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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1화. < Chapter 61. 신살 - 3 >

"다들 조금만 버텨줘. 아마 완성되고 나면 모두 원래대로 돌아갈 테니까.”

"원래대로면 안 되지.”

“그래, 모두가 완벽하고 행복한 시스템으로 돌아올 거야.”

"그거 좀 위험하게 들리는데……."

가이아가 죽고 빛의 보주(가명)가 완성된 후, 침묵에 지배되던 카이랄의 세계에 비로소 소음이 돌아왔다.

당장은 강신혁이 세상을 제어하고 있다지만 언제까지 몬스터가 태어나지 못하게 막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 최대한 빨리 히어로 유니버스를 완성시켜 세상의 흐름을 되돌릴 필요가 있었다.

강신혁 자신의 손으로.

이제 와서 더 무엇을 헤매겠는가.

강신혁은 스스로의 손으로 히어로 유니버스를 만들어낼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거 좀 억울한데. 기껏 아득바득 노력해서 히어로 유니버스에 가입했는데.”

"그럼 ID 바꾸기 권한 정도는 줄게.”

"고작 그 정도로! ……필요하지만!”

룬여우라는 자신의 ID를 갈아치우고 싶어 안달이었던 이나희가 넙죽 그것을 물었지만, 강신혁은 농담이었다는 듯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회원체계를 바꿔야지. 아깐 히어로 유니버스가 능력자의 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얘기했지만, 어떤 부분은 지나치게 과하고 어떤 부분은 의미가 없어. 모든 이가 히어로 유니버스와 접촉하게 되면 당연히 지금의 구조를 상당부분 뜯어고쳐야지.”

"그럼 ID는?”

"그건 못 바꿔.”

"야!”

히어로 유니버스의 구조를 뜯어고쳐 모든 인류에게 도움이 되도록 만든다…….

이건, 정확히 말하면 거꾸로다.

원래 그런 구조로 되어 있었던 히어로 유니버스를 도중에 간섭한 가이아가 소수정예 위주로, 자신이 관리하고 간섭하기 편하게끔 뒤틀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과거의 일이고 지금 히어로 유니버스를 만들어내는 강신혁은 더는 가이아에게 간섭을 받지 않으므로, 앞으로의 히어로 유니버스는 마땅히 그래야 할 형태로 완성되어 유지될 것이다.

"그게 뭔 소리야?”

시간이 그리 많지 않기에 간단하게 설명했더니, 대부분 사람이 지금 이나희와 같은 멍청한 표정으로 반문해왔다.

강신혁은 뭐라 더 추가설명을 해주려다 그냥 입을 다물었다. 이 이상 뭘?

"그냥 그렇다고 알아둬. 어차피 기억도 못할 거야.”

……되도록 간단하게 사태를 정리하려 하는 강신혁도 지금 상황을 정리해 설명하기가 힘들었다.

어차피 그의 생각대로 진행된다면 히어로 유니버스가 완성되는 순간 기존의 회원들은 물론 전 인류에게서 ‘이전의 가이아 시스템과 히어로 유니버스에 대한 기억’이 개편될 터, 이전의 세계선을 읽어내는 능력이라도 갖고 있지 않은 한 혼란은 없으리라.

"결국 모루가 히어로 유니버스를 만들어내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얘기지요? 가이아의 힘도 거기에 보태게 될 것이고.”

“그래, 뭐 이 정도로는 부족하지만.”

한편 전투가 끝나자마자 그런 과격한 일이 언제 있었냐는 듯 강신혁에게 끈적끈적하게 달라붙는 츠쿠요를 쓴웃음과 함께 밀어내며 대꾸했다.

제아무리 가이아의 힘을 한데 응축시켰다 한들 살아있는 가이아를 대신하지는 못한다.

하물며 지금부터 그가 만들고자 하는 히어로 유니버스는 가이아 시스템을 초월한 영역에 존재하는 것.

고작 세계 하나의 동력으로 만들어낼 수 있을 리 없다.

[우리 세상에서 얻은 보물도 보태면 어때! 화산의 정에서 얻은 보주가 있잖아!]

"그렇지.”

콰티의 말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신염의 보주뿐인가, 그에게는 각기 다른 속성의 보주가 있었다.

