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8화. < Chapter 60. 낳는 자 - 6 >
영력에는 사물을 직접 타격하는 힘이 없지만, 그것과 파천기를 조합해 만들어낸 망치로 재료를 두들겨 단조하는 것은 가능했다.
영력과 뒤섞여 오색으로 찬란한 빛을 말하는 반투명한 망치가, 강신혁의 눈앞으로 떠오른 혼돈의 금속을 강하게 두들겼다.
- 깡!
"듣기 좋은 소리네.”
[모루!]
가이아의 외마디 비명과 함께 어둠의 세상에 환한 빛이 찾아들었다.
하지만 그 즉시 그와 같은 양의 어둠이 솟구쳐, 빛과 함께 금속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 깡!
[내 빛을 모조리 흡수하고 있어…… 잠깐. 모루, 자네 혹시!]
“몬스터가 솟아나지 않는데?”
"이거, 혹시고 자시고 간에 모루가 카이랄의 컨트롤을 하고 있는 건가?”
"이 넓은 세상 전체를 말인가!?”
가이아에 뒤이어 다른 회원들도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강신혁이 금속의 단조를 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매개로 삼아 카이랄과 교감하고 있다는 것을.
- 깡!
이 세상에서 가득한 마기를 강신혁이 모조리 끌어다 쓰고 있으니 적어도 작업이 멈출 때까지 새로운 몬스터는 나타나지 않을 터였다.
더불어 워낙에 많은 양의 마기가 그에게 집중되고 있다 보니, 설령 가이아가 힘을 발한들 그것이 모조리 금속으로 빨려들고 있었다.
그건 딱히 강신혁이 의도한 것이 아니라, 자석의 비극과 S극이 달라붙듯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 깡!
한 번 망치가 휘둘러질 때마다 금속은 빠르게 그 모습을 바꾸어갔다.
어차피 이 금속을 녹일 수 있는 불꽃은 존재하지 않으니, 화로를 꺼내들 필요도 없다.
강신혁은 세상에서 솟구치는 어둠의 기운과 가이아로부터 흘러들어오는 빛의 기운이 발하는 융합반응을 활용해 금속을 녹이고, 그 타이밍에 맞춰 망치를 내려쳐 영력과 파천기를 주입, 자신이 원하는 모양으로 빚어내고 있었다.
이때 물리적인 간섭은 필요하지 않다.
단지 금속에 자신의 의지를 강하게 부여하며, 사방에서 폭주하는 기운을 오롯이 살려내는 데에만 집중한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올 크래프트. 강신혁은 전생의 경지를 완전히 회복하고, 그것을 뛰어넘어 완전히 새로운 방식의 단조를 시도하고 있었다.
- 깡!
영력과 파천기, 빛과 어둠이 금속과 충돌하며 재차 경쾌한 소리를 냈다.
처음엔 그저 어둠이 뭄쳐있는 덩어리 같았다면, 지금은 어느덧 길쭉한 몽둥이라고 불러줄 수 있는 수준까지 변화해 있었다.
혼자서 작업할 땐 아비수스와 디스페어가 품고 있는 악의를 미처 감당하지 못해 본인도 휩쓸릴 뿐이었는데, 지금은 거기서 한 발짝 떨어져, 무수한 기운을 모조리 금속 안으로 수용해 가다듬는 것이 가능했다.
- 깡!
앞으로 몇 번 더 망치를 내리치면 무구가 완성될까?
직감하건대, 이것이 완성되는 순간 강신혁은 더 이상 가이아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가이아 역시 그렇게 느낀 모양이었다.
- 깡!
[영리한 수법이군, 모루. 하지만 나 역시 모든 세상을 관장하는 존재. 자네가 카이랄을 직접 다룰 수 있을지는 몰라도, 카이랄로부터 태어난 몬스터들은 뜻대로 할 수 없음이니……!]
"아, 드디어.”
