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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인하자마자 VIP-334화 (334/345)

334화. < Chapter 62. 인공의 신 - 3 >

- 가이아 시스템의 갑작스런 소멸 이후 세 달이 흘렀습니다. 이제 인류는 게이트의 등급을 시스템의 도움 없이 판정해야 하며, 능력의 성장을 눈으로 확인할 수도 없습니다.

- 폐해는 그뿐만이 아닙니다. 생산물의 정보를 확인할 수도 없으며, 생산작업에서 시스템의 어시스턴트를 받을 수도 없습니다.

- 전 세계가 공황에 빠져든 가운데, 시스템의 소멸 이전보다 더욱 굉장한 활약을 하며 인류를 지탱하는 길드가 있습니다. 바로 한국의 [신영]입니다.

- 그럼 신영의 전투조가 전투 중인 침식형 게이트의 송출 영상을 화면으로 함께 보시겠습니다.

TV에서 흘러나오는 게이트 내부 영상.

전투를 벌이고 있는 것은 오혜나를 주축으로 하는 신영의 초인들이다.

교사(말만 교사지 이젠 사실상 일반 길드원인 학생들을 지휘하는 간부급 길드원 같은 느낌이었다.)와 학생을 가리지 않고 전투능력이 뛰어난 이들만 뽑아 정예조를 편성한 것인데, 그 안에서 오혜나가 핵심이 되어 있다는 것이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클레어는 뚱한 눈으로 그것을 보고 있다 꺼버렸다.

"누님, 그러면 아직도 시뇩이는……?”

"응, 아마도?”

건너편에 앉은 백인하가 던진 질문에 클레어가 어깨를 으쓱이며 대꾸했다.

임신도 넉 달차에 접어들어, 아주 조금이지만 클레어의 배도 부풀기 시작했다.

백인하는 시큰둥한 클레어의 태도에 어이없어하며 되물었다.

"아니, 근데 누님은 애아빠가 언제 돌아올지도 모른다는데 왜 그렇게 태평해요?”

"그야 내 옆에 없는 건 짜증나긴 한데.”

강신혁의 부재 중, 백인하는 그를 대신해 신영을 관리하고 있었다.

애초에 길드를 관리하는 것은 백인하의 적성에 맞는 일이기도 했고, 히어로 유니버스 회원들을 제외하면 그가 신영에서 가장 강하기도 했으니 대표라는 입장에는 그 이상 적절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백인하는 지금의 신영이 차지하고 있는 입지가 강신혁 없이는 굉장히 불안정한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았고, 그래서 오늘도 강신혁과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이 있다는 클레어를 찾아와 그의 소식을 묻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할 건 다 하고 있으니까 괜찮아. 오히려 색다른 느낌이라 좋을지도 몰라.”

“……네?”

"애초에 비타는 그쪽 용도도 생각하고…… 아, 모르겠으면 됐어.”

"그, 그러면 누님, 다른 일인데요.”

자세히 캐물어선 안 된다고 직감한 백인하가 다급히 화제를 전환했다.

사실 이쪽이야말로 오늘의 본론이기도 했다.

"그 두 분이 초인들에게 협조할 수 있도록 설득해주실 수는 없을까요? 아무래도 이대로는 전 세계적으로 피해가 심각해질 거예요.”

"두 분? 설마 츠쿠요랑 슈 말하는 거야?”

예상치 못했던 부탁에 클레어의 두 눈이 크게 뜨였다.

세 달 전, 강신혁이 만들어낸 게이트를 빠져나온 츠쿠요와 슈는 본래 자신들이 머무르던 세상이 아닌 지구로 돌아오게 되었다.

원한다면 본인이 있던 세상으로 돌아갈 능력이 있는 두 사람이었으나, 어차피 그녀들의 세상은 이제와 가이아 시스템이 사라지는 정도로 영향을 받을 만한 저차원적인 곳이 아니었기에 강신혁이 돌아올 지구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기로 했다.