사실 굳이 가이아의 사체를 보주 형태로 압축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빛의 보주, 흑영신주, 신풍의 보주, 신염의 보주, 물의 보주, 대지의 보주…… 그리고 이 사달을 만들어낸 원인 중 하나이기도 한 극천 신주까지.

총 일곱 개에 달하는 보주의 시너지를 극한으로 끌어낸다면 얼마든지 신룡을, 이 아니고 모든 세상을 지탱하는 시스템의 근간을 만들어낼 수 있으리라!

"하지만 당연히 여기서는 안 되고.”

가이아는 헤일로라는 ID로 히어로 유니버스에 가입하고, 여러 분체를 만들어내 많은 세상을 직간접적으로 관리했다.

하지만 그녀의 본체는 언제나 그녀가 만들어낸 빛의 소세계에 머무르고 있을 뿐이었는데, 그것은 그녀가 겁쟁이여서가 아니라 단지 그녀가 그곳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전 우주를 관리하는 시스템을 카이랄로 뒤덮인 세상에서 만든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고.”

이미 가이아에 의해 한 번 변질되었던 카이랄이, 또 다른 막대한 시스템의 여파를 받아들여 어떤 끔찍한 변이를 이룰지 모르는 노릇이 아닌가.

“그리고 다른 세상들도 그건 마찬가지고.”

"가이아가 어째서 한 번도 본체를 드러내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오늘 다들 몸으로 뼈저리게 깨달았지.”

가이아는 자신만의 세계 안에 처박힌, 완전하고 무결한 존재였다.

하지만 그녀가 히어로 유니버스를 탐내 그 안에 심어놓았던 야누스라는 이중간첩이 오직 자신의 욕망만을 위해 행동한 결과 그 완전한 세계 안에 강신혁이라는 불청객이 섞여들었고.

여러 초월자의 의도, 무엇보다도 히어로 유니버스 관리자의 시의적절한 지원에 의해 가이아는 끝내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가이아 시스템을 대체할 수 있는 보다 객관적이고 완벽한 관리자- 즉 히어로 유니버스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확신이 없었으면 야누스는 자신의 업보를 감당하지 못해 무너져 내렸을 것이다.

"그래서 다른 세계가 필요해. 오직 시스템만을 위한, 다른 곳과 소통하지 않는,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뛰어넘은 세계.”

이전까지 그런 조건에 들어맞는 세계는 오직 하나만이 존재했는데, 그것은 바로 가이아가 머물던 소세계다.

하지만 이젠 하나가 더 있었으니, 바로 가이아가 자신의 욕심을 위해 몰아낸 처량한 마나의 주인이 유배된 세계였다.

우주의 유일한 지배자가 되고자 했던 그녀가 아이러니하게도 강신혁의 마지막이며 위대한 작업을 위한 장소를 마련해주는 셈이 되어 버린 것이다.

"모루, 정말 혼자 가는 거야?”

"후배……."

"모루.”

이 자리에 남은 모든 회원들, 특히 그와 관계가 깊은 여성 회원들이 강신혁에게 매달렸다.

아무래도 그 작업이 그리 간단한 것도 아니고 시간이 오래 걸릴 법한 것으로 보였던 것이겠지.

하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하렘도 이런 터무니없는 하렘이 없었다.

"관리자가 이 공간을 들여다보지 못해서 다행이야.”

농담조로 중얼거린 강신혁은 자신의 주위를 둘러싼 많은 불여우들을 보며 피식 웃곤 말했다.

"시공의 경계를 넘어선 세상이라니까. 아마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을지도 몰라.”

"하지만 터무니없이 오래 걸릴지도 모르잖아.”

"내 룬은 안 필요해? 후배, 나도 데려가면 되잖아.”

“기다려요, 모루. 지구에는 당신의 아이를 가진 여자가 있잖아요. 그녀까지 그대로 두고 갈 셈인가요?”

“맞아, 할아방! 가기 전에 나도 임신시켜…… 카학!”

이대로 그를 보낼 수 없었던 여자들이 말을 막 뱉어내던 중 내전이 발발하고 말았다.

솔직히 그들끼리 싸워주는 건 강신혁에겐 부담이 한결 줄어드는 일이었기에, 그는 그것을 말리지 않기로 했다.

"맞아, 후배. 언니는 어떻게 할 거야?”

