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7화. < Chapter 58. 메르바 - 3 >
애초에 어째서 이 세상을 모래가 뒤덮고 있었을까.
그것은 서로 반목하며 멸망을 향해 달려가고 있던 인간들이, 이대로 가다간 이 행성에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될 것임을 깨닫고 전쟁을 완전히 끝내기 위해 마지막으로 선택한 수단이었다.
모래의 정식명칭은 [자장가(Lullaby)].
모든 에너지를 비활성화시키며, 그럼에도 수그러들지 않는 에너지 반응에 특히나 격하게 반응해, 진압하는 물질.
그것이 존재함으로 인해 이윽고 모든 것이 영원히 고요한 잠에 빠질 테니, 실로 적절한 네이밍이라 할 수 있겠다.
……그 이름을 붙인 것은, 그것을 만들어낸 이들과는 다른 이였지만.
메르바 고유의 연금술, 야금술, 마법, 끝없이 이어지던 전쟁에서 발달한 모든 기술이 총동원되어 탄생한 이 모래는 절대 소멸하지 않고, 무한히 분열하며, ‘강한 영력의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어 한 몸처럼 움직이는 것이 가능했다.
그것을 탄생시킨 것은 기적과 같은 일로, 인류는 자신들이 어떻게 해서 [자장가]를 완성시켰는지 이해하지 못했으며 당연히 재현에도 실패했다.
사실 완성된 [자장가]는, 이름을 지은 이가 제작자와 다른 점에서 알아낼 수 있듯, 그것을 만들고자 했던 사람들과의 의도와는 상당히 다른 물건이었다.
당초 사람들이 원했던 것은 ‘자신들이 원하는 대상에만 반응하는’, 쉽게 말하면 통제가 가능한 아티팩트였다.
끝없는 전쟁으로 대지가 황폐해지고, 민간인들이 몬스터의 습격에 죽어나가도 돌보지 못할 만큼 방비가 엉성해지고, 상잔 끝에 마병(魔兵)이라 불리는 끔찍한 살육병기들이 각성해 적아를 불문하고 죽어나가는 사건사고가 늘어나도.
그래도 아직까지 인간들은 다른 누군가에 대해 우위를 차지하고, 지배자가 되고 싶어 했던 것이다.
만약 적아의 마병을 일제히 통제할 수 있다면, 아군을 지키면서 적군을 몰살하는 것도 간단한 일이지 않겠는가.
모든 마병의 지배자가 된다면 지겹도록 이어져온 전쟁을 종결시키는 것은 물론 인류의 영역을 침범해오는 몬스터들을 절멸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겠는가!
그런 착안점에서 시작된 프로젝트는 결과적으로 완전히 실패했다.
인류는 스스로의 힘으로 영력을 다루지 못했으며, 그들이 영력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것은 ‘과거 유명한 대장장이가 만들어낸 무구’들이 전쟁 도중에 영력을 발현하며 마병으로 변화했기 때문이었다.
다만 마병은 이미 모두 개별적인 자아를 각성했으며 어느 하나 빠짐없이 인류에게 적대적이었다.
그 외에 영력을 품은 물건은 그 세상에 없었다.
단 하나, 대장장이가 살던 나라에서 발견된 작은 헤어핀을 제외하면.
메르바의 생존인류는 그것을 모루의 작품이라 확신했고, 인류에게 살의를 품은 자아를 각성하지 않은 그 헤어핀을 이용해 다른 무구들을 통제하는 시스템을 만들어내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의도와는 달리 헤어핀에 담긴 영력은 인간의 뜻에 따르지 않았고, 완성된 [자장가]는 비단 마병뿐만 아니라 마력을 비롯해 모든 ‘에너지를 품고 활동하는 개체’를 잠재우며 분열, 증폭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세상이 멸망을 맞이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두 달.
마병들은 자신들의 제작자가 남긴 마지막 유물의 힘에 의해 완전히 침묵했고, 그렇게 아주 긴 시간이 흘러 비로소 강신혁이 이 세상을 찾아온 것이다.
“그래서 지금 오랜만에 잠에서 깨어난 저 무구들이 다 반가워서 인사하려고 날아드는 거야?”
강신혁이 모래에서 얻어낸 정보를 짧게 압축해서 들려주자, 클레어는 모래 틈 사이로 불쑥불쑥 튀어나오고 있는 검붉은 병기들을 보며 물었다.
하지만 그녀의 해쓱한 얼굴을 보면 이미 자신의 질문에 아무런 의미도 없음을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강신혁은 그래도 굳이 입 밖에 내어 답해주기로 했다.
