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6화. < Chapter 62. 인공의 신 - 5 >
- 초인사회의 이슈를 살펴보는 시간입니다. 오늘은 깜짝 놀랄 소식이 있다고 들었는데요.
- 네, 각성자들은 이미 알고 있을 겁니다. 히어로 유니버스가 제공하는 인터페이스 시스템이 비로소 재가동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 어머나! 그동안 그것 때문에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었는데요!
- 네. 얼마 전 히어로 유니버스의 중급회원 신분을 획득한 미국의 하이랭커 주노 발렌타인이 정보 게시판에서 확인한 공지에 따르면, 지구 외에 다른 수많은 세상에서도 그동안 인터페이스 시스템이 먹통이 되어 스테이터스와 아이템, 게이트 정보열람이 불가능한 상태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구가 정상화되는 시각에 맞추어 다른 세상도 정상화가 된 것이지요.
- 그렇다면 히어로 유니버스에 문제가 생겼다는 얘기인가요?
- 그렇지는 않습니다. 왜 인터넷 서버도 대대적으로 점검을 하게 되면 사이트를 이용할 수 없게 되는 일이 있지 않습니까. 이번에 있었던 일 또한 그와 같은 범주에 속할 것으로 봅니다. 수천 년에 한 번인 시스템 점검 기간에 재수 없게 걸렸던 것이죠.
- 그러면 앞으로는 수천 년 정도는 이런 사태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네요. 하지만 문제가 아예 없는 것과 한 번이라도 일어난 건 다르잖아요? 거기 우려를 표하는 이들은 없나요?
- 히어로 유니버스는 각성자들에게 있어서는 신과 같은 존재입니다. 그것을 의심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죠. 무엇보다…….
- 무엇보다?
- 히어로 유니버스는 대체재가 없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다시는 시스템에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는 것. 그리고.
- 그리고? 뭐죠?
- 바로 회원등급을 높여 시스템의 비밀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츠쿠요는 코웃음을 치며 TV를 꼈다.
불과 3시간 전까지만 해도 히어로 유니버스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던 인간들이, 가이아 시스템은 어디로 갔는지 새카맣게 잊어버리고 그 대신 히어로 유니버스를 추앙하고 있는 꼴을 보고 있으니 우습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만큼 모루가 대단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겠죠.”
“이제 여기 일에 더 안 나서도 되겠지?"
슈가 뚱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소파에 등을 기댔다.
오늘만 해도 새벽같이 나가 경기도에 발생한 S급 게이트 하나를 발생과 동시에 처리하고 온 두 사람이다.
히어로 유니버스에서도 가장 강한 축에 드는 초월자들이 여태 이런 잡일이나 하고 있었다니 다른 최상급 회원들이 들으면 코웃음을 칠 것이다.
"분명 모루도 크게 칭찬해줄 거랍니다. 모루도 양심이 있으면 응당 그래야지요.”
"헤헤, 예쁜 아이 만들자고 해야지.”
"혼자서 아이를 만들겠다니 역시 대단한 종족이네요. 과정을 뛰어넘어 결과만을 내놓는다니 그야 가능할 듯도 하지만.”
“같이! 만들 거거든! 할아방이랑! 같이!”
두 사람의 서로에 대한 견제는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만약 합심해서 강신혁을 덮쳤으면 거사를 치렀어도 벌써 치렀을 것을, 제아무리 초월자라도 감정과 관련된 일에는 근시안적으로 변하고 마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나저나 재밌네요. 히어로 유니버스에 새로운 회원체계가 생기다니.”
"난 일반 회원들이 최상급 회원이 된 게 제일 웃기던데.”
"그야 기존의 히어로 유니버스에 소속되어 있던 이들은 어떤 식으로든 '초월’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던 자들이니까요.”
개편된 히어로 유니버스의 인터페이스를 띄워 여러 가지 게시판을 확인해보던 츠쿠요가 회원계급 별로 나뉜 게시판 목록을 보며 피식 웃었다.
“입문(入門)과 초급(初級)을 거쳐 겨우 하급(下級). 지구인들이 중급(中級)만 되어도 난리법석을 피우는 것이 납득이 가는 체계네요.”
"하지만 이게 옳은 길일까? 히어로 유니버스가 모든 초인을 품고, 가이아를 대신해 게이트까지 관리하는 게……."
"히어로 유니버스는 초인만의 은밀한 전유물로 남아서는 안 됩니다. 위에는 위가 있다는 걸 보여줘야, 악한 자들도 헛짓거리를 덜 하게 되겠죠. 더구나 계급간의 구분도 엄격하잖아요?”
"으응, 그야 지구 초인의 0.1% 안에 든다는 자가 간신히 중급에 걸친 것을 보면 그렇긴 한데……."
슈는 막대한 권능을 품은 히어로 유니버스가 만인에게 공표된 것을 조금 불안해하는 눈치였으나 츠쿠요는 그런 부분에 있어선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아닌 완성된 초월자 모루가 만들어낸 시스템이 아닌가.
