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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치, 헌터가 되다-6화 (6/149)

리치, 헌터가 되다! 6화

1서클(2)

김민식이 떠나고 혼자 남은 최진혁은 숙소의 바닥에 마법진을 그렸다.

“흐음…… 오랜만에 그려서 잘된 건지 모르겠군.”

최진혁은 그리 말하면서 바닥에 그린 마법진을 쳐다봤다.

아르말딘 대륙에서 각고의 노력 끝에 만들어낸 음차원 마나 집적진을 보면서 아르만…… 아니, 최진혁은 옛 생각에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예전 생각이 나는군.”

최진혁은 예전 자신이 수습 마법사일 때를 떠올렸다. 그때의 최진혁은 막 흑마법을 접하고 심취해 있을 때였다.

물론 흑마법 자체의 마법에 빠져든 것이었지 악마에게 혼을 판다거나 사람을 제물을 바쳐 힘을 얻는 종류는 아니었다.

하지만 흑마법을 제대로 사용하려면 흑마나(마기)가 필요했다.

하지만 최진혁은 그런 사이한 힘을 쓰고 싶지 않았기에 여러 방면으로 연구를 거듭하다가 발견한 것이 바로 음차원의 마나였다.

음차원의 마나는 흑마나의 일종이지만 악마와의 계약 등으로 얻지 않아도 자신이 만들어낸 집적진을 통해 마나를 수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무엇보다 음차원의 마나로도 흑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것뿐만이 아니라 백마법 또한 사용할 수 있다는 엄청난 장점이 있었다.

그런 옛 생각을 하던 최진혁은 기하학적인 도형들이 그려진 마법진의 각 방위에 마석들을 하나씩 꽂기 시작했다.

마나로 몸을 강화시킨 최진혁의 힘에 마석들은 돌로 만들어진 바닥을 두부처럼 뚫어내면서 박혔다.

각 방위에 마석을 꽂고 나자 남아 있던 마나가 동이 났다.

마나가 다 사라지자 마나 탈진 현상이 일어나 최진혁의 숨소리가 거칠어지고 얼굴이 창백해졌지만 최진혁은 별 상관없다는 듯이 무시하고 마법진의 한가운데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최진혁이 가부좌를 틀고 앉자 마법진이 탁한 푸른색의 빛을 뿜어내면서 가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마법진의 한가운데에서 최진혁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눈을 감았다.

* * *

최진혁이 첫 번째 서클을 만들고 있을 무렵 최진혁과의 만남을 마친 김민식은 자신의 상관인 협회장을 만나고 있었다.

“협회장님 저 왔습니다.”

“협회장님은 무슨 닭살 돋는다. 그냥 평소처럼 해.”

정말로 닭살이 돋았는지 협회장이라 불린 사내, 성지혁은 팔을 북북 긁으면서 자신을 부른 사내, 김민식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래서 트랩 던전은 어떻게 됐어? 다 죽었어?”

“아뇨, 두 명이 살았습니다.”

“호오? 꽤 운이 좋네.”

두 명도 꽤 많지, 라는 말을 중얼거린 협회장은 김민식에게 더 해보라는 제스쳐를 취했다.

성지혁의 손짓에 김민식은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일단 그중 한 명은…… 스패로우라는 소형 길드의 길드장인 정철식이라는 사람입니다.”

“호오…… 소형 길드의 길드장? 헌터 등급은?”

“D급입니다.”

“분명 트랩 던전은 F급으로 표기됐었다고 했지?”

“예, 그래서 그것보다 두 단계 위에 몬스터인 D급의 헬하운드가 나왔습니다. 부몬스터로는 하운드가 나왔고요. 거기에 보스 몬스터로 케르베로스와 헬 나이트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살아남은 거지? 설마 2차 각성이라도 한 건가?”

성지혁의 말에 김민식은 고개를 내저었다.

새로운 능력을 각성하는 2차 각성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번 일은 2차 각성 때문이 아니었다.

“아니야? 그럼 뭔데?”

“살아남은 나머지 한 사람 때문입니다. 정철식의 말로는 그 녀석 혼자서 모조리 쓸어버렸다는군요.”

“……혼자서?”

“예.”

김민식의 말에 성지혁은 김민식의 두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이내 손을 내저으면서 말했다.

