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 바닥에 와르르 쏟아졌고 도웅은 깜짝 놀라 몸을 홱 숙여 바닥에 떨어진 것들을 주웠다.
“헉. 죄송해요. 제대로 앞을 보고 걸었어야 했는데.”
작은 솜인형과 나무 모형 같은 것들을 주워 다른 손에 담았다. 빈티지한 가죽 구두 옆에 떨어진 마지막 솜뭉치를 주운 도웅은 빙긋 웃으며 부딪친 상대에게 손에 가득 찬 물건을 내밀며 몸을 세웠다.
“아…….”
상대방 키에 맞춰서 위로 올라간 도웅의 시선은 얼굴을 확인하자 놀란 듯 잘게 떨렸다. 딱딱하게 굳은 창백한 낯빛의 얼굴을 보고는 슬며시 눈을 아래로 깔았다. 눈처럼 심장도 아래로 쿵 내려앉은 건 말할 것도 없다.
“어? 사장님 오셨어요?”
골목에서 나온 영호의 목소리에 도웅은 아랫입술 안쪽 살을 씹었다. 카페를 인수했다는 사람이 왠지 어희일 거 같더라니 제 직감이 들어맞았다.
여전히 굳어있는 어희의 팔을 잡아 손에 떨어진 물건을 쥐여주고서 그대로 지나치려 했다. 애써 손에 들려준 게 무색하게도 고스란히 땅바닥에 흘린 어희는 도웅의 팔을 잡았다.
“그동안…, 대체 어디에, 아니 왜, 아픈 곳은…….”
매끄럽지 않고 띄엄띄엄 말을 꺼내는 어희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묻고 싶은 게 어떤 건지 가늠되지 않는 횡설수설이다. 혼잣말처럼 중얼거림을 반복한 어희는 이내 입을 다물었다. 엉켜오는 시선을 마주 본 도웅은 침착하게 입을 뗐다.
“저기. 이것 좀 놔줄래요?”
다행히 떨지 않고 차분한 목소리가 나왔다.
“손 놓으라니까요.”
“…….”
도웅은 제 팔을 꽉 잡은 어희의 손을 힘으로 떼어냈다. 둘 사이에서 흐르는 심상치 않은 기류를 눈치챈 영호는 살금살금 눈치를 보고는 홀랑 카페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빨간 손자국이 남은 팔을 쓰다듬은 도웅은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런 도웅의 뒤를 어희가 쫄래쫄래 쫓았다.
“…….”
“…….”
도웅은 어희가 따라온다는 걸 알고서 걸음을 재촉했다.
“도웅 씨.”
어희의 부름에 도웅의 발은 뛰기 시작했다. 열심히 달리다, 간간이 뒤를 돌아보면 어김없이 달려오는 어희가 보여 멈출 수가 없었다. 초여름이라도 이십 분을 넘게 추격전을 벌이다 보니 어느새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끈질기게 쫓아오는 어희의 모습에 결국 편의점 앞에 멈춰선 도웅은 가쁜 호흡을 뱉었다.
“아니. 허억. 왜, 왜 쫓아와요.”
똑같이 땀으로 목욕한 어희는 숨을 고르다 대꾸했다.
“왜, 왜 도망갑니까.”
“도망은 헉, 무슨…. 후우, 더워 미치겠네.”
물이라도 사 마셔야겠다 싶어, 숙이고 있던 상체를 곱게 펴자 어희가 움찔했다.
“아. 물 사러 가요, 물!”
도웅의 짜증에 어희는 시무룩하게 눈을 내리깔았다. 편의점에서 얼음컵과 생수 하나를 구매해 밖으로 나온 도웅은 얼음물을 만들어 벌컥벌컥 마셨다.
“후. 살겠네.”
얼음물을 원샷한 도웅은 옆에 녹초가 되어있는 어희를 돌아봤다. 못 본 사이에 머리가 조금 더 길었다. 얼음을 와작와작 씹으며 선선한 바람에 땀을 식힌 도웅이 먼저 물었다.
“그래서, 왜 쫓아왔어요? 무슨 할 말이라도 있어요?”
“할 말이 없을 리가.”
어희는 열이 식지 않는지 발갛게 물든 얼굴로 머리 끈을 풀어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고쳐 묶었다.
“별로 긴 얘기는 하고 싶지 않으니까 한 마디만해요. 딱 한 마디만.”
선심이라도 쓰는 듯한 도웅의 어조에 어희는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렸다. 그러고는 몇 번이나 입을 열었다, 다물기를 반복했다.
“할 말 없으면 더 따라오지 말고요.”
편의점 외부에 비치된 재활용 통에 빈 컵과 생수병을 넣었다.
