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3화. < Chapter 60. 낳는 자 - 1 >
“이거 죽어, 진짜 죽는다!”
“안 죽으니까 버텨!”
게이트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몬스터들은 대부분 온몸에 곰팡이가 돋아난 키메라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몸뚱이도 더럽게 단단한데 한 대 맞을 때마다 더러운 포자를 퍼트려, 그것으로 적을 오염시키고 방어력을 낮추고 마력을 빨아먹는 등 온갖 디버프를 흩뿌리는 악질적인 몬스터!(가장 빠르게 적을 공격해본 백인하가 몸으로 확인했다.)
“디버프 이거 어떻게 해!”
“비타가 분석 중이야, 일단 포션 마셔!”
“젠장, 상태 완전히 안 돌아오는데…… 포자 조심해!”
놈들은 마치 무수한 몬스터를 한데 합쳐 형태는 물론이고 능력까지 죄다 섞어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한 마리 한 마리씩은 상대할 수 있지만 놈들이 작정하고 한데 뭉쳐 포자를 흩뿌려대며 덮쳐오는 데에는 일행 중 가장 강한 축에 드는 브리짓과 엘레노어마저 질색을 할 정도였다.
- 캬학!
“하아아아! 신혀어어어억!”
- 기이이이이이이이!
창대를 휘둘러 세 마리의 키메라를 단숨에 밀쳐내더니, 강한 기합과 함께 창끝으로 기운을 뿜어내 자신을 덮쳐오는 포자를 소멸시키는 엘레노어.
아주 멋진 활약이었지만, 한창 게이트로 영력을 뻗어가며 분석하던 강신혁은 그녀의 기합성을 듣곤 질색하며 외쳤다.
“내 이름 외치면서 기합 넣지 마!”
“그치만 이게 제일 힘이 잘 들어간단 말이야!”
“아아아!? 엘리 너 그거 성희롱이지! 나도 요즘 참고 있는데!”
“나희 선배는 드론이나 제대로 조종해!”
랭크측정이 불가능한 게이트답게 몬스터의 수준이 높긴 높다.
모든 스테이터스가 X2랭크를 돌파한 강신혁에게는 별 것도 아니었지만, 아직 MaB의 다른 회원들에게는 조금 버거운 수준이었다.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강신혁이 이들에게 버프를 주지 않을 때의 이야기.
언제나 그들의 기운을 북돋워주며 성장속도를 증폭시켜주는 것을 패시브 버프라고 한다면, 함께 전투를 할 때 작정하고 기운을 집중 시켜주는 액티브 버프는 그들의 전력을 거의 두 배 가까이 끌어올리는 수준이었다.
“응…… 핫!”
마구 밀려오는 키메라들을 상대로 어떻게든 밀려나지 않으려 버티던 중 기운이 증폭되는 것을 느낀 백인하가 한 발로 굳게 바닥을 딛고는 다른 한 발로 적들을 걷어찼다.
거센 충격을 버티지 못한 키메라들이 터져나가며 백인하에게 포자를 쏟아냈으나 그가 만들어낸 바람이 포자를 반대방향으로, 그러니까 다른 키메라들이 있는 쪽으로 날아가게 만들었다.
몇 마리인가의 키메라를 몰아서 정리한 그는 누가 애인 아니랄까봐 오혜나를 덮치던 키메라를 밀쳐내 가장 먼저 그녀의 안전을 챙기며 강신혁에게 투정했다.
“시뇨기! 더 강화해줄 수 있는 거였으면 빨리 하지 좀!”
“아니, 항상 내가 주는 버프에 익숙해져 있으면 내가 없을 때 곤란해질 거 아냐. 이게 다 너희가 언제 어느 때라도 방심하지 않게 도와주려는 나의 마음이야.”
“랭크불명 게이트에서 뭔!”
다들 적의 랭크를 확인할 수 없다는 사실에 지나치게 쪼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강신혁이 보기에, 이 몬스터들은 확실히 강하긴 강하지만…… 현계한도를 넘어선 몬스터들 특유의 초월적인 기세가 느껴지지는 않았다.
까놓고 말해 진짜로 놈들이 X-랭크 이상의 몬스터였더라면 한 놈을 상대하는 데 강신혁을 제외한 나머지 팀원들이 전부 달려들어야 했을 것이다.
“역시 가이아 시스템에 문제가 생긴 게 맞나 보네요.”
- 이렇게까지 확인할 문제는 아니었습니다만, 확실히 그렇군요.
강신혁이 본격적으로 버프를 몰아주자 마스크드 바커스 팀원들은 놈들을 마구 밀어붙이며 조금 전까지 당했던 굴욕을 갚아주었다.
특히 어느 정도 대열이 안정되고 나자 브리짓이 버프요원으로 전환해 팀원들의 능력을 한층 더 끌어올려, 토벌에 가속도를 붙였다.
“비타, 어때?”
강신혁은 나노봇들을 활용해 키메라가 뿜어내는 포자들을 정화하는 한편으로 놈들을 분석하던 비타에게 질문을 던졌다.
