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1화. < Extra Chapter 1. VIP 회원정보 열람 - 4 >
이 세상이 원래 그런 세상인 줄은 알았지만 이건 도를 넘었다.
문을 열고 들어선 곳이 하늘 위인 것까지는 납득했지만, 그 아래 펼쳐진 대지에 시선을 주니 마치 구X 지도를 줌으로 땅긴 것처럼 그 모습이 확장되어 눈에 들어오는 것은 정말 어지간한 수라장을 거쳐 온 강신혁으로서도 처음 겪는 일이었다.
"당신들 신이에요?”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하필이면 시간 감각이 모호한 세상이라 순간 같기도 영원 같기도 했던 세계관광이 끝났다.
세상 언던을 문자 그대로 구석구석 살펴본 끝에야 해방된 강신혁이 진이 빠지는 목소리로 묻자, 슈…… 아니 오르키에나(아무렇지도 않게 공개되어 별명인가 했는데 본명이었다.)의 아버지가 껄껄 웃었다.
"역시 아직 능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군. 마음만 먹으면 본인의 세상뿐만 아니라 이곳에서도, 얼마든지 이런 권능을 부릴 수 있지 않은가.”
"그건…… 그럴 지도 모릅니다만.”
참고로 저택 외부에서는 슈의 부모님의 목소리가 그의 두뇌에 직접 들어왔었지만(쉽게 말하면 에코가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오고 나니 평범하게 육성으로 대화가 가능했다.
"제가 초월자가 된 건 어찌 보면 날치기에 가까워서요. 아직 감각은 평범한 필멸자에 가깝습니다.”
"음, 역시 초대하길 잘했어. 계속 그런 감각으로 있다간 다른 존재들에게 썩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도 있으니 말이야.”
"어떤 의미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죠?”
설마 초월자면 초월자답게 필멸자들과 교류하지 말고 짜져있으라는 말이라도 하고 싶은 건가?
강신혁의 표정이 아주 살짝 날카로워졌으나, 이내 평정심을 되찾았다.
저들이 강신혁을 이 단절된 세상에까지 초대한 것은 비단 오르키에나에게 선물해준 팔찌와 같은 것을 원해서만은 아니라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기저에 있는 것은 강신혁에 대한 호의. 그도 이제 초월자가 되었으니 사사로운 감정에 휘둘릴 수는 없다.
"아마 본인도 어느 정도 느끼고 있을 거예요. 초월자가 된 이후로 일반인과의 만남을 자제하고 있지 않나요?”
입을 연 것은 오르키에나의 어머니였다.
강신혁은 그에 수긍하며 대꾸했다.
“예, 사람들이 제 존재에 너무 기대게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다른 초월자에게 충고도 받았고요.”
츠쿠요와 야누스가 바로 그에게 충고를 해준 당사자였다.
츠쿠요는 이제 강신혁이 그곳에 존재하는 것만으로 세상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존재가 되었으니, 발걸음을 무겁게 할 줄 알아야 한다며 진지한 눈으로 말해왔었고.
야누스는 카이랄을 언급하며 그의 움직임이 가져올 반동에 대해 충고했었다.
두 사람의 말에 실로 공감할 수 있었기에 그도 그 말을 받아들여 자택에 은둔하다시피 했던 것이다.
"좋은 지인들을 두었군. 그들의 말이 실로 맞아. 우리가 해주려던 말도 그것이네. 초월자는 존재만으로 무수한 현상을 일으키지. 그렇기에 자신의 능력을 통제하는 것이 중요해. 더구나 자네는 특히 만상과 교류하는 능력에 통달한 것 같기도 하고.”
"이런 식으로 말하고 싶진 않았지만…… 세퀠라의 천적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인과에 간섭이 들어오는 것을 즉각 파악하고 저지할 수도 있을 테니까.”
"음."
강신혁은 내심으로 긍정했다.
하늘 위로 올라 모든 현상을 실시간으로 파악하며, 그것과 교류하는 것을 넘어 지배하고 통제하는 천룡의 힘.
사실 그는 그것을 각성한 이후로 오르키에나의 힘이 어떤 과정을 통해 결실을 맺는지 깨달았으며, 자신이 원하기만 한다면 그녀의 능력이 시작되는 점을 찾아 잘라버릴 수도 있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다만 그런 짓을 할 이유가 없고, 혹여 그녀의 기가 죽을까봐 일부러 말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뭐야, 할아방! 그런 게 가능해!? 그럼 우리가 애 낳으면 완전 무적이겠네!”
그런데 부모의 입을 통해 그 사실을 알게 된 오르키에나의 반응이 그의 예상과는 정반대였다.
