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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인하자마자 VIP-343화 (343/345)

343화. < Extra Chapter 2. 그래도 지구는 돌아간다. - 1 >

세상 언던에서 있었던 신비롭고 아주 살짝 뒷맛이 나쁜 종족부활 이야기를 들은 이나희는 어처구니없어하며 말했다.

“진심 기가 막힌다, 내가.”

"감탄했으면 감탄했다고 그냥 솔직하게 말해.”

"뭘 감탄해, 미친놈아. 성체 될 때까지 앞으로 500년은 걸린다면서.”

이나희가 손에 들고 있던 장식을 강신혁에게 내팽개치며 성질을 냈다.

"그럼 보는 것만으로 가슴이 웅장해지는 그런 드래곤은 나 죽을 때까지 못 볼 수도 있단 얘기잖아!”

"지금 선배 능력이면 언젠가는 초월할 수 있을 거래도 그러네.”

"선배 금지라고. 누나라고 부르라고.”

“앗, 하지만 누님 가슴은 안 그래도 웅장……."

"백인하 죽어 진짜.”

괜히 옆에서 한 마디 끼어들었다가 난무하는 마법에 얻어맞은 백인하가 조용해졌다.

그 섬뜩한 폭행의 현장에서 그녀의 룬이 발하는 마력에 흥미가 동한 것일까, 강신혁의 곁을 뱅글뱅글 돌아다니던 아기용이 문득 눈을 반짝이며 이나희를 바라보았다.

[엄마?]

크리티컬 히트!

“엇, 응? 어…… 그, 아, 아가. 그러니까 나는.”

“얘 보는 여자마다 다 엄마라고 부르니까 괜히 오해하지 말고.”

"아."

노골적으로 실망하며 어깨를 축 늘어트리는 이나희의 모습이 가련하지만 사실이니까 어쩔 수 없다.

인간의 성별을 구분하는 방법을 가르쳐준 것이 불과 얼마 전의 일이다.

그 이후로 만나는 여자마다 다 자신의 엄마가 아니냐고 묻고 다니고 있으니, 강신혁이 이 녀석을 데리고 밖을 산책하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애초에 녀석에게 왜 그런 것을 가르쳐주었느냐를 따지자면 로키와 헤어지기 전에 있었던 아기용들의 착각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냥 복잡한 사정이 있었어. 이해해줘.”

"으, 응. 알겠어.”

강신혁의 표정에 그에게 뭐라고 할 마음도 쏙 들어간 이나희가 이윽고 기운을 차린 듯 제 뺨을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그럼 가게 단장하는 거나 마저 도와줘. 네 손에 들린 건 정문에 장식할 거야.”

"그런 걸 잘도 사람한테 던지네.”

"받아줄 거라고 믿고 있었어. 내 마음.”

“……그냥 받지 말 걸 그랬는데.”

[엄마!]

“아니라니까.”

파리의 상젤리제 거리에 위치한 허름한 가게.

일행은 그 가게의 주인으로 정식 인증을 받고 바로 이번 달부터 가게를 열 준비를 하고 있는 젊은 세공사, 이나희를 도와 가게를 청소하고 꾸미는 중대한 임무를 수행했다.

강신혁은 물론이고 백인하도 이런 데서 잡일이나 하기엔 이제 격이 너무 높아졌지만 오히려 그래서 그런가 평소 할 일이 없어져, 지인과 이야기나 나눌 겸 몸을 직접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선배, 엘리는? 오늘 여기 온다며.”

"......."

“응? 못 들었어?”

“……아, 으응. 엘리, 엘리.”

강신혁의 부름에 이나희가 조금 늦게 대꾸했다.

"엘리는…… 글쎄? 만날 사람이 있어서 조금 늦을지도 모르겠다던데. 알지? 더글러스 페인.”

"오, 그 사람을 어떻게 몰라.”