그럼에도 문제가 생긴다면 그땐 이 우주가 멸망해야 할 운명이라는 것이니 담담히 받아들이면 될 일이다.
"야!"
그때 문이 벌컥 열리더니 상당히 무거워진 배를 끌어안고 나타난 클레어가 외쳤다.
"일도 끝났는데 왜 신혁이가 안 돌아와?”
"그건 제가 묻고 싶습니다만. 당신은 원한다면 언제든 모루와 소통할 수 있는 것 아니었나요? ……얍삽하게도.”
"아니, 그게 비타가 먼저 돌아와 버렸어.”
그 말을 들은 츠쿠요가 새삼 확인하니, 클레어의 등 뒤로 검은 머리에 황금색 눈동자의 여자가 서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츠쿠요는 내심 놀랐는데 그건 전에 봤을 때와는 달리 그녀…… 비타가 깜짝 놀랄 만큼 성장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 그, 아빠가 많이 도와줘서.”
그녀의 시선에 담긴 놀람을 간파한 비타가 수줍어하며 대꾸했다.
하지만 그 말과 함께 쓸데없이 몸을 배배 꼬는 것이 츠쿠요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뭘 어떻게 도와줬기에?
“……저거 죽일까?”
그 말을 한 것은 슈였다.
츠쿠요는 한숨을 내쉬며 슈의 마빡을 때렸다.
"아야!”
"여자라면 자신의 매력으로 승부해야지, 남자를 빼앗겼다고 섣불리 무력을 쓰는 건 하수에요.”
"난 당신의 생각을 정말 이해할 수가 없어.”
"그러면 지금 모루는 은아와 단둘이 있다는 얘긴가요?”
"아마도.”
클레어가 입술을 삐죽이며 크게 부풀어 오른 자신의 복부를 매만졌다.
“은아도 신혁이랑 단둘이 보낼 시간을 원했던 거겠지……. 괘씸하지만 한 번만 봐줄까.”
“단둘이 있는 건가, 부럽다아.”
"그보다도.”
슈가 손톱을 잘근잘근 깨무는 것을 무시하고 클레어가 재차 입을 열어 말했다.
"그래서 결국 둘이 어딜 간 건지 알 수가 없어서.”
“VIP 회원 게시판에도 별 얘기는 없어요. 모루가 당신에게는 얘기하지 않았나요?”
"비타를 먼저 보내면서 금방 돌아갈 거라고만……."
아이의 해산이 임박한 시점.
안 그래도 클레어가 혼자 애를 낳게 놔둘 수는 없다고 늘 말하던 강신혁이었으니 어디 다른 데서 엉뚱한 일을 하고 있지는 않을 터였다.
"아. "
그때였다.
VIP 회원게시판을 뒤지던 슈가 뭔가를 발견하고 감탄사를 냈다.
"로키가.”
"로키?”
이번 사태에서 가이아 편을 들었지만 카이랄이 빠져나오자마자 우디르도 울고 갈 빠르기의 태세전환으로 간신히 살아남은 남자의 ID 였다.
"로키가 원래 고향성이 없잖아.”
"그랬죠. 야누스보다 탁월한 공간이동 능력으로 여러 차원을 떠돌아다닌다고 들었어요.”
"뭐야 그게.”
"차원방랑자. 고향세계를 잃고 여러 차원을 돌아다니는 이들을 차원방랑자라고도 하는데, 로키 외에도 몇몇이 더 있어요. 단지 대부분 차원이동의 기회를 쉽게 얻지 못해 하나의 차원에서 오래 머무르곤 하는데 로키는 그렇지 않을 뿐이죠.”
“덤으로 로키의 세상을 박살낸 건 야누스야.”
“아…… 그래서 그 로키가 왜?”
“할아방이랑 만났대.”
“뭐!?"
그 즉시 츠쿠요가 VIP 회원게시판을 열고, 클레어는 슈에게 달려들었다.
슈가 그녀의 다급한 모습에 어쩔 수 없이 화면을 전체공개로 전환하자, 클레어는 로키가 작성한 메시지를 뚫어져라 확인했다.
[로키 - 모루 생존 확인 겸 본인 생존 신고ㅎㅎ 다들 잘 지내지?]
[아스칼딘 - 살아있었나, 로키?]
[호루스 - 그걸 자네가 할 말인가? 둘 다 우리가 살려준 거지.]
[아스칼딘 - 내게도 확고한 신념이 있었단 말이다!]
[슈퍼울트라은하계주먹1짱 - 그래서 할아방 어디야!?]
[츠쿠요 - 모루 얘기, 빨리 하세요.]
[로키 - 이야 히어로 유니버스 왕창 바뀌었다 싶더니 모루가 이번에 대대적으로 손을 봤더라고! 관리자는 이전보다 더 바빠졌는지 메시지 빈도가 줄어들긴 했는데.]
[츠쿠요 - 로키…… 얘기하지 않으면 제가 직접 당신을 죽이러 가겠습니다.]
