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9화. < Chapter 61. 신살 - 1 >
아이템이 완성되고, 습관적으로 정보창을 띄워보려다 피식 웃고 말았다.
가이아 시스템은 이 공간에서 작동하지 않고, 작동한다 해도 더는 믿을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티팩트의 능력은 이것이 완성되는 순간부터 이미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검의 이름은 ‘루시퍼’다.”
샛별이며 빛을 불러오는 존재.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깊은 어둠 속 지옥의 주인을 상징하는 이름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 검에는 빛과 어둠의 능력이 동시에 담겨 있었고…….
"흑영신주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그 특수능력을 발동할 수 있어.”
“흑영신주? 특수능력?”
[모루.]
검이 완성된 순간, 그 잠재력을 알아본 것인지 가이아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정녕 나와 끝을 봐야겠다는 말인가?]
"이렇게까지 해놓고 설마 모두 얌전히 집으로 돌아갈 줄 알았어? 가이아, 그건 아무래도 욕심이 너무 큰데.”
과거 강신혁이 신살검을 다루던 시절, 그가 끝내 발현하지 못했던 특수능력이 있다.
흑영신주와의 결합으로 인해 신살검이 원래 지니고 있던 특수능력인 ‘성검’이 ‘영검’과 결합해 ‘혼돈의 검’이 되고, 거기에 몇 가지 능력이 추가로 결합해 '여명’이라는 특수능력이 탄생했던 것이다.
다만 당시의 강신혁은 능력이 부족해 그것을 다루지 못했다.
신살검과 혹영신주의 조합부터가 기적적인 우연으로 인한 것이었으니까.
신의 힘, 빛의 힘, 어둠의 힘, 이런 듣기만 해도 손발이 오그라드는 창대한 규모의 힘들을 한데 섞어 완성시키기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하지만 그것이 자신이 만들어낸 무구가 도달할 수 있는 정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강신혁은 이후 금속을 두드리며 그것을 잊지 않고 정진했다.
신살검을 잃었을 때, 한때는 진심으로 낙담하기도 했지만, 어떤 의미로는 속이 개운한 감도 있었다.
신살검은 어디까지나 전생의 자신이 야누스를 위해 만들어냈던 물건.
하물며 흑영신주에 이르러서는 우연의 연속으로 손에 넣게 된 귀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 둘이 합쳐져 완성된 ‘여명’을 온전히 자신의 업적인 양, 능력인 양 취급하기는 껄끄러웠던 것.
……이런 능력을 파천룡을 얻기도 전의 그가 다룰 수 있을 리가 없었지만.
“모루…… 그 검, 마치.”
[……이상한데. 모루, 뭔 짓 했어? 움직일 수가 없는데.]
"꼭 세상이 멈춘 것 같아.”
그리고 결국 이 지점에 이르렀다.
‘재료’로써 가이아의 능력이나 카이랄의 힘을 빼오기는 했지만, 결국 자신의 의도로서 재료를 온전히 조형해 뭐 하나 덧대거나 뺄 필요 없이 완벽한 형태로 탄생시킨 것이다.
“여명.”
강신혁이 속삭였다.
그것은 밝아오는 새벽의 빛.
모든 어둠을 누르고, 모든 빛에 앞선다.
간단히 설명해버리자면 그것은 세상을 뒤바꾸는 힘이었다.
즉- 그의 특성, 파천룡을 압도적으로 버프해주는 힘이란 얘기다!
"후, 배……!”
"후우우우……."
특수능력이 발동한 순간, [루시퍼]와 그의 기운이 공명하며 대폭주를 일으켰다.
그나마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이나희가 그것을 순간이라도 포착하는 데 성공했고, 나머지는 가이아를 포함해 전원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눈꺼풀도 깜박이지 못한 채 그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멈춰버린 시간 속에서 오직 강신혁만이 기운의 폭주를, 자신의 신체와 정신의 승화를 느끼고 있었다.
'뜨거워……!’
특수능력을 발동하는 순간, 거기에 반응해 그의 특성이 또 한 차례…… 아마도 마지막이 될, 진화를 일으키고 있었다.
단순히 무기의 특수능력을 발현했기 때문이 아니다.
여명이란 특수능력을 이해하고 직접 만들어내어, 완벽히 발동시키는 것.
그로 인해 비로소, 진실 된 의미로.
용은 억지로 빼앗겼던 여의주를 되찾고 하늘에 이르렀다.
"후우우우우.......”
그리고 시간은 다시 흐르기 시작한다.
영원처럼 느껴졌던 진화는 한순간에 끝났고, 강신혁의 발끝부터 시작해서 모든 것이 뒤바뀌었다.
그래, 당장 그가 느낀 변화를 들자면.
그는 더 이상 마나를 다루지 못하는 능력자가 아니었다.
