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8화. < Chapter 58. 메르바 - 4 >
목적지를 찾아냈다고는 해도 당장 이동할 수는 없었다.
세상 전역에 널리 퍼져 있던 마병의 군단이 일제히 강신혁을 포착해 날아오르고 있었고, 아직 [자장가]의 귀속 작업도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었다.
특히 저 멀리서 강대한 기운이 응집되어 날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당신의 흔적이 있는 바로 그곳이네요. 아무래도 이 병기들은 본능적으로 당신의 흔적을 찾고 있었던 모양이에요.”
“흠, 효도하려고 찾았던 건 아닌 것 같네.”
주위에 다른 일행이 있는데도 오직 강신혁만을 노리고 끔찍한 기운을 발산하며 날아드는 마병의 집단.
그런 마병들을 한꺼번에 모래폭풍으로 찢고 집어삼키는 강신혁도 남 말할 처지는 아니었다.
“와요, 모루.”
“와아…… 저건 나도 조금 힘써야 할지도 몰라.”
츠쿠요의 작은 속삭임에 이어 슈까지 긴장감을 발했다.
강신혁은 고개를 들어 전방을 주시했다.
붉고 기이하고 음산한 빛을 뿜어내며, 붉은 금속질의 흐느적거리는 칼날을 수십 개씩이나 달고 촉수처럼 날아오는 무언가가 보였다.
그것이 나타난 순간 일대의 온도가 조금 내려간 것처럼 느껴졌다.
무엇보다 압도적인 것은, 그 마병이 일대의 다른 마병을 먹어치워 몸집을 조금씩 불리고 있었다는 점이다.
“X……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이네요.”
“모든 무기에 대해서 우위를 갖는 특성이 있는 것 같아. 으, 내 건틀렛도 조금 위험하려나?”
“과연 모루의 작품. 당신이 이 세계에서 낳은 최고의 걸작이네요.”
“저걸 걸작이라고 하지 말아줄래.”
분명 처음 만들었을 땐 저 무기도 평범했을 텐데, 대체 얼마나 많은 일들을 겪었기에 저렇게 된 것일까.
강신혁이 웃지도 울지도 못하고 있는데, 옆에서 클레어가 그것에 대해 짧고 정확하게 표현했다.
“일단 산(SAN)치를 체크해야 할 것 같은 생김새네.”
“저게 원래 뭐였는지도 모르겠는데.”
“응, 아마 그래서 저렇게 강해진 거겠지. 닥치는 대로 먹어치운 모양이야.”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사실 특정한 무언가를 먹어치워 강해지는 이른바 ‘포식’ 계열의 힘은 굉장히 유명하다.
당장 강신혁의 펫인 오닉스도 그런 능력을 갖추고 있고, 저번에 문제를 일으킨 흑영신주도 비슷하다.
그러나 그런 힘이 흔하지는 않다. 그런 게 흔했으면 진즉 모든 우주가 끝장났을 테니까.
적어도 셸터에 처박히기 전의 모루에게는 그러한 무구를 만들어낼 능력이 없었을 것이다.
다만 지금 이 시점에서 이 행성에 있는 아티팩트의 얘기를 하자면, 에너지를 흡수하는 [자장가]는 포식 계열의 힘을 갖추고 있다.
모루가 심어놓은 씨앗에 더해, 멸망하기 직전까지도 수그러들 줄을 모르던 모든 인간의 탐욕이 더해져 완성된 아티팩트.
바로 그것이다.
오랜 세월 자장가에 의해 강제로 잠재워졌던 저 마병은, 어쩌면 그것으로부터 능력을 훔쳐냈는지도 모른다.
“내가 막을까, 할아방?”
강신혁은 여전히 모래폭풍을 조종하느라 움직일 수 없고, 츠쿠요는 아까 한 번 힘을 썼다.
그래서 슈가 나서려고 한 것인데, 강신혁은 고개를 저어 그녀를 막았다.
“아니, 저건 적임이 따로 있어.”
“적임?”
