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4화 (34/90)

앞에 놔준 식기를 들고 군침을 삼켰다. 생새우일 때는 그렇게나 징그럽게 보였던 것이 먹음직스러운 음식으로 변했다.

“맛있게, 먹겠습니다.”

포크를 힘 있게 쥐었다가 풀기를 반복했다.

“…….”

“…….”

도웅이 집주인이고 요리를 해준 귀하신 분이니 먼저 음식을 들면 따라서 먹으려 했는데 어째서인지 도웅은 마주 앉은 어희를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

“…….”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눈싸움하자는 건 아닐 텐데 왜 먹지 않고 가만히 보고만 있는지 모를 일이다. 

그런데 눈이 진짜 초롱초롱하네….

어희는 음식 대신 도웅의 얼굴을 감상했다.

“안 먹어요?”

수 초간 이어진 침묵을 도웅이 먼저 깨트렸다.

“왜 안 드십니까.”

숨을 빨리 들이마셨다면 자신이 먼저 물어볼 수 있었던 질문이다. 어희는 선수를 빼앗긴 묘한 기분으로 대꾸했다.

“집주인이 먼저 수저 드는 걸 기다리는 중입니다.”

“아~ 저는 손님 우선인지라. 얼른 드세요.”

“사장님 먼저.”

“손님 먼저.”

서로 먼저, 먼저 미루다 끝이 보이지 않을 거 같다. 도웅도 같은 생각이 들었는지 실실 웃음을 흘리며 새우 살에 포크를 푹 찔렀다.

“자. 이제 먹어요.”

나이프로 양옆의 껍질을 밀어 포크를 들어 올리자 새우살과 함께 치즈가 죽 늘어났다. 돌돌 말아 버터에 튀긴 마늘을 얹어 입에 넣자 버터 향이 곳곳에 퍼졌다.

감탄할 타이밍을 잊고 묵묵히 포크 질을 이어갔다. 커다란 새우 세 마리를 뚝딱 해치우자 배가 불렀다. 위가 작은 편은 아니었으나 이곳에 오기 전 쉼 없이 마셨던 커피와 먹은 디저트가 이미 위 용량을 가득 차지하고 있었다.

“어? 더 먹어요. 아직 많이 남았어요.”

안다. 도웅의 어깨너머로 보이는 오븐 팬 위에는 버터와 치즈가 얹어진 새우가 남아있었다. 그러나 사실 한 마리만으로 배가 불렀는데 더 먹고 싶어서 두 마리를 더 먹은 것이다. 더는 무리였다.

“새우가 여기까지 쌓인 느낌입니다.”

가슴 정중앙을 손가락으로 집어 주었다. 과장을 했어도 아예 거짓말은 아니었는데 도웅은 믿지 않았다.

“그러면 싸줄 테니까 집에서 먹을래요? 아까도 봤겠지만, 진짜 많거든요.”

도웅의 곁눈질이 뜯지도 않은 다른 스티로폼 박스로 향했다.

“그래도 됩니까? 제가 새우를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는데 오늘부터 엄청나게 좋아졌습니다.”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남은 걸 또 포장해주겠다니. 도웅은 천사가 아닐까.

“에이. 세상에 새우 싫어하는 사람 드물죠. 알러지 있는 게 아니면.”

그만큼 도웅을 싫어하는 사람도 드물 거다. 이렇게 빛나고 멋지면서 음식도 매우 잘 만드는 사람을, 모난 점 찾기가 굉장히 어려운 사람을 싫어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어희 씨. 저 뭐 하나만 여쭤봐도 되나요?”

본인을 얼마나 찬양하고 있는지 아무것도 모를 도웅은 또 질문 타임을 가지려 했다. 도웅은 호기심이 많은 사람인 듯하다. 예전부터 자꾸 무언가를 물어온다. 그리고 어희 그게 싫지만은 않다.

“예. 여쭤봐도 됩니다.”

오히려 질문하기 전 머뭇거리는 저 모습이 재밌다. 망설이는 색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옅은 걸 보면 그다지 무게 있는 물음은 아닌 모양이다.

“어희 씨 나이가 어떻게 돼요? 저는 올해 스물여덟인데.”

챙. 손에 폼으로 쥐고 있던 포크가 식탁에 떨어졌다. 

