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의회를 목전에 둔 성도 오스피나는 백방에서 몰려드는 인파로 밤낮없이 수선스러웠다. 공의회에 참석하려는 교회 지도자들, 은밀한 정치적 목적을 품고 온 각국의 귀족들, 신심 깊은 순례자들…. 인근의 공관은 빈방 없이 찼으며, 거리는 동냥질하는 거지꼴의 순례자들로 바글거렸다.
앙겔리카 성궁은 그중에서도 가장 정신없이 돌아가는 곳이었다. 안 그래도 발등에 불이 떨어진 판국에 먼 곳에서 와 인사차 성궁에 들르는 고위 성직자들의 행렬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산더미 같은 업무에 각지에서 몰려오는 대주교들의 접대까지 더해져, 중앙 부처 실무진들은 실로 죽기 일보 직전의 몰골이었다.
하지만 성궁의 가장 깊은 곳, 높은 성벽으로 겹겹이 둘러싸인 내전만은 홀로 고요한 정적에 휘감겨 있었다.
깊어 가는 가을 숲 사이에서 새가 지저귀는 평화로움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오래도록 둥지 틀었던 새들조차 겁에 질려 날아가 버리는 스산함, 혹은 사방으로 가시를 두르고 돌아앉은 완고함.
정체된 공기 중엔 시퍼렇게 벼린 노여움이 녹아 있었고, 서슬에 기가 죽은 하녀들은 내전에 드는 것조차 꺼렸다. 자연스레 인적이 줄어든 그곳은 흡사 무덤처럼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물밑에서 수군거리길 교황의 무덤이었다.
비올라는 그 소문을 알고도 부러 방치해 왔다. 종일 레오폴트의 곁에 붙어 그의 화를 풀어 주기엔 너무 바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기저에는 늘 그랬듯 레오폴트가 먼저 접고 들어오리라는 자신감, 혹은 내가 무얼 그리 잘못했느냐는 반발심이 깔려 있었다.
당연했다.
폭우로 공동묘지가 죄 쓸려 내려간 게 내 잘못인가. 아니면 썩은 시체들이 드러나자 전염병을 걱정한 마을 주민들이 묘지를 불태워 버린 게 내 잘못인가.
그녀는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다. 잘못이 있다면 폭우를 내린 하늘이고,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지어 그딴 허름한 묘지에 묻힌 망자였다. 그럼에도 그녀의 죄라 친다면, 교황의 업무를 맡겨 눈코 뜰 새 없이 그녀를 바쁘게 만든 레오폴트의 죄가 더욱 컸다.
그렇기에 내전의 동향에 일말의 주의도 기울이지 않았던 비올라는 오늘 아침 반려되어 내려온 공문을 보고 분노에 휩싸였다.
“대체 이유가 뭔데!”
“그, 그건 저도 잘….”
내전에 교황의 인허를 받으러 갔던 수도사가 안절부절못하며 고개를 조아렸다. 비올라는 그의 굽은 등에다 서류를 집어 던지곤 씩씩거리며 이마를 감싸 쥐었다. 그러잖아도 밀려드는 업무로 정신이 하나도 없는 이 와중에 도와주긴커녕 방해나 해 대는 레오폴트가 짜증스러웠다.
“내가 다녀올 테니 기다려.”
비올라는 그렇게 쏘아붙이곤 내전으로 향했다. 복도를 가로지르는 기세가 어찌나 흉흉하던지,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수도사며 하녀들이 모두 새파랗게 질려선 설설 피했다.
내전의 경계를 넘자 놀랍도록 고요해졌다.
요 며칠 너무 바빠서 잠도 집무실 곁방에서 쪽잠으로 채웠던 비올라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평소 쓸데없이 광활하다고 생각한 적은 있어도 이토록 황량한 느낌은 처음이다. 화초는 시들고, 비바람에 떨어진 낙엽들만이 추하게 복도를 구르고 있었다.
으스스한 기분에 팔뚝을 쓸어내린 비올라가 마지못해 발걸음을 옮겼다. 둔중하게 복도를 울리는 구둣발 소리의 잔음이 오래갔다.
“성하는?”
“안에 계십니다.”
근위 기사들이 창칼을 거두며 고개를 숙였다. 비올라는 아치를 넘어, 작은 정원으로 이어지는 회랑을 걸었다. 레오폴트가 기르는 고양이들이 축축한 흙을 묻힌 채 자유로이 회랑을 오가고 있었다. 사람 손을 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고양이들이 주저 없이 엉겨 왔다.