- 뀨우우우웃!
강신혁이 답하기도 전에 오닉스가 푸른 소와의 동화를 풀고 허공으로 튀어 오르며 몸을 동그랗게 말았다.
영력을 통해 소통하다 보니 이미 그의 뜻을 파악하고 행동에 나선 것이다.
그는 녀석의 적극적인 모습에 한 차례 피식 웃고는, 호풍환우를 운용해 오닉스를 가볍게 띄웠다.
그리고 그들을 향해 날아오고 있는 신화생물 비스무리한 무언가를 조준하고 녀석을 쏘아냈다!
- 뀨뀨우우우웃!
강신혁이 호풍환우를 운용하며 동시에 발한 영력과 파천기를 흡수해 힘을 얻은 오닉스가 포탄처럼 발사되었다!
일행이 모두 얼이 빠져 그것을 보고 있는 가운데, 오닉스는 일직선으로 쇄도해 기어이 그 끔찍한 마병과 격돌했다.
그리고 일어난 것은 실로 장렬한 포식이었다.
“오, 와……."
“대단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는 생각했지만 설마 저렇게까지……."
슈와 츠쿠요가 경악하는 모습은 여간해선 보기 어렵다.
강신혁은 피식 웃으며 오닉스를 일별했다.
녀석은 고유의 마력, 금마력을 단숨에 퍼트려 마병을 통째로 먹어치우고 있었다.
오닉스와 마병은 아마도 비슷한 능력을 갖고 있겠지만, 둘 사이의 차이점은 바로 오닉스 자체는 금속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녀석이 일방적으로 대상을 먹어치울 수 있는 이유였다.
“처음부터 오닉스한테 전부 먹으라고 하면 되지 않았어?”
“무기를 먹어치울 수는 있지만 얘가 안 다치는 건 아니니까. 무수한 무기에 노출되면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어.”
그런 식으로 모두 해결 가능하다면 강신혁은 무기를 쥔 대상을 이기기 위해 오닉스만 내던지면 되지 않겠는가.
다만 저 끔찍한 마병을 오닉스가 너무나 간단하게 먹어치울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상대도 우직하게 포식 능력만 구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 간단히 말하면 가위바위보 싸움에서 승리했다고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응, 이 녀석들을 정리하는 건 내 책임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결국 오닉스의 힘을 빌린 셈이 됐지만.”
강신혁의 입가에 씁쓸한 웃음이 맺혔다.
어지간하면 자신만의 힘으로 해결하려고 했던 것도 사실이다.
다만 다른 마병은 자장가의 힘으로 단숨에 먹어치울 수 있었지만, 자장가의 힘을 카피한 저 마병은 자장가로는 쉽게 정리할 수 없었다.
오닉스의 전력을 강화해두고 싶었던 것도 사실이기에, 적당히 잘 정리되었다고 할 수 있으리라.
- 뀨!
“오냐, 고생했다. 그리고 너 그거 하지 마라.”
포식을 마친 오닉스가 활기찬 울음소리를 내며 허공을 활보해 강신혁의 곁으로 돌아왔다.
문제는 막 먹어치운 것의 능력을 ‘발현’해, 오닉스의 동체도 시뻘건 빛을 뿜어내며 등 위로 돋아난 가시들을 전부 마병에 준하는 강도의 칼날로 탈바꿈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 아까 비슷한 것을 한 번 봤던 참인지라 산치 체크는 하지 않고 끝났지만!
- 뀨뀨우!
“안 된다고, 나머지는 내가 처리할 거니까. ……더 먹을 생각 하지 말고 얌전히 있어.”
- 뀨!?
오닉스는 원래부터 다양한 능력을 갖추고는 있었지만 공격력이 그리 강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자신과 상성이 좋은 마병을 깔끔하게 먹어치워, 공격성이 굉장히 높은 능력을 발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구체적으로 따지면 오닉스 자체를 X랭크의 몬스터로 판정해도 부족할 정도.