물론 그도 영력으로 적의 수준을 파악할 수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직관의 영역.
적을 분석해 데이터로 뽑아낸다면 그보단 비타가 더욱 정확하고 믿을만했다.
“네, 아빠 말이 맞아요. 기껏 해봐야 현계한도에 이른 수준이네요.”
“이 게이트 안에는 이 괴상한 키메라 놈들밖에 없어. 즉 랭크를 매긴다면 역시 현계한도 수준이란 얘기지……."
여기서 말하는 현계한도란 즉 SSS+랭크.
물론 그것만 해도 굉장하다.
작년 신영의 제1체육관에 나타났던, 야누스를 제외한 몬스터들과 동급이란 얘기니까.
다만 그 정도로는, 지금 팀원들의 활약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그리 무서운 수준은 아니었다.
“아, 포자 백신이 완성됐어요. 주사해줄 테니까 이제 다들 그냥 포자를 뒤집어써도 돼요!”
“절대 싫은데요!? 포자에 또 무슨 능력이 있을 줄 알고……."
“완벽하게 파악했으니까 괜찮아요. 그리고 이미 주사했어요~”
“비타!?”
적의 분석과 함께 놈들의 디버프 능력을 완전히 무시하는 포션의 개발에 성공한 비타가 나노봇으로 모든 아군에게 주사를 완료했다.
그럼에도 팀원들이 적의 포자를 필요 이상으로 경계하느라 공략이 늦어지자, 강신혁이 한숨을 내쉬며 그들을 달랬다.
“괜히 경계할 필요 없어. 이것들 지금 이상으로 뭐 더 강해지고 그런 거 없으니까 막 밀어붙여도 돼.”
“랭크불명이라며!”
“지금 알아냈어. SSS+ 수준이야.”
“최악이잖아!?”
“하지만 그 정도면 우리가 아는 수준이네.”
그 말대로.
시험 삼아 브리짓이 호쾌하게 키메라의 머리통을 박살냈으나, 포자는 정말로 그녀에게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
“오, 진짜 괜찮은데?”
“그러면 이제 여기 정리하고 빨리 나아가자. 게이트에 들어온지 30분인데 아직까지 제자리야.”
“그런데 이 게이트, 조금 이상해. 구조가 너무 단순하다고 해야 되나.”
그건 강신혁도 처음부터 생각했던 것이다.
처음 게이트에 들어온 순간 느낀 것이 바로 공동이 넓다는 점.
그리고 난이도가 높은 게이트에 흔히 있는 함정이나 미로 따위의 구조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는 점.
마치 인공적으로 건축한 거대한 건물의 일부를 뚝 떼어 가져다놓은 느낌이었다.
“이거 진짜 게이트야……? 혹시 환각에 걸렸다든가.”
“일단 몬스터는 다 진짜니까 확실하게 죽여둬.”
정말로 뭐가 없나 싶어 게이트 끝까지 영력을 뻗어내 분석하던 강신혁도 결국 만족스런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다만 한 가지 찾아낸 것은 있었는데 그건 바로 이 게이트가 다른 게이트로 이어지는 구멍을 갖고 있다는 점이었다.
- 요르문간드의 수법이군요.
“뭐 그렇죠. ……초대장이려나?”
이 게이트가 만약 요르문간드가 일부러 만들어낸 것이라면, 인류 최강의 능력자인 강신혁이 게이트 안으로 들어오리라는 것 정도는 예측할 수 있었을 터.
그렇다면 그 게이트 너머에 무엇이 있을까…… 강신혁은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많은 불안감과, 아주 조금의 흥분이었다.
“야누스가 부르는 느낌이 드네.”
- 가시겠습니까?
“가야겠죠.”
얼추 상황정리가 되었다.
카메라맨을 힐끗한 강신혁은, 자신의 활약이 눈에 띄지 않게끔 조절하면서 일행과 함께 게이트를 빠르게 공략했다.
“뭐야, 랭크불명이라길래 괜히 쫄았네.”
“벌써 끝이야?”
“아, 출구다.”
“멋졌습니다, 여러분! 영상반응도 끝내줍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과 카메라의 보신만을 챙기던 카메라맨이 엄지를 치켜세웠다.
랭크불명 게이트라며 그들이 진입하기도 전부터 온갖 미디어에서 엄청나게 강조를 해댔을 텐데, 정작 게이트 공략이 너무 시시해서 다들 실망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마스크드 바커스가 아니면 미지의 몬스터를 상대로 조금의 희생도 내지 않고 밀어붙이는 건 불가능하죠. 시청자들이 원하는 건 이런 압도적인 힘입니다!”
“알았어요, 알았으니까 이제 촬영 끝내고 나가요. 다 끝났으니까.”
“무슨 말씀을, 게이트 밖으로 나온 여러분을 멋지게 촬영……."
“그러니까 나가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가장 먼저 카메라맨을 게이트 출구로 밀어넣은 강신혁은, 일행을 돌아보며 굳은 얼굴로 말했다.
