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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인하자마자 VIP-315화 (315/345)

315화. < Chapter 58. 메르바 - 1 >

차원이동을 앞두고 두 명의 방문자를 맞아들인 지금.

바람소리와 스산한 빗소리가 마이룸 창밖을 때리는- 마이룸의 기상조건이 변화할 리가 없고 애초에 창문도 달려 있지 않지만, 대충 그런 느낌이 들었다.

폭풍전야.

누구 한 명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로를 보며 치열한 눈치싸움을 전개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가장 인내심이 없고 단락적인 사고방식의 소유자인 슈가 먼저 행동을 개시했다.

“할아방, 보고 싶었어! 쪽!”

“어, 야!”

활기찬 목소리와 함께 잽싸게 달려들어 강신혁의 뺨에 입을 맞추는 소녀의 모습은, 영락없이 여름방학이 되어 할아버지를 만나러 시골에 내려온 손녀딸의 그것이었다.

……강신혁이 아직 미성년에 불과하다는 점을 무시한다면 제법 그럴듯했을 것이다.

“이 꼬맹이가!?”

“후, 정말 천박하네요.”

“이제 꼬맹이 아니거든! 그치, 할아방? 나 많이 컸지?”

슈와 헤어진 지 아직 1년이 채 되지 않았는데, 그녀의 키는 어느덧 150센티미터 정도까지 자라 있었다.

키뿐만 아니라 소담히 부푼 가슴을 비롯해 여성적인 특징이 뚜렷이 나타나게 된 그녀의 신체도 이전과 비교하면 놀라운 수준.

단신으로 명성이 높은 엘레노어보다도 작기는 하지만, 이전의 그녀가 열 살 꼬맹이 정도로 보였던 것을 감안하면 실로 장족의 발전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래, 구체적으로는 여초딩(3학년)에서 여중딩(3학년)으로의 극적인 변화를 겪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그러게, 많이 컸네.”

“헤헤, 전부 할아방 덕분이야! 아.”

슈는 재차 그의 뺨에 뽀뽀를 하려 들었지만 강신혁이 자연스럽게 그녀를 떼어놓았다.

연인이 보는 앞에서, 아무리 애 같다고는 해도 다른 여자랑 스킨십하는 광경을 과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강신혁은 아쉬워하는 슈를 적당히 달래주며 다른 한 명의 방문자, 츠쿠요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츠쿠요도 오랜만이야. ……저번엔 미안했어.”

“아뇨, 모루. 오늘 이렇게 저를 불러주셨는걸요. 그보다 저도 당신께 인사를 하고 싶은데……."

츠쿠요의 시선이 슈에게 꽂혔다.

그녀가 무슨 인사를 하고 싶어 한다는 것인지 대번에 알아차린 클레어가 강신혁의 눈앞을 가로막으며 그녀를 경계했다.

“당신은 절대 안 돼.”

슈까지는 그나마 외관이 어린 편이니 봐준다고 쳐도(사실 슈의 움직임이 너무 빨라 셋 중 누구도 대처를 하지 못한 것이었지만) 츠쿠요는 평소 자유게시판에서의 행동도 그렇고 노골적으로 강신혁을 유혹하려 든다는 것을 클레어도 잘 알고 있다.

강신혁이 조금만이라도 불성실한 성격이었다면…… 아니, 만약 전생의 기억이 없었다면 이미 진즉 그녀의 유혹에 넘어가 몸을 섞었을지도 모르는 노릇.

그이의 순수함과 결백함을 믿고 있고 늘 감사하게 생각하지만, 그것과 저 여자를 방치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아무리 성실한 남자라고 해도 저런 요부가(어쩜 같은 여자인 자신이 봐도 소름끼칠 정도로 색기를 풀풀 풍겨낸단 말인가!) 계속 적극적으로 구애를 하면 한순간의 실수를 하게 될지도 모르지 않는가!

“휴우, 어린 아이가 독점욕이 심하네 같은 남자를 사랑하는 입장에서 서로 좀 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마주하는 것은 어떨까요?”

“미안하지만 당신 자리는 없거든? 그치, 자기야?”

“아, 응.”

강신혁으로선 클레어가 원한다면 거기에 맞춰주는 수밖에.

더구나 일전 츠쿠요와의 언쟁 이후로 한층 그녀를 서먹하게 느끼게 된 것도 사실이었다.

“모루까지…… 하지만 괜찮아요. 결국 마지막에 당신의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하게 되는 건 저일 테니까요.”

“그런 세기말 풍 고백을 받아도 곤란한데 말이지.”

“저번부터 듣자하니 늘 여유 있는 척 폼은 다 잡으면서 당신 실제로 하는 짓은 다 성희롱인 거 알아? 우리 자기가 착해서 봐주는 거야.”

