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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0화. < Extra Chapter 1. VIP 회원정보 열람 - 3 >

특수종족 세퀠라가 살고 있는(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곳도 고향은 아니라는 모양이지만) 세상, 언던의 땅은 땅이 아니었고, 하늘도 하늘은 아니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면 세계를 이루는 법칙이 강신혁이 알고 있는 그 어떤 세상과도 다르다는 이야기였다.

만약 강신혁이 초월자가 되지 않았더라면 그 세상에 진입하는 순간 자아를 잃고 분해되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미 그의 권능은 세상의 섭리를 비틀 수도 있는 수준이었기에, 어렵지 않게 적응하고 버틸 수 있었다.

위아래와 앞뒤를 구분할 수 없는 세상에서는 우선 타자와 분리된 자신을 확고히 인식하고, 그 다음 스스로의 영역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비로소 일반적인 행동이 가능해졌다.

"설마 이렇게까지 다른 세상과 차이가 날 줄은 몰랐는데.”

"할아방, 내 얼굴 제대로 보여?”

"보여.”

“와, 이렇게 감을 빨리 잡는 외부인은 처음이야. 초월자한테도 쉬운 일이 아닌데.”

아마 멀리서 보면 이 세상은 거대한 원판으로, 그 안의 모든 것은 사람과 물건을 구분하지 않고 반짝이는 작은 점으로 보일 것이다.

실제로 이 안에서 자기자신을 확고히 다지지 못하는 사람은 에너지의 총량으로밖에 사물을 판단하지 못하게 된다.

아니, 강신혁도 자신의 기준에 맞추어 모든 것을 인식하고 있을 뿐, 실제로 그 모습 그대로이리라고는 장담할 수 없었다.

이곳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에너지, 그리고 인과의 흐름이다.

강신혁은 그 두 가지에 모두 정통했기에 이렇게 빨리 평정을 되찾을 수 있었던 것.

"그러면 할아방, 내 손 잡고 이리로……."

"어라, 로키?”

"여, 모루 어서 오고.”

그런데 슈와 손에 손을 맞잡고 한 발 내딛으려던 순간 강신혁은 익숙한 얼굴을 마주하고 걸음을 멈추고 말았으니, 놀랍게도 그의 눈앞에 로키가 나타난 것이다!

자기 모습을 자유자재로 변환할 수 있는 그였으나 지금은 20대 중후반 즈음의 빨간 머리에 검은 눈의 남성의 모습을 취하고 있었는데, 이전 차원 퀘스트를 하면서 만났던 모습 그대로였다.

"어라, 진짜네?”

"로키, 너는 왜 여깄냐?”

"나야 원래 이곳저곳 떠돌면서 사는 업이잖아.”

"응?"

서로 이전 충돌했던 일도 있어 조금 덤덤한 투로 인사를 주고받는 와중에 문득 슈가 눈을 반짝이며 끼어들었다.

"아아, 아무래도 우리 부모님한테 당한 것 같은데. 맞지?”

“쩝.”

그녀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로키의 목에 채워진 검은 금속질의 초커였다.

로키는 혀를 차면서도 슈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너무 쑤시고 다닌 탓에.”

"그런데 어떻게 들어왔어? 문이 열린 건 지금인데.”

그건 강신혁도 궁금했다.

듣자하니 언던으로 향하는 문은 아무 때나 열리는 게 아니라고 들었는데.

하지만 로키가 어깨를 늘어트린 채 우쭐대는 실로 신기한 재주를 보이며 슈의 말을 부정했다.

"그런 게이트를 통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닫힌 세상에 들어오는 길은 있지. 이래봬도 내가 요르문간드의 두 기둥 중 하나였던 몸이라고. 물론 작정하고 이곳을 찾아내 온 건 아니지만 랜덤게임에서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하나.”

"지금 꼴을 보면 결과적으로 운이 나빴던 것 아니냐?”

"뭐어 그렇지. 이 지랄을 해놓고도 결국 원하는 건 못 얻었으니까……."