아마도 각성한 그 순간부터 억압되었던 모든 조건을 벗어던지고, 오롯이 자신의 권한으로 마나와 교류하고 지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어쩌면 특성이 진화하기 전에도 조금이라면 가능했을지 몰라. 파천룡만 해도 세상에 간섭이 가능한 힘이었는데, 무턱대고 나는 마나를 못 다룬다고 생각해 시도도 해보지 않았던 거지. 어리석었어.’
그도 그럴 것이 지금 그에게 가능한 것은 고작 마나를 다루는 일 따위가 아니었으니까.
그보다 훨씬 근본적이고, 훨씬 거대한 영역에 간섭해 지배권을 빼앗아오는 것도 가능했고.
당연하지만 예전에 빼앗긴 자신의 물건을 되찾는 것 정도는 눈을 감고도 해낼 수 있었다 ‘그것’을 행한 그 순간, 비로소 시간의 흐름을 되찾은 신이 입을 열어 말했다.
[말도, 안 되는.]
모든 악역이 죽기 직전에 꼭 한 번씩은 내뱉어야 성이 풀리는 대사 BEST 3 안에 들어갈 말을 기어이 가이아가 해치우고야 말았다.
하지만 야누스와 로키의 등에서 빠져나오는 검은 거울 조각을 보고 있었으니 당연한 반응이기도 했다.
"이건……!”
[어…… 어?]
양자의 변화는 극적이었다.
이미 몸을 움직이는 것도 힘든 수준으로 침식당하던 야누스는 거울 파편이 빠져나오자마자 몸을 튕겨 벌떡 일어섰고, 로키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순식간에 몸집이 줄어들었다.
덤으로 거기서 빠져나온 두 개의 거대한 파편은 바닥- 검은 거울 속으로 녹아들어, 보이지 않게 되었다.
“모루 할배……!”
"야누스, 이제 괜찮지?”
“할배 봐봐, 나 여자 맞다니까!”
"응, 그걸 물어본 건 아니었는데. 애초에 별 의심도 안 했고.”
하지만 카이랄이 뽑히고 나자 어딘가 요염함이 넘치던 그녀의 분위기가 완전히 반전되어, 순수…… 를 넘어 까불거리는 철부지 느낌이 강하게 났다.
여태 적대해오던 요르문간드의 야누스라는 느낌보다, 히어로 유니버스에서 늘 얘기를 나누던 그 야누스라는 확신이 비로소 들었다.
"으으으…… 기운이 하나도 안 나는데. 하……!”
[어떻, 그것은 혼과의 결합이었다!]
야누스 뿐만이 아니라 카이랄이 박혀 있을 때와는 숫제 다른 모습으로, 완전히 무기력해져 바닥에 널브러지는 로키의 모습에 경악하며 외치는 가이아.
"남의 물건을 멋대로 다루면 안 되지, 가이아. 하지만 돌려받았으니 거기에 대해선 더는 뭐라고 하지 않겠어.”
[모루 영감, 자네의 손에 들린 그 무구, 매우 위험해보이는군……!]
강신혁이 가이아를 보고 빈정거리며 하는 말에, 그녀는 이를 바득 갈며 강신혁, 정확히는 그의 손에 들린 바스타드 소드 [루시퍼]를 노려보았다.
"그래서 막으려고 했던 거잖아? 안타깝지만 늦었어. 이젠 무구를 부순다고 해도 나를 막을 수 없어.”
전생의 모루는 초월자의 격을 얻은 이였다.
무수한 세월 쇠를 두드리고 많은 기적과 저주, 신을 죽이는 물건을 만들어냈으니 그 업이 어디로 가겠는가?
그 전부는 모루의 영혼에 남아, 그 격을 한도 끝도 없이 드높였다.
그의 혼이 일반적인 윤회를 거치지 않은 것도 당연한 일이랄 수 있는 것이다.
그게 무엇을 뜻하는가 하면, 모루라는 대장장이에게 있어 무구를 만드는 작업이란 곧 그의 격을 높이는 수련이기도 했다는 것.
그리고 누누이 생각해왔듯 근본을 따지면 결코 전투적인 특성이 아닌 그의 특성은, 그의 야금 작업과 함께 성장해 끝내 그를 승천시키기에 이르렀다.
'다만 이전 생에는 오직 영혼의 격만 높아져 밸런스가 맞지 않았다면, 이번 생에는 육체의 단련이 함께 이루어져 온전한 초월자가 될 수 있었던 거야.’
막상 정상에 이르고 보니 자신이 직접 검을 잡고 휘두르게 된 것이 얼마나 당연한 이치였는지 알겠다.
