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0화. < Chapter 61. 신살 - 2 >
야누스는 최초의 SSS+랭크 특성의 각성자였다.
나이 다섯 살로 신화의 시대의 주인이 된 그녀는 무수한 적을 짓밟고 세계의 정상에 올라섰다.
그녀는 강했고, 재능이 넘쳤으며, 그 성장은 한계를 몰랐다.
하지만 그렇기에 오만했다.
‘마음에 들지 않아.’
선택받은 자에게 특성을 선물하며, 인류에게 몬스터의 위협을 알려주는 절대자.
태어날 때부터 그녀의 머리 위에 있었으며 그녀가 제아무리 성장하더라도 감히 벗어나지 못하게 속박해오는 존재.
가이아.
그것을 순수하게 받아들이고 따르는 절대다수의 인류와 달리 그녀는 의문을 품었다.
그렇기에 가이아 시스템의 영향에서 벗어나고자 안간힘을 썼고, 초월자가 되어 비로소 가이아의 관리영역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었다.
'이걸론 안 돼.’
그러나 여전히 그녀를 제외한 모두는 시스템의 영향을 받고 있었으며, 그들과 교류하게 되면 자연히 그녀 또한 간접적으로 가이아의 영향 아래 놓이게 되었다.
야누스는 가장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은 초월자가 되며 자연스레 깨닫게 된 가이아 시스템의 비밀이었다.
본래 마나란 자연스럽게 솟아나는 것이지, 통제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가이아 시스템은 그것을 인위적으로 조절해 몬스터 발생에 영향을 끼치거나, 각성자를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했다.
가이아 시스템은, 아니 가이아는 그것을 이용해 세상을 제 입맛대로 바꾸어나가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인류의 존속을 위해 통제되었고, 가이아 시스템의 개입으로 인해 능력 있는 자들이 각성하며 상대적으로 덜 위험한 곳에서 몬스터가 생성되는 등 실제로 인류에게 아주 큰 도움이 되어왔다.
하지만 어느 순간 가이아가 다른 마음을 먹는다면?
혹은 이 모든 것이 위장에 불과했고, 실은 전 우주의 마나를 통제해 자신의 격을 높이기 위한 사전작업이었다면?
가이아 시스템은 인간들 사이에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었고, 그 말은 즉 인간들이 가이아 시스템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면 그야 물론 큰 곤란을 겪게 되겠지.
하지만, 그것이 정반대의 방향으로 폭주한다면 저항해볼 틈도 없이 세상이 무너지고 말 터였다.
애초에 가이아를 좋게 여기지 않았던 야누스의 의심은 그런 생각을 한 순간부터 크게 부풀어 올랐고, 이윽고 가이아라는 존재를 처단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인류의 존망은 오롯이 인류의 힘으로 막아내야 하는 것이며, 다른 절대자에게 자신들의 운명을 맡길 수는 없다.
한 세상을 대표하는 강자로서, 야누스는 그런 결론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미 가이아 시스템에 순응해 잘 살아가고 있는 이들은 그녀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문화가 발달한 지구의 인간들 중에선 그녀의 심정을 이해하는 이도 제법 있었을 터다.
그도 그럴 것이 완전히 슈퍼맨(통제불능한 외계인)을 죽이려는 렉스 루터(순혈 지구인)의 심정 그 자체가 아닌가!
'죽인다.’
신살의 뜻을 품은 야누스는 그 순간부터 한층 가열차게 수련했다.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특성도 몇 번이고 진화시켜 끝내 자신조차 파악하기 힘든 경지에 이르렸다.
수련의 끝에 비로소 차원의 벽을 넘는 데 성공했고, 각성한 순간부터 자신에게 간섭해오던 절대자와의 연결고리를 역추적해 가이아를 찾아냈다.
그리고, 찔러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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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였다고?”
“그래.”
담담히 고개를 끄덕이는 야누스를 앞에 두고 강신혁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의 권능이 발현해, 지금은 야누스와 자신, 그리고 죽어가는 가이아를 제외한 모두의 시간을 멈추고 있었다.
특성도 진화했고, 루시퍼에 의한 [여명]도 여전히 발동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시간을 멈춘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야누스가 다급히 부탁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무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 시간을 몇 분씩이나 소모해서 멋대로 과거사를 들려줘놓고 마지막 순간에 구라를 친다고?”
"구라 아니라니까? 진짜 죽였거든? 그런 기억이 애매하게 남아있거든? 문제는 그 다음에 일어났어. 가이아는 이미 자기자신을 순수한 빛으로 만들어, 죽어도 결코 완전히 소멸하지 않는 신화의 영역에 이르러 있었……."