강신혁의 필요 이상으로 냉철한 말에 로키가 어울리지도 않게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러고 보면 이전 로키와 함께 했던 차원 퀘스트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던가.

그는 뭔가를 찾아 헤매고 있었지만 당시 해당 차원에서 일어났던 난리통 탓에 원하던 바를 이루지 못하고, 결국은 차원 퀘스트도 실패하고 강신혁과 함께 퇴각하는 결과를 낳았다.

“……뭐, 어쨌든 가자고.”

설마하니 로키가 가이아의 부하로 튀어나와 자신을 막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때, 짧게나마 함께했던 그 여행을 떠올리던 강신혁을 로키 본인이 툭툭 두들겼다.

어느덧 그의 한 손에 생겨난 끝이 날카로운 지팡이가 눈앞에 작게 난 길을 가리켰다.

"가자니…… 아,혹시 부모님이 시켜서 우릴 기다리고 있던 거였어?”

“정답.”

로키가 강신혁은 알아듣지도 못할 언어로 이루어진 콧노래를 부르며 길을 인도했다.

강신혁은 길이 점차로 변화하는 것을 인지했다.

사람 한 명 간신히 걸을 수 있는 좁은 길에서 점차로 폭이 넓은 대로로.

마력과도 영력과도 다른, 슈가 다루는 능력을 꼭 닮은 기운이 그들이 길을 나아갈수록 농밀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아빠랑 엄마가 같이 있나 봐.”

"질리는 기운이네. 왜 밖에 나오질 않는 건지 알 것 같아.”

"우리는 원래부터 가이아의 영향이 닿지 않는 영역에서 살고 있었어, 할아방. 이젠 그걸 납득할 수 있겠지?”

그러고 보면 슈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가이아 시스템을 신뢰하고 있지 않았던가.

그야 이만한 힘을 지닌 종족이라면 가이아 시스템의 본 목적을 충분히 알고 있었을 터, 그것을 믿지 않는 것도 당연한 일이리라.

"점점 기운이 짙어지네.”

"적극적으로 환영해주려나 봐, 할아방. 한 20분만 더 걸으면 되겠다.”

거리와 시간이 별 의미가 없는 이 세상에서, 지금 그들이 걷고 있는 것은 단지 한 개인이 다른 개인의 영역에 발을 들이기 위해 하는 사전작업에 불과하다.

문에 노크를 하고, 응답이 돌아오길 기다리는 행위라고 봐도 될 것이다.

다만 슈의 말마따나 그것이 일찍 끝나는 일은 아니기에, 강신혁은 그 사이 줄곧 마음에 걸렸던 일을 해치우기로 했다.

“로키.”

"엉?”

바로 로키와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었다.

"대체 넌 뭘 찾고 있는 거냐?”

"......."

가이아의 수하로 나타난 로키와 적대하게 되면서, 강신혁은 로키의 여태까지의 파격적인 움직임- 방랑이 단지 제 임무에 충실한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가 가이아의 뜻에 따라 움직이게 된 것은 그의 본의가 아니었으며, 반전하지 않았을 때에는 대부분 순수하게 자신의 목적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것은 야누스와 마찬가지로, 가이아에 대한 적대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렇다고 하기엔 가이아가 죽고 전 우주가 나름의 질서를 되찾은 지금에 이르러서까지 그가 여러 세상을 헤매고 다니는 것이 설명이 되지 않았다.

특히 세퀠라의 세상 언던과 같은 인외마경에까지 발을 들였다는 것은,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사는 것처럼 보이던 로키에게 실은 뚜렷한 의중이 있음을 알려주었다.

"흠......."

쉽게 들을 수 있는 얘기라고는 기대도 안 했다.

그랬더라면 저번 차원 퀘스트에서 이미 얘기를 해줬겠지.

다만 로키는 강신혁에게 강하게 나올 수 없는 입장이었기에, 슈의 부모님이 기다리는 곳까지 남은 걸음수를 헤아려보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용이라는 얘기는 헤어지기 전에 했었지?”

"야누스가 했었지.”

