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7화. < Chapter 60. 낳는 자 - 5 >
언젠가 강신혁이 츠쿠요에게 요르문간드의 본진에 관해 논한 적이 있다.
히어로 유니버스와 요르문간드의 비밀에 대해 깊이 알고 있는 츠쿠요마저 그곳을 찾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굉장히 회의적이었는데.
그것은 바로 가이아가 직접 그 세계를- 카이랄로 구성된 소세계를 감추고 있기 때문이었다.
야누스와 로키에게 카이랄을 박아 넣은 것도 가이아였을 테니 그것도 당연한 일이지만, 역시 이 세상은 가이아에 의해 철저하게 통제되고 있었던 것이다.
“몬스터!”
"모이시게!”
그들이 세상에 떨어지는 그 순간, 마치 미리 명령을 받고 대기하고 있던 것처럼 무수한 몬스터의 공격이 날아들었다.
그러나 미랑이 두꺼운 꼬리로 일행을 순식간에 말아 감싸며 보호막을 형성해, 그 모든 공격을 완벽하게 차단했다.
- 쾅!
직후, 묵직한 소리와 함께 떨어져 내린 그들은 사슬에서 벗어나기를 포기하고 몬스터들과 합류하는 가이아와 대치하며 사방을 살폈다.
한 명 한 명 초월자의 격을 지닌 이들임에도 불구하고, 거울로 이루어진 세상은 그들의 기운을 너끈히 받아들여 금 하나 가지 않았다.
"카이랄……."
"이게, 모루가 만든 것이라고.”
"하하, 하하하…… 정말 말도 안 돼.”
그 세상이 품은 고요하고도 음침한 마기에 초월자들조차 정신이 아찔해지고 말았다.
가이아의 소세계에서는 단순히 초월격의 빛의 힘을 막아내느라 마력을 소모해야 했다면, 지금 이 세상에선 방심하는 순간 마기에 침범될 것만 같은 정신적 소모가 심각했다.
다만 VIP 회원이 아닌 밀리아와 콰티는 오히려 한결 편해진 듯했다.
강신혁은 그 순간 뭔가를 깨닫고 눈을 반짝였지만, 그가 입을 열기 전 가이아가 강신혁의 영사를 완전히 끊어내며 소리 질렀다.
[모루, 이젠 나도 그냥은 넘어갈 수 없겠네! 자네를 내 유일한 친우이며 동반자라 여기고 있었는데!]
"하, 친우이며 동반자? 모루가 만들어낸 것이나 마찬가지인 세상을 마음대로 주무르고 있었던 주제에……."
사방을 뒤덮은 무수한 거울 사이로 반사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미랑이 이를 드러내자 호루스가 맞장구를 쳤다.
“모든 세상의 관리자를 자처하는 이라면 더더욱 해선 안 될 일이지. 가이아, 역시 당신에게 책임을 물 수 밖에 없겠어.”
[누구도 내게 책임을 물 수 없습니다. 자식이 어미에게 책임을 무는 일이 가당키나 하겠습니까?]
"누가 엄마라는 거야, 이 자아분열증 걸린 년이.”
가이아는 이 지경에 이르러서까지 고고한 태도를 유지하려 하는 듯이 보였으나, 야누스가 그녀의 말을 받아 빈정거렸다.
[야누스, 언제까지 그 어리석은 투정을 계속할 셈이지?]
"이봐, 자아분열증 맞지.”
카이랄로 뒤덮인 세상.
아마도 그 시작은 모루가 만들어낸 큰 거울 하나였겠지만, [자장가]가 끊임없이 분열하고 증폭되는 능력을 지녔듯 그 최초의 거울 역시 끊임없이 확장되며 하나의 세상을 뒤덮고 있었다.
다만 다른 점은, [자장가]가 모든 에너지를 흡수하고 잠재우는 역할이라면 카이랄은 바깥세상에서 태어나는 모든 것의 인자를 받아들여 그 반대편의 무언가, 괴물을 새로 뱉어내는 생산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
그것은 실로 영리한 장치였다.
