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2화. < Chapter 59. 시공의 조율자 - 3 >
그 날은 드물게도 강신혁에게까지 출동요청이 떨어졌다.
전 세계 최초로 등급측정이 불가능한 수준의 이레귤러 게이트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것은 지난 반년 간 지구에 속한 초인들의 능력이…… 콕 집어 말하자면 신영에 소속되어 있는 초인들의 능력이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마스크드 바커스(요즘은 다들 줄여서 MaB라고 부르곤 했다. MB라고 부르면 기분이 나쁘기 때문이다.)에 속한 이들의 성장은 현저해서, 불과 1년 전에는 평범한 A랭크였던 오혜나조차 지금은 하이랭커 가운데서도 상위권에 위치해있었다.
“이제 지구인들도 슬슬 알아채려나, 자신들이 강해질수록 게이트의 수위도 높아질 거라는 사실을.”
집결시각은 지금으로부터 10분 후, 대운동장이라.
메시지를 확인한 후 느긋이 나갈 준비를 하다 문득 혼잣말처럼 내뱉은 말에, 관리자가 반응했다.
- 그럴 리가요. 인류는 영원히 쳇바퀴를 굴릴 겁니다. 설령 누가 알려준다고 해도요.
그저 한숨만 나왔다.
이전엔 그것을 악순환이라 여겨, 스스로 요르문간드의 근원이 되는 무언가를 부수기로 결심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 전생의 자신이 만들어낸 카이랄이었고, 설령 그것을 부숴 요르문간드를 없애버린다고 해도 마나를 얻은 인류는 결국 자기파멸로 인한 멸망을 맞이할 뿐이었다.
‘요르문간드 이전의 몬스터는 그저 발생할 뿐이었어. 요르문간드 이후의 몬스터는 통제된다. 전생의 내가 의도한 대로, 인간이 자신들끼리 싸울 틈이 없도록 효율적으로 몰아붙이고 있어……."
물론 그것만으로는 인류가 몬스터에게 멸망을 당할 뿐.
그렇기에 히어로 유니버스라는 범우주적인 집단이 그들을 견제하며, 문명이 이어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히어로 유니버스의 회원들이 요르문간드를 적대시하면서도, 그들을 쫓아 뿌리 끝까지 뽑아낼 생각을 하지 않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고.
전생의 기억을 완전히 되찾고 조금이나마 성숙해진 지금.
빌어먹게도 강신혁은 무척 인정하기 싫었던 그 사실을 인정하고 말았다.
“결국 이것도 전부 아슬아슬한 줄타기잖아.”
- 세계의 운영이란 그런 것입니다, 회원님. 모두가 가능성을 얻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뿐이죠. 그리고 회원님은 그들의 가능성을 굉장히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끄셨습니다.
“……오늘은 그래도 좀 침착하네, 관리자.”
- 지나치게 흥분했기에 그것을 억제하려 애쓰고 있을 뿐입니다. 회원님께 5,000,000HP 보너스!
“그래, 내가 괜히 말했지……. 어제도 그 이상으로 뿌렸잖아.”
- 관리자는 어제부터 계속 기분이 좋습니다!
그야 그렇겠지.
어제 모두가 기념할 만한 사건을 알게 되었으니까.
……일부는 그 얘기를 듣고 광분하기도 했지만.
“으응…… 나가?”
“게이트. 최대한 빨리 끝내고 돌아올게.”
“그러면, 나도……."
이제 막 눈을 뜬 클레어가 부산을 떠는 강신혁의 모습을 발견하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러나 강신혁은 당황하며 그녀에게 달려가 그녀를 도로 침대에 눕혔다.
“아냐, 자고 있어.”
“그래도……."
“괜찮으니까.”
"응......."
처음부터 그가 그렇게 나올 줄 알고 있었는지 제법 순순히 베개에 머리를 묻는 클레어.
강신혁은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아, 클레어의 머리를 쓸어주며 당부했다.
“뭐든 무리하지 말고. 알았지?”
“에이이, 뭘 벌써 그렇게 해. 이제 고작 3주라는데.”
“잘못될 때는 어떻게 해도 잘못되니까.”
“으, 응. 알았어. 그럼 뽀뽀.”
클레어와 짧은 입맞춤을 하고 방을 나왔다.
방문이 닫히자마자 절로 한숨이 나왔다.
“설마 정말로 아이가 들어설 줄은……."
- 작년 학교 측과 교섭해 정식 졸업장과 초인자격증을 취득한 게 다행입니다.
“그런 문제가 아니라, 내가 아직도 한국법으로는 미성년자라는 게 문제지……."
어제, 클레어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스갯소리지만 만약 강신혁이 아직까지 학생 신분으로 신영에 소속되어 있었더라면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되게 동요하고 있었으리라.