스물여덟? 저 얼굴로 스물여덟이라고? 나랑…… 동갑이라고? 말도 안 돼.

“네? 어희 씨 몇 살이에요?”

놀라서 답변을 안 하고 있었더니 도웅은 더욱 편안한 어조로 재차 같은 질문을 던졌다.

“…저도 스물여덟입니다.”

“아~ 역시. 그럴 줄 알았어요.”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이 여유로워 보이는 도웅에게 어희는 허망하게 중얼거렸다. 

나는 그럴 줄 몰랐는데….

“저는 사장님이 더 어릴 줄 알았습니다.”

도웅은 쑥스러움이 가득한 웃음을 터트리고는 손을 내저었다.

“아, 그렇게 나이 안 깎아주셔도 새우 싸드릴 거에요. 솔직히 저는 어희 씨가 딱 제 나이로 보였는데.”

솔직하게, 정말로 솔직하게 민증이라도 까봐야 믿음이 생길 거 같다.

“그래도 말은 안 놓으실 거죠?”

친구가 있었던 적이 없어, 누군가에게 편하게 말을 놓는 건 어색하다. 다 마신 모과차 대신 냉수로 목을 적셨다.

“아마도. 말 놓고 싶으시면 사장님은 놓으셔도 됩니다.”

“저도 안 놓을 건 마찬가지인데요. 호칭만 좀 어떻게 바꿔주세요. 제가 어희 씨 사장도 아닌데 계속 사장님이라 불리니까 이상해서요.”

내가 좋아하는 디저트 카페 사장님이시니까….

“그럼 어떻게 불러드리면 되겠습니까.”

“어희 씨를 이름으로 부르는 거처럼 저도 이름으로 불러주세요. 도웅이에요, 도 웅.”

혹 제 이름을 잊기라도 했을까 봐 외자 이름을 강조한 도웅의 상체가 약간 앞으로 향했다. 출석 체크를 기다리는 어린 학생처럼.

어희는 눈매를 좁혀 식탁을 훑었다. 무언가 더 먹고 싶어서가 아니라 어색함을 느껴서.

도웅은 뚫어져라 어희의 입만 쳐다봤고 어희는 우물쭈물 입술을 앙다물었다가 괜히 잘 놓여 있는 포크와 나이프를 손끝으로 밀어 가지런히 정렬시켰다.

“예. 도웅 씨.”

어색하고 멋쩍으면서 쑥스러워 취했던 앞선 내 행동이 산만해 보이지는 않았을까. 이름을 마지못해 부른 거처럼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어희는 과한 걱정과 함께 더 또박또박 다시 불렀다.

“예. 도웅 씨.”

이름이 입에서 어설프게 맴돌았고 도웅은 여상히 생글생글 웃음을 지었다.

“새우 싸 줄 테니 잠깐 기다려요.”

* * *

어희는 소파에 누워 가슴팍에 손을 얹었다.

만족스러운 날씨에 만족스러운 만남을 했고 만족스러운 식사까지 했다. 이렇게 좋았던 날이 또 있었나 싶을 정도로 비현실적이다.

얼마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지 혹시 오늘 자신이 죽는 날인 건 아닌지 막연한 두려움까지 들었다.

원래 사람은 그렇다. 갑작스러운 행복에 부닥치게 되면 불안함이 드는 건 당연했다. 

어희는 그런 불안이 들 때마다 냉장고를 열어 깔끔하게 잘 포장된 타이거 새우를 확인했다. 벌써 여덟 번째 냉장고 열고 닫은 뒤 돌아와 소파에 누워있는 중이다. 심장이 기분 좋게 뛰었다. 눈을 감고 심장 박동을 느끼다 벌떡 몸을 일어난 건 냉장고 열고 닫기 횟수를 갱신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빠른 걸음으로 작업실로 향한 어희는 스케치 노트에 토실한 토끼끼 한 마리를 그려 넣었다. 목에 목도리를 추가해서 그렸더니 훨씬 귀엽고 포근해졌다. 색연필로 요란한 색을 칠해봤더니 나쁘지 않다. 아니, 오히려 좋다.

“……진짜 나 죽나…?”