카이랄이 존재하기 전까지는 인류와 괴물의 비중이 뒤죽박죽이었는데, 전생의 모루는 만상(萬象)을 ‘하나의 거울’을 중심으로 절반, 즉 인류와 괴물로 강제로 갈라 균형을 맞춘 것이다.
그것은 어떤 세상에서는 보다 강한 마물이 탄생하는 계기를 낳았지만, 동시에 인류의 수준보다 지나치게 많이 범람하는 몬스터로 인해 허무하게 하나의 세상이 소멸하는 일을 막는 데에도 공헌했다.
몬스터에게는 규율과 법칙을 부여하고, 인류에게는 대적할 상대를 확고히 인식시켜 자멸을 막는 결과를 낳았으니, 사실 어리석은 인류에 대한 징벌을 하고자 했던 모루의 의도와는 한참은 빗나갔다고 할 수 있으리라.
"잘했어, 가이아. 그럼 오랜만에 날뛰어볼까.”
이 환경에서 가장 많은 힘을 받는 것은 누구도 아닌 로키였다.
그는 순식간에 변태(變態)하여, 체고 수 미터에 달하는 거인으로 모습을 바꾸었다.
세상에 가득 차 있던 마기 중 상당수가 그에게로 흘러들어가며 그를 강화시켰다.
[하, 기분 좋아. 대체 본진에서 날뛰는 건 얼마만이지?]
"빌어먹을, 로키. 날 정말 죽일 셈이야?”
반대로 야누스는 이 세상에 떨어지고부터 그리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것은 신살검에 박힌 드래곤 하트의 파편만으로는 제정신을 유지할 수 없을 만큼, 지금 이 공간에 가득한 마기가 야누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얘기였다.
[난 지금의 균형이 마음에 들거든, 야누스……. 죽이지는 않더라도 조금 두들기다 보면 네 정신이 돌아오지 않을까 싶은데. 아니면 그 신살검을 부수면?]
“로키. 지금 모루가 내게 만들어준 무구를 부수겠다고 한 거야……?”
[오, 진짜로 화났네. 역시 넌 화내는 모습이 제일 어울려.]
"......."
사방에서 부풀어 오르는 마기, 마력 그리고 영력이나 요력 따위의 에너지에 강신혁은 숨이 턱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지금 이 순간도 끊임없이 생성되고 있는 몬스터들은 본능적으로 강신혁 무리를 적으로 규정하고 다가오고 있었으며, 가이아 역시 제대로 싸우려는 것인지 본인의 에너지를 응집시켜 허공에 거대한 빛의 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각오하게, 조금 아플 거야.]
“윽, 같은 편이지만 저 빛은 꺼려지는군.”
“몬스터들과 공투라니…… 기분 더럽지만 히어로 유니버스의 회원으로서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 할 때가 온 건가. 너희, 슬슬 정신 차려야 할 거다.”
시카투스는 기회를 노리려는지 어둠 속에 녹아들었고, 아스칼딘은 강신혁으로부터 구입한 대검을 쥐고 몬스터들과 합세해 포위망을 좁혀왔다.
“흥, 그래 한 번 해보자고.”
그 모습에 코웃음을 친 슈가 주먹을 앞으로 뻗자, 삽시간에 그들을 향해 다가오던 수천의 이형의 괴물의 모습이 지워졌다.
아무래도 못 본 사이 더욱 강해진 모양이었다.
“으응, 이 정도면 준비운동으로는 딱이겠네.”
“아무래도 제 이름이 지나치게 가벼워진 모양이네요. 같은 VIP라고 해서 수준도 같다고는 생각하지 말아줬으면 해요."
[나도 준비되어 있다. 다행히도 저 몬스터들 정도라면 쓰러트릴 수 있을 것 같아.]