그가 1학년일 때 3학년 기사학과 최강(웃음)이었으며 비룡기사단장이기도 했던 남자.

엘레노어에게 1대1 대련으로 발리고서는 사람이 변한 것처럼 시원스레 물러나(적어도 그 자리에서는) 그녀와 강신혁의 지위를 인정해주는 등 남자다운 면이 있었다.

그리 큰 접점은 없었음에도 이젠 제법 그립게마저 느껴지는 이름이었다.

문득 궁금해져 더글러스 페인의 초인 랭킹을 검색해보니 어느덧 국제초인랭킹 1천 위 안에 이름을 올리는 거물이 되어 있었다.

이건 정말로 대단한 일인데, 왜냐하면 신영 소속 초인들의 성장세가 미친 듯이 가팔라지면서 1천 위 안에 신영 소속 초인들만 수백 명이 위치하다보니 신영 외의 초인들이 설 자리가 많이 줄어든 탓이다.

신영 소속 초인을 별개로 취급해야 한다는 말도 있고, 기존의 500위까지 인정하던 하이랭커를 1000위까지 늘려 인정해줘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었다.

즉 이 남자는 놀랍게도 초인활동을 시작한 지 몇 년 만에 하이랭커에 준하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는 얘기다!

"그걸 시뇩이 네가 얘기하니까 놀리는 걸로밖에 안 들리는데.”

"아니, 내가 잘난 것과는 별개로 대단한 건 대단하다고 인정해야지. 객관적으로 판단하자고.”

“당연하다는 듯이 얘기하니까 어째 더 재수 없네, 우리 시뇩이……."

"잠깐만.”

두 사람이 대화하던 중간에 이나희가 인상을 찌푸리며 끼어들었다.

"강신혁. 너 아무렇지 않아?”

“? 뭐가?”

"엘리.”

말하고 싶은 듯한, 말하고 싶지 않은 듯한.

인정하고 싶지 않은 듯한, 인정해버리고 싶은 듯한.

화가 가득해서 그런지 더 불쌍해 보이는 얼굴로 이나희가 말했다.

"오늘 엘리가 그 떡대 새끼 만난다니까? 그 얘기 듣고 너 아무렇지 않냐고.”

“흠."

"누님?”

백인하는 그제야 이나희의 분위기가 또 요상해지고 있음을 간파했다.

사실 요 근래 이나희와 엘레노어가 매우 심란해하고 있음을 그도 알고 있었는데, 오늘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강신혁을 따라 이곳에 왔나 내심 후회가 되었다.

당장이라도 여자친구 곁으로 도망치고 싶은데 애석하게도 때가 너무 늦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냐면야 그야…… 엘리도 고생이 많다고 생각하지.”

"......응?"

하지만 강신혁은 묘하게 바뀐 분위기를 감지하지 못한 것인지 하지 않는 것인지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엘리는 마음도 없는데 지치지도 않고 또 들이대러 온 거잖아. 사실 처음엔 페인 가문의 힘이 엘리한테 필요해질 줄 알고 내가 일부러 그 사람을 부추긴 감도 없지 않은데…… 지금 와 생각해보면 실수였지.”

“……하아.”

"결국 내가 나서서 다 해결해버리게 될 줄 알았으면 그때 그냥 엘리 대신 확실하게 말해줄 걸 그랬지……. 그래서, 이게 원하던 대답이야?"

“아니.”

제 풀에 지친 이나희가 근처 의자를 끌어다 앉고는 한숨을 쭉 내쉬며 말했다.

"엘리가 그 자식한테 안 넘어갈 거라고는 어떻게 장담하는데? 그야 그 남자 능력이 너랑 비교하면 우스워보일지 몰라도 너는 우, 엘리 한테 기회도 안 주고 있잖아. 그런데 그 남자는 엘리 일편단심이고, 그러니까……."

"헛소리는 그만하면 됐고. 그래서 원하는 게 뭐야?”