일까지 척척 진행되는 게 아무래도 불안하다. 심신 안정을 위해 냉장고로 향했다. 위에서 두 번째 칸에서 버터와 치즈를 덮고 얌전히 잠이 든 새우를 보자 어째서인지 도웅을 보고 싶은 마음만 더 커졌다.

작업실로 돌아오는 도중 허벅지에 찌르르 힘이 들어갔다. 굳이 제 감정 색을 보지 않아도 훤히 느껴지는 낯 뜨거운 상태에 쭈그리고 앉아 양손에 열 오른 얼굴을 묻었다.

“하, 씨.”

말하기도 부끄러운 자연스러운 생리현상을 가라앉히고자 그대로 옆으로 드러누웠다. 딱딱한 대리석에 몸을 뉘었더니 역시 러그 어디서 샀는지 물어볼 걸 그랬다는 얕은 후회가 들었다.

나중에 러그 정보 좀 공유해달라고 해야겠다. 사게 되면 복슬복슬한 러그를 지금 누워있는 복도부터 시작해서 거실, 작업실, 침실까지 모두 깔아버려야지.

잡생각으로 생각을 가득 채웠더니 얼마간 지나지 않아서 부풀어 올랐던 생리현상이 말끔히 가라앉았다. 이대로 일어나서 마저 작업을 이어 할까 고민하다가 가만히 누워있기로 했다. 한나절도 아닌 반나절 뭉그적거린다고 욕할 사람 아무도 없었다.

다음날. 전날 비가 내려서 그런지 가뜩이나 추운 새벽 공기가 더 차갑게 느껴졌다. 목도리를 올려 코까지 가리고서 재료가 든 가방을 질질 끌고 돌아가는 길. 어희는 습관처럼 건너편에 위치한 디저트 카페에 시선을 던졌다.

예전에는 도웅이 창가에 붙어서 감시하는 듯한 시선을 보내는 게 부담이었는데 요새는 어희가 먼저 도웅이 있나, 없나 확인하고 있었다.

먼발치에서 창가 자리에 앉은 도웅이 보여 어희는 주위를 살핀 후 길을 건넜다. 한 손에는 크림이 든 짤 주머니를, 다른 한 손에는 노릇하게 구워진 평평한 빵을 들고 있었다.

디저트 웅 손님 경력 3년 차인 어희는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저건 흑미 크림빵이 확실하다.

창문을 작게 노크하자 고개를 돌린 도웅과 눈이 마주쳤다. 도웅은 그다지 놀라지 않은 눈치로 손에 든 크림빵을 가볍게 흔들었다. 마치 ‘먹을래?’ 하고 묻는 듯해 고개를 끄덕였더니.

“저. 사장님이 오시랍니다.”

창문 너머로 가끔 모습을 보였던 직원이 문을 열어주었다. 

괜히 먹는다고 했나? 

어희는 낯선 사람의 등장에 무안해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사장이 앉은 창가까지 주방 조명이 닿아 그리 어둡지 않았다. 맞은편에 착석해, 목에 두른 목도리를 벗어 테이블에 올려놨다.

“볼 때마다 목도리를 두르고 계시네요. 엄청 마음에 들었나 봐요.”

“예, 뭐……. 마음에 무척 듭니다.”

위생 장갑을 벗은 도웅은 주방에서 빈 접시와 우유 한 잔을 들고 돌아왔다.

“어제는 잘 들어갔어요?”

도로 장갑에 손을 끼우고 빈 접시에 흑미 크림빵을 무려 두 개나 놔준 도웅은 다시금 작업을 이어갔다.

“예. 잘 들어갔습니다. 새우도 잘 있고….”

건네받은 위생 장갑을 손에 끼우고 흑미 크림빵을 먹다, 방금 자신의 말이 이상하다는 걸 눈치챘다. 흡사 새우를 분양받아간 것 같지 않은가. 말을 정정하려다 알아서 잘 알아들었겠거니 넘기기로 했다.

“…푸흐.”

“…….”

어희는 뒤늦게 터진 웃음의 이유를 모르지 않았다. 민망함에 묵묵히 크림빵을 먹고 있는데, 돌연 어희 접시 위의 크림빵을 가져간 사장은 짤 주머니를 짰다. 

크림 추가해주나? 

기대에 찬 눈으로 도웅의 손만 뚫어져라 바라봤다.

어희의 접시로 돌아온 흑미 크림빵 위에는 스마일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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