“할아방, 나 손 잡으면 안 돼?”

“어쩜, 당사자가 뭐라고 하지도 않는데 지레 털을 빳빳이 세우고…… 후후, 귀엽네요. 예에, 정말로.”

강신혁은 출발 전부터 서로 으르렁거리는 세 여자를 보며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뭐? 무조건적인 이해자가 필요해서 둘을 불렀다고?

그를 무조건적으로 이해해줄 사람이 필요한 건 고려했어도 그 이해자들이 서로를 어떻게 생각할지는 고려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 관리자 미스테이크! 회원님께 1,000,000HP 보너스!

‘시끄러워요.’

그는 관리자에게 핀잔을 준 후, 박수를 쳐 이목을 집중시키고는 말했다.

“우리끼리 놀고 있을 시간은 없어. 이제 슬슬 출발했으면 하는데.”

“모루가 태어난 세상으로 말인가요, 저도 이전부터 무척 흥미가 있었답니다.”

“맞아. 메르바지? 거기 요르문간드 놈들도 못 들어가잖아.”

“나만 빼 놓고 뭘 잘들 아는 척......."

“나도 잘 모르니까 안심해, 클레어.”

“아, 둘이서만 달라붙고 치사해!”

요르문간드도 들어가지 못한다는 슈의 말에 강신혁은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지만, 그런 생각은 일단 접어두고 차원이동을 개시했다.

다만 여기서 경악스러운 점이 있었으니 바로 관리자만의 힘으로는 차원을 넘을 수 없다는 것.

히어로 유니버스의 힘을 빌려, 과거 만들어낸 무기들과의 접점을 갖고 있는 강신혁의 공간지배 능력으로 통로를 뚫어, 츠쿠요의 마력으로 그것을 확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로의 안전성이 너무 낮았는데, 일행 중에는 낮은 확률을 100%로 고정시킬 수 있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슈였다.

인과를 생략하고 결과값을 얻어낼 수 있는 그녀는, 거꾸로 말하면 모든 행동에서 언제나 최선의 결과를 얻어낼 수 있도록 조정을 하는 것이 가능했던 것이다.

“물론 가능성이 너무 낮으면 안 되지만, 이렇게 큰 통로라면 우리 넷 정도는 얼마든지 뛰어넘을 수 있단 말씀!”

“대단하네, 슈.”

“히…… 할아방, 더 칭찬해줘!”

“종족을 잘 타고났을 뿐인데 모루에게서 칭찬을 받다니, 참 우습네요.”

“응? 그건 엉덩이 뒤로 천박하게 꼬리를 흔들고 있는 아줌마도 마찬가진 것 같은데?”

그새를 못 참고 또 싸우기 시작하는 두 VIP 회원을 말리며 강신혁은 문득 생각했다.

처음엔 어째서 관리자가 히어로 유니버스에 다수 존재하는 후보 가운데 콕 집어 츠쿠요와 슈를 초대했는가 생각했지만 답은 간단했다.

애초에 그녀들이 아니면 안 되었던 것이다!

……츠쿠요는 조금 미묘하지만 아마 그녀에겐 강신혁이 모르는 다른 이유가 또 있을 것이다. 분명했다.

- 멸망한 세상 메르바에 진입합니다. 가이아 시스템의 권능이 닿지 않는 세계입니다. 부디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하."

세 명의 VIP 회원의 힘을 합쳐 간신히 메르바에 도착한 순간 강신혁의 망막 위로 살벌한 메시지가 떠올랐다.

가이아 시스템의 권능이 닿지 않는다고 해도 사실 별로 달라질 것은 없었다.

스킬이나 특성이 성장해도 갱신이 되지 않는 정도.

덤으로 갑작스런 게이트의 발생이나, 위험한 몬스터의 습격에 대한 경고를 받지 못하는 정도.

그런데 그 정도는 이미 강신혁이 보유하고 있는 감정 능력이나 감지 능력으로 어떻게든 되는 수준이었으므로 사실 별 의미가 없었다.

문제는 히어로 유니버스인데…….

“어때요.”

-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히어로 유니버스는 가이아와는 다릅니다, 가이아와는.

중요하기에 두 번 말한 것일까. 강신혁은 관리자의 호언장담에 한숨을 내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우선 인원체크. 다들 혹시나하는 사태에 대비해 강신혁의 신체 어딘가를 꼭 붙잡고 있었는데, 전부 멀쩡히 차원이동을 완료한 모습이었다.

다만 메르바에 도착한 지금에 이르러서도 다들 떨어지기는커녕, 주인한테 제 냄새를 묻히는 고양이처럼 강신혁의 옷에 대고 부비적거리는 게 성가셨다.

