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치, 헌터가 되다! 1화
프롤로그
“젠장…… 젠장…… 젠장할!! 이제 곧이거늘…… 망할 창녀의 개들이 나를 방해하는구나.”
어두운 동굴 안에서 빛나는 수정구슬 앞.
인영 하나가 수정구슬을 지켜보면서 자신의 손을 물어뜯었다. 아니, 정확히는 자신의 손가락뼈를 물어뜯고 있었다.
수정구슬을 보고 있는 이, 리치는 수정구슬 속에서 천칭을 들고 있는 모습이 새겨진 방패를 들고 천천히 걸어 들어오는 이들 중에서도 가장 앞에서 걸어오는 이, 루더슨을 보면서 이를 갈았다.
“빌어먹을, 자신들이 믿는 신만이 유일하다고 믿는 멍청한 놈들! 선신 또한 신이고 악신 또한 신이라는 사실을 정녕 모르는 건가!!”
수정구슬을 보면서 한참을 욕지거리를 하던 리치는 이내 수정구슬에서 눈을 떼고 바닥에 그려진 마법진을 꼼꼼히 살피기 시작했다.
“……어찌 되었든 이딴 세상 한시도 있고 싶지 않군. 하지만 이걸로 이 세상도 작별이다.”
그리 중얼거리면서도 리치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생각해 내고는 바닥에 그려진 마법진을 꼼꼼히 살피면서 틀린 부분을 고쳐 나갔다.
그렇게 얼마나 마법진을 고쳤을까?
바깥에서 들리는 발소리와 명령 소리에 바닥에 있는 마법진을 고쳐 나가던 리치가 고개를 들고 문이 있는 곳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본월.”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땅바닥에서 뼈로 만들어진 벽이 솟구쳐 올라 문이 있는 곳을 막아버렸다.
“젠장! 리치 아르만!! 순순히 신성한 빛에 몸을 맡겨라!! 어차피 너는 이미 포위되어 있다!!”
“닥쳐라! 멍청한 놈들. 네놈들의 신만이 유일할 것이라 생각하느냐? 나도 그까짓 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네놈들의 멍청한 배척 행위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망할 창녀의 개 같으니.”
뼈로 만들어진 벽을 사이에 두고 리치 아르만과 루더슨의 언성이 점점 높아졌다.
“내가 무얼 잘못했지? 나는 강해지고자 했다. 그리고 거기에 나는 다른 흑마법사들과는 달리 인간들을 제물로 쓰지 않고 나만의 연구를 통해서 이 자리까지 올라왔다! 그런데…… 그런데 대체 네놈들이 무슨 자격으로 내 길을 막는 것이냔 말이다!!”
“네놈이 무슨 짓을 벌이든 네놈이 흑마법사, 거기에 리치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사람으로서 정해진 고리를 벗어던지고 신의 사랑을 저버린 언데드가 된 네놈이 정녕 깨끗하다 외치는가!!”
“후우…… 되었다. 어차피 이곳에 미련 따위는 없다. 마지막 가는 길, 한번 얘기나 들어보려 했건만 역시 네놈들은 창녀의 개답게 네놈들의 가치관에 맞춰서 모든 것을 재단하는구나.”
쾅!!
그 순간, 뼈로 만들어진 벽이 터져 나가면서 은빛으로 빛나는 방패와 검을 빼 든 금발이 잘 어울리는 미남자, 루더슨이 뚜벅뚜벅 걸어왔다.
“네놈의 악행은 여기서 끝이다.”
“어차피 네놈들을 보는 것도 이제 마지막이다.”
“하! 드디어 포기하는 것이냐?”
“내가 언제 포기한다고 했지? 본 미사일.”
푸슝! 푸슝! 푸슝!
공기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뼈로 만들어진 미사일이 루더슨을 향해 날아갔다.
아르만의 무영창 마법을 보통의 마법사들이 봤다면 기겁했겠지만 오롯이 악의 처단만을 바라는 루더슨에게는 그런 마법의 대단함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가 원하는 것은 자신이 믿는 신의 정의를 관철시키는 것이었으니까.
캉! 캉! 캉!
연달아 날아오는 본 미사일을 은빛으로 빛나는 방패로 쳐내면서 루더슨이 아르만에게 한 발짝씩 다가오기 시작했다.
하나하나가 강철도 종잇장처럼 뚫어버릴 위력을 가진 미사일들이었지만 아르말딘 대륙에 몇 없는 그랜드마스터 중 하나이자 여신에게 축복받는 성기사단장인 루더슨의 앞에서는 이쑤시개만도 못했다.
그런 루더슨을 시작으로 그 뒤에서 뒤따라오던 성기사들도 아르만에게 조금씩 다가왔고, 그들의 철저한 보호를 받는 사제들이 그런 그들을 향해 여신의 축복을 걸어주기 시작했다.
여신의 축복 없이도 아르만의 공격을 힘겹지만 어찌어찌 막아내던 그들이 축복까지 더해지자 아르만의 본 미사일로 그들의 돌진을 저지하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하지만 그런 최악의 상황에도 아르만은 자색 귀화를 불태우면서 마지막까지 그들을 조롱했다.
“더러운 창녀의 개들아, 더 이상 이런 빌어먹을 세상 따위에 미련 따위 없으니 너희들이 좋아하는 정의의 빛을 밝히면서 살아가길 바란다.”
그런 아르만의 모습에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루더슨이 본 미사일을 막는 것도 제쳐둔 채, 방패를 내버리고 아르만에게 달려들었다.
방패마저 버리고 달려들었기에 눈 깜짝할 사이에 아르만의 코앞까지 다가갈 수 있었지만, 아르만이 텅 빈 두 동공에서 내뿜는 귀화와 함께 손가락을 튕기는 것이 더 빨랐다.
따악! 파아아아앗!
“크윽…….”
“그럼 다시는 보지 말자고. 나는 나대로 너희들은 너희대로 잘 살아보자고.”
아르만이 자신의 뼈만 남은 손가락을 튕김과 동시에 바닥의 마법진에서 뿜어져 나오는 눈부신 빛이 아르만을 감싸기 시작했다.
아르만의 전신을 감싼 빛이 사라지고 난 자리에는 아르만의 영혼이 빠져나가고 남은 뼈 무더기만이 남아 있었다.
그렇게 아르말딘 대륙에서 흑마법으로 역사에 한 획을 그었던 아크리치 아르만은 뼈 무더기만을 남긴 채 아르말딘 대륙에서 자취를 감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