취임 초기만 해도 아직까지 세간에선 강신혁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주춤하는 부분이 있었지만, 지금은 이미 신영의 교관으로서의 입지, 뭣보다 국제초인랭킹 1위로서의 입지가 확고해졌다.
클레어도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아이를 갖고 싶다는 소리를 했던 것이겠고…… 아니, 그녀는 비단 그 때문만이 아니라, 본질적으로는 강신혁과의 보다 깊은 연결로 안심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긴 하지만.
‘괜히 걱정할 필요는 없는데도, 바보같이…… 아니, 바보는 난가.’
그녀를 안심시켜주지 못했다면 그건 강신혁의 잘못이다.
아무리 전생의 기억을 갖고 있으면 뭐하겠나, 그는 전생에도 한 번은 실패를 겪었는데.
다만 이번엔, 결코 그렇게 놔두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의 그는 단지 만드는 능력뿐만 아니라, 싸우는 능력까지도 갖고 있다.
소중한 누군가를 잃는 것은 이젠 지긋지긋했다.
‘……그래, 은아도.’
어쩌면 녀석은 너무 늦었다며 투정을 부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반드시 구하러 갈 것이다.
그것을 위해 그는 꾸준히 강해지고 있었다.
[강신혁 -X2랭크]
[특성]
파천룡(破天龍)(X)
[신체능력]
힘 - X2
민첩 - X2
체력 - X2+
[특수능력]
영력 - X2+
파천기 - X3
-[스킬]
파천무(X) - X+
호풍환우(X2) - X2
-공간지배 (X2+) - X2
다크 마스터리(X) - X
라이트 마스터리 (X) - X
파이어 마스터리 (X) - X
영혼독(X2) - X2
야금술 - X2-
감정 - X2
수리 - X2
“……좋아, 이만하면.”
- VIP 회원의 평균치는 아득히 뛰어넘었군요. 본래 힘이 강해질수록 성장속도는 둔화되기 마련입니다만…….
강신혁은 자장가의 주인이 되면서 한 번, 자신의 전생을 모두 되찾고 자아가 온전해지면서 한 번, 총 두 번의 큰 심적 변화를 겪었다.
그리고 그것은 자연스레 능력의 진화와 이어져, 그 사건으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았음에도 폭발적으로 능력이 성장하며 기어이 평균적으로 X2랭크를 상회하는 수준의 스테이터스에 이른 것이다.
자신의 한계를 맞이하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 히어로 유니버스의 회원이 강신혁과 같은 수준의 성장을 이루어내기 위해서는 최소한 200년 이상의 고련을 겪어야만 했다.
그건 VIP 회원 권한을 모두 되찾은 후 들어갈 수 있게 된 비밀 게시판에서 VIP 회원들끼리 서로 힘자랑을 할 때 들은 얘기를 취합해봤을 때 보아도 확실했다.
강신혁의 특성이, 다른 재능 넘치는 회원들의 세월조차 뛰어넘는 효용을 띠고 있다는 얘기다.
- 역시 회원님의 특성은 자기자신을 진화시키는 효과가 가장 뛰어나다고 판단해도 무리는 없겠습니다.
“관리자도 결과를 보고서야 아는 거야?”
- 물론입니다. 이전 불여우가 말했듯이, 회원님의 능력은 오직 회원님만이 정확하게 파악하실 수 있습니다.
정확하게 안다는 것은 중요하다.
강신혁도 자기자신에 대해 온전히 알게 된 지금에서야 이렇게 폭발적으로 능력을 성장시킬 수 있게 된 셈이니까.
그러나 때로는 안다는 것이 별로 좋지 않은 결과를 낳기도 한다.
“아, 진짜 못해먹겠네......."
“아무것도 하기 시로......."
“하……."
"......."
강신혁은 운동장에 드러눕기 직전인 이나희와 엘레노어의 모습을 보며 제 이마를 짚었다.
“당신들 뭐해.”
“의욕이 전혀 안 나……. 내가 아무리 잘해도 어차피 넌 언니 곁으로 돌아가는 거지? 하……."
“하아아아, 모든 게 덧없어……."
“가관이네 진짜.”
이미 촬영팀이 대기하고 있는데, 카메라에 노출되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이렇게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다니 과연 사람들이 MaB를 믿고 의지할 수 있겠는가!
해도 바뀌었으니 이제 엄연한 성인 취급을 받을 사람들이 이러고 있으니, 대체 어떻게 할까 고민하는 강신혁 옆에서 당장이라도 웃음을 빵 터트릴 것 같은 표정의 브리짓이 해설해주었다.
“차이긴 1년도 더 전에 차여놓고 여태까지 인정 못 하고 질질 끌다 언니가 임신했다니까 이제야 실감이 나서 저러고들 있는 것 같은데.”
“하필이면 지금 이 타이밍에? 이제부터 랭크불명 게이트에 진입해야 되는데?”
“자기랑 나랑 둘이서 가지, 뭐.”