"슈, 김칫국 좀 그만 마셔.”
"이제 내 본명도 알잖아? 에나라고 불러도 돼!”
히어로 유니버스의 ID에 집착하는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닌가.
하지만 혹시 본명의 애칭으로 부르는 게 무슨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닐까 찝찝한 마음도 들었다.
둘의 대화를 보며 싱글벙글 웃고 있는 저 두 명의 초월자들을 보니 특히나 그런 생각이 든다!
"그래, 그럼 에나.”
"응!”
“창술이랑 발차기 되게 잘할 것 같은 애칭이네.”
“응?”
"그럼 다시 얘기를 되돌릴까요?”
"아, 네.”
에나의 어머니가 큼, 헛기침을 하고는 말을 이었다.
"아마 그래서겠죠. 초월자가 되었는데도 아직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쓰지 않고 있으니.”
"능력에 영향을 받는 이가 생기니까요.”
“하지만 그래선 오히려 반작용이 생길 거예요. 능력은 자연스럽게 통제되는 것이지 억누르는 것이 아니니까요."
거기엔 강신혁도 공감하는 바가 있었다.
그래서 평상시 시간이 남을 때마다 마이 룸에서 혼자 무구를 만들며 기운을 발산하고 있었지만, 완숙한 초월자들인 저들이 보기에는 역시 그것으로도 부족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자넬 직접 초청한 거야. 단절된 우리 세상에까지 그 영향이 미치는 거물급 신인 초월자가 제대로 힘을 컨트롤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서.”
"방금 이 방에서 뭔가를 느꼈나요? 우리가 없이도 그것을 할 수 있게 되면,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게 되면 그때부턴 능력의 통제가 한결 쉬워질 거예요.”
"하지만 이 세상은……."
"이 세상을 둘러보며 이미 자네도 느꼈겠지? 자네가 어떻게 느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세상은 정확히 말해 ‘모든 힘의 작용이 난반사’ 되는 세상이야. 시간과 공간의 구분이 모호하고, 모든 힘의 작용이 분산되지. 인과의 역전에 대한 대가까지도 말이야.”
과연, 그래서 세퀠라가 이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인가.
최대한 능력의 부작용을 낮춰보려 언던에 정착했고, 그 안에서도 점점 능력을 구사하다 보니 세상 자체가 품은 힘이 커져버린 것이다.
이 세상이 외부와 단절된 것은 필연이다.
혹여나 다른 세상과 연결되어 이 세상을 이루고 있는 법칙의 일부가 영향을 끼치기라도 한다면 그땐 이전 있었던 그 어떤 재앙과도 비교할 수 없는 재앙이 일어나리라.
"그러면 이 저택은.”
“그 생각이 맞아요. 이 세상이 발하는 힘을 막고 있답니다. 이곳에서 자신의 힘에 능숙해질 때까지 시간을 보내고 나면, 그땐 외부에서도 얼마든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을 거예요.”
"크흠, 그때까지는 얼마든지 이곳에서 머무를 시간을 주지. 그 다음엔 우리 부탁도 들어줬으면 좋겠어.”
청산유수처럼 말을 하면서도 그들의 시선은 에나의 손목에 채워진 머리카락 팔찌에 꽂혀있었다.
강신혁이 왜 모르겠는가, 아까부터 그들의 외관과 하는 말이 너무 안 어울려서 웃음이 나려는 것을 꾹 참고 있었으니까.
"좋은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후딱 끝내고 나와서 팔찌 만들어드릴게요.”
"정말인가!? 오, 하지만 그만한 능력을 다루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야. 조급해질 필요는 없어.”
"음, 네, 알겠습니다.”
강신혁은 둘의 말에 반발하지 않았다.
여태껏 강신혁이 자신의 능력을 다뤄온 방식은 전투와 생산이다.
하지만 두 명의 세퀠라가 제시한 것은 그 어느 것도 아니었기에, 자신의 재능에 자신이 있는 강신혁이라 할지라도 섣부르게 단언을 할 수는 없었다.
"그러면 저희는 다른 방에서 기다리죠.”
"엥, 나도 나가야 돼? 나 할아방이랑 놀고 싶은데!”
"얘는, 저런 젊은 청년을 두고 자꾸 할아방이라고 하면 어떻게 하니.”
"양심도 없구나, 오르키에나.”
"아빠…… 오랜만에 대련해.”
강신혁이 자신의 힘에 집중하고 있는 옆에서 부녀간의 분쟁이 발발하고 있었다.
"둘 다 나오기나 해요.”
“넵."
사위가 고요해졌다.