“네, 그 색기 넘치는 누님이랑 귀여운 꼬맹이. 둘 다 엄청 세잖아요.”

"흐음.”

물론 클레어는 두 사람이 내린 결정에 무척 심기가 불편했으나 그렇다고 자신이 무력으로 둘을 쫓아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강신혁이 ‘선택’한 여자로서 그 둘에게 무엇 하나 꿀릴 것이 없었기에 당당히 대하기로 했다.

그럼 신은아와 비타는 뭐냐고? 신은아는 이미 자신의 가족이나 다름없는 애고, 비타는 또 하나의 자신이나 마찬가지인 존재이니 노 카운트다.

츠쿠요와 슈, 두 사람이 무엇을 상상하고 지구에 남았는지는 모르지만 그녀들이 원하는 대로는 되지 않으리라.

“딱히 그런 부탁하고 싶지 않은데?”

하지만 한 가지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은, 츠쿠요와 슈가 지구에 남았다고 해서 그녀들이 지구 방위에 손을 거들어줄 것을 기대해선 안 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난 그 사람들한테 뭘 부탁할 처지가 못 돼.”

"하지만 시뇩이 말은 듣잖아요? 그러니까 누님이 시뇩이한테 전언을 받아다가……."

"아니.”

백인하가 제시한 대안에 클레어는 웃고 말았다.

“그이도 기본적으로 그 둘과 똑같은 입장이야. 자신이 직접 나섰으면 나섰지, 다른 초월자들에게 부탁하는 일은 없을 거야.”

"그렇지만 지금은 시뇩이가 없으니까.”

"그러니까 이대로 놔둘 수밖에 없는 거지.”

"으."

클레어는 다시 TV를 켜, 신영의 정예조가 게이트를 클리어하는 영상을 보고 이마를 탁 치며 브라보를 연발하는 방송국 아나운서의 모습에 코웃음을 치고는 채널을 이리저리 바꿨다.

과연 백인하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신영의 본진이 위치한 곳인 만큼 한국…… 특히 수도 서울은 피해가 거의 전무에 가까운 실정이었으나 외국은 처참했다.

강한 초인이 머무르지 않는 국가는 이미 지방 지역을 대부분 포기하고 수도에 집중하고 있는 판국이었고, 러시아나 중국, 미국과 같은 강대국도 토지의 20% 가까이를 탈환 불가 선언할 정도였으니.

아프리카 대륙에 마련해두었던 교두보 따위는 진즉 파괴되었다.

"앞으로 점점 심해지겠네.”

"그렇다니까요. 지금까지는 어떻게든 버텼지만, 슬슬 식량 문제가 터져 나올 거예요.”

"사람들이 좀 죽겠지. 뭘, 늘 있어왔던 일이잖아.”

"누님……."

백인하가 한숨을 쉬었다.

클레어 역시 사고방식이 일반적인 지구인의 감성에 어긋나있다는 것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 그 둘은 애초에 우리가 다룰 수 있는 힘이 아니었어. 사실 그이가 지구에 심어놓은 힘만 해도 지나쳐.”

"그건…… 후. 그렇긴 한데요.”

이제 초인사회를 관통하는 화두는 바로 ‘신영의 힘을 빌리는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강신혁의 심후한 영력으로 잔뜩 뿌려놓은 씨앗이 화려하게 개화해 신영의 초인들은 어디 내놓아도 밀리지 않는 능력을 갖춘 정예가 되었고, 능력의 성장이 영력에 기반을 두었기 때문인지 가이아 시스템의 소실에도 큰 타격을 받지 않고 있었다.

더욱이 신영에는 두 가지의 무기가 더 있었으니 바로 클레어가 만드는 포션과 기계류, 그리고 이나희와 강신혁의 제자인(자칭에 가까웠다.) 라헬…… 아니 엘마가 꾸준히 생산해내는 무구류가 그것이다.

다른 물건들에 비해, 신영에서 나오는 물건들의 품질이 언제나 압도적이었고 ‘믿을 만’했다.

