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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치, 헌터가 되다-5화 (5/149)

리치, 헌터가 되다! 5화

1서클(1)

“김민식?”

“예, 그게 제 이름입니다. 여기 명함입니다.”

자신의 소개와 함께 건네준 명함을 스윽 보고는 품에 집어넣은 뒤, 최진혁이 김민식을 향해 말했다.

“그래서 계속 세워둘 건가?”

“어이쿠, 이거 방금 던전을 나오셨다는 것을 깜빡했군요. 실례했습니다. 이리로 오시죠.”

기자들이 있던 곳을 벗어나 김민식을 잠시 따라가니, 얼마 지나지 않아 KH(Korea Hunter)라는 이름이 붙은 건물이 나타났다.

“여기는 어디지?”

“아~ 여기 저희 협회 겁니다. 협회 꺼. 걱정 말고 들어가셔도 됩니다. 공짜거든요.”

그 말에 최진혁은 내키지는 않았지만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던전 안에서의 피로도 풀어야 했고, 가방에 있는 마석들로 첫 번째 서클을 만들기 위해서는 마음 놓고 쉴 곳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런 최진혁을 김민식이 막아섰다.

“저것들은 어떻게 할 수 없습니까?”

“뭘 말하는…… 아, 알겠다.”

김민식의 손끝이 향하는 곳에 서 있는 나이트와 본 하운드의 모습에 최진혁이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가락을 튕겼다.

딱!

그와 함께 일반 성인 남성보다 거대하던 본 하운드와 나이트가 뼛조각으로 변했다.

본인이 말하기는 했으나 정말로 어떻게 할지는 몰랐는지 김민식의 두 눈이 동그랗게 변했지만 이내 본래의 얼굴로 돌아왔다.

“그거 신기한 능력이군요. 그게 최진혁 씨가 각성한 능력입니까?”

‘차원이동을 해서 가지고 있다’라고 하기에는 뭐했으니 최진혁은 그냥 대충 고개를 까닥거리자 김민식은 최진혁이 피곤해서 그러는 줄 알고 최진혁을 건물 내부에 마련되어 있는 숙소로 안내했다.

그리고 김민식이 안내한 숙소의 내부를 본 최진혁은 꽤 놀라워했다.

“……꽤나 고급이군.”

아르말딘 대륙에서 귀족으로도 생활해 본 최진혁의 눈에 찰 만큼 숙소의 내부는 어지간한 귀족의 방보다 고급지고 세련되었다.

최진혁의 그런 반응이 마음에 드는지 김민식을 가슴을 쭉 펴면서 자랑스러워했다.

그런 김민식을 내버려 두고 최진혁은 방에 놓인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렇죠? 여기가 이 건물 내부에서 가장 좋은 방입니다.”

“그래서 나를 여기로 데리고 온 이유부터 말하지?”

“직설적이시군요. 제가 최진혁 씨를 데리고 온 이유는 최진혁 씨가 들어간 던전에 관한 정보도 있지만…… 역시 최진혁 씨의 무력 때문입니다.”

김민식의 말에 최진혁은 ‘역시’라는 생각을 하면서 고개를 까닥거렸다. 더 말해보라는 제스쳐였다.

자신감이 넘치다 못해 오만한 최진혁의 태도에도 김민식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계속 설명했다.

“아시겠지만 저희 협회는 지금 대형길드들과 대립하는 입장입니다. 대형길드들의 길드장이란 작자들은 자신들의 이익과 이권들을 위해서라면 그 아래의 헌터들은 갈아 넣어도 개의치 않아 하는 인간들뿐이죠.”

“……계속해 봐라.”

“그래서 저희 협회는 인재에 목이 말라 있습니다. 바로 최진혁 씨, 당신 같은 사람이 말입니다. 처음 각성하자마자 C급 몬스터가 보스 몬스터로, 그것도 두 마리나 있는 던전을 솔로 클리어하셨죠? 이것만 보아도 C급 헌터 정도는 되죠. 거기에 몬스터까지 길들일 수 있다? 이 정도면 당신은 신인이 아니라 현직 헌터들과 견주어도 무방합니다.”

약간은 틀리지만 얼추 맞춘 김민식의 말에 최진혁이 고개를 까닥거리면서 답했다.

“내가 필요한 이유는 그건가? 대형길드들에 대항마로 키우기 위한?”

“맞습니다. 중요한 순간 대형길드들의 목에 찔러 넣을 송곳이 필요합니다. 그것도 드러나지 않는 송곳이 드러난 송곳보다 위협적인 법이죠.”

하지만 이런 제안을 하는 김민식은 몰랐을 것이다.

자신의 눈앞에 있는 신인, 그것도 막 각성한 신인이 단순한 위협용 송곳이 아니라 대형길드들의 모가지조차 물어뜯을 수 있는 호랑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그런 호랑이는 곰곰이 김민식의 제안을 되짚어보고 있었다. 그는 곧 계산을 마쳤다.

“일단 나에게 바라는 게 뭐지? 만약 협회라는 곳 밑에서 일하면서 너희 대가리의 명령이나 들으라는 것이라면 거절하지.”

최진혁이 미리 사전에 차단을 하자 김민식은 머쓱한지 머리를 긁적였다.