물론 강신혁은 그렇게 되기 전부터 집중하고 있었기에 세 사람이 나가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자신의 능력이 천룡이라고는 하나, 아까와 같이 정말로 하늘 위로 솟아 지상을 관조하는 느낌은 겪어본 바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두 세퀠라가 만들어준 경험은 강신혁이 제 능력의 본질을 새로이 깨닫고 익숙해지는 데 더할 나위 없는 도움이 되었다고 할 수 있으리라.
어쩌면 인과를 생략하는 그들의 능력에 미래예지라도 포함되어 있던 것일까?
‘집중하자.’
이 세상에서는 힘의 반작용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강신혁은 초월자가 된 이후로 쭉 제한하고 있던 자신의 힘을 화끈하게 개방하며, 오르키에나의 부친이 그러했던 것처럼 자신의 정신을 하늘 위로 올려 보냈다.
중요한 것은 상상력과 확신.
바로 방금 겪었던 일이었기에 생생하게 그 감각을 떠올릴 수 있었다.
'……될 것 같다. 오르키에나의 아버지가 말했던 것보다 빠르게…… 아니, 어쩌면 밖에선 이미 많은 시간이 흘렀을 수도 있지만.’
시야가 빠르게 점멸하며 지상에서부터 허공으로, 곧 지상을 내려다볼 수 있을 만큼 높은 곳에까지 이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의 영력이 외부의 모든 기운과 공명하며 그것들로부터 정보를 받아들여 분석하고 그에게로 전달한다.
거기에 오색의 천룡기가 섞여, 자신과 접하고 있는 세상의 모든 것을 자유자재로 변화시킬 수 있으리라는 강렬한 확신이 그를 찾아왔다.
'내 힘이지만…… 정말 폭력적인 힘이야.’
오르키에나의 아버지가 보여주었던 것과는 다르다.
자신이 직접 기운을 조종해, 하늘 위로 올라 그 아래를 관조하는 지금.
단순히 세상을 구석구석 살피는 것만이 아니라 그 모두를 완벽히 파악하고 조종할 수 있었다.
‘전에도 힘을 한껏 운용한 적은 있지만…… 그런가. 괜히 천룡이 아니야. 시점이 달라지면 힘의 크기도, 가능성도, 모든 것이 달라져.’
히어로 유니버스를 만들어낼 때도 이와 비슷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땐 세상의 기운을 틀기 위해 신은아의 조력을 받아야만 했고, 히어로 유니버스가 영원히 구동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비단 그럴 필요도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니,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그곳에는 신은아가 있어야만 했다.
지금의 자신이 기운을 다루는 방식으로 히어로 유니버스를 완성시켰더라면 그는 지금 이상으로 히어로 유니버스에 간섭할 수 있었을 테니까.
'그리고 역으로 말하자면, 지금의 히어로 유니버스가 있기에 내 힘을 견제할 수 있겠지.’
역시 당시 자신의 행동은 옳았다.
어쩌면 스스로에게 이만한 잠재력이 있음을 깨닫고 무의식적으로 외부인을 개입시켜 히어로 유니버스를 완성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천룡이 하늘에서 또아리를 틀고 지상을 관조했다.
거대한 영력과 천룡기의 조화가 이루어낸 허상에는 실제로 강신혁의 정신과 의지가 담겨, 세상 언던에 살고 있는 모든 존재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일찍이 세상의 지배자인 오르키에나의 부모로부터 손님의 방문을 전해 들었던 다른 세퀠라들도 강신혁이 발한 힘의 크기에 기함할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가 찾아오기 전에 다소 무식한 방법으로 세상을 찾아왔던 손님, 로키도.
"용......!"
위대한 용의 힘을 잃고 영락한 자신이 아닌.
진정으로 만물과 교류하며 관조하는 용의 힘을 느낀 로키가 고개를 쳐들고 입을 떡 벌렸다.
"느낌은 처음부터 있었는데…… 아씨, 이렇게 되면 금기라도 범해야 돼?”
정말로 하기 싫었던 일이지만 용의 대를 잇기 위해서라면……!
[아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니까 그런 상상은 하지 말고.]
"헛!?"
두뇌를 울리는 듯한 강신혁의 목소리에 로키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하늘 위, 거대한 천룡이 그를 똑바로 주시하고 있었다.
[다른 방식으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으니까 변신하지 말고 기다려봐. 알겠어?]
"들켰냐? 야, 그래도 내가 맘먹고 변신하면.”
[쓰읍.]
“어, 미안.”
그렇게 강신혁은 자신의 특성을 완벽히 파악하고 지배하는 데에 성공했다.
언던에 찾아와 고작 하루 만에 이뤄낸 쾌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