강신혁이 팔게 중얼거렸다.
그 순간, 세상이 열렸다.
[로키!]
[쯧…… 알겠어!]
세상이 열렸다는 표현은 과장이 아니었다.
본래 가이아 본인이 머무르던 소세계처럼 완전히 타 차원과 단절되어 있던 요르문간드의 본진에, 갑자기 무수한 숫자의 게이트가 생겨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로키. 요르문간드의 통제권을 지닌 로키가 가이아의 명에 따라 모든 세상으로 퍼져나간 몬스터들을 불러들이고 있었다!
“가이아! 드디어 완전히 미쳐버렸나!”
“아니, 기회야!”
셀 수도 없이 쏟아져 나오는 몬스터들.
제아무리 초월자들이라도 당황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서, 그러나 강신혁만은 눈을 빛내고 있었다.
영력과 파천기로 이루어진 망치의 움직임도 여전했다.
- 깡!
"슈, 게이트를 통해 회원들을 불러들여!”
“아하, 오게이!”
외부로 통하는 문을 완전히 연다는 것은 불청객을 맞아들일 각오도 되어 있다는 뜻이렷다.
몬스터들을 소환하느라 문이 열린 틈, 그 잠깐의 틈을 이용해 슈가 관리자와 소통해, 모든 히어로 유니버스 회원들을 이곳으로 소환했다!
물론 게이트가 열렸다고 그렇게 빨리 일을 진행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슈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성만 있다면 모든 과정을 생략해버리는 것이 가능하다.
그 결과…… 관리자의 능력의 한계를 넘어, 이 자리에 모든, 말 그대로 온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히어로 유니버스의 회원을 불러들이는 것이 가능했다.
- 깡!
“뭐야 이거!?”
“차원 퀘스트? 이거 왜 강제 …… 어?”
“몬스터다!”
사실 대부분의 히어로 유니버스 회원들은 모두가 그 세상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재능의 보유자들이지만, 요르문간드나 히어로 유니버스에 얽힌 깊은 비밀에 대해서까지는 깊이 인지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무슨 얘기냐면, 어디까지나 히어로 유니버스의 겉으로의 목적 - 즉 요르문간드의 몬스터를 처치하는 데에 혈안이 되어 있는 정의의 ‘히어로’들이라는 얘기다.
- 깡!
“다들 몬스터랑 싸워!”
“여기 혹시 요르문간드 본진? 싸워! 다 쳐죽여!”
"흐아아아아압!”
그런 이들을 몬스터가 넘쳐나는 세상으로 불러들였으니 살판이 나지 않겠는가?
비록 VIP가 아니라고는 해도 대부분 스테이터스는 현계한도(SSS+)에 이르렀거나, 아슬아슬하게 못 미치는 수준.
일반적인 몬스터를 상대하기에는 딱 맞는 수준이었고, 심지어 대부분 제 능력보다 뛰어난 재능, 특기를 갖고 있는 경우가 많았기에 몬스터를 대량학살하는 재주에 있어서는 VIP 회원들보다도 오히려 뛰어난 경우마저 있었다.
- 깡!
“뭐야, 아까부터 망치질 소리……."
“앗, 혹시 모루!? 모루잖아!”
“모루의 능력이 우리에게로 흘러든다…… 뭐야, 그냥 대장장이 아니었어?”
"어찌됐든 좋아, HP 대량획득 찬스니까!”
그리고, 히어로 유니버스의 회원들은, 대부분 강신혁이 만든 무기를 지니고 있었다.
수백을 넘는 숫자의 회원들은 곧 강신혁의 능력에 의해 자신과 무구의 능력이 빼어나게 증폭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쯧……!]
히어로 유니버스의 회원이라면 몬스터를 적대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
그렇기에 가이아는 오히려 지금 상황에서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강신혁을 비롯해 츠쿠요도 슈도 히어로 유니버스에서는 상당한 유명인사였고, 그들을 알아본 회원들은, 심지어 강신혁에게 버프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이들은 순식간에 그들을 중심으로 방진을 구축하기에 이르렀다.