이나희의 질문은 단순히 그를 잡아두기 위한 말이 아님을 걱정이 묻어나는 그녀의 눈동자에서 깨달을 수 있었다.

다만 아직 안전이 확실하지도 않은 곳으로 향하는데 임신한 사람을 데리고 갈 수도 없을 뿐더러…….

"소통수단이라면 있으니까.”

"어떻게? 완전히 단절된 곳이잖아.”

"비타를 데리고 있으니까.”

"아."

혹시나 모를 사태를 대비해 데리고 온 비타는 본의 아니게도 처음부터 끝판왕급 존재와 마주하게 되면서 그의 개인 공간 안에 들어가 여태까지 나오지 못하고 있는 상황.

하지만 안전해지면 그녀를 통해 클레어와 의사를 주고받는 것이 가능할 터였다.

그 둘의 영적인 연결은 강신혁과 오닉스의 그것과는 비교도 안 되게 깊었고, 어떨 땐 비타를 통해 클레어가 말하는 것이 아닌가 싶을 때도 있을 정도.

시공의 간섭을 벗어나 단절된 공간이기에 실시간 소통은 불가능할지도 모르지만, 최소한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는 것은 어렵지 않으리라.

"그러면 가볼게.”

이미 다른 회원들과는 모두 인사를 마쳤다.

그는 시간적 여유가 그리 많지 않음을 알면서도 끝까지 그의 곁에 남아있던 VIP 회원들(그리고 이나희를 비롯해 자신과 특히 친밀했던 회원들)에게 한 명 한 명 눈인사를 하며 극천신주를 들었다.

이젠 가이아의 나뭇가지를 모두 삼켜, 신비롭고 상서로운 기운을 뿜어내고 있는 구슬.

여태까지는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했지만 세상을 이루는 근본 중 하나인 마나를 이해하고 다룰 수 있게 된 지금에 이르러선 아주 당연하게 이 구슬과 통하는 세계로의 문을 만들어낼 자신이 있었다.

"잠깐, 모루. 이대로 가는 건가? 설마 오늘이 마지막 만남이라고는 하지 않겠지?”

[영영 돌아오지 못한다고는 말하지 말아줬으면 한다만.]

"난 가이아가 아니라니까.”

강신혁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누구보다도 공정하고 완벽한 관리자가 모두를 보살펴줄 거야.”

“……별로 믿음직스럽지 못하네요.”

몇 번인가 관리자에게 막혀 강신혁과의 사이를 돈독하게 만드는 데 방해를 받았던 츠쿠요가 입술을 삐죽이며 중얼거렸다.

그러자 신살의 과업을 마치고 뭔가 해탈한 표정이던 야누스가 이제야 정신을 차린 듯 고개를 갸웃하며 그녀에게 물었다.

"관리자는 간섭하지 않잖아, 왜 그래?”

"전 많은 간섭을 받았으니까요.”

"그건 관리자가 아니라 네 잘못이 아닐까요?”

츠쿠요는 그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야누스를 비롯한 회원들이 지그시 츠쿠요를 노려보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게시판에서부터 그래왔던 대립구도는 여기서도 여전한 모양이었다.

"자, 나도 출발할 테니까 다들 떠나. 애초에 이 세상에 초월자들이 오래 머무르는 건 좋지 않아.”

강신혁이 한 손을 휘젓자 이 세상에서 빠져나갈 수 있게 해주는 게이트가 형성되었다.

천룡의 힘으로 만들어낸 게이트는 세상의 이치에 간섭하면서도 자연의 흐름에 순응하는 실로 묘한 성질의 것으로, 각자의 세상을 떠나온 이들에게 본래 머무르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는 게이트였다.

"어쩜, 모루는 나중에 나한테 마법 배워도 되겠는데?”

"미양, 수작부리기엔 늦었으니까 빨리 가요.”

"경쟁자 지금도 너무 많아. 더는 사절이야.”

"대체 누구랑 경쟁하고 있는 건데?”

“모루, 최대한 빨리 부탁해! 가이아가 죽었다며 당신을 원망하는 사람이 나오기 전에!”

“아, 나 진짜 우리 후배 잘 도와줄 수 있는데…… 꺅, 엘리! 밀지 마!”

왁자지껄 소란을 피우면서도 초월자들이 순순히 게이트 너머로 발을 내딛었다.