“다 떨어졋!”

“닳는 것도 아닌데.”

“옷감이 닳아.”

다들 정신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기는 하지만 겉으로는 멀쩡했으니 일단 놔두고, 주위 풍경을 살폈다.

하지만 뭘 살피려고 해도 어디까지나 모래사막이 펼쳐져 있을 뿐이었다.

“이건…… 지독한데. 기감을 넓혀 봐도 느껴지는 게 없어.”

“지구보다 훨씬 넓은 세상이니까요. 시야에 들어오는 범위 안에 문명의 흔적이 없어도 이상할 게 전혀 없답니다.”

츠쿠요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선 안 될 것이다.

왜냐면 지금 이곳에 있는 일행은 지구의 일반인 수준이 아니라 한 명 한 명이 우주에서도 손꼽히는 능력의 소유자.

강화될 대로 강화된 안력과 탐지능력을 갖추고 있는 그들은 한순간에 지구의 절반 정도는 훑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는데, 그 능력으로도 사막 이외의 다른 것을 감지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일단 뭔가가 보일 때까지 전진할까요.”

“그러는 수밖에.”

문제는 강신혁이 별 생각 없이 푸른 소를 꺼냈을 때 재차 발발했다.

푸른 소는 1인승, 잘해봐야 2인승이었고, 누가 강신혁의 뒤에 탈 것인가를 놓고 세 여자가 혈투를 벌일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강신혁은 설마 차원 퀘스트가 끝날 때까지 이런 일이 반복될까, 걱정하면서도 품에서 오닉스를 불러냈다.

“오닉스. 동화, 구현.”

- 뀨!

변화는 극적이었다.

자신과 바이크를 동화시킨 오닉스가 구현 능력을 발동하자, 푸른 소가 돌연 바이크에서 근사한 4인승 스포츠카로 모습을 바꾼 것이다.

놀라운 점은 푸른 소의 성능과 옵션은 그대로 유지된다는 것.

오히려 오닉스와의 동화로 인해 능력이 한층 끌어올려지기까지 했다.

물론 자동차라고 해서 순수한 금속으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그 부분은 푸른 소에 깃든 자아가 조율해주었기에 가능한 변화였다.

“어머나, 이건."

어른스럽지 못하게 자신의 주위에 여우불을 몇 개씩이나 불러내던 츠쿠요가 가장 먼저 그 변화를 인지하고는 놀라움에 찬 목소리를 흘렸다.

“정말 굉장하네요, 모루……! 이 아이, 혹시 금속과 관련된 건 모두 제 멋대로 변형시킬 수 있는 건가요?”

“아니, 자기가 예전에 먹어치운 걸 기반으로 삼아서 바꾸는 모양이야. 자기가 알아서 최상의 부품을 조합하기도 하더라고.”

“어쩜...... 이 능력만으로 히어로 유니버스의 회원 자격을 획득할 수 있겠어요.”

오닉스에게 이런 능력이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실감하게 된 것은 사이제논에서 가이아 시스템의 분체를 먹어치운 그때였다.

그 전까지는 어디까지나 금속과의 동화로 금속의 성능을 끌어올리거나 다소 변형시키는 수준으로만 파악하고 있었는데, 사이제논에서의 일 이래로 녀석은 소프트웨어(전자)와 하드웨어(금속)를 모두 제 멋대로 조합하고 변형하는 완전체로 거듭난 것이다!

“그러니까 다들 타, 싸움하지 말고. 아니, 클레어는 이미 알고 있으면서 왜 싸우려고 하는 거야?”

“자기, 여자에겐 의미가 없다는 걸 알고 있어도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이 있는 거야.”

셋 중에 가장 정상인이었던 클레어가 불과 몇 분 만에 이 바보들에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강신혁은 한숨을 쉬며 클레어를 조수석에 앉히고 운전석을 차지했다.

츠쿠요와 슈는 부전패로 뒷좌석에.

하지만 둘은 모두 이번 퀘스트가 길어질 것이라 예감하고 있었으므로 한 번 기회를 놓친 정도로 일희일비하지 않기로 했다.

“그럼 가자. 참고로 좌석은 이대로 고정이야.”

“할아방, 남자가 그렇게 여자 눈치를 보면 안 돼!”

“부탁이니까 조용히 가자.”

“치, 나도 할아방이랑 아이 만들고 싶은데.”

“어쩜, 꼬맹이가 천박한 말을.”

“당신도 별 다를 바 없거든?”

푸른 금속질의 스포츠카가 사막을 내달리기 시작했다.

오랜 세월 쌓여만 가던 모래 위로 새로운 흔적이 새겨진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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