쓸데없이 길어지던 그녀의 말을 끊어내고 강신혁이 다짜고짜 물었다.

그러자 이나희가 입술을 삐죽이며 대꾸했다.

"나도, 애칭......."

"결국 그거냐."

"????"

옆에서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백인하는 대체 어째서 이야기의 결론이 그렇게 난 것인지 이해하지 못해 얼굴 가득 물음표를 띄웠다.

지금은 엘레노어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엘레노어에 더글러스 페인은 어디로 가고 갑자기 웬 애칭?

하지만 애초에 이나희가 삐진 시점을 파악하고 보면 그 이상 간단할 수가 없는 문제였다.

어차피 해답이 안 나오는 이 기묘한 관계에 매달리고 있던 것은 강신혁이 아닌 엘레노어와 이나희였으니, 새삼스레 그 얘기를 해봤자 강신혁에겐 아무런 의미도 없다.

즉 그녀는 아주 길고 찬란하게 투정을 부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선배, 이거 알아? 이래저래 내 주위에서 내가 선배라고 부를 만한 사람은 이제 나희 선배밖에 안 남았어.”

"그래서 내가 특별하다고?”

"굳이 말로 해야 아나? 내가 오늘 찾아와서 일 돕는 것만 봐도 빤하잖아.”

"그래도 그거, 여자라는 느낌이 전혀 안 들어……."

[엄마!]

이나희가 침울해하고 있으니 여전히 ‘인간여자’와 ‘엄마’의 구분을 하지 못하는 아기용이 파닥거리며 날아가 그녀의 품에 안겼다.

겉모습만 보면 화끈한 라틴계 미녀인 그녀가 소심하게 몸을 움츠리고는 입술을 삐죽이며 아기용을 쓰다듬고 있으니 그 모습이 나름 그림이 되었다.

"......아?"

강신혁이 가만히 그것을 바라보는데, 한순간 눈앞의 광경이 바뀌었다.

지금보다 나이를 먹고 어엿한 용이 된 아이를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쓰다듬고 있는 이나희의 모습이 보였다.

- 그러고 보면 진짜 네 말대로 됐네. 그땐 놀리는 건줄 알았는데.

환청까지 곁들여진 아주 실감나는 환상.

강신혁은 그 환상의 의미를 인식하고는 살짝 입술 끝을 비틀어 웃었다.

그것은 아마도 언던에서 완벽하게 몸에 익힌 권능이 제시하는 미래의 가능성.

그에게 지배되는 인과의 흐름이 내비치는 단편이었다.

"호칭을 바꾼다고 감정이 달라지나. 쓸데없는 거에 초조해하지 마. 어차피 우린 질기게 이어진 인연이니까. 내가 끊고 싶어도 못 끊어."

“……끊고 싶단 얘기는 아니지?”

조심스레 따지면서도, 이나희의 기분은 그 전보다 훨씬 나아진 것처럼 보였다.

사실 여태까지 끊고 싶었던 순간이 아예 없었던 것만도 아닌 강신혁은, 하지만 지금 굳이 그런 초치는 소리를 하지는 않기로 했다.

그녀를 비롯한 다른 많은 이들 덕분에 클레어와 더욱 빠르게 이어지고, 자신이 발전하고, 능력을 마스터하고,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있게 된 것이니까.

강신혁도 감사라는 것을 할 줄 아는 남자인 것이다.

"부단장!”

“엘레노어 누님!”

어째 점점 분위기가 묘해진다 싶던 바로 그 타이밍에 가게 문이 벌컥 열리고 엘레노어가 안으로 들어왔다.

당장이라도 출동할 수 있을 듯한 전투복 차림새의 그녀가 강신혁을 ‘부단장’이라는 호칭으로 부르자, 강신혁이 들었냐는 듯이 이나희를 보고 어깨를 으쓱여보였다.

"나도 저거랑 마찬가지라니까.”

"진짜아……?”

“응? 뭐가? 아, 그것보다!”

