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4화 (164/328)

빌헬미나가 두려워하는 것은 새로운 왕조가 발데마르 황가를 꺾고, 가장 영광된 자리에 오르는 일.

도미에 변경백에겐 그럴 만한 능력도, 배경도, 인망도 있었다. 탐보프의 수많은 귀족들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사람이 바로 그였다.

“확실히 제가 곁에서 지켜봐 온 변경백은 뛰어난 무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리페르트 6세나 빌헬미나 3세를 뛰어넘는 것이 그리 쉽게 가능할까요?”

“당연히 어렵겠지.”

막시모가 짧은 조소를 터트렸다.

“좋은 기사, 좋은 장군이 반드시 좋은 황제가 된다면 왜 라발에서 그 숱한 군인 황제들이 죄다 실패로 끝났겠냐. 정치는 전쟁과 달라. 도미에 변경백의 치명적인 약점이 바로 그거지.”

갓 열 살을 넘겼을 때부터 전쟁터를 전전했던 그는 미에투넨의 치열한 정치판을 모른다. 그런 면에선 제멋대로에 책임감이라곤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요슈아가 차라리 나았다. 하다못해 알리오나 황녀가 건강하기만 했어도 빌헬미나가 이렇게 후계 문제로 속 끓이진 않았으리라.

“반드시 좋은 황제가 될 수 없다면 왜 변경백입니까?”

“빌헬미나 3세가 그렇게 믿으니까.”

도미에 변경백이라면, 어쩌면 그녀나 그녀의 아버지보다 훌륭한 황제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확실한 가능성.

모든 것은 빌헬미나의 사후에 벌어질 일이었다. 빌헬미나는 변경백이 어떤 황제가 될지 확인할 수 없으므로, 그 불확실성이 그녀의 여생을 지독하게 괴롭힐 것이었다. 그렇게 복수가 완성되는 것이다.

“아마 변경백은 앞으로 무지 힘들 거다. 수도의 귀족들이 그를 반길 리 없고, 황제는 사사건건 방해만 할 테니까. 변경백이 힘들든 말든 우리 알 바는 아니다만, 적어도 빌헬미나 3세가 눈 감을 때까진 잘 견뎌 주길 바라야지. 그것이 우리의 주군께서 원하시는 결말이니까.”

피식거리며 웃은 막시모가 손을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무튼 괜히 또 전하께 가서 벌해 달라는 둥, 용서하지 마시라는 둥 그런 쓸데없는 소리는 하지 마라. 안 그래도 요새 많이 심란하신 분이다.”

“그러고 보니 전하께선 도대체 어딜 가신 겁니까?”

“나도 몰라, 인마.”

막시모가 콧등에 잔뜩 주름을 잡았다. 심란한 주군을 둔 덕에 그도 무진장 심란했다.

“여기 상황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냐? 그거 알아보려고 잠시 들른 건데.”

“지금까진 도미에 변경백이 순조롭게 병권을 장악해 나가고 있습니다. 한때 모시던 상관이라 그런지 방벽 수비대원들의 거부감도 확실히 덜하고요.”

예상했던 상황에 막시모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탐보프 쪽은?”

“변경백이 알리오나 황녀와 결혼한 사실이 알려지며 일단은 잠정적인 휴전 상태가 되었습니다. 병상에서 일어난 바도비체 후작이 빌헬미나 3세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다는데, 결혼을 무를 수 없는 이상 황제로서도 전쟁을 더 지속하긴 어렵겠지요.”

“도미에 변경백이라면 네가 더 잘 알겠지. 앞으로 어찌할 것 같나?”

“덕망 있는 사람입니다. 동부를 독립시키진 못해도, 본국을 위협할 수 있는 병력을 얻었으니 황제와의 협상을 통해 동부에게 보다 유리한 상황을 가져올 겁니다.”

가일이 슬쩍 막시모의 눈치를 보았다.

“그런데 대장, 변경백이 방벽의 탈환을 노린다더군요.”

일시적인 불가침 밀약을 맺은 뒤로 알프도르트 방벽은 바스토뉴에게 넘어간 상태였다. 하지만 바스토뉴가 뒤통수를 친 순간부터 양자의 신뢰는 꺾인 것이나 다름없으니, 동부로선 방벽의 지배권을 되찾아 오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문제였다.

“누굴 탓하겠어. 동부와 위스누아 모두에게 양다리를 걸치려던 그놈들 탓이지. 덕분에 밀약이 깨져도 전하께 해될 일은 없겠군.”

이죽거리던 막시모가 문득 이맛살을 찌푸렸다. 위스누아와 바스토뉴의 관계는 앞으로 차차 파헤쳐 봐야 할 문제였다. 단순한 계약 관계라 보기엔 여러모로 찜찜한 구석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보다 페임하른 공작은 어때? 아직도 병상에 누워 있나?”