“저리 가.”
작게 속삭인 비올라가 슬쩍 주위를 둘러보더니 엉겨 붙는 고양이들을 발로 밀었다. 흥미가 사라졌는지 대부분의 고양이들은 무심하게 돌아갔으나, 본데없는 한 마리가 감히 치맛자락 안으로 달려들어 발목을 깨물고 도망갔다.
악 소리를 낸 비올라가 저도 모르게 험상궂어진 표정으로 달아난 고양이를 쏘아보았다. 저걸 그냥. 제 성질 못 참고 내디디려던 발걸음이 우뚝 멈추었다.
멀지 않은 수풀 사이에서 레오폴트가 물끄러미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
멍하니 그를 마주 보던 비올라가 순식간에 상냥하고 단정한 요조숙녀의 가면을 썼다. 초상화에서 보았던 제네로사 5세의 모습 그대로. 바닥에 끌리는 치맛자락을 들어 사뿐사뿐 그에게로 다가갔다.
“레오.”
먼바다처럼 짙푸른 눈이 부드럽게 휘어졌다. 레오폴트는 말없이 등을 돌렸다. 오전에 내린 빗물이 흥건하게 고여 있는 정원의 흙바닥을 우울하게 내려다본 비올라가 곧 그의 뒤를 따랐다.
우거진 수목 사이를 조금 걷다 보니, 대리석으로 지어진 작은 돔 형태의 건축물이 나왔다. 산책 도중 비나 햇빛을 피하기 위함인지 의자까지 마련되어 있었다. 레오폴트는 그곳에 앉으며 지금껏 품에 안고 다녔던 고양이를 땅에 내려 주었다. 꼬리를 살랑거리며 비올라를 스쳐 지나간 고양이가 이내 수풀 사이로 사라졌다.
“레오. 아침에 반려되었던 공문을 다시 허락받으러 왔어요.”
턱을 괸 채 반대편을 응시하는 레오폴트는 말이 없었다. 지긋지긋해진 비올라가 남몰래 한숨을 내쉬곤 발걸음을 옮겨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시가행진에서 발표될 당신의 공문이에요. 다른 것도 아니고 공의회를 시작한다는 내용인데 허락을 내려 줘야죠.”
“…….”
“레오.”
비올라는 슬슬 열이 치받쳐 올라왔다.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그를 바라보는 눈빛에 점차 날이 세워졌다. 꾹 참고 다시 입을 열려는데, 가면 속에서 그의 목소리가 작게 울려 왔다.
“왜 내게 말하지 않았느냐.”
무엇을, 하고 물으려던 비올라가 일자로 입을 다물었다.
“모두가 그러더구나. 네가 숨겼다고.”
가면 속 연옥색 눈동자가 그녀를 향해 돌아왔다.
“말해 다오, 비올라. 왜 트리니테 공동묘지가 사라졌다는 소식을 내게 알리지 않았느냐.”
“아직도….”
“뭐?”
아직도 그 얘기야.
비올라는 치솟는 분과 함께 뒷말을 씹어 삼켰다. 그러고는 짜증이 가득한 눈을 들어 그를 마주 보았다.
“당신이 알 필요 없는 얘기니까요.”
“왜 내가 알 필요가 없어! 거긴 페기가 묻힌….”
“네, 만인을 속이고 감히 천사 예리엘의 이름을 더럽힌 거짓된 사도가 묻혀 있는 곳이죠. 그런 더러운 곳을 왜 교황인 당신이 신경 써야 하는 건데요?”
연옥색 눈이 허옇게 질렸다. 비올라는 빈정거리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있잖아요, 레오. 당신은 나를 고맙게 여겨야 해요. 감히 사도를 참칭한 자가 십수 년이나 어지럽혀 놓았던 교회의 기강을 내가 잡아 주었잖아요. 영영 인간을 버리실 줄 알았던 천사 예리엘께서 나를 택하셨어요. 내가, 나란 존재야말로 이 시대의 등불이라고요.”