은근슬쩍 강신혁의 팔짱을 끼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브리짓. 강신혁은 거침없이 그녀의 마빡을 두드렸다.
“당신이 제일 먼저 빠져. 그리고 자기라고 부르지 마.”
“아앙, 이 철벽이 진짜 너무 조앙!”
“진짜 가관이네.”
아까 강신혁이 했던 소리를 누군가 똑같이 따라하기에 돌아봤더니 오혜나였다.
그녀만은 MaB의 권위를 지키려는지 정식 유니폼인 검은 자켓을 입고 제대로 폼을 잡고 있었다.
아니, 다소 과하게 폼을 잡는 것 같기도 한데.
“중2병이 조금 늦게 왔냐?”
“아니거든? 최대한 몸집을 키워서 이 추태를 전세계에 방영하지 않게 막으려는 거거든?”
“그냐, 눈물 나게 고맙다.”
“시뇨기, 가자!”
오혜나에 뒤이어 나타난 백인하가 기운차게 외쳤다.
어차피 둘이 같은 숙소에서 나온 걸 빤히 아는데도 저렇게 감추려 하다니, 언제쯤 까발려줄까 고민하면서도 우선은 녀석에게 대꾸했다.
“잠깐, 클레어 자리가 비니까 비타도 데리고 갈 거야.”
“응? 누님은 왜…… 아, 아아. 그랬지, 누님 임……."
“백인하 죽어!”
“왜, 쓸데없는, 말을, 해?”
“히이이이익!”
괜히 안 해도 될 소릴 덧붙여 이나희와 엘레노어의 분노를 산 백인하가 오혜나를 방패로 삼으면서, MaB의 명예를 지키려던 오혜나의 시도는 깔끔하게 실패로 돌아갔다.
비타가 도착한 것은 바로 그 타이밍이었다.
“저 왔어요!”
강신혁에 엘레노어, 이나희, 오혜나와 백인하, 거기에 브리짓과 비타까지.
총 일곱 명이 한 자리에 모이자 강신혁은 마지막으로 그들이 가야 할 장소를 확인했다.
“미국인가. 클레어가 함께였으면 부모님한테 인사라도 드리러 가는 건데.”
“인형사님, 침식의 전조가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서두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때까지 가만히 있던 카메라맨이 다소 느긋한 태도를 보이는 강신혁을 재촉했다.
“아, 알겠어요.”
그는 고개를 끄덕이곤 손짓해 카메라맨을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오게 했다.
강신혁과 클레어, 때로는 비타까지 더해져 만든 발명품들로 인해 초인들의 활동에는 큰 변화가 찾아왔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초인 팀과 함께 게이트에 들어가 그들의 활약상을 촬영하는 카메라맨. 이번에 발생한 게이트는 특히나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만큼 카메라맨의 역할도 중대했다.
“마스크드 바커스의 촬영을 맡는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부디 잘 부탁드립니다!”
“아, 네. 그럼 바로 가죠.”
“네? 헬기는……."
“미국에서 발생한 게이트를 헬기 타고 찾아갈 순 없잖아요.”
“엇!? 그러고 보니……!?”
아무래도 카메라맨도 별로 멀쩡한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강신혁은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공간지배 능력을 발동시켰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일행은 크게 일렁이는 공간의 균열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아, 이동하자마자 빨려들어왔나. 어처구니없이 큰 규모의 게이트인 모양이네.”
“벌써 게이트 안입니까!? 말도 안 되는!”
“카메라맨 엄청 떠드네.”
“죄송해요, 우리 사람이에요.”
만사가 불편한 이나희의 투정에 백인하가 쓰게 웃으며 대꾸했다.
그야 위험한 게이트 안에서 활동하는 것이니 카메라맨도 아무나 쓸 수는 없는 노릇, 백양의 길드원 중에서 특별교육을 받은 이를 데려왔다.
세계최초의 랭크조차 식별이 불가능한 위험한 게이트이니, 원래는 카메라맨을 데려올 생각도 없었지만…… 마스크드 바커스라면 불가능한 일도 아무렇지 않게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이유로, 사람들의 여러 가지 의도가 섞여 결국 이렇게 되었다.
“아, 그래도 이 정도면.”
가이아 시스템이 제대로 일을 하지 않는 건지 게이트 안에 들어와도 시스템 메시지가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그래도 강신혁은 게이트 안에 들어오자마자 영력을 뻗어 사방을 탐사했고, 이만하면 긴급이탈을 할 필요는 없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다만…… 조금 이상하긴 하네. 아무리 랭크가 높아도 그렇지, 가이아 시스템이 반응을 아예 안 하는 건 좀.”
- ……어쩌면 무슨 일이 생겼는지도 모르겠군요.
강신혁의 중얼거림에 관리자가 조금 망설이는 투로 대꾸했다.
가이아 시스템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그로부터 잠시 후에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