"야누스…… 사실 그 녀석하고도 그렇게 하하호호 웃으며 지낼 사이는 아니었어. 야누스는 나 이외의 모든 용을 참살한 도살자였고, 나는 마지막으로 남은 용이었으니까.”

"호."

"흐응."

슈도 흥미가 생긴 것인지 강신혁의 한쪽 팔에 매달리며 귀를 쫑긋 세웠다.

로키의 성격 같았으면 슈를 내동댕이치고 강신혁만 데리고 얘기를 했겠지만 지금 그는 슈를 강신혁의 여자라고 인식하고 있었기에 체념하고 얘기를 계속했다.

"나와 야누스가 가이아에게 당해 카이랄을 심긴 것도 사실 서로 죽어라 치고받다가 힘이 빠진 틈을 가이아가 기습했기 때문이야.”

"잘도 그런 비겁한 짓을 했네, 그 자식.”

"맞아. 첫인상이 워낙 개같았던데다 존재감도 매번 바뀌는 놈이라서, 사실 처음엔 점잖은 헤일로 영감의 정체가 가이아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

결전을 벌였던 당시엔 모두 알고 있는 것으로 보였는데, 이전엔 마냥 그렇지만도 않았다는 얘긴가.

"그러면 로키, 야누스는 어째서 용을 베려고 한 거지? 혹시 미친년이라서?”

"칼리아…… 야누스가 미친년인 건 사실이지만, 우리 종족에게도 죄는 있었지.”

방금 야누스의 본명이라고 생각되는 단어가 슬쩍 언급된 것 같은데, 강신혁은 우선 그 단어를 기억해두기로 했다.

"용은 고고하고 완전한 존재거든. 다만 그래서 너무 나댔지. 정확히 말하면 이전에 가이아가 하려던 짓을 조금 작은 규모로 실현시키려고 했다고 할까.”

"모든 세상의 지배?”

"비슷해. 그런데 하필 재수 없게 야누스와 충돌하게 됐고, 야누스는…… 아마도 순수 인간종 출신 초월자 중에 가장 강했으니까.”

야누스는 많은 용을 베고 자신의 격을 드높였다.

한편 로키는 그 많은 용의 혼의 힘을 이어받아, 야누스에게 대적할 힘을 얻었다.

그렇게 몇 개인가의 세상을 멸망시키며 충돌하던 둘을, 어부지리로 가이아가 기습해 제압한 것이다.

‘자신을 피해 도망쳐 인간의 모습으로 변했다던 야누스의 얘기와는 조금 다르긴 한데…… 뭐, 둘 다 자기한테 유리한 방향으로 기억을 각색했겠지.’

본래 기억이란 그런 법이다.

자신에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각색되어, 어느덧 본인도 철석같이 그것을 믿게 되는 것.

기록이 없는 한 모든 기억은 돌아볼수록 미화되는 과장된 추억에 불과하다.

그러니 실제로는 로키가 야누스의 칼을 피하기 위해 용의 몸을 버리고 인간의 모습을 취하게 된 것도 사실이겠지만, 로키의 힘이 야누스를 위협할 만큼 거대했던 것도 사실이리라.

그리고 가이아가 두 사람 모두를 절묘한 타이밍에 기습해 제압했다는 얘기는 두 사람에게 유리한 기억도 아니니 의심할 여지없이 사실일 테고.

"그래서? 네 목적과 어떻게 관계되는 거지?”

"나는 말이지, 모루……. 그 후로 새로 태어난 용을 찾고 있어.”

“하.”

이것 참 뻔하면서도 가장 납득이 가는 목적이 아닐 수 없다.

용종으로 분류되는 몬스터는 지금도 많지만, 아마도 그가 말하는 용은 그런 짐승을 말하는 것이 아니리라.

"없을 리는 없다고 생각했어. 그들을 찾아 돌보고, 엇나가지 않게 이끄는 것이 내게 남은 사명이라고 생각해.”

"그래서 여기까지 찾아온 거냐?”