그야 히어로 유니버스가 그 뒤에 있으니 당연한 일이지만, 안타깝게도 어떤 물건이든 공급은 한정되어 있었고 수요는 그야말로 무한에 가까웠으니 각 국가들이 국채를 발행해서라도 신영의 지원을 받고자 했다.

"후후, 인류가 이 위기를 넘어서고 나면, 그땐 과장 하나 안 보태고 신영 공화국이 만들어져도 이상할 게 없겠어."

"글쎄 일단 지금을 이겨내야 한다니까요, 누님……."

"......."

남들 걱정까지 사서 하는 백인하의 모습이 이해가지 않기도 하고, 슬슬 귀찮아져 내쫓으려다 말고 잠시 생각하는 클레어.

"정 그러면 힌트를 하나 줄게.”

“힌트?”

“그 여자들이 이곳에 머무르는 이유 말이야. 그건 그이가 돌아올 장소를 지키기 위해서거든. 그 한계선을 잘 생각해봐.”

"한계선.”

지나친 힌트다.

츠쿠요와 슈는 단절된 세계로부터 돌아온 이후 내내 신영의 숙소 안에 틀어박혀 움직이지 않고 있었지만, 영력을 깨달은 클레어는 그녀들의 생각을 어렴풋하게나마 읽어낼 수 있었다.

그녀들은 지구가 어찌되건 신경쓰지 않지만 강신혁이 머무르며 주로 활동하던 공간은 최대한 그가 있던 때와 같은 형태로 놔두고 싶어했다.

가만히 있는 것처럼 보여도 늘 에너지를 활성화해 일대를 탐사하고 있었으니, 사실 서울에서 초인들이 모두 빠져나가도 그 둘이 서울을 지켜내리라.

"누님! 그런 대답을 원했다니까요! 사랑합니다!”

"사라져. 아, 그리고 최대한 티 나지 않게 해. 둘의 존재를 상정하고 움직이고 있다는 걸 들키면 많이 혼날 거야.”

"넵, 그야 당연하죠! 바로 움직여보겠습니다!”

백인하는 삼고초려 끝에 제갈공명을 얻은 유비처럼 기세가 등등해져 떠나갔다.

그런데 그가 사라진 직후 방 안에 돌연 누군가의 기척이 생겨났다.

"흐응, 그렇게 됐나요.”

"깜짝이야!”

천하에 강신혁을 빼곤 두려울 것이 없는 클레어도 그 순간엔 소스라치게 놀랐다.

"기척 좀 내고 다녀, 우리 아가 놀라잖아!”

"후, 정실보다 먼저 회임한 첩처럼 거들먹거리는군요.”

"뭔 개소리래, 굳이 따지면 내가 정실이거든?”

"흥......."

검은 불꽃과 함께 나타나 조금 전까지 백인하가 있던 자리에 걸터앉은 츠쿠요가 밉살스럽다는 표정으로 클레어의 복부를 째렸다.

“‘아기가 놀란다.’라……. 모루의 피를 이은 아이가 그렇게 경망스러울 리가 없으니 만약 그렇다면 당신 탓이군요.”

"만 0살도 안 된 애한테 경망이고자시고……."

"크흠. 방금 당신이 우리에게 저지른 무례는 못 본 척 넘어가주겠어요.”

말을 다짜고짜 끊고 두서없는 말을 하는 츠쿠요였으나 그녀의 말뜻을 알아들은 클레어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머지 않아 들키리라고 생각은 했지만 설마 말을 꺼낸 순간 찾아와 추궁할 줄이야?

긴장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쿡, 웃은 츠쿠요가 말을 이었다.

"어느 정도 이용당할 각오는 하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지구인들이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덜 무례했다고 봐야겠죠. 엄격히 정보를 통제한 탓도 있겠지만.”

초월자를 자처하며 강신혁을 제외한 인류에는 신경도 안 쓰는 듯 하던 이였기에 더더욱 의외로 느껴지는 발언이었다.

