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6화. < Chapter 58. 메르바 - 2 >
- 뀨뀨우!
- 우오오오옹
장난스런 오닉스의 목소리에 장단을 맞추듯 푸른 소가 공명했다
참고로 방금 둘의 대화를 인간의 말로 옮기면 ‘모래는 먹을 수 없으니까 싫어!’ ‘건조해서 피부가 갈라질 것 같네요.’같은 느낌이다.
“피부!? 철이잖아?”
“마모될 것 같다는 거 아닐까, 아니면 말고.”
“그나저나 정말 넓은 세상이군요. 요술…… 환술에 걸린 것도 아닌데.”
“굳이 서두를 필요도 없는 일이니까 괜찮지 않아? 시간비율도 여유롭고.”
“그것도 그렇군요. 모루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늘어나는 건 저도 환영이에요.”
“흥, 말은.”
클레어는 이제 슈와 츠쿠요에 대해서도 대범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이나희와 엘레노어를 대하던 느낌으로 반쯤 흘리는 것이다.
“정말, 잘난 남친이 있으면 힘들다니까.”
“미안.”
“괜찮아. 우월감도 만만치 않으니까.”
강신혁은 솔직한 그녀의 말에 피식 웃으며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사실, 기본적으로 푸른 소가 알아서 이동하는 데다 오닉스의 통제까지 있기에 굳이 그가 운전대를 잡을 필요도 없었다.
다만 그가 직접 푸른 소와 접해 영력과 파천기를 흘려 넣는 것으로 푸른 소의 성능이 압도적으로 성장하기에 운전 흉내를 내는 것만이라도 하는 게 좋았다.
차창 너머로 보이는 것은 끊임없는 모래의 평원.
간혹 인공적인 오브제처럼 솟아오른 모래기둥들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모래의 행성이네.”
노래를 떠올리며 흥얼거리다 문득 생각했다.
이 사막은 어디까지 이어져 있는 것일까.
초목이 생명력을 잃고 모두 스러진 탓에 사막이 넓어진 걸까?
하지만 분명 차원이동을 실시할 때, 자신과 연이 깊은 장소로 바로 이동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째서 사막 한가운데에 떨어진 걸까.
“차원 퀘스트를 하면서 이렇게 막막한 것도 오랜만이네.”
“이건 퀘스트가 아니니까 그런 것 아닐까? 굳이 말하면…… 귀향이네.”
그의 혼잣말에 클레어가 피식 웃곤 부정하며 말했다.
귀향이라, 확실히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귀향에 클레어와 함께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정확히는, 이곳을 당연하다는 듯이 그녀와 함께 찾아올 생각이 드는 것이 스스로 조금 기뻤다.
지난 반년 간, 강신혁은 신영의 업무를 처리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클레어와 함께 차원 퀘스트를 수행했다.
그건 지구와의 시간비율이 다르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지인들도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긴 시간으로, 얼추 계산해 봐도 5년은 훨씬 넘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긴 시간 동안 클레어와 붙어 다녔으니, 아마 주위에서 보기에 두 사람의 모습은 조금 이상해보였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차원 퀘스트를 한 번 다녀올 때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조금씩 발전해갔으니까.
서로 사귀는 관계임을 확실히 한 것이 지구 기준으로는 고작 1년 정도 전인데, 거의 반생을 같이 한 듯한 끈끈한 관계가 되어 있으니 사람들이 기막혀하지 않았겠는가.
스스로 말하긴 조금 부끄럽지만, 지구 나이로 따지면 어디까지나 미성년자인 강신혁에게 클레어가 아이 얘기를 꺼내는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는 얘기겠지.
다른 이들이 보기엔 ‘벌써’ 수준을 넘어서 ‘미친 거 아냐?’라는 말이 나올지도 모르는 수준이지만, 클레어에겐 ‘충분히 많이 기다렸다’는 수준이 된 것.
"......."
“......히.”
강신혁이 그런 생각을 하며 슬그머니 한 손을 조수석으로 뻗자, 클레어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그의 손을 잡아왔다.