“보고 싶었습니다.”
“네. 알겠어요. 한마디 들었으니까 됐죠?”
도웅은 택시 정류장으로 걸었다.
강아지처럼 뒤를 따라오는 어희가 신경 쓰였지만, 도웅은 일부러 앞만 보고 걸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온해 보였으나 속은 말이 아니게 속상하고, 울컥했다. 몇 번이고 뒤를 돌아 어희에게 따져 묻고 싶었다. 대화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화라도 내고 싶었지만, 도웅은 이미 끝난 마당이 무슨 소용인가 싶어 꿋꿋하게 앞만 보고 걸었다.
택시 정류장에 도착하기 전에 빈 차를 발견한 도웅은 손을 들었다. 그리고 그 손을 잡아 내린 어희가 대뜸 말했다.
“그리고 미안합니다. 미안해요, 도웅 씨.”
어희의 사과에 눈을 동그랗게 뜬 도웅은 울 듯이 내려가려는 입꼬리를 억지로 붙잡아뒀다.
“이상하게… 남이 하는 사과는 와닿지 않아서 잘 안 받는 편인데 어희 씨 사과는 억지로라도 받을게요. 그래야 안 쫓아올 거 같으니까.”
“…….”
“이제 정말 끝난 거죠?”
“도웅 씨. 그동안…… 아닙니다. 카페는 그대로니까 내킬 때 가져가세요.”
마치 자신이 지키고 있었다는 뉘앙스에 도웅은 미간을 찌푸렸다.
“필요 없어요.”
“그래도 도웅 씨 애정이 담긴 카페인데….”
어희를 무시하고 성난 걸음걸이로 걷던 도웅은 마침 정차한 택시에서 승객이 내리는 걸 보고는 곧바로 조수석 문을 열었다.
“기사님 분당이요.”
택시에 오른 도웅은 안전벨트를 맸다. 사이드 미러에 어희가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되고서야 도웅은 한숨과 함께 얼굴을 쓸어내렸다. 긴장이 풀려 몸이 축 처졌으나 심장은 요란하게 요동쳤다. 묻어둔 일이 다시금 떠오른 탓이다.
“준비되는 대로 갈 테니 먼저 가 있어요.”
어희랑 이렇게 만날 줄 알았더라면 카페를 들르지 않았을 것이다.
도웅은 울컥 치미는 짜증을 가라앉히기 위해 차분히 숨을 내쉬었으나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 후 도웅은 2층 미니바에 앉아 낮에 있었던 일을 곱씹었다. 미안하다는 사과는 오히려 화를 돋웠고 카페를 가져가라는 말은 무슨 보상처럼 들려, 언짢음이 커졌다.
어희의 말마따나 애정이 있었다. 그러나 그 애정이 있는 카페도 소용없을 만큼 제 마음을 추스르기도 벅찼던 과거다. 술 대신 청귤 에이드를 마신 도웅은 신경질적으로 잔을 내려놨다.
“사과 괜히 받아줬나.”
그냥 신경 쓰지 말라고 할걸. 쿨한 척 받았다가 종일 어희 생각을 하며 열 올리는 자신을 발견했다.
솟구치는 화를 어디에,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아서 발만 동동 굴렸다. 애초에 그를 왜 이렇게까지 관심을 주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평소의 도웅이었다면 뒤도는 순간 관심을 끊었을 텐데 어희는 계속 생각이 났다.
“확 바로 옆에 카페 오픈해버릴까.”
영호까지 빼낼 궁리를 한 도웅은 맥없이 실소를 흘렸다.
스스로 생각해도 유치한 발상이다. 도웅은 노트북을 가져와 디저트 웅을 검색해보았다.
“어?”
가장 최근에 올라온 블로그 포스팅은 약 4개월 전이다. 슥, 슥 스크롤을 내리다, 후기 별점이 3.5인 걸 보고는 눈썹을 올렸다.
배달 사이트 요거요에 카페를 검색하자 평균 별점은 4.5로 리뷰 수에 비하면 그럭저럭 훌륭했으나 늘 4.9점을 유지했던 도웅의 성에 찰 리 없었다.
디저트 발굴단 : ★★
사장님 초심좀요;; 비싸도 ㅇㅜㅇ만의 특색있는 메뉴가 좋았는데 요즘엔 영.... 옛정 때문에 별 하나 더 붙여요.
빵프로스트 : ★
어떤 건 너무 느끼하고 어떤 건 너무 달고 중간이 없음.
맛있으면짖는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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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리카노 : ★
포장 다 터졌어요.
Rnatmf00 : ★
사장님 바꼈나요? 갑자기 이렇게 달라질 수가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