츠쿠요를 비롯한 몇몇은 끝까지 그의 곁에 남고 싶어 했지만, 그는 오래 걸리지 않을 거라며 그들을 전부 쫓아냈다.

세상을 몇이나 무너트리고도 남을 에너지의 충돌이 일어났던 카이랄의 세상에 순식간에 고요가 찾아왔고,

강신혁은 그제야 비로소 카이랄의 통제를 완화해 몬스터들이 태어날 수 있도록 했다.

"이런, 빨리 만들어야겠네. 이러다 진짜 큰일나지.”

"걱정하지 마, 할배.”

다른 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도 아닌 야누스의 것이었다.

"너."

"헷. 할배의 그 얼굴이 보고 싶었단 말씀이야.”

츠쿠요를 뛰어넘는 권능의 주인인 그녀라면 강신혁의 이목을 잠시 속이고 숨는 정도는 가능했으리라.

……적어도 본인은 숨겼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강신혁은 입맛을 다셨다.

초월자 노릇도 영 해먹을 만한 짓이 아니다.

“혹여나 그 전에 멸망하는 세계가 없도록 내가 막고 있을 테니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로키도 있으니까 괜찮아.”

‘‘꾸엑."

카이랄을 뽑아낸 후로 만사가 귀찮아진 로키도 덩달아 남아있었다.

참고로 말한다면 야누스가 자신의 기척을 감춘 방법은 로키의 권능을 이용한 것이기도 했다.

"가이아가 이 꼴이 난 건 어찌됐든 그 녀석과 한편에서 움직였던 우리 탓이기도 하니까. 걱정 말고 다녀와."

“으으, 정말 싫긴 하지만 안 하면 야누스가 죽인댔거든…… 어쩔 수 없지.”

로키가 질색을 하며 어깨를 움츠리면서도 야누스에게 크게 반항하지 않는 모습에, 강신혁은 새삼 둘 사이에 있었던 일이 궁금해졌다.

"그래, 그럼 다녀올게. 그 전에.”

강신혁은 자신의 영력을 잔뜩 주입한 [자장가]를 품에서 꺼내어 야누스에게 던져주었다.

"내가 다녀올 때까지만 맡겨두는 거야. 그게 있으면 몬스터를 제어하는 데 도움이 될 테지.”

"할배…… 응. 다녀와. 정말 고마웠어.”

자장가를 받아든 야누스가 초탈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강신혁 이상으로 영력에 능통한데다, 신살검무라는 영력을 다루는 기술을 같이 익혔기도 한 만큼 그녀는 자장가를 제법 잘 다뤄냈다.

사방에서 생겨나, 그대로 다른 세상의 그림자로 침잠해가던 몬스터들을 붙들어 잠재우는 것만 봐도 가히 알만 했다.

"그럼.”

그는 극천신주를 들어 다른 게이트를 만들어냈다.

그 안에는 희뿌연 안개만 가득해 그의 영력으로도 감히 탐사가 불가능한 수준.

이 안에 신은아가 있다는 것은 의심하지 않지만, 아무래도 제법 오래 헤매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침을 한 번 꼴깍 삼키고, 그 누구도 아닌 자기자신의 권능이 영혼과 육신을 북돋는 것을 느끼며 자신감을 얻어, 그 안으로 한 발.

내뻗기 전에, 도저히 궁금증을 참을 수 없어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그래서 로키는 결국 뭐냐?”

"나한테 멸종당하기 전에 인간으로 변신해서 간신히 살아남은 마지막 드래곤.”

"야!”

로키가 질색했다.

과연, 로키가 야누스와 묘한 관계로 보였던 것이 단번에 납득 가는 비밀이 아닐 수 없다.

"심장 빼내면?”

"글렀어, 예전에 해보려고 했는데 이미 본체로 돌아가는 걸 포기해버려서 드래곤 하트 안 나와. 그래도 혹시 전신을 응축하면 신살검의 새로운 코어가 될 만한……."

“야아아아아!”

“……다녀오면 신살검의 코어에 대해 한 번 고민해보자.”

질색하며 자신의 가슴팍을 가리는 로키와 그런 로키의 가슴팍을 묘하게 입맛을 다시며 째려보는 야누스를 놔두고.

강신혁은 눈앞의 게이트에 전신을 내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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