“아니, 이미 부모님 얼굴도 몰라보는 상태인 것 같은데!”
“후레자식들이네!”
상공으로 날아오른 수십 개의 병기들이 명백히 강신혁을 노리며 날아들고 있었다.
검, 칼, 창, 도끼, 심지어는 갑옷에 방패, 건틀릿까지.
종류는 물론이고 크기도 제각각이었으나 전부 만만치 않은 기세를 품고 있었는데, 가이아 시스템의 기준으로 말하자면 최소 SSS랭크는 되어보였다.
심지어 그것들은 마치 [자장가]가 그러하듯 서로 영력을 통해 연결되어 에너지를 주고받으며 증폭시키고 있기까지 했다!
“이런, 아비를 몰라보는 자식들에게는 교육을 해야지요.”
“잠시 기다려줘, 츠쿠요.”
“네에.”
이미 먼저 나섰다가 사달을 낸 바 있는 츠쿠요가 강신혁의 한마디에 얌전해져 그의 뒤로 물러났다.
그 사이 강신혁은 방금 자신이 통제권을 얻은 모래에 대해 완전히 파악하며 다루기 위해 머리회전을 가속하며 특성의 힘을 있는 대로 발현했다.
우선 지금 [자장가]가 갑자기 병기들을 통제하지 못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여태까지 주인 없이 활동해오던 자장가가 강신혁을 주인으로 인식하고 그에게 귀속되는 과정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전생의 자신이 남긴 기적의 씨앗을 구 인류가 틔워내 탄생한 희대의 아티팩트.
굉장히 놀라운 성능을 품고 있는 기적의 산물 그 자체였으나, 귀속 과정에서는 에너지 정화 작업을 해낼 수 없었던 것이다!
심지어 지금도 행성 전체에 퍼진 모래지대에 영력 네트워크를 통해 강신혁의 영력이 퍼져나가면서 빠르게 귀속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고, 실시간으로 그의 통제 범위에 들어오는 모래지대가 넓어지면서…… 자연히 그 안에 파묻혀 있던 마병들도 덩달아 날뛰고 있었다.
다만 당황할 필요는 없었다. 어디까지나 아티팩트의 자동적인 활동이 끊겼을 뿐, 강신혁이 직접 아티팩트를 다루는 것은 가능했으니까.
“신혁아, 온다!”
“할아방, 내가 일단 막을까?”
“아니…… 이제 준비 됐어!”
강신혁이 강하게 외친 그때, 불과 조금 전까지 일행에게 가까워져오던 1킬로미터 높이의 기둥이 한순간에 해체되더니- 유리결정의 폭풍이 되어 일행의 주위를 감싸고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방에서 날아든 검붉은 병기들이 일제히 폭풍에 처박혀- 다음 순간, 맥없이 폭풍에 흡수되어 소멸했다.
“와오!?”
“와, 할아방! 뭐야 이거?”
“후, 다행이다. 안 되는 줄 알았네.”
원래 자장가는 에너지를 흡수하는 기능을 갖고 있을 뿐, 물질을 분해해 흡수하는 기능은 갖추고 있지 않다.
다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스스로 활동하던 때에 한한다.
강신혁이 자장가의 소유권을 손에 넣고, 심지어는 모든 것을 변화시키고 진화시키는 파천룡의 기운이 자장가에 스며든 지금은 아티팩트의 격이 한 단계, 혹은 그 이상 높아졌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모루, 역시 이곳까지 이동했던 건 좋은 선택이었던 모양이네요. 우리가 왔던 방향에서 굉장한 숫자의 병기가 날아오르고 있어요.”
“윽, 잠깐만. 아직 멀리 있는 것까지 움직이기는 조금 힘들어.”
츠쿠요의 보고에 조급해진 강신혁은 보다 가열차게 두뇌를 회전시키며 영력과 파천기로 정신을 강화했다.
자장가는 행성을 뒤덮고 있던 어마어마한 규모의 아티팩트.
제아무리 이것의 근원이 되는 영력의 주인인 강신혁이 소유권을 손에 넣었다고 해도, 그렇게 간단하게 다룰 수 있을 만한 물건이 아니었다.
전체를 통제하는 것을 일찌감치 포기한 강신혁은 어디까지나 지금 자신이 있는 중심부부터 통제권을 늘려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파천룡의 기운이 점차로 자장가를 잠식하며 귀속을 빠르게 했고, 어느 정도 자율적인 움직임을 되찾게 도와주었다.
그 결과.
“와아아아아……!”
“누가 보면 할아방이 모래의 마법이라도 다루는 줄 알겠어.”