“부상이 깊어 오랜 요양이 필요하다더군요. 설령 낫는다 하여도 평생 지팡이 신세를 피하진 못할 겁니다.”

“그거 하난 다행이군.”

막시모가 흡족한 기색으로 가일의 어깨를 두드렸다.

“나는 다시 전하께로 돌아가 봐야 하니 네가 대신 페임하른 공작을 잘 감시해라. 혹시라도 페임하른 공작이 전하께 앙심을 품어 변경백을 방해하기라도 하면 일이 대단히 복잡해지는 거야. 알지?”

“그 역시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가일이 옅게 웃었다.

“페임하른 공작은 전하의 변심이나 빼앗긴 병권 따위에 신경 쓸 여력이 없습니다. 아들에 대한 배신감에 사로잡혀 며칠째 밤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요슈아는 막사 앞에서 잠시 고민했다. 맨몸으로 들어갔다가 송장이 되어 나오는 것은 아닐지 문득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늘 그렇듯 고민은 찰나였고, 그는 별생각 없이 발걸음을 뗐다. 설마 죽기라도 하겠어?

그러나 막사 안으로 들기 무섭게 날카로운 단검이 귓바퀴를 스치고 지나갔다.

화끈거리는 귀를 본능적으로 움켜쥔 요슈아가 천천히 고개를 틀었다. 침상에 걸터앉은 이리니가 두껍게 붕대를 두른 허리춤을 움켜쥔 채 헉헉대고 있었다.

요슈아가 아무렇지도 않게 입을 열었다.

“안녕, 엄마.”

이리니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죽어라 그를 노려보았다. 침대맡으로 다가온 요슈아가 의자를 꺼내 앉으며 능청스럽게 말을 건넸다.

“한 3년 만인가? 기대도 안 했지만 엄마는 진짜 하나도 안 변했네.”

“짐승만도 못한 놈! 네가, 네가 어떻게 나를…!”

피 토하듯 절규하던 이리니가 갑자기 온몸을 들썩이며 거칠게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요슈아는 턱을 괴고 무료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왜 배신했냐고? 3년 전에 헤어질 때도 그 소리더니 다시 만나서도 그 소리야?”

“넌, 너는 내 아들이야…. 천륜을 네 맘대로 끊을 수는….”

“끊었지, 내 마음대로.”

요슈아가 빙긋 웃었다.

“속세의 이름과 지위를 모두 버리고 교회로 든 거, 엄마도 봤잖아. 난 이제 탐보프의 황태자도, 엄마의 후계자도 아니야. 평생 독신으로 사도를 섬길 성기사지.”

“웃기지 마!”

사납게 윽박지른 이리니가 요슈아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당장 환속해. 그러지 않으면 유모의 딸년, 이번에야말로 그 목을 베어 버릴 거다.”

코앞으로 다가온 이리니의 푸른 눈이 광적으로 번들거렸다. 가라앉은 표정으로 그 시선을 마주하던 요슈아가 작게 입술을 달싹였다.

“마음대로 해.”

“…뭐?”

“엄마 마음대로 하라고. 뭐라고 하든 난 굽히지 않을 거니까.”

벌겋게 힘이 들어간 이리니의 얼굴 근육이 짧게 경련했다. 그녀는 노여움을 참지 못하고 고함을 내질렀다.

“이기적인 놈! 네놈이 언제부터 그리 신앙에 뜻이 깊었다고! 고작 나한테 반항하겠답시고 그 불쌍한 년을 죽일 셈이야?!”

“말은 똑바로 해야지, 엄마. 만약 그 애가 죽는다면 그건 엄마 탓이야. 도대체 언제까지 남한테 화살을 돌릴 거야?”

요슈아는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다.

빌헬미나에게 패배한 것은 그녀인데 늘 불똥은 다른 사람들에게 튀었고, 그녀가 잃어버린 동부의 옛 영광을 되찾아야 하는 것은 언제나 아들인 자신이었다. 툭하면 죽어 나가는 하녀나 기사들을 볼 때마다 다음번에 저 칼에 맞아 죽는 것은 자신이 아닐까 싶었다.

“엄마는 한 번도 내게 부모였던 적이 없어.”

그의 눈에 이리니 페임하른은 늘 분노에 눈먼 칼을 휘두르던 괴물.

이제 와 좋은 부모가 되어 주리란 기대는 조금도 없었다. 그럼에도 그녀를 만나기 위해 동부로 온 것은, 적어도 좋은 지도자는 되어 주지 않을까 싶은 기대의 발로였다.

그는 알지 못하는 어머니의 눈부시던 시절.