“일단 조건 하나는 알겠습니다. 누구도 위에 있지 않을 것. 그리고 더 필요한 조건이 있으십니까? 최대한 조건은 맞춰 드리도록 하죠.”

“두 번째는 이것 같은 것들이 필요한데 말이야. 그것도 매우 많이.”

그리 말하면서 가방에서 하급 마석을 꺼내 들어 보이는 최진혁의 모습에 김민식이 피식 웃었다.

두 번째 조건은 무척이나 쉬운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그것보다 더 좋은 것들이 협회에는 가득합니다. 그럼 두 번째 조건도 수락하겠습니다.”

“세 번째.”

“……세 번째도 있습니까?”

최진혁의 입에서 세 번째라는 말이 나오자 두 번째가 끝일 줄 알았던 김민식의 얼굴이 살짝 찌푸려졌다.

협회 입장에서는 앞서 나온 두 개의 조건들만 해도 많이 양보해 준 것이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최진혁을 일인 길드 형식으로 운영시키면 그만이다.

명령은 하지만 최대 3번 거절이 가능하고 3번이 지나면 1번은 명령을 받는 식으로 하면 최진혁과 타협이 가능하니까 말이다.

그리고 두 번째도 마찬가지. 협회 자체가 대형길드에게서 뜯어내는 마석들도 어마어마하고 협회 소속 헌터들이 캐오는 마석들의 수도 상당수이기에 중급 마석들이 아무리 비싸다지만 협회 입장에선 껌값이나 다름없다.

아니, 애초에 자신들의 창고에 수북하게 쌓인 게 마석이니까 더더욱.

이것만 해도 막 각성한 신인에게는 어마어마한 조건들이기에 최진혁의 입에서 세 번째 조건이 나오자 김민식이 살짝 인상을 쓴 것이다.

그런 김민식의 모습에 최진혁이 조소를 지었다.

“왜? 아까운가? 고작 나 따위에게 조건을 세 개나 걸어가면서 받아들여야 하나…… 이런 생각이 드는 건가?”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저희 입장에서 최진혁 씨가 처음부터 C급을 받을 만한 인재라고는 하지만…….”

“A급.”

“예? 뭐라고 하셨습니까?”

“너희가 책정하는 그 헌터 등급. A급을 받아오도록 하지. 어때 이러면 해볼 만한가? 투자 가치가 샘솟는 것 같지 않나?”

“……딜을 아주 잘하시는군요. 몸값을 뻥튀기할 줄도 아시고.”

최진혁의 말에 김민식이 재밌다는 듯이 입가에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김민식의 미소에 최진혁도 미소로 화답하며 조건을 더 걸었다.

“내가 A급을 받아오면 너희들은 내가 말한 조건 3가지에 더해서 내가 살 집을 구해줘야겠다. 아니, 집은 선금으로 받도록 하지.”

“호오…… 자신감이 넘치시나 봅니다? 하지만 만약 저희 쪽에서 집을 선금으로 드렸는데 A급을 못 따오시면…….”

“그때엔 아무 조건 없이 너희가 하라는 대로 다 해주지. 암살이든 대형길드인지 뭔지의 모가지를 따거나 말이야. 어때? 구미가 당기나?”

“……퍼펙트하군요.”

“넌 아주 값싼 가격으로 송곳보다 더한 것을 산 거다. 아니, 빌려줬다는 말이 맞겠군.”

최진혁의 당찬 말에 김민식은 피식 웃었다. 이 계약은 김민식 쪽이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어찌 되었든 최진혁 정도의 인재는 흔치 않았고, 헌터 시험은 그렇게 쉽지 않았다.

여태까지 처음부터 A급을 딴 사람이 단 하나도 없을 정도로. 그것도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말이다.

그렇기에 만약 정말 만약에 최진혁이 A급을 딴다면 앞서 말한 조건보다 더한 조건들을 들먹여도 협회가 이득이었다.

그런데 만약에 못 따왔다? 그래도 이득이다. 아무런 조건 없이 시작부터 C급 헌터인 최진혁을 부려 먹을 수 있으니까. 못해도 공짜 송곳이니, 손해는 없다.

성공적인 계약을 마쳤다는 생각에 김민식이 씨익 웃으면서 최진혁에게 마지막 조건을 물었다.

“그러면 마지막 세 번째 조건을 듣도록 하죠. 무슨 조건입니까?”

“시체.”

“……예?”

“그것도 아주 강력한 놈들의 시체가 필요하다. 그게 인간이든 몬스터든 상관없다.”

마지막 조건이 얹어지자 김민식과 최진혁의 조건들이 얹어진 저울이 동수를 이뤘다.

덤으로 딱딱하게 굳은 김민식의 얼굴은 덤이었다.

‘누구의 명령도 듣지 않아도 되고 내가 머리인 집단. 거기에 마나를 끌어다 쓸 수 있는 마석의 무한 보급. 마지막으로 강력한 시체들.’

네크로맨서가 가장 강력해지는 세 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시키는 조건을 성사시킨 최진혁의 입가에는 악랄한 미소가 맺혀 있었다.

‘골수까지 뽑아먹어 주지.’

서로 만족스러운(?) 계약을 마친 둘은 서로를 바라보면서 손을 마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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