물론 처음 기억을 되찾았을 당시엔 젊은 청년 검사와 늙은 대장장이 사이의 괴리에 고민하던 때도 있었지만, 결국은 순리대로 되었을 뿐이었던 것이다.
약 한 명의 방해자 탓에 조금 길을 돌아온 셈이 되었지만…….
"이젠 모두 되찾았으니, 그것도 된 걸로 치자.”
[로키, 일어서!]
“아니, 무리야. 나 웰게 열심히 싸웠냐? 슬슬 그만하고 싶은데…… 얘들아, 항복하면 봐주냐?”
"죽이진 않을 거야.”
"그럼 됐어. 다리 하나 잘라줘?”
[로키!]
판이하게 달라진 로키의 모습에 가이아가 비명을 빽 질렀다.
그럼 그렇지, 야누스가 자신의 본래 모습이 남자가 아닌 여자라고 할 때부터 알아봤지만, 그들은 카이랄이 박힌 순간부터 이미 변질되어 있었던 것이다.
즉 요르문간드로서 활동하는 야누스도, 히어로 유니버스에서 활발하게 움직이던 야누스도 모두 본래의 그녀라고는 할 수 없다는 얘기.
그것은 로키도 마찬가지여서, 결국 히어로 유니버스에 속한 회원으로서의 면모를 보이던 그가 가이아를 따르던 것 역시 카이랄로 인한 변화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자, 이렇게 됐는데 당신들은 어쩔래. 아스칼딘, 시카투……."
“어머, 죄송해요, 모루. 시카투스는 이미 죽었어요……."
"아."
시카투스는 어둠에 속한 자. 자연히 빛과 불에 약하다.
하지만 그 시카투스를 상대하던 것은 불 하나로는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 콰티와, 그 콰티를 뛰어넘는 존재인 츠쿠요다.
가이아가 오직 강신혁만을 노리고 있던 탓에 아군인 시카투스에 대한 방비가 허술해져, 두 사람이 맘껏 불을 질러댄 결과 시카투스는 끝내 버티지 못하고 소멸당하고 만 것이다.
"정말…… 미쳤군. 가이아를 진짜 죽일 셈인가?”
아스칼딘은 여전히 냉정한 모습을 유지하며 히어로 유니버스 회원들을 노려보았다.
"정신차려라. 이곳에 있는 이는 가이아다! 여신을 죽이면 모든 세계의 질서가 뒤죽박죽으로 엉켜 엉망이 될 거야! 더는 인간에게 성장의 길을 제시해줄 수 없게 된다!”
"하지만 까놓고 말해 발전된 세상에서 가이아 시스템은 분란을 조장하는 도구로도 쓰인단 말이지.”
"가이아 시스템이 없다고 마나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앵? 가이아? 가이아가 언제부터 몬스터랑 한편이었어?”
아마 여태까지의 장내의 분위기를 살펴 진즉 가이아의 정체를 알아챈 이들도 있겠지만, 아스칼딘의 윽박지름에 의해 비로소 이곳에 모인 회원 전원이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당연히 장내는 어찌할 수 없는 혼란에 빠져들었고, 아스칼딘은 그 틈을 타 가이아에게 외쳤다.
"도망쳐!”
[큭…… 내가, 여기서 도망치라는 겁니까?]
"아니면 죽게 될 뿐이야. 나중에 보다 차분한 자리에서 얘기를 하는 게 나을걸.”
[……그렇군요.]
사실 강신혁의 단조를 막지 못한 시점에서, 신살검보다 더한 힘을 지닌 저 검에 자신의 목이 떨어져나갈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 없었던 가이아는 끝내 아스칼딘의 말을 받아들여 도주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그녀가 자신의 소세계로 통하는 비밀스런 게이트를 만들어낸 그 순간, 그녀의 목에 와닿는 차가운 금속 날이 느껴졌다.
[야누, 스.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
"아니, 난 원래 그렇게 살던 년이라.”
몸이 회복된 순간 야누스의 전력은 강신혁을 제외하고 단언컨대 이 자리에서 최강이었다.
누구도 인식하지 못할 스피드로, 여전히 많은 몬스터와 인간들의 틈을 순식간에 돌파해 가이아에게 이른 야누스는, 자신을 뒤에서 덮쳐오는 아스칼딘을 코웃음 한 번으로 튕겨내고는 우선 게이트에 칼을 박아넣었다.
그것으로 게이트가 소멸했다.
"내가 당신에게 왜 잡혔는지 생각해봐. 내 목적은 처음부터 하나였잖아.”
[컥……!]
신살검이 휘둘러졌다.
강신혁이라면 그 과정에 개입해서 인과를 비틀 수도 있었겠지만, 아주 짧은 시간 고민한 끝에 그는 그것을 그냥 놔두기로 했다.
그 결과, 신의 목이 떨어졌다.
"바로 신살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