하지만 저런 행동들도 모두 강신혁의 마음을 얻기 위한 것이라 생각하니 더더욱 경계심이 들었다.

“……이제 와서 너그러운 척 한다고 내가 신혁이를 조금이라도 양보해줄 거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야.”

"당신에게 양보를 받을 일은 없는걸요? 모루와의 정사는 어디까지나 저와 모루의 일일 뿐이죠.”

"아마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동안은 절대 무리일걸.”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이 보기 좋네요. 그래봐야 앞으로 100년 정도면 시들어버리는 필멸자가.”

"당신은 나이가 많아서 정말 부럽다, 그런데 신혁이도 좋아할지는 잘 모르겠네.”

클레어와 츠쿠요 사이에 험악한 말이 오가며 분위기가 날카로워졌다.

스치기만 해도 서로에게 치명상!

"둘 다 거기까지만 해.”

"응?"

"또 갑자기!”

그러나 그때 마지막 한 사람, 즉 슈가 갑작스레 나타나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며 분위기를 강제로 해소시켰다.

“츠쿠요, 본인이 없는 자리에서 기 싸움 해봤자 서로 감정만 상할 뿐이야. 그리고 바텐더…… 이름이 클레어라고 했지? 당신도 모루와 함께하는 한 언젠가 초월자의 위에 오를 테니, 그들의 감각을 익히는 게 좋아.”

"후."

츠쿠요는 순순히 입을 다물었으나 클레어는 아니었다.

"초월자의 감각? 여기저기 딴 살림 차리는 것 말하는 거라면 아마 평생 가도 이해할 일 없을 거야.”

"으으응…… 역시 지금부터 얘기해서 될 일이 아니지.”

슈는 어디까지나 ‘아직 어리니까, 어쩔 수 없지.’ 같은 눈으로 클레어를 바라보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자신보다 족히 열 살 이상은 어려보이는 꼬맹이가 그런 태도를 보이고 있으니 묘하게 열 받아 뭐라 더 따지려던 클레어였으나 이내 그만두고 말았다.

누누이 말하건대 자신이 이들에게 열을 받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보다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뭐죠?”

"가이아 시스템이 사라진 지금 일어난 모든 피해, 그로 인해 인류의 희망으로 부상한 신영 길드…… 이런 인과관계는 히어로 유니버스가 완성되면 어떻게 조정되는 거야?”

"혹시 지금, 히어로 유니버스가 완전히 가이아 시스템을 대체하게 되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지구의 혼란도 없었던 것으로 돌아가냐는 질문을 하고 있는 건가요?”

"정확해.”

클레어의 의문에 츠쿠요는 비웃었고, 슈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만약 그렇게 절대적인 역사의 개변이 가능했으면 애초에 가이아가 히어로 유니버스에 개입하는 것도 불가능했을 거야.”

“……역시 그래?”

"결론만 말하면, 할아방이 바꿀 수 있는 것은 미래지 과거가 아냐. 그러니까 잃은 것이 아니라 앞으로 얻을 것을 생각해야지. 결과만

봐."

인과를 다루는 능력에 발을 담근 슈의 말은 무게가 달랐다.

어렴풋이 그것을 인지하고 있던 클레어도 비로소 안심한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다면 됐어.”

"무거운가보네.”

“뭐, 응……. 나도 한 축을 담당하고 있으니까. 무겁네.”

앞으로 완성될 시스템의 중대함이,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접할 때마다 실감이 나서 덜컥 겁이 들었다.

차라리 자신이 직접 그 장소에 있을 수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클레어는 한숨을 내쉬며 아직 부풀었다기에는 민망한 자신의 복부를 가만히 쓸어내렸다.

그것을 도발이라 받아들인 츠쿠요가 꼬리를 불러내며 전투태세에 돌입했지만 슈가 그녀의 뒤통수를 때려 진정시켰다.

강신혁이 돌아오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제법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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