300년 넘게 이어졌던, 천사 예리엘의 권능을 이어받은 사도의 빈자리는 그녀의 대에서 비로소 채워졌다. 거짓으로 세상을 기망하여 허름한 공동묘지에 묻힌 그 여자는 모두가 잊고 싶어 하는 오점에 불과했다. 그런데 맙소사, 천사를 대행한다는 사도들만이 그 자명한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당신뿐만이 아니야. 차라도, 엘피도 공작도 나를 제대로 본 적이나 있는지 모르겠어. 새로운 사도가 나왔다는데도 얼굴 한번 들이밀지 않았던 그 안드레아란 작자는 또 어떨지 모르겠네. 망나니란 소문이 파다하던데 어디서 더럽게 객사라도 한 거 아니에요?”
날카로운 웃음소리가 습기 찬 공기를 꿰뚫었다.
“당신들, 그 웃기지도 않은 가족 놀이하면서 아직도 죽은 사기꾼한테 절절매는 거 얼마나 웃긴지 모르죠? 도대체 얼마나 홀렸으면 그래. 딸로서 아낀 건 맞아요? 피 한 방울 안 섞인 계집애를 그렇게나 아낀다고? 난 도저히 못 믿겠어. 당신이야 사내 구실 못 한다 쳐도, 엘피도 공작 그자는 아니잖아. 그 가족 놀이가 정말로 순수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인지, 나는 그것이 너무나도 의심스러워요, 이젠.”
“…비올라.”
“난, 당신들이랑 달라.”
비올라가 새파랗게 독이 오른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난 교황을 대리하는 자로서 마땅한 행동을 했을 뿐이에요. 당신의 연약한 심신을 걱정하여 쓸데없는 예삿일을 고해바치지 않은 것이고, 당신의 빈자리를 채우고자 며칠째 동분서주하고 있는 거예요. 누구처럼 죽은 사람에게 얽매여 직무를 놓아 버리지도, 애먼 데서 미친 짓을 벌이지도 않는다고.”
소매 속에 숨겨진 손가락이 옷자락을 꽉 움켜쥐었다. 그만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만할 수가 없었다. 입이 멋대로 움직였다.
“난… 나는, 정말 열심히 했어요. 당신들 중에 누구 하나 인정해 주지 않았지만, 그래도 정말 열심히 했어.”
“…….”
“알아요. 당신이 고드릭 수도사를 통해 엘피도 공작에게 시가행진에 참여하라는 언질을 보냈다는 거. 웃기지도 않아. 내가 이번 공의회를 어떤 마음으로 준비해 왔는지 다 알면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당신이 밉고 원망스러웠지만, 그래도 티 내지 않았어요. 당신에겐 20년을 넘게 봐 온 아들 같은 사람일 테니까. 나는 그랬는데, 당신은 고작 공동묘지 하나 사라진 것으로 나를 이렇게….”
“비올라.”
엄중한 목소리가 사위를 갈랐다. 지긋하게 그녀를 응시하던 레오폴트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만하렴.”
비올라의 아랫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아직 채 쏟아붓지 못한 원망과 노여움이 혀끝에서 넘실거렸다. 그마저 안타깝게 지켜보던 레오폴트가 가면을 매만지며 씁쓸하게 읊조렸다.
“이렇게 힘들어할 줄 알았다면 네게 맡기는 것이 아니었는데… 이 역시 나의 죄겠지.”
“…….”
“비올라. 이번 공의회가 끝나면 함께 떠나자꾸나.”
기둥에 매달려 있던 빗방울이 뚝, 떨어졌다.
비올라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어지러운 와중에 그의 목소리가 연달아 들이닥쳤다.
“진작에 이리해야 했던 것을 또 이렇게 늦고 말았구나. 하지만 더 늦기 전에 떠나야지. 성궁을 답답하게 여기는 차라도 데리고 어디 조용하고 고즈넉한 곳으로….”
“…….”
“원한다면 비올라, 너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 주마.”
세월에 지친 연옥색 눈이 가만히 그녀를 응시했다.
“너는 아직 젊으니 새로운 출발을 하기 충분할 게다. 너도, 위스누아의 가족들도 서로를 몹시 아끼지 않니. 멀쩡히 살아 있는 가족들과 생이별하는 것도 이젠 낡은 관습일 뿐이야. 더는 네가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어울리지 않는 망자의 흉내를 내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구나.”
“망자의 흉내….”
비올라가 창백하게 질린 입술로 중얼거렸다. 신물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왔다.
“나는 네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길 바란다. 한순간에 박제된 망자의 초상으로 네 자신을 죽이는 건 너무나도….”
“내가 왜 그 짓을 했는데.”
선득하게 날이 선 목소리가 말을 끊고 들어왔다. 레오폴트가 고개를 들었다.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