여기에 오닉스만이 갖추고 있는 특수한 능력까지 더한다면 어지간한 히어로 유니버스 회원은 범접을 못하는 수준이 된다.
“다른 VIP 회원 중에도 이런 권속을 데리고 있는 이는 없을 거예요.”
“역시 할아방은 뭐가 됐든 최고를 만들어내는구나.”
“만들어? 뭐…… 그래, 만들었다고 치자.”
- 뀨!?
신화생물의 공포는 급이 다른 포식자에 의해 삼켜졌다.
그로부터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강신혁은 기어이 모든 모래의 통제권을 손에 넣었고, 그 순간 멸망한 세상에 마지막까지 남아 폭주하던 마병들은 모조리 정리가 되었다.
"......."
강신혁은 짧은 순간 눈을 감고 과거 자신이 만들어냈던, 하지만 좋지 못한 감정과 함께 내팽개쳤던 탓에 옳지 못하게 자라났던 모든 아이들에게 사죄의 마음을 담아 묵념했다.
역시 이 세상에 오길 잘했다.
[자장가]가 되었든 마병이 되었든, 모두 그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으니까.
“좋아, 그러면.”
“바로 갈까요, 모루.”
“아니, 잠시만 더 기다려줘. 자장가를 이대로 두고 갈 수는 없으니까.”
행성 전역에서 솟아오르는 마병들과 전투를 벌이느라 모래사막 같았던 행성의 곳곳에 큼지막한 구멍이 뚫려, 그 밑의 끔찍한 광경을 드러내고 있었다.
미관을 생각하면 그냥 이대로 덮어두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을 정도지만, 자장가 역시 엄연히 모루가 낳은 자식.
이 행성에 버려두고 떠날 수는 없었다.
“증폭, 분열이 가능했으니까 압축도 가능하겠지.”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아까 츠쿠요가 일격을 쏘아낸 순간, 자장가는 수십, 수백의 비율로 압축해 그녀의 공격을 흡수해냈다.
그 결과가 일시적으로 탄생한 유리결정(열을 받아 유리로 변했나 싶었으나 정확히는 조금 달랐던 셈이다.)이었으나…… 지금은 그것들도 도로 모래로 화해, 강신혁 일행의 주위를 휘돌고 있었다.
“압축.”
그리고 강신혁이 한 손을 내밀고 그렇게 중얼거린 순간, 영력 네트워크를 통해 연결되어 있던 모든 모래알이 일시에 그의 손바닥 앞의 한 점을 향해 몰려들기 시작했다.
자연히 그 아래에 뒤덮여 있던 민낯의 행성…… 아니, 묘지가 그 진짜 모습을 드러냈다.
“우아……."
“이건……."
많은 세월을 살고, 많은 차원을 겪어왔던 슈와 츠쿠요조차 인상을 찌푸렸다.
수백 미터나 되는 모래층으로 덮여 온전하게 보전되어왔던 만큼, 행성 메르바의 모습은 비참하고 적나라한 멸망의 풍경을 재현하고 있었다.
강신혁은 우선 그것을 무시하며 눈앞에 모여들고 있는 모래 덩어리에만 집중했다.
감히 단위로 환산하는 것조차 저어될 규모의 모래.
그것들이 한 점에 뭉쳐 끊임없이 압축되며 모습을 바꾸어가고 있었다.
처음엔 구체의 형상을 하고 있었으나, 점차 더 많은 양의 모래가 몰려들어 뭉치면서 그 모습을 바꾸어갔다.
“어……? 신혁아, 이거.”
그것을 본 클레어가 눈을 조금 크게 떴다.
그래, 은아를 잘 알고 있는 그녀라면 그런 반응을 하겠지.
어느덧 이 행성을 뒤덮고 있던 모든 자장가의 파편이 강신혁의 손바닥 앞 한 점에 보여, 코어의 형태로 형상화되자.
그것은 작디작은 헤어핀의 형태를 띠게 되었다.
“이거…… 은아한테 준 헤어핀 아냐?”