[엄마!]

“아!?”

새로운 엄마 후보를 보고 이나희의 품에서 날아들어 잽싸게 엘레노어에게 안기는 아기용을 보며 이나희가 배신감에 눈을 부릅뜨고, 엘레노어는 당황하면서도 녀석을 안아들었다.

"요, 용? 몬스터야?”

"길어지니까 나중에 설명해줄게.”

“아, 응! 그것보다!”

엘레노어가 붉어진 얼굴로 아기용을 쓰다듬어주며 외쳤다.

"더글러스 페인! 나 포기한대!"

"......응?"

"청혼신청을 하러 왔다면서 덤벼들어서 일게 팍 때려줬는데……!”

엘레노어가 남자가 맞으면 매우 아플 것 같은 타격 자세를 취하며 실감나게 해설했다.

그녀는 드물게도 매우 흥분한 상태였다.

"몇 대 맞고 정신 차렸는지 깔끔하게 포기하겠대! 그래서 좋은 여자 만나라고 말해주고 와쏘!”

“……엘리,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처를 입힌 건 아니지?”

엘리를 포기하는 게 아니라 대를 잇는 걸 포기하도록 만든 것은 아니겠지?

하지만 엘레노어가 싱긋 웃기만 하고 대답하지 않았기에 조금 무서워진 강신혁은 더 캐묻지 않기로 했다.

그 옆에서 이나희가 눈을 가늘게 뜨고 강신혁을 째렸다.

"또 왜."

"진짜 만약의 가능성이라곤 처음부터 하나도 고려하지 않았던 게 보여서. 그런 놈인 건 알고 있었는데 증말 재수 없다."

"의미가 없는 가정이라니까 그러네.”

“이 새끼 얼마간 안 보이더니 어디서 도 닦고 왔어, 엘리. 아까부터 이상한 얘기해, 살려줘.”

"그래? ……어쩐지 더 멋져진 것 같아쏘.”

볼을 붉히며 또 혀를 씹어대는 엘레노어였으나.

이제 엘레노어의 혀 짧은 발음은 일부러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강신혁도 알고 이나희도 알고 백인하도 알고 세상 사람들도 다 알았다.

특히 순수한 척 아양을 떨 때 가장 잘 드러나는 특징인데, 그래도 그게 전혀 밉지가 않으니 대단한 능력이었다.

"엘리, 난 이미 한바탕 했으니까 너도 좀 따져. 이 나쁜 새끼 우리한테 미끼 안 물려준 지 백만 년은 됐잖아.”

"미끼? 아, 으음. 하지만 나는.”

엘레노어라고 이나희의 심정을 왜 모르겠는가.

다만 그녀는 아담한 신장에 순진해 보이는 어린 인상과 달리 적어도 강신혁을 대하는 데에 있어서만은 이나희보다 휠씬 더 고수였다.

그녀는 아기용을 들어 빨개진 자신의 얼굴을 가리며 이렇게 말한 것이다.

"나는 그냥, 부단장을 좋아할 수 있는 것만으로 행복해.”

"너 개년아, 그럼 내가 뭐가 되는데! 아주 오늘 나랑 끝장을 보자!”

"나희!?”

그녀의 가식을 참지 못한 이나희가 의자를 박차고 벌떡 일어섰다.

다년간 많은 여자들 사이에서 시달리며 여기서 끼어들면 더 복잡해진다는 것을 알게 된 강신혁은 백인하를 끌고 조용히 가게 밖으로 나왔다.

아주 오랜만에 간판을 바꿔 단, 이나희가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아티팩트 상점.

K&L이라고 멋지게 쓰인 간판이 반짝이며 존재감을 주장하고 있었다.

"시뇩아, 근데 저 옆에 자그맣게 with Rachel이라고 적힌 건 뭐냐.”

"무시해.”

"아, 스승님! 먼저 와계셨네요!”

[엄마!]

“……무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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