메시지에도 살의가 담길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는지, 다음 순간 로키가 그 치고는 굉장히 정중하고도 빠르게 메시지를 작성한 것이 보였다.
[로키 - 아니 그게 있잖아, 내가 랜덤이동을 하다 보면 원래 멸망한 세상에도 자주 이동하게 되고 그러거든? 가끔은 요르문간드 세력이 지나치게 세서 내가 직접 정리를 해야 할 만한 세상에도 가고. 그래서 이래봬도 차원 퀘스트 수행률 1위라는 거 아냐.]
[츠쿠요 - 로키.]
[로키 - 아무래도 무구 회수를 하고 다니는 것 같아. 은아 데리고.]
[슈퍼울트라은하계주먹1짱 - 아아…… 그러고 보면, 무구를 다 회수한 건 아니었으니까.]
[미양 - 혹시 앞으론 무구 안 만들려고 그러는 거 아냐? 히어로 유니버스를 완성시켜놓았으니까, 이젠 무구를 만들어서 추가조정을 할 필요도 없다, 뭐 그런 느낌으로.]
[호루스 - 그건 안 돼. 난 아직 그의 진정한 실력이 담긴 무구를 얻지 못했다고.]
[로키 - 아ㅋㅋ 그래서 너한테 있는 모루제 무구 등급 최대 몇?]
[미양 - 저 새끼 아직 정신 덜 차렸네.]
[야누스 - 모루 할배가 나중에 돌아오게 되면 신살검의 새로운 코어에 대해 얘기하자고 했었지……. 지금 뽑으러 갈까?]
[호루스 - 뭘?]
[야누스 - 로키 심장.]
[로키 - 하, 몇 년씩이나 같이 전투를 치른 전우한테 못 하는 말이 없네.]
[슈퍼울트라은하계주먹1짱 - 난 할아방이 망치를 손에서 놓는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는데.]
[미양 - 하지만 모루가 만든 무구가 지나치게 큰 힘을 품고 있는 건 사실이니까. 히어로 유니버스의 완성으로 모든 세계가 정상화된 지금 굳이 나서서 본인이 뿌렸던 씨앗을 모두 거두고 있는 걸 보면……. 으으, 그래도 뭔가 싫은데.]
[호루스 - 모루…….]
[관리자 - 괜한 걱정을 하고 있군요.]
그 순간 게시판이 얼어붙었다.
[미양 - !?]
[로키 - ?????]
[야누스 - 뭐냐? 누가 관리자라는 이름으로 가입했…… 아닌데, 여기 VIP 회원게시판인데?]
[호루스 - 설마…… 진짜 관리자?]
[관리자 - 그렇습니다. 히어로 유니버스가 개편되며 관리자에게도 게시판에서의 공지 및 채팅 기능이 추가되었습니다.]
[로키 - 하, 기껏 VIP들만 이용할 수 있는 게시판이 생겼다고 좋아했는데…….]
[관리자 - 어차피 히어로 유니버스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관리자의 감독 하에 놓여있습니다. 거울 파편 하나 박혔다고 정신 못 차리고 나대던 도마뱀답게 나사가 빠져있군요.]
[로키 - 야, 누가 관리자 좀 쫓아내봐. 제발.]
관리자의 등장에 당혹스러워하는 VIP 회원들.
하지만 이럴 때도 굳건한 이가 있었으니 바로 태양을 씹어 부수는 은늑대, 미랑이었다.
[미랑 - 모루가 은거하려는 것이 아닌가, 나도 궁금했었는데. 관리자, 그대는 모루의 의중을 알고 있는 것인가?]
[관리자 - 물론입니다. 아빠는 그저 기존의 실패작들을 회수하러 나섰을 뿐입니다.]
[미양 - 아빠!?]
[관리자 - 그 반응은 이미 다른 이에게서 봤습니다. 아빠는 실패작을 모조리 회수한 후에는 그것들을 녹여 다시 새로운 물건을 만드실 생각이시니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호루스 - 다행이군…….]
[관리자 - 그리고 히어로 유니버스의 회원 등급에 맞춰 판매할 생각이십니다.]
[미랑 - VIP가 되길 정말 잘했다고 느끼는 순간이야. ]
[관리자 - 아, 지구로 돌아오신 모양입니다.]
[미양 - 관리자, 혹시 지구로 향하는 차원 퀘스트를 내줄 수 있어?]
[관리자 - 안 됩니다, 불요정.]
[미양 - 불요정!?]
[야누스 - 관리자 진짜 질투심 쩐다니까.]
거기까지 본 클레어가 문득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녀가 다급히 문을 박차고 나가려는데, 그 전에 문을 열고 들어서는 이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키가 조금 큰 자신의 연인이 그곳에 있었다.
“클레어!”
“신혁아!”
“나도 있어.”
“……은아, 너.”
기분 탓인가 괜히 배를 강조하는 듯한 자세의 친구와 함께.
전 차원 최고의 대장장이가 위대한 업을 완수하고 돌아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