"얼마나 죽이고 싶었으면 꿈까지 꾸냐.”
“아니 이 답답한 할배야, 생각해보라고!”
야누스가 손을 들어 제 가슴팍을 탕탕 치며 울분을 토했지만, 이미 야누스보다 훌륭한 흉부를 보유한 여자친구를 갖고 있는 강신혁은 전혀,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내가 할배한테 왜 신살검을 만들어달라고 했겠냐고, 어지간한 칼로는 신을 죽일 수 없다는 결론을 얻었으니까 그런 거지! 세상에 남은 마지막 드래곤까지 잡았는데, 내가! 어? 신살검을 괜히 만들어달라고 했겠어?”
"흠."
진실 여부를 판가름하기 어려웠지만 야누스가 이렇게 억울해하는 모습을 보이니 일단은 그녀의 말에 수긍하는 척 해주기로 했다.
"그래서 뭐냐? 어차피 실제론 안 죽었던 거지?”
"그렇지. 죽지 않았어. 게다가 이젠 할배도 알고 있겠지만, 요르문간드와 히어로 유니버스가 탄생하면서 우주는 과거까지 완전히 개변됐어.”
"그랬지.”
"그 과정에서 내가 가이아를 죽였다는 과거 대신 새로운 과거가 생겨났지.”
야누스가 뽀얗게 맨살이 드러난 자신의 등을 강신혁에게 내밀었다.
등을 가리는 부분이 찢어져 있었는데, 그것은 전투가 워낙 격렬하기도 했을 뿐더러 결정적으로 카이랄이 그쪽으로 튀어나왔기 때문이었다.
“바로 가이아와 만난 내가 카이랄이 심겨 둘로 나뉘게 되었다는 과거가.”
“야누스라는 명의로 히어로 유니버스에 가입하게 된 것도 그 순간이고.”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쯤이겠지.”
과거 신살에 도전했고, 패배한 대가로 그녀는 가이아의 뜻대로 움직이는 부하가 되어 히어로 유니버스의 이중간첩 노릇을 하게 되었다.......
카이랄의 또 다른 주인이었던 로키는 요르문간드라는 이름을 직접 지었다고 할 정도이니, 아마 야누스와는 다른 사정을 갖고 있겠지만 솔직히 거기까지는 알 바가 아니고.
"그래서 할배, 내가 목을 베기는 했는데 이거 곱게 죽이기는 힘들어.”
“시간을 멈춰달라고 한 것도 그 때문이냐……."
강신혁은 냉정하게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측정해봤다.
끝내 완전한 여의주를 얻지 못하고 하늘을 무너트렸으나, 비로소 모든 조화를 깨닫고 승천하게 되었으니 스스로 이름붙이건대 특성의 이름을 [천룡]이라고 하자.
이 랭크 측정도 감히 불가능한 [천룡]의 능력으로도 이렇게 무턱대고 시간을 멈추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하물며 이제 막 특성을 얻었을 뿐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럼 이제 해제한다.”
강신혁은 한숨을 내쉬며 선언했다.
고작 그런 일로 부탁한 것인 줄 알았으면 애초에 시간을 멈추지도 않았을 텐데.
괜히 통제하기도 어려운 능력으로 무리했다.
"아니 잠깐만 할배! 내 말 듣고 있었어?”
"넌 아무 생각도 없이 다짜고짜 벤 거냐? 미안하지만 난 아니었거든.”
콧방귀를 뀐 그가 가볍게 검을 휘두르자 멈춰있던 시간의 흐름이 이어 붙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주위 다른 사람들은 강신혁이 어느덧 야누스의 옆으로 다가가 있는 것을 발견하곤 눈을 까뒤집었다.
"혹시 시간을 멈췄나요, 모루?”
“츠쿠요, 아무도 작업을 방해하지 못하게 해줘.”
"앗, 네엡!”
제아무리 신살검이 신을 죽이는 것을 목표로 만들어졌어도 그리 쉽게 가이아의 존재를 멸할 수는 없다.
하물며 가이아는 스스로 빛으로 화하는 존재이고, 지금의 신살검은 여러모로 완벽이라고는 부를 수 없는 상태였기에 더욱 그랬다.
다만 그럼에도 신살검의 격은 여전했고 가이아의 부활을 저지하고 있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야누스가 가이아의 마지막을 장식한 의미는 크다고 할 수 있으리라.
"이제…… 다끝났어.”