일행을 감싸고 회전하는 결정의 폭풍에 더해, 사방에서 맹렬히 회전하는 모래의 토네이도가 일어났다.
수십 개의 토네이도가 빠르게 회전하며, 심지어는 지구가 태양을 축으로 공전하듯 강신혁 일행을 중심에 두고 크게 회전하며 일행을 수호했다!
클레어는 충동을 참지 못하고 드론을 꺼내 이 광경을 촬영했다. 수십억을 때려 붓고 CG를 만들어내도 이보다 박진감 넘치지는 않으리라!
“와, 벌떼처럼 날아드는 거 봐.”
“하지만 점차로 모래들도 이곳을 중심으로 모여들고 있어. 와, 대체 얼마나 많이 쌓였던 거야……."
덤으로 말하자면 지금 일행이 공중에 머무르고 있는 것도 다행이었다.
모래가 완전히 솟구쳐 바닥이 드러났는데, 무려 100미터 이상의 골이 파인 것이다.
그 밑으로는 오래된 금속과 건물의 파편 따위가 널려 있었고, 당연하지만 인간의 흔적이라곤 조금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어딘가 사이제논의 마지막 광경을 떠올리게 만드는 멸망의 흔적에서 다급히 눈을 떼어낸 강신혁은, 자율적으로 거대한 모래벽을 형성한 자장가를 꿰뚫고 이쪽을 향해 날아드는 무수한 마병의 비행단을 보며 입술 끝을 비틀었다.
“아무리 군에 납품하는 대장장이라고는 해도 진짜 오지게도 만들었네.”
“응? 설마 저거 다 전생의 네가 만든 거야?”
“응. ……이제 좀 기억이 나네.”
- 동기화가 미약하게 가속합니다. 현재 동화율 99.8%.
강신혁의 말을 뒷받침하듯 나타나는 메시지.
그는 어렴풋이 뇌리로 파고드는 기억의 파편에 인상을 찌푸리며 자장가를 조종했다.
이중으로 회전하는 모래의 폭풍이, 부모도 몰라보고 덤벼드는 모든 병기를 붙잡아 으깨고 부수었다.
자신이 만든 무구들을, 그것도 자아까지 얻어 진화한 것들을 부수는 기분이 그리 좋지는 않았지만…… 자신에게는 아비수스 하나를 감당하기만도 버거웠다.
“그리고…… 어차피 모두 하나가 될 테니까.”
파천룡에 의해 진화한 [자장가]는 더 이상 에너지를 잠재우기만 하는 얌전한 녀석이 아니다.
헤아릴 수 없는 세월 동안 빼앗아 축적한 에너지를 활용해 자기자신을 진화시키며, 나아가 부순 무구를 그 자아까지도 말끔히 분쇄해 자기 것으로 만드는 포식자가 되었다.
……이건 오닉스의 능력을 조금 따라한 것이다.
“그 말 조금 무섭다.”
“정말 슬픈 일이에요……!”
진화한 자장가의 모습에 클레어가 어딘가 공포감을 느낀 반면, 츠쿠요는 실시간으로 부서져나가는 마병의 모습에 진심으로 안타까움을 느끼고 눈물을 흘렸다.
그야 모루가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여 만들었던 병기를 사랑하던 그녀라면 이런 반응을 하는 것도 당연하다.
다만 그녀도 제작자 본인에게까지 이를 드러내는 마병을 다스릴 생각은 없는 모양인지, 그저 자장가가 모든 마병을 먹어치우는 모습을 얌전히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 영력이 한 단계 성장해 X2- 랭크가 되었습니다.
대규모의 영력 행사 끝에 비로소 그의 영력이 진정한 초월자라 불러 마땅한 경지에 발을 들였다.
그뿐인가, 점점 더 그의 지배범위가 넓어져, 어느덧 모래폭풍의 권역에 들어온 마병들이 아직 폭풍과 직접 부딪친 것도 아닌데 에너지를 흡수당해 비틀거리고 있었다.
자장가가 본래 지니고 있던 수호력까지 완벽하게 되찾은 것이다!
“앗, 모루.”
“츠쿠요?”
끊임없이 에너지를 흡수하는 모래의 폭풍과 수천, 수만 단위로 날아들어 폭격해오는 마병의 장엄한 전쟁 속에서, 많은 영역의 모래가 하늘로 떠올라 비참한 대지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줄곧 무언가를 찾는 것처럼 눈을 감고 집중하던 츠쿠요가 입술을 조금 벌려 한숨을 토해냈다.
“……아무래도 당신의 흔적을 찾은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