- 깡!
그런 상황에서 몬스터를 소환한 당사자인 가이아가 자신의 정체를 고백한다면 그 누가 그녀를 신으로서 취급하겠는가?
그렇기에 그녀는 입을 꾹 다물고 뒤로 조금 물러났다.
그 대신 나선 것은 거인화한 로키였다.
[히어로 유니버스의 회원 숫자도 너무 늘어나긴 했지. 안 그래도 좀 줄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었어!]
숫자로는 헤아릴 수 없는 막대한 양의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오는 와중, 그 일부가 로키에게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건 강신혁의 단조 작업과 같은 복잡하고 격이 높은 공정이 아니라, 단지 로키 자신의 몸에 박힌 카이랄을 매개로 몬스터들을 마구 빨아들여 흡수할 뿐인 난폭한 행위였다.
다만 단순하고도 극적인 효과를 갖고 있어서, 로키의 신장이 순식간에 세 배, 네 배 이상으로 불어나는 결과를 낳았다.
"괴물!?”
"큭, 크흐으……."
로키의 변신은 다른 결과도 낳았는데, 바로 야누스의 기운을 압박했다는 점이다.
안 그래도 마기를 억누르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던 야누스에게까지 로키의 흡인력이 닿아, 그녀의 내부에 억눌려져 있던 마기가 미친 듯이 반응하며 수면 위로 튀어 오르려 하고 있었다.
- 깡!
"조금만 더 참아, 야누스.”
“모루……!”
"후배!”
"신혁!?”
이나희와 엘레노어가 나타난 것이 바로 그 타이밍이었다.
아무래도 회원들을 불러들이는 것이 가입한 순서대로였는지, 가장 최근에 가입한 그 둘이 가장 늦게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사실, 강신혁은 이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기도 했다.
“나희 선배, 잘 왔어.”
"이제 나 졸업하니까 선배 말고 누나라고 부르…… 와, 뭐야, 이 난리 중에 너.”
- 깡!
출발하면서 관리자에게 대강의 설명은 들었기에 단단히 각오를 하고 찾아온 두 사람이었으나, 몬스터가 사방에서 폭주하고, 히어로 유니버스 회원들이 날뛰는 가운데 사람들 속에서 홀로 금속을 매만지고 있는 강신혁의 모습은 정말이지 초현실적이었다.
"빨리 붙어! 룬을 만들어줘.”
“아, 알겠어. 해보자고!”
이나희는 이렇듯 급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도 강신혁이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에 어딘가 우월감과 만족감을 느끼며 그의 곁으로 다가붙었다.
반면 엘레노어는 입맛을 다시곤 전방으로 뛰쳐나갔다.
계속해서 몬스터들을 빨아들여 힘과 덩치를 불리고 있는 로키가, 다른 모든 것을 개무시하고 강신혁을 향해 일직선으로 달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 깡!
“다들 로키를 막아!”
“무기가 완성될 때까지만 막으면 돼!’’
[VIP 회원들도 지금의 나를 맞상대하지 못해! 나중에 다 설명해줄 테니 얌전히 찌그러져들 있으라고!]
불어난 자신의 덩치에 걸맞게 거대화한 대낫으로 전방을 마구 긁어내는 로키.
그 궤적 안에 들어온 모든 것이 부식하고 약화되는 저주를 담고 있었다.
[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 ]
“칫!”
"무, 물러나.”
1대1로는 다른 VIP 회원들도 그를 상대하기 힘든 수준이었으니, 일반 회원들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대낫은 흉험한 빛을 발하며 허공에 무수한 숫자의 궤적을 남겼고, 그것들은 소멸하지 않고 마기의 흐름에 따라 함께 날뛰며 회원들에게 추가적인 타격을 가했다.
