 자리를 제가 마련한 겁니다.”
“호오…… 그 정도의 능력은 있나 보군?”
“하하하! 제가 이래 보여도 이 나라에서는 손에 꼽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답니다.”
“그래! 당신, 이분을 몰라?”
“모르는 게 비정상인가?”
의아하다는 듯한 최진혁의 반문에 도경수가 욱했는지 소리쳤다.
“당연히 비정상이지! 이분으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우리나라의 유일한 SS급 헌터인 협회장님 직속 A팀의 팀장을 맡고 계시고, 본인의 무력 또한 S급인 강화형 헌터 김민식 팀장님이다 이 말이야!”
그 후로도 김민식의 예찬론을 펼치던 최진혁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김민식에게 물었다.
“강화형? 그건 분명 검을 사용하거나 방패를 드는 것 아니었나?”
“예, 맞습니다. 그리고 저는 근접 딜러 계열입니다. 이 검을 쓰죠.”
그렇게 말하면서 김민식이 자신의 허리춤에 걸려 있는 검을 툭툭 치면서 말했다.
그런 김민식의 모습에도 최진혁의 얼굴에 걸린 의아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 모습에 오히려 김민식이 최진혁에게 물었다.
“흐음…… 뭔가 이상한 게 있으십니까, 최진혁 씨?”
“아니, 분명 정령의 향기가 나는데 검사라고 하니 이상해서 말이다.”
“……?!”
그 말에 김민식이 움찔하면서 검에 손을 뻗었다가 멈췄다. 그러고는 평소처럼 웃으면서 최진혁을 끌고 지하철 역사 한쪽으로 향했다.
갑작스러운 김민식의 모습에 라면을 먹던 도경수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괜찮으냐고 물어왔지만 김민식은 괜찮다며 손사래를 치고는 최진혁을 끌고 사라졌다.
“뭐야? 무슨 일이지?”
후루룩-
사람이 없는 곳으로 사라지는 둘의 뒷모습을 보면서 도경수는 뜨끈한 라면 국물을 들이켰다.
* * *
인적이 없는 으슥한 곳으로 최진혁을 데려온 김민식이 최진혁에게 다그치듯이 물었다.
“……제가 정령을 다룬다는 사실을 어디서 어떻게 아신 겁니까?”
“음? 그게 중요한 건가?”
“저한텐 중요한 사실입니다.”
“말 못 하겠다면 어쩔 거지? 죽이기라도 할 건가?”
“필요하다면 그럴 겁니다.”
“그럴 자신은 있고?”
“……아무리 최진혁 씨가 괴물 루키라고는 하지만 저도 S급 헌텁니다.”
그리 말하면서 싸늘한 살기를 뿜어내는 김민식의 모습에 최진혁이 피식 웃으면서 손을 튕겼다.
타다닥.
그리고 손가락 튕김과 동시에 멀리 있는 도경수의 옆에 서 있던 본 하운드가 본 나이트를 태운 채로 날듯이 달려와 최진혁의 옆에 섰다.
“……역시 대단하군요. 처음 보는 건 아닌데 느껴지는 힘이 좀 늘어난 것 같습니다?”
“내 소환수니 내 영향을 받는 건 당연한 일이지. 그래서 한번 해보겠다는 건가?”
“후우…… 제가 졌습니다. 하지만 저한테는 중요한 일입니다. 제발 말씀해 주시죠. 어떻게 제가 정령을 다룬다는 사실을 아셨는지 말해주신다면, 제 선에서 처리 가능한 일을 하나 정도는 들어드리겠습니다.
“흐음……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좋다. 말해주지.”
예상과는 다르게 흔쾌히 수락하는 최진혁의 모습에 되레 김민식이 당황했다.
방금까지만 해도 말을 하지 않을 것 같아 한판 붙을 각오까지 했던 것이 무로 돌아갔다.
협회에 고위직에 있는 김민식에게 소원권 하나를 얻어낸 최진혁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격이었으니 말이다.
