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치, 헌터가 되다! 2화
지구(1)
“젠장 막아!! 뚫리면 안 돼!!”
“시X! 내 다리! 내 다리가아아악!!!”
피와 비명이 가득한 곳.
최진혁은 자신의 목에서 울컥울컥 솟아오르는 피를 느끼며 눈을 감았다.
‘하…… 시X 이게 무슨 일이래…….’
최진혁은 짐꾼이었다. 길드에서 운영하는 짐꾼은 아니었고 일용직 노가다꾼과 비슷한, 그런 짐꾼이었다.
F급 던전이나 E급 던전 같은 급수가 낮고 안전한 던전에서 하루 벌어서 하루를 사는 하루살이 같은 삶을 사는 짐꾼 말이다.
그렇게 안전을 모토로 살아가던 최진혁이 지금 목이 물어뜯긴 채 죽어가는 이유는 하나였다.
트랩 던전 때문이었다.
트랩 던전은 일반 던전과는 달랐다. 이레귤러 던전. 이 던전은 다른 던전과 달리 입구에서 던전의 등급을 확인할 수 없었다.
일단 트랩 던전일 경우, 처음 들어올 때 확인한 던전의 급수가 F급이었다고 한들 안에 들어 있는 몬스터는 F급 던전의 몬스터가 아니다.
D급은 C급 정도의 수준으로. 이렇게 뻥튀기되는 것이었다.
그나마 C급이 아니라 D급 몬스터인 헬하운드가 튀어나왔지만, 애당초 F급 던전을 공략하러 들어간 이들이 D급 몬스터를 잡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 결과 헌터들부터 차례차례 죽어갔고, 결국 짐꾼인 최진혁도 결국 E급 몬스터인 하운드에게 목을 물어뜯겨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젠장…… 이게 마지막인가…….’
눈을 감은 최진혁의 마지막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런 최진혁에게 누군가 말을 걸었다.
-네 몸은 내가 잘 쓰도록 하지.
그리고 그와 함께 감았던 최진혁의 눈이 번쩍 떠졌다.
* * *
‘흐음…… 일단 마나는 정말 쥐똥만큼밖에 없군.’
최진혁…… 아니, 최진혁의 몸을 차지한 아르만은 몸에서 느껴지는 쥐똥만 한 마나에 눈살을 찌푸렸다.
자신이 수습 마법사였던 때보다 적은 양이었기 때문이다.
“일단 회복마법부터…… 오랜만에 사용하는 거라 잘될지 모르겠군.”
파아아앗!
회복마법을 사용하자 밝은 빛무리가 아르만…… 아니, 이제는 최진혁의 목에 난 상처에 스며들더니 이내 상처가 사라졌다.
사람이 죽을 정도로 피를 많이 흘렸지만 최진혁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애초에 최진혁은 이미 죽어 있는 마법사, 리치, 그것도 그중에서 최고인 아크리치였으니까 말이다.
회복마법을 사용하고 남은 마나를 확인한 최진혁은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도 본 애로우 정도는 쓸 수 있겠군.’
다행히 공격마법을 사용할 정도의 마나는 남았기 때문에 아르만은 미소를 지으면서 이제는 떠나 버린 이 몸의 원주인의 기억을 더듬었다.
자신에게 이빨을 들이미는 놈들의 정보를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하운드, E급 몬스터, 타고난 치악력으로 물어뜯는 공격을 주로 한다라…… 별거 아니군.’
연구실의 가디언을 오우거나 트롤 같은 대형과 중형 몬스터들로 세우던 아르만에게 하운드 같은 몬스터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아르만이 걱정하는 것은 하운드 따위가 아니었다.
‘여기가 아르말딘 대륙이 아닌 것은 확실한 건가? 차원이동 마법은 처음 써보는 거라 이게 잘됐는지 알 방법이 없으니 원…….’
하지만 그런 아르만의 걱정은 멀리서 헬하운드와 싸우는 헌터들의 겉모습을 보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들의 복장은 아르말딘 대륙에서 수백 년을 산 아르만조차 처음 보는 양식이었기 때문이다.
‘으음…… 아르말딘 대륙이 아닌 것은 확실하군. 그러면…… 일단 주변부터 좀 정리해야겠군?’
그 생각과 함께 이제는 최진혁이 된 아르만의 주위로 본 애로우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 * *
‘이런 젠장! 어쩌다가 트랩 던전에 걸려 버려서!’
스패로우 길드의 길드장인 정철식이 속으로 쓴소리를 하면서 검을 휘둘러 자신에게 달려드는 헬하운드를 쳐냈다.