"여태껏 무수한 세상을 찾아봐도 없었으니, 이젠 단절된 세상들을 뒤져보는 수밖에 없지 않겠어? 그리고 이 사람들의 능력이나 세상의 특성을 듣자하니……."

"아, 도착했다.”

그 순간 모두의 걸음이 멈추었다.

어느덧 그들의 눈앞에 거대한 건물이 나타나, 문이 열리고 있었다.

강신혁은 그 안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두 사람의 존재를, 그들이 지닌 어마어마한 능력을 순식간에 파악하고는 감탄했다.

물론 그들이 이 세상에 떨어져 이곳까지 걸어오면서도 충분히 느끼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마주하니 새삼 그들이 드높은 격의 초월자들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다만 그들의 겉모습이 슈보다도 어려 보인다는 점이 조금 웃겼다.

[직접 보니 더 놀랍네.]

그런데 상대의 격에 놀라워하고 있는 것은 저쪽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뒤틀린 인과, 그렇게 쌓인 업을 거슬러 보아도 결코 길지 않은 세월이거늘 그 사이 쌓은 격이 터무니가 없는 수준이구나. 오르키에나, 이 정도라면 우리한테 검사를 받을 필요도 없이 합격이란다.]

"내가 그럴 거라고 말했잖아!”

그 말만 듣고 무슨 검사며 무슨 합격인지 바로 파악하고 만 강신혁은 발길을 돌리고 싶어졌다.

[기다려보시게, 젊은 초월자. 일을 그렇게 급하게 생각하고 거부감을 느낄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자네나 우리의 딸 오르키에나나 앞으로 무한한 세월을 살 터. 지금은 평행선처럼 보이는 두 사람의 운명도 언젠가는 교차할 것이네.]

슈와 조금 닮았지만 근본적으로는 완전히 다른 존재, 초월의 격을 지닌 남자가 강신혁에게로 한 발 가까이 다가오며 말했다.

하지만 그의 말에 따르자면 강신혁은 그가 알고 있는 모든 여성과 맺어져도 이상할 게 없다는 얘기가 된다. 역시 돌아가고 싶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 드러난 거부감을 읽어낸 것인지 여자애…… 아니, 슈의 어머니가 잽싸게 말했다.

[마음이 너무 급한 건 당신이에요. 모루라고 했지요? 우선 들어오세요. 우리의 세상을 안내할 테니. 마침 부탁을 드릴 것도 있고.]

집 안으로 들여보내며 세상을 안내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대체 무슨 심보란 말인가.

아니, 조금은 알 것도 같았지만 역시 이 세상은 보통 복잡한 게 아니다.

“……처음부터 그러려고 왔으니까요. 그럼 들어가죠.”

"히, 할아방……!”

"네가 생각하는 그건 아니고. 알겠냐?”

“잠깐.”

강신혁이 한숨을 쉬면서도 어쩔 수 없이 슈와 함께 한 발짝 앞으로 내딛는데, 그들을 이곳까지 안내한 로키가 그보다 먼저 앞으로 나섰다.

"두 사람을 안내했으니 나도 용무를 봐야겠어. 용을 만날 방법을 알려줘. 아니면…… 용이 있던 시절로 나를 돌려보내줄 수는 없겠어?”

[흠.]

그러고 보니 있었지, 하는 표정으로 로키를 돌아보는 슈의 부모님.

그 가운데 남자애, 아니 슈의 아버지가 강신혁을 힐끗하며 말했다.

[전에도 말했지만 그 방법은 우리에게는 없네. 눈앞에 훨씬 선명한 가능성을 놔두고 왜 우리한테 매달리는 것인지 알 수가 없군.]

"......응?"

"응?"

두 사람의 멍청한 소리가 교차한 직후, 로키가 강신혁을 향해 잽싸게 팔을 뻗었으나.

[하지만 그것에 대해서는 우리의 용무가 끝난 다음에 해결하시게.]

"아니, 씨!”

강신혁을 비롯한 일행이 저택 안으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지고, 로키의 눈앞에서 문이 닫히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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