"후후, 모루와의 공투인가……."
츠쿠요는 물론이고 콰티, 밀리아까지. 한 명 한 명이 하나의 세계를 감당하기에 충분한 강자들이 강신혁의 곁에서 전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자연히 그들을 아군으로 인식한 강신혁의 파천기가 일행 모두를 휘감으며 그들의 전력을, 나아가 그들의 무구를 진화에 가까운 수준으로 강화해 주었다.
“이건 또 뭐야? 이 정도면 버퍼로서도 초월자에 준하는 수준 아니야?”
미양이 요정 사이즈로 제작된 꽃줄기의 활을 손에 쥐며 까르륵 웃곤 강신혁의 머리 위에 착지했다.
미양뿐만이 아니다.
미랑과 호루스를 비롯해 다른 이들도 강신혁이 만들어준 무구를 갖고 있었기에 전력은 거의 두 배가 되었다고 봐도 좋았다.
[좋아, 시작하지.]
"고작 이 정도 숫자로 우리를 억압하려 했나? 모루에게는 손끝도 대지 못할 거다.”
그러나 정작 강신혁은 무기를 쥐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들고, 영력을 뻗어내 이 세상을 감지했다.
신, 인간, 초월자들, 몬스터들.
모두가 한데 모여 난장판이 되어가는 가운데, 당연히도 카이랄은 그들 모두에 반응해 거대한 ‘거울상’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가이아는 그것을 모르고 있는가? 그래, 아무래도 모르는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가이아는 카이랄을 통제할 뿐 결국 그 주인이 되지는 못했으니까.
[아까도 말했지만 모루를 죽일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조금 죽어도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겠지요.]
"싸이코년.”
그녀가 이 세상의 주인인 것처럼 보인다면, 그것은 단지 그녀가 카이랄의 파편을 야누스와 로키에게 박아 넣고, 그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요르문간드를 통제하는 꼼수를 부렸기 때문이다.
“어디 가이아 배때지에도 구멍이 뚫리나 보자!”
“시카투스를 막아, 츠쿠요!”
"후, 제게 고작 그 정도 일을 시킬 셈인가요? 화호, 당신에게 맡기죠.”
[나보고 VIP 회원을 맡으라는 건가!?]
하지만 강신혁은 이 세상에 들어오고 나서 실감했다.
카이랄을 만들어낸 것은 비록 전생이라지만 확실하게 그 자신이며, 제아무리 원망과 절망을 담아 만들어낸 물건이라 해도 그것은 여전히 자신을 어버이로 여기고 있다는 것을.
‘그렇다면 탄생한 몬스터는 몰라도, 무엇으로도 변화하지 않은 순수한 마기의 방출을 제어하는 건 가능하겠지.’
강신혁은 품에서 하나의 쇳덩어리를 꺼내들었다.
그것은 과거 지구의 랭킹 1위였던 오주영이 요르문간드의 힘을 얻어서까지 만들어낸 지고의 마검 [엑스칼리버 - 디스페어]와, 모루가 만들어낸 마검 디스팔로르가 세월 속에 단련되어 진화해 탄생한 [아비수스]를 한데 녹여 합쳐낸 물건이었다.
디스페어와 아비수스의 상세한 능력은 끝까지 알 수 없었지만, 그는 디스팔로르의 능력만큼은 알고 있었다.
[디스팔로르 (Dispalor)]
[SSS]
[특수능력 - 미몽(述夢), 암염(暗染), 심마(心魔)]
*미몽 : 검과 맞닿은 이 모두를 벗어날 수 없는 꿈속으로 끌어들인다. 꿈에 빠지면 빠질수록, 현실은 썩어 들어간다.
*암염 : 모든 것이 어둠으로 물든다. 어둠의 힘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되며 어둠 속에서 누구보다도 강대해질 수 있으나, 완전히 어둠으로 물들게 되면 끝이다.