“얍.”
“그럼 저도.”
직후 어째선지 뒷좌석에 뻗어 나온 두 개의 손이 각각 그 위에 얹어졌다.
강신혁이 눈치 좀 살피라는 뜻으로 뒷좌석을 째리자 두 사람은 천연덕스럽게 반응했다.
“응? 파이팅하자는 뜻 아니었어, 할아방?”
“저를 그런 눈으로 보지 말아요, 모루. 따돌림은 나쁜 거랍니다.”
“……자기, 이 사람들 진짜 VIP 회원 맞아? 우리보다 수백 년 정도 더 많이 산 거지?”
“아, 클레어. 연령 얘기는 하지 말아줘. 이 사람들 화나면 진짜 무서우니까.”
가만히 앉아있는 츠쿠요의 엉덩이 뒤로 요염하게 흔들거리는 검은 꼬리가 몇 개인가 보인 기분이 들어 빠르게 클레어를 입막음하는 강신혁이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 둘과의 나이 차이에 비하면 강신혁과 클레어 사이의 나이차는 오차 수준이라는 생각이 들어 괜히 우스웠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들켰는지 츠쿠요의 기세가 다시 무서워졌지만, 괜히 건드렸다가 더 화를 낼 것 같았기에 지금은 입을 다물고 있기로 했다.
“그나저나 모루, 제가 눈치를 챈 게 있답니다.”
“으, 응? 츠쿠요, 뭔데?”
“안심해요, 모루. 모루의 괘씸한 생각에 대해서는 단둘이 있을 때 나름의 보답을 할 생각이니까.”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는데!?”
“단둘이 놔두지도 않을 건데?”
“이 모래.”
클레어의 혼신의 발언을 가볍게 무시한 츠쿠요가, 도저히 걷어내질 생각을 하지 않는 모래의 평원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아까부터 꾸준히 탐구하고 있었는데, 역시 인위적으로 생성된 것이 맞네요.”
“인위적이라고? 이 모래사막이 통째로?”
“네에, 확실해요. 그도 그럴 것이 행성 전체가 모래로 덮여있는걸요.”
방금 츠쿠요의 말을 듣고 강신혁이 경악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 된다.
물론 슈와 츠쿠요, 이 두 명의 초월자와 함께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금세 모래가 아닌 다른 무언가를 찾아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충분히 그럴 가능성도 고려해야 했으나.
정말로 그렇게 된다면 너무 규모가 커지기에 애써 무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그러면 애초에 처음 장소에서 이동할 필요도 없었던 거 아냐?”
“글쎄요, 이동하지 않았으면 에너지의 흐름을 탐지하는 것도 더 어려웠을 테니까요. 게다가 어쩌면…… 아니, 이건 실제로 관측하게 되었을 때 다시 말씀드릴게요.”
강신혁은 일단 차를 멈추었다.
그러나 츠쿠요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차를 하늘로 띄우는 것이 좋겠다는 얘기를 해, 급격히 불안해진 강신혁은 우선 푸른 소를 상공 1킬로미터 정도로 띄웠다.
“츠쿠요, 설마 내가 지금 상상하는 그걸 하려고?”
“네에, 맞아요. ……설레라.”
왜 설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지만 물어봤다간 여러모로 무서워질 것 같아 그만두었다.
남친을 유혹하지 말라고 클레어가 옆에서 눈을 부라리건 말건, 츠쿠요는 차 문을 열고 허공으로 한 걸음 내딛었다.
마치 그곳에 공간이 있다는 듯이 지극히 자연스럽게.
물론 공간지배 능력과 호풍환우 능력을 능숙히 다루게 된 강신혁도 그 정도는 할 수 있지만, 츠쿠요의 경우 기운이 움직이는 것도 느껴지지 않을 만큼 자연스럽게 허공을 밟고 있다는 점에서 강신혁의 스킬 숙련도를 상회하는 구석이 있었다.