방어구와 무기가 부식해 파괴되고, 사지가 잘려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는 회원들.
엘레노어 역시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궤적에 창을 마주 내쏘아 간신히 막아낸 것은 좋았으나 힘의 차이를 견뎌내지 못해 속절없이 뒤로 물러나고 말았다.
옆에서 날아든 거대한 늑대의 입이 대낫을 물어뜯은 것은 그 직후의 일이었다.
[로키이이이이이!]
[미랑, 눈 돌리고 있어도 괜찮겠어? 시카투스와 아스칼딘이 있는데.]
[하, 이쪽에도 회원들이 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이 다소 불리해진 것도 사실이었다.
야누스는 마기의 층동을 견뎌내는 것만도 힘들어 아예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고, 슈는 능력을 과도하게 사용한 탓에 리타이어 직전.
호루스는 아스칼딘을 견제하느라 움직이지 못했고, 츠쿠요는 그림자로 숨어든 시카투스를 찾아내려 여우불을 몇 개씩이나 만들어내고 있었다.
- 깡!
“모루는 나만 믿으라고!”
"고마워, 미양.”
작은 덩치와 가녀린 외형을 지닌 요정 미양은 마법과 활의 명수.
그녀는 강신혁의 머리 위에 자리를 잡고 앉아, 그에게 적의를 품고 다가오는 모든 것들을 마나로 빚어낸 화살로 요격했다.
강신혁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만큼 가장 큰 버프를 얻고 있는 그녀는 본래의 능력보다 훨씬 큰 활약을 해낼 수 있었다.
가이아의 계산이 어긋난 이유를 고르라면, 아마도 강신혁의 버프 능력을 고려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크리라.
- 깡!
[큭……! 어쩔 수가 없군요!]
이대로 다른 이들에게 맡겨두면 결국 일을 그르치겠다는 확신이 선 순간, 가이아는 결국 본색을 드러냈다.
[어디 내 빛을 얼마나 받아낼 수 있는지 시험해보지 않겠나, 모루!]
“꺄아아악!?”
빛에는 소리가 없지만, 그 순간을 묘사하라고 한다면 강신혁은 폭탄이 터졌다는 표현을 할 것이다.
무조건적으로 빛이 수렴하게 되어 있다면, 그것을 궁극의 한 점으로 응축해 그의 팔과 함께 금속을 통째로 터트려버리겠다는 각오로 쏘아낸 빛의 씨앗.
누구도 막을 새 없이 날아든 빛이 금속에 작렬해…… 가이아가 익히 예상한 대로, 주체할 수 없는 끔찍한 폭발을 일으켰다.
- 깡!
막대한 양의 영력과 파천기가 순환하고 있음에도 끔찍한 타격을 받은 강신혁이, 비로소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 깡!
그러나 망치는 그의 육신과는 관계없이, 그의 초월적인 의지력에 의해 움직이는 영력과 파천기로 통제되고 있었다.
- 깡!
"됐다, 후배!”
빛의 일격을 모조리 강신혁이 받아낸 덕에 무사했던 이나희가(비록 눈이 멀긴 했지만 이 정도는 히어로 유니버스의 거래 게시판에서 판매하는 상품으로도 무사히 회복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한순간 기쁨의 비명을 질렀다.
"후우…… 그래, 됐어.”
[이런…… 안 돼!]
무릎을 꿇은 채 숨을 몰아쉬던 강신혁이 고개를 들어 올리며 작게 웃었다.
그의 눈앞에 천천히 떠오르는 한 자루의 바스타드 소드.
빛과 어둠이 섞여, 혼돈 속에 조화를 이루는 그 검은 일반인은 인식조차 하지 못할 모양을 띠고 있었다.
이 우주의 모든 몬스터와 초월자들을 끌어들이는 생난리를 친 끝에 완성된 검이 그곳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