*심마 : 마음의 악을 키운다. 적으로 인식한 자 모두를 크게 약화시키며 정신적으로 취약한 상태로 만든다. 마음이 완전히 무너지면 잡아먹는다.
디스팔로르는 지닌 능력부터 분위기까지 카이랄의 영향을 질게 받았으며 그것으로부터 진화한 아비수스는 그보다 더할 터였다.
하물며 디스페어는 인간에서 요르문간드로 넘어간 오주영이 혼신의 힘을 다해 만들어낸 정수.
그 두 가지를 합쳐 하나로 만들어놓았으니, 당연히 카이랄과의 궁합은 발군.
그 혼자선 감당할 수 없는 기운이었으나(무려 전생의 능력을 완전히 되찾고도 아직까지 완성을 못 시켰을 정도였다.), 지금 이 세상에는 이 금속의 기운을 보조해주는 에너지로 가득했다.
이런 형태로 이곳에 오게 될 줄은 몰랐지만, 그래도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 셈이다.
실제로 그가 카이랄과의 교감을 시도하고 곧장, 거울로 이루어진 세상이 극렬히 반응하며 그를 향해, 다시 말해 그의 손에 들린 어두운 빛의 금속을 향해 미친 듯이 마기를 쏟아붓기 시작했다!
[……모루!?]
"모루가 뭔가 한다, 보호해!”
"막아, 일단 팔 하나를…… 크학!”
[하!]
강신혁의 그림자에서 솟아난 시카투스를 업화가 휘감고 불태웠다.
비교적 최근 히어로 유니버스에 가입한 콰티였으나, 그녀는 몬래 지구보다 격이 휩씬 높은 세상에서도 불을 다루는 것으로는 가장 뛰어났던 염인.
히어로 유니버스와 접한 이후로 턱없이 빠르게 성장한 그녀의 불꽃은 그림자로 이루어진 시카투스를 산산조각으로 흩어놓고도 남을 위력을 갖추고 있었다.
"모루를 공격해!”
물론 그 정도로 시카투스가 죽는다면 그는 VIP 회원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다급히 근처의 그림자에서 솟아난 시카투스가 고함치자 거인으로 화해 야누스를 짓밟던 로키도, 창을 쥐고 미랑의 이빨을 향해 달려 들던 아스칼딘도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가이아가.
[모루…… 여기서까지 뭔가를 만들려 하다니, 정말 자네답구만.]
지금 취하고 있는 여성의 모습에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너털웃음을 터트리고는.
[하지만 안 돼. 허락하지 않겠네.]
세상을 반으로 갈라놓을 위력을 품은 빛의 창을 쏘아냈다.
“큭!?”
가장 먼저 거기에 반응한 것은 주위에 있던 시카투스였다.
본의 아니게도 가이아에게 팀킬을 당한 시카투스가 허겁지겁 도주하자, 그와 맞서던 화호, 콰티가 이를 악물며 화염의 방벽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빛의 창은 그것이 채 완성되기도 전에 그것을 돌파해, 강신혁이 쥐고 있던 금속에 직격했다.
마치 자석으로 끌어들이기라도 한 듯 정확한 명중.
그것을 쏘아낸 가이아조차 자신의 눈을 의심할 정도였다.
당연히도 도중에 다른 VIP 회원들에게 막히리라 생각했으니까.
[물여우, 넌 뭐해!]
"모, 몬스터를 막고 있었단 말이다!”
콰티의 비명에 밀리아가 눈물지으며 대꾸했지만, 강신혁은 지금 두 사람을 신경써줄 경황이 없었다.
"모, 모루, 괜찮아? 안 막았어도 되는 거야?”
“괜찮다니까, 미양.”
강신혁의 두 눈이 찬란하게 빛났다.
"의도한 대로니까.”
어둠의 힘으로 폭주하던 금속에 응축된 빛의 힘이 직격해 격렬한 반응을 일으키며 녹아내린다.
지금이야말로 단조를 시작할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