동부의 독립을 위해 제 한 몸 불살랐던 용맹한 전사를, 그도 한 번쯤은 보고 싶었다.

“내가 네 부모였던 적이 없다고…?”

시뻘건 격노에 사로잡힌 이리니가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나는 네게 모든 것을 주고자 했다. 그래서 무너진 몸을 다시 일으켰어. 이 마지막 기회에 내 모든 것을 걸었단 말이다! 내 주겠다는 것을 걷어찬 건 네가 아니더냐!”

“내가 언제 엄마한테 그런 걸 달라고 했어?”

“요슈아!”

비명 같은 노호가 막사를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요슈아는 지친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진정한 지도자로 각성했다면 지금 이래서는 안 된다. 엘피도 공작의 배신과 도미에 변경백을 받아들이려는 방벽 수비대의 변심에 몸서리쳐야 했다.

그런데 수없이 벼리고 벼린 저 분노의 종착지가 결국은 모자란 아들놈이라니. 목에서 피가 터져라 동부의 부흥을 외쳤으면서, 결국은 자식새끼의 배반이 가장 아픈 걸까.

요슈아는 착잡한 심정으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엄마가 병상에서 일어나기 전에 떠날 거야. 그리고 다신 돌아오지 않을 거예요.”

이리니의 눈이 설핏 떨렸다. 그녀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으로 멀리 뒷걸음질한 요슈아가 마지막으로 웃어 보였다.

“이번엔 제발 좀 잘 살아 봐요, 엄마.”

막사에서 나와 발길 닿는 대로 걷던 요슈아는 공터에서 아아, 소리를 지르고 있는 차라를 발견했다. 음의 높낮이가 계속 바뀌고 있긴 한데, 노래라기엔 참 여러모로 면구스러웠다. 그래도 덕분에 엉망이었던 기분이 뒤집혀 요슈아는 만면에 웃음을 띤 채로 다가갔다.

“사도님, 뭐 해?”

“아, 요슈아.”

인기척에 뒤를 돌아보던 차라가 갑자기 표정을 굳히며 검지를 들어 올렸다.

“너 귀가 왜 그래?!”

얼결에 귀에 손을 갖다 댄 요슈아가 날카로운 통증에 퍼뜩 어깨를 튕겼다. 차라가 황급히 달려와 상처를 살폈다.

“세상에, 귓바퀴가 찢어졌잖아! 어디서 이렇게 다친 거야!”

“별것도 아닌데 왜 그래.”

“별 게 아니긴! 안 되겠다. 빨리 치료하러 가자!”

“뭐? 됐어, 이제 피도 멈췄잖아.”

요슈아가 뭐라고 하든, 차라는 그의 팔을 잡아당기며 척척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요슈아는 조금 얼떨떨한 기분으로 뒷머리를 긁적였다. 검도 제대로 못 드는 작고 왜소한 도련님이면서 뒷모습만은 제법 옹골차 보였다.

“그런데 넌 뭐 하고 있었어?”

“응?”

“아까 이상한 소리 내고 있었잖아. 혹시 그런 건가? 대단한 음치?”

차라가 즉각 뒤를 돌아보며 도끼눈을 떴다. 요슈아가 낄낄거리자, 차라는 괜스레 목덜미를 주무르며 머뭇머뭇 말을 꺼냈다.

“너 혹시 전쟁터에서 그 소리 들었어? 벼락 치는 것 같은.”

“아, 그거? 그러고 보니 그거 대체 뭐였지?”

요슈아는 며칠 전 어마어마한 굉음에 뒤이어 몰려오던 진동을 떠올렸다. 뒤이은 사건들에 새카맣게 잊고 있었긴 해도 생각할수록 이상한 일이었다.

차라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그거 왠지 내가 한 것 같아서….”

“에이, 설마.”

“진짜야! 이글거리는 불덩이 같은 게 막 몸속에서 올라왔단 말이야!”

“그럼 지금 해 봐.”

차라의 입이 조개처럼 다물렸다. 요슈아가 얄밉게 키득거리며 차라의 팔을 찔렀다.

“사도님, 어서. 해 보라니까?”

“됐어.”

“못하지? 응? 못하는 거지?”

“연습할 거야! 너 나중에 두고 봐!”

차라가 씩씩거리며 자꾸만 쿡쿡 찔러 오는 요슈아의 손길을 뿌리쳤다. 옥신각신하는 사이 군의가 있는 막사에 달하여 요슈아는 엄마 손에 찢긴 귀를 치료받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차라는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연신 아야 소리를 내며 엄살을 부리던 요슈아가 다리를 쭉 뻗어서 차라를 건드렸다.

“뭘 그렇게 봐?”

“그냥…. 예후르는 언제 오나 해서.”