‘더 자연스럽게. 그런가, 어쩌면 츠쿠요가 갑작스럽게 나타나고 사라지는 능력을 갖춘 것도 저렇게 소름끼치게 완벽한 기운의 통제가 가능해서인지도 몰라.’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이전 츠쿠요와 만났을 때 강신혁은 아직 한참은 부족한 능력이었기에 그녀의 진면모를 잘 알지 못했지만, 지금은 달랐다.
그녀의 가벼운 몸놀림 하나하나에서 그녀의 능력을 읽어낼 수 있었고, 심지어는 거기서 배우는 것도 있었다.
기운의 통제며 몸을 움직이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특성과 함께 몇 번인가의 진화를 거쳐 완성단계에 이른 ‘파천무’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자, 그러면 제 생각이 맞나 시험해볼까요.”
츠쿠요가 후우, 한숨을 불어내며 허공으로 철선을 뻗어, 펼쳤다.
허공의 한 점에 검붉은 불꽃이 모여드는가 싶더니 정교한 구슬 형태로 완벽하게 뭉쳤다.
일행과 함께 그것을 가만히 보고 있던 슈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우우, 잘도 저렇게 살벌한 기운을 통제하네.”
“슈도 어디 가서 빠지진 않을 것 같은데.”
“나는 인과를 통제하는 것만도 버겁단 말이야, 할아방. 우리 종족이 기본적으로 무투파인 건 그래서니까.”
“너희 종족은 잘 모르지만, 뭐 대충 알겠다.”
같은 초월자라도 성장방식은 물론이고 다루는 힘도, 그에 대한 이해도도 제각각.
어쩌면 슈에게서도 몸을 움직이는 방법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게 있을지도…… 아니, 슈는 인과를 생략해버리니까 무리인가.
그렇다면 그것 자체를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이전엔 절대 무리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강신혁은 여러모로 성장했을 뿐더러 마침 슈에게는…….
강신혁에게 무척 좋은 방법이 하나 떠올랐지만 그걸 입으로 옮기려던 순간 그는 할 말을 잊고 말았다.
“가렴.”
츠쿠요가 작게 속삭이며 불구슬을 지상으로 내려보냈다.
커피 위로 우유를 한 방울 떨어트리듯이.
그것은 자연스럽게 1킬로미터를 낙하해, 지면과 맞닿았다.
강신혁은 다음 순간 본 광경에 기함하고 말았다.
사방에서 모래의 해일이 일어나 불구슬을 덮쳐 감싼 것이다.
다음 순간 끔찍한 폭발음이 일었지만, 외부에서는 그 폭발로 인한 변화를 감지할 수가 없었다.
“역시, 제 생각이 맞았네요.”
츠쿠요가 흡족하게 웃곤 강신혁을 돌아보며 말했다.
“폭발이 일어나기 직전 모래가 의사를 갖고 움직이는 것을 보셨나요, 모루? 명백히 폭발을 막아내기 위한 움직임이었지요?”
“……그래, 봤어.”
“모래는 인위적으로 뿌려졌다는 게 확실해진 순간이네요. 아마도 모래가 경계하고 있는 건 마력…… 으응, 폭력, 혹은 변화일까요?”
츠쿠요가 고찰해나가던 그때였다.
아마도 폭발을 완전히 막아낸 것이겠지, 한데 뭉쳤던 모래가 사르르 풀려나가는 가운데, 그 중앙에서 시뻘겋게 달아오른 유리, 혹은 쇠로도 보이는 재질의 기둥이 솟아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츠쿠요의 공격을 막아낸 여파일까, 만약 그렇다면 그녀의 능력은 실로 어마어마한 것이 된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가 방금, 지름 10미터, 높이는 1킬로미터 수준에 달하는 유리 기둥을 만들어낼 만큼의 열량을 아무렇지 않게 뿜어냈다는 얘기가 되니까.
“어머나.”
강신혁의 시선이 다른 데로 향하는 것을 쫓다 유리기둥을 발견한 츠쿠요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라워했다.