다른 이들과는 달리 정철식은 D급의 헌터였지만 D급 몬스터인 헬하운드를 잡을 방법이 없었다.
애초에 헬하운드는 한 마리가 아니었고 정철식은 헬하운드를 끝장 낼 한 방 기술이 없는 탱커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정철식은 조금씩 달아가는 체력과 점점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보면서 두려워했다.
살아남은 길드원들도 별로 없었고 아직 남은 인원 또한 정철식과 마찬가지로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는 이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시X…… 이렇게 죽는 건가…….’
깨갱!!
바로 그때, 멀리서 하운드가 내는 신음 소리에 정철식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지금 같이 절망적인 상황에 하운드를 잡아낼 정도의 인물이 남아 있다는 사실에 놀라서였다.
그리고 고개를 돌린 정철식은 달려드는 헬하운드를 막아내는 것도 잊고 하운드를 학살하고 있는 남자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저…… 저건 또 뭐야?’
그의 시선 끝에서 최진혁이 하운드를 학살하고 있었다.
* * *
깨갱!! 깨개갱!! 깽!
‘흠…… 쉬운데?’
처음에는 적은 마나량과 많은 적들에 마나가 부족하지 않을까? 아니면 공격을 막아내고 본체까지 도달하는 하운드가 있을까 약간의 걱정을 했지만,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 하운드들은 본 애로우 한 방당 한 마리씩 죽어 나갔다.
원샷원킬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듯 하운드를 처리하면서 걸어가는 최진혁의 눈에 힘겹게 헬하운드들과의 혈투(?)를 벌이고 있는 정철식이 눈에 들어왔다.
‘호오? 새로운 놈인가? 어디 보자…….’
새로운 몬스터의 등장에 최진혁은 또다시 기억 저 너머에 있는 지식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물론 본 애로우를 날리는 것은 잊지 않았다.
곧 최진혁은 헬하운드에 대한 정보를 기억해 낼 수 있었다.
‘헬하운드, 입으로 불을 뿜어내는 공격을 할 수 있다…… 그리고 가죽이 질겨서 물리공격이 잘 통하지 않는다? 뭐 나랑은 상관없는 이야기군. 나야 마법을 쓰니까 말이야.’
대충 정보를 취합한 최진혁은 허공에 본 애로우 다발을 만들어내고는 헬하운드들과 피 튀기는 싸움을 하고 있는 정철식을 향해 다가갔다.
* * *
깨갱!!
‘저…… 저놈은 대체 뭐야?’
정철식은 헬하운드의 발톱에 당한 상처에서 느껴지는 고통도 잊고 헬하운드를 학살하는 남자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분명 자신의 길드원은 아닌 사내로 보였다. 허공에 떠 있는 뼈로 만든 화살이 날아갈 때마다 헬하운드를 비롯해 주변에 있는 하운드들이 쓰러졌고, 그런 본 애로우들은 헬하운드에게도 마수를 뻗었다.
물론 하운드처럼 한 발에 죽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3발 이내로 전부 죽어 나갔다.
점점 줄어드는 헬하운드의 모습에 정철식의 꺼져 버린 삶의 불씨가 화륵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철식은 그런 삶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기 위해서 자리에서 일어나 방패와 검을 들고 다시 일어났다.
“저…… 저도 돕겠습니다!”
“내 거다.”
“예…… 예?”
“내 거라고, 마석.”
순간 정철식은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자신은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상황인데 사내는 이런 상황 따위는 전혀 위협이 안 된다는 듯 마석을 요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철식은 이 상황에서 고개를 저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말을 하는 최진혁의 본 애로우가 정철식을 겨누고 있었기 때문이다.
꿀꺽.
“사, 살려만 주신다면 당연히 드려야죠!! 다 가지세요 다 가져!!”
“고맙군 그건. 하지만 앉아 있어라, 그냥.”
“예? 저…… 저도 도와드릴…….”
“쉬는 게 도와주는 거다. 그냥 앉아 있어라.”
최진혁의 반대에도 부득 도와주겠다고 나서던 정철식은 최진혁의 눈동자에서 느껴지는 살기에 혼이 빠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그 뒤로 정철식은 바닥에 주저앉아 최진혁이 벌이는 학살극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5마리의 헬하운드 무리 속에서 싸우면서 두려움은커녕 입가에 미소마저 달고 있는 최진혁의 모습에 정철식은 오싹함과 살았다는 안도감을 동시에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