가만히 읊조리는 차라의 얼굴에 시름이 가득했다. 요슈아는 평소처럼 장난을 치는 대신 말똥말똥한 눈을 굴렸다. 만사에 격의 없는 그도 뱀을 죽였다는 엘피도 공작을 갖고 놀리기엔 아직 목숨줄이 귀했다.

“그러고 보니 그… 너희 형님은 어딜 그렇게 바삐 가신 거래?”

“누나 데리러 갔어.”

“누나? 너 누나도 있었어?”

깜짝 놀란 요슈아가 윗몸을 확 일으켰다가, 치료하던 군의의 손에 상처를 잘못 스치고 말았다. 악 소리를 내며 요란을 떠는 요슈아의 모습에 차라가 혀를 찼다.

“조심해.”

“아우, 되게 아프네. 그보다 누나 있었다고 왜 말 안 했어!”

“말해야 돼?”

“당연하지!”

차라가 영문을 몰라 하자, 군의의 손길을 물린 요슈아가 얼굴을 기울이며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예뻐?”

“그 소리 왜 안 하나 했다.”

차라가 시큰둥하게 고개를 돌렸다. 요슈아는 그런 차라의 옷깃에 매달리며 징징거리기 시작했다.

“예뻐, 안 예뻐? 응?”

“이거 놔!”

“그럼 너랑 닮았는지만 말해 줘!”

“안 닮았어!”

“와, 그럼 예쁘겠네.”

저게 진짜. 치료 중인 환자를 차마 때리지는 못하고 차라가 주먹만 부들거렸다.

“꿈 깨셔! 걔 눈이 얼마나 높은데!”

“얼마나? 나 정도면 괜찮지 않나?”

요슈아가 양손으로 꽃받침을 하며 두 눈을 반짝였다. 객관적으로 요슈아는 금발 벽안의 산뜻한 미소년이었지만, 불행히도 차라에겐 전혀 통하지 않았다.

“넌 죽었다 깨어도 안 돼.”

“그 정도야?”

“당연하지. 걔가 좋아하는 게 누군데.”

“누군데?”

요슈아가 부담스럽게 눈을 빛내며 얼굴을 들이밀었다. 흠칫한 차라가 슬슬 뒷걸음질하여 막사를 빠져나왔다. 그런 차라를 붙잡으려고 요슈아가 몸부림치자, 짜증이 난 군의가 부러 아프게 붕대를 동여매기 시작했다. 비명 소리가 연달아 울렸다.

그렇게 찰거머리 같은 요슈아를 떼어 낸 차라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터덜터덜 군영을 걷기 시작했다.

지금쯤 예후르는 페기와 만났을까?

차라는 그 둘이 쌓아 온 인연의 역사를 자세히 알진 못하지만 내심 둘이 잘되길 바랐다. 일편단심인 페기야 말할 것도 없거니와, 예후르도 페기를 두고 다른 여자와 결혼하는 건 솔직히 말도 안 되었다. 아무리 봐도 예후르에게 일 순위는 언제나 페기였기 때문이다.

셋이 모일 때마다 덩그러니 혼자만 튕겨져 나왔던 수많은 나날을 떠올리며 차라는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도대체 그게 어딜 봐서 겨우 ‘사이좋은 오누이’란 말인가. 그런 게 남매라면 그는 페기와 남매가 아니었다. 남매가 되고 싶지도 않았다.

어쩌면 세도파 바도비체도 그런 이유로 미쳐 버렸는지 모른다.

예후르가 그렇게 잔인하게 세도파를 내친 내력은 알 길 없으나, 미치광이로 변모한 세도파의 모습은 차라에게도 적잖은 충격이었다. 지독한 외사랑이 그녀를 그리 만든 걸까. 그렇다면 역시 파혼은 잘된 일이다. 만약 둘이 결혼에 성공했다면 모두 다 함께 불행해지는 결과만 낳았을 테니.

하지만 이제 모든 것은 원점으로 돌아왔다.

예후르는 다시 혼자가 되었고, 그 소식을 듣는다면 페기도 분명 기뻐하리라. 오래전 세도파 때문에 가슴앓이하던 페기를 똑똑히 기억하는 차라는 이만 페기가 행복해지길 바랐다. 많은 비극을 겪었으니 이제는 좋은 일들만 가득해야 했다.

차라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한동안 태양의 자취도 보기 힘들 정도로 꽉 짜여 있던 먹구름이 서서히 물러가고 있었다. 그리고 먹구름이 갈라지는 틈으로 드러나는 먼 창공에 힘차게 날아오는 순백의 용이 보였다.

점차 번져 오는 휘광에 차라는 눈을 가늘게 떴다.

어쩐지 모든 일이 잘 풀릴 것 같다는, 기분 좋은 예감이 들었다.

<2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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