“이렇게 되면, 목적은 모래 아래에 있을 지면의 보호, 그리고 그것을 해치려 드는 외부의 침입자에 대한 보복. 정도가 될까요. 그렇다면 역시 그 아래에 있는 것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지네요.”
“진즉 분석해보려 하지 않았던 내가 나빴어. 지금 해볼게.”
“모루, 그건 힘들지 않을까요?”
정말 그랬다
그들 쪽으로 천천히, 하지만 꾸준한 속도로 다가오고 있는 유리기둥을 상대로 영력을 뿜어내 탐사해보려고 했지만 그의 영력이 무언가에 막힌 듯 나아가지 못하게 된 것이다.
아마도 모래를 만들어낸 이의 영력 혹은 그에 준하는 에너지가 아닐까 싶었지만, 이젠 강신혁도 능력이 통하지 않는다고 그대로 물러날 만큼 만만하지는 않다.
‘영혼독으로 경계를 허물고.’
과거 스킬스톤을 통해 얻어낸 영혼독은 희귀도 SSS+랭크의 터무니없는 레어 스킬.
심지어 강신혁은 몇 번인가의 차원 퀘스트를 통해 영혼독에 숙달하게 되면서, 희귀도를 뛰어넘은 X-랭크의 숙련도를 달성하기에 이르렀다.
숙련도가 희귀도를 뛰어넘는 일은 우선 불가능하지만 아주 가끔, 지극히 드물게 일어나는 것으로, 히어로 유니버스 회원들은 이것을 ‘깨달음’이라고도 불렀다.
그리고 이 상태에 이른 스킬은 곧 성장하여 희귀도도 함께 높아지거나, 혹은 스킬 자체가 진화해버리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모든 것을 끊임없이 성장시키는 그의 특성의 영향도 받은 것이겠지. 다른 이들이 그에게서 받는 영향 그 이상으로 자신의 성장에도 가파른 가속이 붙고 있었으니까.
‘좋아, 할 수 있겠어. 영혼독으로 이 유리, 아니 모래에 남은 타인의 의사를 일부 지우고 내 영력을 밀어 넣어…….'
“귀찮으니까 저것도 치워버릴까요.”
점차로 가까워지는 유리 기둥을 보며 다급히 영력을 주입하던 그때, 츠쿠요가 재차 손바닥 위로 흑염의 구슬을 만들어냈다.
“잠깐만!?”
“모루, 굳이 분석할 필요도 없어요. 어차피 모래를 다 들어내면 그 밑에 있던 게 나올 테니까요.”
강신혁이 초조해하며 그녀를 말리려 하자 츠쿠요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엉망진창인 소리를 했다.
“역시 바보 아냐? 어째서 모래가 지면을 덮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 딱 봐도 그 아래가 위험하다는 얘기잖아.”
“이래서 꼬맹이는 안 되겠네요. 저 아래에 무엇이 있건 제가 모루를 지킬 텐데 뭐가 문제죠? 더구나 여긴 상대적으로 안전한 장소에요. 대체 뭣 때문에 ‘중심지를 벗어났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하지만 츠쿠요의 생각에는 다소 낙관적인 구석이 있었다.
츠쿠요가 불꽃을 쏘아내지 않고 슈와 말다툼을 하는 사이 강신혁이 기어이 기둥에 영력을 주입해 ‘해당지역의 모래에 대한 통제권’을 획득했고,
“아, 영력 빨려나간다.”
“신혁아?”
“일단 포션, 아, 망했다.”
“이런, 모래사막이……."
강신혁의 기운이 일대에 퍼져나가기 시작하자.
그가 의도하지 않았던 대상이 그의 에너지에 영향을 받아 변화를 일으킨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까마득한 세월, 모래에 파묻혀 잠자고 있었던.
……아니.
모든 에너지를 가라앉히는 대량의 모래에 의해 강제로 잠들었던 병기들이, 창조주의 기운을 느끼고 깨어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