그래, 신은아가 전생의 모루에게 선물로 받아 늘 착용하고 다니던 그 헤어핀과 완전히 동일한 모습.
“아냐. 이건…… 그 전에 만든 거야.”
그러나 강신혁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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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에 떠오르는 얼굴.
과거 은아가 그랬듯이, 그에게서 헤어핀을 받아들고 기뻐하며 춤추던 작은 아이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그것이 이미 어찌할 수도 없는 과거의 일임을 알고 있고, 어디까지나 전생에 일어났던 일이라는 것 또한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이건…… 전생의 딸아이한테 만들어줬던 헤어핀이야.”
“……아."
은아의 생일선물로, 자연스럽게 헤어핀을 만들어줄 생각을 했던 것은 그래서다.
그 아이에게 헤어핀을 선물하며, 자기자신을 어리석다고 욕했던 것 또한 그래서다.
……아마도 전생을 되찾은 강신혁이, 자신에게 노골적으로 접근해오는 신은아를 이성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 또한, 이 헤어핀이.
딸아이가 하고 있던 헤어핀과 똑같이 생긴 그것이, 그녀의 머리를 장식하고 있었으니까.
“용서할 수 없어요……. 그런 소중한 기억이 담긴 물건을 이용해 병기를 만들어내려고 했다니.”
츠쿠요가 터무니없이 분노했다. 그녀의 엉덩이 뒤로 수십 개 혹은 그 이상의 검은 꼬리가 솟아나는 것을 본 강신혁이 고개를 저어 그녀를 만류했다.
“화를 내봤자 그걸 풀 수 있는 대상도 없고…… 그들은 그 대가로 완전히 멸망했으니까. 그래, 이미 다 끝난 일이니까 신경 쓰지 마.”
“모루……."
“할아방, 괜찮아?”
어째서 강신혁이 [자장가]와 접하고 복잡한 표정을 지었는지 그제야 모두가 알아차렸다.
거기에 더해 클레어는, 강신혁이 신은아를 대하며 느꼈을 복잡한 심정을 이제야 완전히 이해하고 할 말을 잃었다.
다만 그땐 강신혁조차 헤어핀의 비밀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으니…….
“……그런데 모루.”
그러던 그때였다.
츠쿠요가, 망설이던 끝에 입을 열어 물었다.
“어째서 딸아이의 유품을…… 인간들이 확보할 수 있었던 거죠?”
"......."
그건 강신혁도 마찬가지였다.
전생의 기억에 따르면 분명 딸과 아내는 몬스터의 습격을 받고 죽어, 시체도 남기지 못했다고 들었다.
……그런데 어째서 별 기능을 담지도 않았던 헤어핀이 남아있을 수 있는 걸까.
“우연히 헤어핀만이 따로 떨어져 무사했던 걸지도 모르지.”
“……모루.”
츠쿠요가 말했다.
어째선지 그녀의 눈동자는 매우 서늘한 빛을 담고 있었다.
“[자장가]의 기억을, 더 깊이 읽어보는 건 어떨까요.”
애써 부정하려 했던 가능성을 츠쿠요가 거침없이 입에 담았다.
관리자가 그녀를 강신혁에게 딸려 보내려 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을까.
아까 츠쿠요가 말했던가, 모루의 흔적을 찾아냈다고.
그렇다면, 어쩌면 그녀는 그 시점에서 이미…….
“츠쿠요…… 일단, 아까 찾아냈다는 내 흔적이 있는 곳으로 먼저 가는 게 좋겠어.”
“모루의 뜻이 그렇다면 그렇게 해요. 저는 계속 당신 곁에 붙어있을 테니까요.”
“와, 진짜 불여우네. 자기, 이리 와.”
“응. 고마워.”
“그럼 나는 등에…… 아야!”
“이래서 꼬맹이는 어쩔 수가 없네요.”
그들은 다시 오닉스와 동화해 차로 변한 푸른 소에 올라 츠쿠요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향했다.
그곳은 그가 셸터에 들어가기 전까지 머무르던 거처, 대장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