김민식이 정령을 다룬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은 정말 거창하지 않은 이유였기 때문이다.
“그러면 말씀해 주시죠. 제가 정령…… 그러니까 이중각성을 한 것을 어떻게 아신 겁니까?”
“난 네가 이중각성인지를 한 것인지는 모른다.”
“예? 그게 무슨…… 설마 떠본 겁니까?”
“너에 대해 아는 것도 없는데 떠보기는…… 그냥 보였을 뿐이다. 네 주변을 떠도는 정령들의 기운이 말이야. 흠…… 자세히 보니 바람의 정령이군.”
“그런 말도 안 되는…….”
각성자가 나타난 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정령의 기운을 느꼈다는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최진혁의 말은 김민식에게 터무니없는 거짓말로 들렸다. 하지만 최진혁의 얼굴을 본 김민식은 한숨을 푹 내쉬면서 말했다.
“……진실이군요.”
“내가 너에게 거짓말을 할 이유가 있었나?”
“하아…… 이거 제가 괜히 지레짐작해서 사서 손해를 봤군요.”
“나야 좋은 일이지.”
“그건 그렇군요.”
‘멍청했어’라고 중얼거린 김민식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중요한 일인가? 정령을 다룬다는 것이?”
“아뇨, 정령을 다룬다는 건 특별하지 않죠. 당장에 우리나라만 해도 몇천 명의 정령사들이 있으니까요. 세계 단위로 따지면 몇십만은 우습겠죠.”
“그런 사실을 그렇게까지 숨기는 이유는 뭐지?”
“제가 정령을 다룰 줄 아는 걸 숨기는 게 아닙니다. 제가 강화형과 정령형 둘 다 각성했다는 것을 숨기는 거죠.”
“……그게 그거 아닌가?”
최진혁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김민식이 고개를 내저으면서 말했다.
“비슷하지만 다릅니다. 제가 만약 검술을 호신용으로 익히고 있고 정령을 다룰 줄 안다면 그냥 S급의 정령사입니다. 하지만 제가 S급의 근접 딜러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S급 정령사의 능력까지 가지고 있다? 이건 확연히 다른 느낌이죠.”
“흠…… 난 잘 모르겠다만…… 그런데 굳이 그런 사실을 숨기는 이유는 뭐지? 어차피 강하다는 것이 알려지는 너에게 좋은 일이 아닌가?”
“하아…… 저번에 계약 얘기를 하면서 말했듯이 지금 대형길드와 협회는 대립하고 있습니다. 그랬기에 저희가 최진혁 씨에게 그런 계약을 제시한 것이고요.”
“그래서?”
“지난번에 말했듯이 최진혁 씨와 계약이 시작되면 최진혁 씨는 대형길드들의 목을 찌를 송곳이 될 겁니다. 그리고 저는 이미 드러나긴 했지만 저 또한 그들의 목을 찌르는 송곳이긴 마찬가집니다. 단지 제대로 찌르기 위해서 힘을 감추고 있던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쉽게 들켜 버렸으니…….”
오랜 시간 동안 감춰왔던 게 정말 어이없게 들켜 버리자 김민식은 억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S급 능력을 두 개나 가지고 있다면 거의 SS급 헌터에 준하는 힘을 가진 이였으니까 말이다.
드러나지 않은 SS급 전력은 중요한 시기에 대형길드의 목을 찌를 날카로운 송곳이 될 것이다.
그런데 그런 능력을 쉽게 들켜 버렸으니 김민식이 느꼈을 상실감은 무척이나 컸다.
“어차피 나 말고는 기운을 볼 줄 아는 인간 따윈 없으니 걱정은 하지 마라. 나 말고는 아무도 모르니까.”
위로 같지 않은 위로를 하는 최진혁을 김민식이 도끼눈으로 쳐다보며 생각했다.
‘이미 알아버린 비밀이 뭐가 비밀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