제 형체를 유지하지 못하고 무너지는 가이아를 보며 아스칼딘이 허망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가이아 시스템이 무너지게 되면 얼마나 많은 혼란이 올지 생각해봤어? 우리 초월자들에게는 보다 자유로운 세상이 올지도 모르지, 하지만 다른 많은 필멸자들은? 힘을 다루지도 못하는 이들은 어떻게 하란 말이지? 야누스, 모루! 너희들이 사사로운 욕심 탓에 무수한 세상이 그대로 종말로 치닫게 될 거야!”
"가이아 시스템은 무너지지 않을 거야.”
강신혁이 가볍게 대꾸했다.
"뭐?”
"아니, 굳이 가이아 시스템이라는 이름으로 남겨둘 필요도 없나. 그냥 하나로 합치면 되겠어.”
“지금……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지?”
"히어로 유니버스 말이야, 여기 있는 이들은 다들 회원이니까 알겠지만.”
강신혁은 두 손을 뻗어 가이아의 사체에서 발산되는 빛을 한데 모으며 말했다.
이나희가 혹시 자신이 도와줄 것이 없나 기웃대고 있었지만 이 올 크래프트 작업에는 안타깝게도 그녀가 간섭할 여지가 없었다.
과거 몇 번이나 해본 만큼, 강신혁 혼자서 작업하는 것이 더욱 편하기도 했고.
"어딘가 부족하다는 생각 해본 적 없어?”
"부족…… 뭐?”
"까놓고 말해 기능이 너무 많잖아.”
"그걸 모루, 네가 말한다고?”
히어로 유니버스에 누구보다도 깊이 관련되어 있는 이가 모루라는 것을 짐작하고 있는 VIP 회원들은 저마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반박했다.
여전히 그의 머리 위에 앉아있던 미양이 그의 머리를 잡아당기며 물었다.
"설명해봐, 모루.”
"잠깐만, 이것도 집중해야 하는 작업이라.”
"무슨, 우오오오……."
어느덧 완전히 빛의 덩어리 형태로 변한 가이아의 사체가 강신혁의 두 손 안에서 뭉치고 있었다.
그뿐인가? 어느 순간 저절로 하나의 게이트가 열리더니 가이아의 사체로 빛이 쏟아져내렸다.
눈치가 있는 이라면 그 게이트가 가이아의 소세계로 통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뭐야…… 지금 신을 포함한 하나의 세계를 한데 뭉치고 있는 거야?”
"이만한 빛을 감당할 수 있는 세상은 모든 어둠의 근원지인 이곳 말고는 달리 없을 거야. 즉 가이아의 가공 작업은 이곳에서밖에 할 수 없는 일이란 얘기지.”
"가공……?”
"아, 그보다 설명을 계속해볼까.”
신의 사체를 통째로 한데 뭉친다는 말도 안 되는 짓을 저지르며 강신혁이 담담히 말을 이었다.
"초월자들에게 있어 히어로 유니버스는 유희공간에 지나지 않지. 그런데 어째서 히어로 유니버스에는 많은 편의기능이 있는 걸까? 그것도 능력자의 성장에 다분히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편의기능 말이야.”
"그건……."
"한 번 다시 태어나, 바닥에서부터 재출발한 나이기에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 히어로 유니버스는 초월자만의 커뮤니티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야. 즉 불완전하단 얘기지.”
강신혁이 자신의 성장에 히어로 유니버스를 통해 얼마나 많은 도움을 받았던가!
물론 그의 경우 VIP라는 신분 탓에 더더욱 큰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히어로 유니버스의 일반 거래 게시판 기능 정도만 활용할 수 있어도 능력자들의 성장에는 큰 도움이 될 터였다.
그리고 까놓고 말해 히어로 유니버스가 보유하고 있는 몇몇 기능은 초월자들에겐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지금의 히어로 유니버스는 마치 시험작 같은 느낌마저 있었다.
……그게 아니면, 그간 누군가에게 방해를 받아 온전한 형태로 거듭나지 못했거나.
"가이아 말이야?”
"가이아는 히어로 유니버스가 가이아 시스템의 영역을 침범하는 걸 줄곧 싫어했었지. 이치에 맞아.”
"그렇다는 건 히어로 유니버스의 대상은 본래 초월의 자격을 지닌 이들뿐만이 아니라 보다 많은 능력자들이란 말인가?”
"가이아 시스템이 없다면.”
강신혁은 어느덧 하나의 구슬의 형태로 완성된 빛의 덩어리를 들어 올리며 얕게 웃었다.
이 자리의 모두가 그것을 보며 압도되어 침묵하고 말았다.
“히어로 유니버스가 전 우주를 총괄하는 시스템이 될 수 있겠지.”
히어로 유니버스는 가이아 시스템과는 별개의, 독립적이고 완전한 커뮤니티다.
이제 그것을 완성시킬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