“뭐 네가 말했으니 맞겠지. 허…… 그러면 걔는 누군데? 혼자서 D급 던전을 클리어할 정도면 C급에서 최상급 아니냐?”

“그렇죠. 아니, B급 정도는 돼야 그 사람처럼 될 겁니다.”

“뭐야 어땠길래?”

성지혁이 물어보며 황당한 표정을 짓자 김민식은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했다.

“상처 하나 없답니다. 거기에 마법형이고요.”

“……미친.”

성지혁의 욕에도 김민식은 아무런 말도 달지 않았다. 애초에 자신도 미쳤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마법형들은 폭발적인 화력을 가지고 있지만 강화형 같은 탱커들에게 보호를 받아야 완벽하게 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게 보편적이었으니까.

물론 탱커들의 도움 없이 홀로 싸우는 배틀메이지 같은 이들이 있긴 했으나 그런 그들도 자신의 등급보다 두 단계 아래의 던전만을 홀로 클리어가 할 수 있었다.

김민식의 그런 말에 성지혁은 목이 타는지 자신의 책상 위에 올려져 있던, 이제는 얼음이 다 녹아버린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단번에 마시고 김민식을 다시 쳐다보았다.

“……분명 던전에서 각성한 건 확실하지?”

“네. 오면서 협회 데이터베이스를 다 뒤지고 국정원에도 말해서 지난 몇 년간의 행적까지 전부 다 조사했습니다. 비적합자였습니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말이죠.”

“하아…… 이걸 믿어야 돼, 말아야 돼.”

“믿어야죠. 괴물루키가 탄생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김민식의 말에 성지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김민식에게 뚜벅뚜벅 걸어갔다.

180인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성지혁이 다가오자 김민식은 움찔했지만 이내 평정심을 되찾고 성지혁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래서…… 섭외할 수 있겠냐?”

“했습니다.”

“그래, 원래 그런 놈들이 자존심이 쌔서 섭외하기가 힘들…… 뭐라고 했냐, 지금?”

“섭외했다고 했습니다.”

“아니, 무슨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섭외까지 했냐?”

분명 오늘 잠깐 만난 걸로 알고 있는데 이미 섭외까지 마쳤다고 한다.

어이가 없어진 성지혁이 멍한 표정을 짓자 김민식은 그제야 최진혁이 늘어놓은 조건들에 대해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김민식의 설명이 끝나자 김민식의 앞에 혼이 빠져나간 성지혁이 서 있었다.

“……그러니까 네 말은 지금 오늘 각성한 루키한테 우리가 조건 세 개를 얹어주고…… 아니지, 집까지 주니까 네 개네?”

“집은 제 걸 주죠 뭐. 많잖아요?”

“그러면 집은 그렇다고 치고 조건을 세 개나 걸었다고? 허…… 당돌하네? 어때? 네가 보기에는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마지막 조건만 빼면 딱히 우리에게 손해될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조건들이야 최진혁 씨가 A급 헌터가 된다는 전제 조건이 붙으니까요. 저희에게 손해 되는 건 없습니다. 그리고 솔직하게 시작부터 A급 헌터라면 앞서 말한 조건을 다 들어주더라도 저희가 득인 건 아시죠?”

“……그건 그렇지.”

김민식의 말마따나 초장부터 A급 헌터는 전 세계를 뒤져봐도 없다.

그런데 한국에서 그런 헌터가 나온 것도 모자라 협회가 그 헌터와 계약을 맺고 동등하게 대우해 준다? 이러면 협회도 좋고 당사자인 최진혁에게도 좋은 일이었다.

“그래서 그 최진혁이라는 애는 어디 있는데?”

“제가 KH호텔에 스위트룸으로 잡아뒀습니다.”

“그래? 그러면 뭐 괜찮겠네.”

잠시 머물 곳까지 완벽하게 처리해 둔 김민식의 처리 방식에 성지혁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을 때였다.

-띠리링

“아…… 죄송합니다. 잠시 전화 좀 받겠습니다.”

허락을 구함과 동시에 성지혁이 고개를 끄덕거리자 김민식은 통화 버튼을 클릭해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김민식의 갑작스러운 표정 변화에 성지혁이 물었다.

“뭐야, 무슨 일이야? 또 트랩 던전이야? 아니면 S급?”

“……사라졌답니다.”

“뭐?”

“최진혁 씨가 사라졌답니다!!”

