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57화 (257/328)

재판관 앞에 당당히 선 퀴테리아가 납작한 함을 내밀었다. 조심스럽게 함을 받아 든 재판관이 외알박이 안경을 추켜올리며 함에 담긴 양피지를 꺼내 들었다. 퀴테리아는 그쯤에서 고개를 돌려 장내를 한 바퀴 돌아보았다.

재판장에 모인 수백의 시선이 온전히 그녀에게로 쏟아지고 있었다. 퀴테리아는 그들의 눈빛 속에 담긴 불안과 기대, 혹은 미약한 긴장감을 어렵지 않게 읽어 낼 수 있었다.

어쩌면 훗날의 역사가들이 교회 역사의 전환점이라 명명할지도 모르는 순간.

땅으로 떨어질 사도의 명예와 얌전히 제 손을 잡고 성좌에 오를 자매를 떠올리자, 소름처럼 온몸에 전율이 일어났다. 퀴테리아는 뜨겁게 분출하는 감격을 씹어 삼키며 으스러지도록 주먹을 쥐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한 발짝이면 고지였다.

“예하. 이게 도대체 무슨….”

황망해하는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퀴테리아는 고개를 뒤로 돌렸다. 양피지를 든 재판장이 경악스러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이것을 증거로 제출하신 겁니까?”

하얗게 질린 세 명의 재판관들을 느릿하게 훑어본 퀴테리아가 손을 뻗어 양피지를 뺏어 갔다. 바로 다음 장으로 넘겨 보려던 손길이 우뚝 멈추었다.

…행방이 묘연해져도 뒤탈이 없을 공작의 사람을 골라 거짓 자백을 받아 내게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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