“실은 아직 조금 남은 게 있어서, 난 잠깐 그걸 정리하고 갈게.”
“머야, 단숨에 수상해지는데에?”
바보인 주제에 이럴 때만 쓸데없이 민감해지는 브리짓이 눈을 빛내며 덤벼들었으나 강신혁은 가볍게 그녀를 밀어냈다.
“다들 먼저 돌아가. 진짜 별 거 아니니까. 아, 비타는 남아줄래?”
“네!"
“아아아아, 잠깐만, 후배. 나 안 남으면 엄청 후회하게 될 것 같은데!”
“그런 거 아니니까 돌아가.”
“신혁……."
“괜찮으니까. 빨리 나가서 사람들 안심시켜. 나는 먼저 돌아갔다고 해도 좋아.”
강신혁이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면, 아마 역할을 마친 외부의 게이트도 소멸할 것이다.
그가 그런 말을 하자 모두 눈을 가늘게 떴으나 더는 그를 추궁하지 못했다.
히어로 유니버스의 회원으로 인정받은 이나희와 엘레노어조차 동행을 허락받지 못했으니 무슨 말을 더 하겠는가.
"우쒸…… 이럴 때 소외감 느끼기 싫어서 그동안 열심히 한 건데, 결국 아무 의미도 없잖아.”
“지금은 봐줘. 나중에 같이 할 만한 일을 찾아볼 테니까.”
이나희의 말에 강신혁이 쓴웃음을 지으며 대꾸하자, 그런 말 한 마디로는 만족하지 못한다는 듯 그녀가 눈을 빛내며 그를 협박했다.
“너 다쳐서 돌아오면 확 덮쳐버릴 줄 알아.”
“어디 애 있는 남자한테.”
“그러니까 나랑도 만들자는 거잖아!”
응, 역시 말로는 안 되는 사람이다.
“엘리, 이 범죄자 데리고 빨리 나가.”
“웅. ……다치면 안 돼.”
“이거 놔아아아아아아아!”
엘레노어가 이나희를 제압해 함께 밖으로 나갔다.
백인하는 한숨을 내쉬며 오혜나와 같이 출구에 몸을 던졌고.
“혹시, 언니 흔적이라도 찾은 거야?”
“달라. 일단 관련은 있긴 한데.”
“그럼 나도!”
“괜히 목숨 버리지 말고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
‘‘으으으......."
마지막까지 버팅기던 브리짓도 끝내 반강제로 출구에 던져졌다.
“아빠, 저는 남아도 되는 건가요?”
“비타…… 너한테 이런 부탁을 해서 미안하지만, 유사시 상황을 대비해 클레어와의 연결을 남겨두고 싶었어.”
“괜찮아요. 제 역할은 처음부터 그거였으니까……!”
비타는 활짝 웃어 보이며 대꾸했다.
“그래, 고마워. 그럼 가자.”
강신혁은 그녀의 이마를 한 번 쓸어주곤 그녀의 손을 꽉 붙잡았다.
헤일로로부터의 연락이 날아든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 헤일로 님의 귓속말 : 그쪽으로 가면 안 돼, 모루 영감.
“헤일로……?”
- 앗, 헤일로 님……!?
당분간 헤일로와는 연락을 갖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지금 상황을 읽어내기라도 한 듯한 타이밍에 날아드는 메시지가 당황스러웠다.
더구나 관리자까지도 당황하는 모습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 헤일로 님의 귓속말 : 다시 말하지만 그쪽으로 가면 안 돼. 야누스 녀석이 곤란한 짓을 하고 있거든. 흠, 이번엔 조금 정도가 심해. 모든 것을 그르치게 될 수도 있어.
“왜 그러는 거지?”
- 헤일로 님의 귓속말 : 영감, 말투가……. 그래, 그렇군. 그렇다면 더욱 잘 알겠어. 지금 영감이 야누스를 찾아가면, 결과적으로 야누스에게도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질 거야.
짧은 말의 교환만으로 강신혁의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파악한 헤일로가, 마침 잘 됐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강신혁은 헤일로와의 관계가 격변할 것만 같은 예감을 받으며 일순 주춤하고 말았지만, 이미 엎지른 물을 주워 담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럼 내가 어떻게 하라는 거지? 이걸 무시하라고?”
- 헤일로 님의 귓속말 : 정확하네, 영감. 그 게이트 너머는 요르문간드의 영역이야.
“그래도 가야겠어. 그 상태의 야누스와는 원래 한 번쯤 얘기를 나눠보고 싶었거든.”
- 헤일로 님의 귓속말 : 그런가.
영원과 같은 정적이 흐른, 그 다음 순간.
- 헤일로 님의 귓속말 :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하지만 선택은 신중히 해야 할 거야, 모루. ‘지금의 자네라면’ 어떻게 해야 할지 잘 알 걸세.
- 헤일로 님의 귓속말 : 그럼, 오시게.
게이트가 무너졌다.
강신혁은 당황하는 비타를 잡아끌어 다급히 게이트 안으로 몸을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