* * *

“후우…… 일단 1서클인가?”

가지고 있는 마석들을 전부 사용해서 마나 집적진을 만든 뒤, 음차원의 마나를 끌어모았다.

그렇게 모은 음차원의 마나들로 서클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 최진혁은 숙소에서 빠져나왔다.

애초에 휴식은 필요도 없었고, 부족한 마나를 채우고 김민식의 말이나 들어보자고 들어온 숙소였기 때문에 굳이 오래 있을 필요도 없었다.

원주인의 기억 속에 있는 자신의 집의 위치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기에 숙소에 오래 있을 필요가 없었다.

물론 나오면서 바닥에 그려놓은 마법진은 완벽하게 지우고 나왔다. 아니, 박살이라고 해야 하나?

어찌 되었든 가방 하나를 꽉 채운 마석들로 겨우 1서클을 만들 정도의 마나를 모아 최진혁은 바로 1서클을 만들어냈다.

서클을 만들고 나자 최진혁은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맴돌았다.

“애초에 1서클로 만족하는 건 말도 안 되지.”

아르말딘 대륙에서 재능 있는 이가 1서클을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이 아무리 짧아도 1주일인 것을 생각하면 고작해야 몇 시간 만에 1서클을 만든 것은 충분히 대단한 일이었지만 최진혁에게는 별것 아니었다.

애초에 최진혁은 차원이동을 하기 전 리치일 적에 9개의 서클을 가지고 있는, 대마법사들 중에서도 대마법사였으니까 말이다.

“어쨌든 이걸로 기초적인 마법들은 대부분 사용할 수 있겠군.”

바닥의 마찰력을 없애 미끄러지게 만드는 그리스, 땅을 파는 디그, 깨끗하게 청소를 해주는 클린 마법과 방어 마법인 실드 그리고 공격마법인 본 애로우와 본 미사일 그리고 방어마법인 본 월까지 다양한 마법들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본 애로우 같은 경우는 서클을 만들기 전부터 사용할 수 있었지만 마법에 드는 마나량이 대폭 줄어들었다.

본 미사일 같은 경우는 본 애로우의 상위격 마법이었다.

거기에 본 월은 차원이동 전 루더슨의 앞길을 막았던 수준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오늘 만난 헬나이트 같은 몬스터들의 앞 정도는 가뿐하게 막아낼 수준은 되었다.

다른 사람이 본다면 고작 1서클 주제에 다룰 수 있는 마법들이 많다고 할 수도 있었지만 이게 다 음차원의 마나 덕택이었다.

애초에 흑마법에서 1서클이 쓸 수 있는 마법은 사실 본 애로우 본 미사일 두 개뿐이다.

하지만 음차원 마나는 무척이나 순도 높은 마나였고 웬만한 고위급 악마의 마기보다 더욱 농밀했다.

그랬기에 보통 이들은 2서클 익스퍼트가 되어서야 쓸 수 있는 본 월을 쓸 수 있었다.

물론 아무나 음차원의 마나를 가질 수도 없지만 가진다고 최진혁처럼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최진혁이 천재들의 집단인 마법사들 중에서도 손꼽히는 천재이기에 가능한 이적이었다.

하지만 아르말딘 대륙에서 현재 최진혁의 성취를 본다면 모두가 박수를 치겠지만 정작 최진혁의 얼굴에는 기쁨이 아닌 실망만이 담겨 있었다.

“이 정도로는 듀라한도 만들 수 없겠어.”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이트는커녕 그보다 더욱 상위격인 데스나이트를 만들고 본 미사일보다 본 스피어나 콥스 익스플로젼 같은 상위 마법들을 사용했으니 본 미사일과 주머니에 들어 있는 나이트와 본 하운드에 성이 찰 리가 없었다.

하지만 이내 최진혁은 한숨을 내쉬면서 현재 상황을 받아들였다.

“어쨌든 김민식과의 계약만 제대로 된다면 그런 건 대부분 해결된다.”

김민식과의 계약 내용에 있는 마석 공급과 시체 공급만 받게 되면 지금의 상황의 문제들 중 대부분이 해결된다.

서클 문제나 마나, 그리고 군단을 만드는 데에 필요한 시체까지 말이다

생각을 정리한 최진혁은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집에 있는 컴퓨터를 켜고 헌터 라이센스를 따기 위해 해야 할 것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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