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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5화. < Chapter 55. 카이랄 - 6 >

“카이랄이라고 합니다.”

무척이나 자신만만한 어조로 말하며, 윌포드는 강신혁의 눈앞에 놓인 테이블을 가리켰다.

테이블 위에는 작은 파편이 두 개, 놓여 있었다.

그것은 무척 날카로웠고, 유리의 광택을 띄었으며, 거울처럼 단면이 매끄러워 그것을 보고 있는 강신혁의 눈동자를 선명하게 비추었다.

인간과 파충류를 합쳐놓은 듯 약간 세로로 선 황금의 눈동자를.

“이름이 카이랄이라고요.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굉장한 기운이 느껴지네요.”

강신혁은 그 검은 거울의 파편을 가만히 바라보며 상투적인 대사를 내뱉었다.

그의 심상치 않은 태도를 보며 윌포드 역시 만족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렇습니다. 역시 초인 랭킹 1위가 되시는 분은 물건을 보는 안목도 있으신 모양입니다. 아직 설명도 하지 않았는데 그렇게 흥미진진한 표정을 짓고 있으신 걸 보면……."

이 새낀 진짜 바본가? 하는 눈으로 강신혁은 윌포드를 보며 대꾸했다.

“아티팩트 장인이기도 하니까요.”

“아, 아아 그랬죠."

애초에 지들이 월드 프라이즈를 명목으로 불러들여놓고 그 사실을 잊어먹다니.

아니면 윌포드란 작자는 정말로 단순한 장기말이라서 제 위치에서 시키는 짓만 하는 병졸이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바보 같기는 매한가지지만, 눈앞에 놓인 물건은 그리 우습지 않았다.

카이랄(chiral).

왼손과 오른손처럼 마주 보고 맞댈 수는 있지만, 결코 완전히 겹칠 수는 없는 거울상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강신혁은 그 단어부터가 너무나 공교로웠다.

아주 최근에, ‘거울’에 대한 얘기를 츠쿠요로부터 듣지 않았던가.

요르문간드는 인간의 거울에 불과하다는 얘기를.

“그래서…… 정확한 설명을 듣고 싶은데요.”

애초에 그와 연관되어 있는 요르문간드의 수작질을 밝혀내보고자 굳이, 굳이 왕궁 안으로 기어들어온 것이긴 했지만, 설마 이렇게 쉽게 끈을 붙잡을 수 있게 될 줄은 몰랐다.

아니면 이것도 포함해 전부 요르문간드의 의도이거나, 그도 아니면 야누스의…….

자신과 싸우면서도 내내 자신에게만은 적의를 드러내지 않던, 하지만 결국은 신은아를 그에게서 빼앗는 결과를 낳은 야누스의 모습을 떠올리며 강신혁은 사고를 멈추었다.

“안 그래도 지금부터 해드리려고 했습니다. 카이랄의 지속적인 생산을 위해선 퍼펫 마스터와 같은 강자의 도움이 필요하거든요.”

“대체 퍼펫 마스터라는 명칭은 처음에 누가 붙인 거죠?”

“접니다.”

정했다, 이새낀 지상에서 흔적도 찾아볼 수 없이 지워버릴 것이다.

하지만 그게 지금은 아니다.

이 카이랄이란 결정에는 그의 영력으로도 단숨에 파악할 수 없는 고차원의 에너지가 담겨있었으니까.

지금부터 이빨을 드러내는 것은 의미가 없다.

정말로 아무 의미도.

“카이랄은 존재의 잠재력을 크게 강화시켜주는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심지어 원래 자신의 역량에 비해 더욱 그 강화폭을 늘려주는 희대의 기물이죠.”

강신혁이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아는지 모르는지, 윌포드는 더욱 열정적으로 카이랄에 대해 설명했다.

“그러니까 포션 같은 건가요?”

“아니지요. 보시겠습니까?”

윌포드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의 손에서 카이랄을 받아들어, 그대로 자신의 팔뚝을 찔렀다.

강신혁은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카이랄은 치직 소리를 내며 천천히 녹아내려, 그의 몸 안으로 흡수되어갔다.

그 과정에서 발생해, 윌포드가 원래 품고 있던 기운과 반응하여 변형되며 반발하다가…… 끝내 윌포드의 체내로 완전히 흡수되기까지.

강신혁은 거기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당신이라면 눈치 챘을 겁니다. 방금 제 능력이 강화되었다는 사실을요.”

“확실히…… 그렇군요.”

이전 엘레노어에게 듣기로는 윌포드는 잘해봐야 올리비아와 비슷한 수준, 혹은 그녀보다 더욱 약하다고 했었다.

하지만 오늘 만찬장에서 만났을 때 그가 올리비아보다 월등히 강해보여서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뒤에 이런 비밀이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가능하죠? 그러니까, 엄연히 자신의 것과는 다른 성질을 지닌 에너지 결정을 그렇게 스무스하게 받아들인 거 말이죠.”

“하하, 물론 쉽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끝없는 노력과 실험정신으로 끝내 이 카이랄을 완전히 체내에 흡수해 능력을 키우는 방법을 알아냈죠.”

“능력을, 키우는 방법.”

“특성의 진화.”

감미로운 꿀을 핥는 듯한 목소리로, 윌포드가 강신혁에게 말했다.

그는 그 안에 도사리고 있는 치명적인 칼날을 느꼈다.

“카이랄은 그것을 가능케 합니다.”

가정을 해보자.

만약 강신혁이 처음 윌포드를 만난 순간부터 그를 의심하고 경계했으며, 심지어는 만찬이 끝난 후 그와 따로 만남을 가진 이 순간까지도 그를 인정할 생각이 없었다는 사실을 ‘그가 이미 알고 있다’고 쳤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윌포드는 확신할 수 있었을 것이다.

카이랄, 이 기물의 능력을 보여주는 것으로 강신혁을 확실히 자신 쪽으로 끌어당길 수 있을 것이라고.

‘더불어 아까 악수를 하는 순간 가져온 마기, 이것도 카이랄과 연동하는 것 같네. 카이랄을 흡수할 수 있게 도와주는 능력이든, 카이랄에 의해 효과가 증폭되어 나를 완벽하게 세뇌하든가…… 아니면 둘 다인가.’

강신혁은 속으로만 쓴웃음을 지었다.

초인시대 개막 이래, 초인으로서의 개성을 가르는 가장 큰 요소인 특성에 관해 무수한 연구가 이루어졌다.

각 특성이 지니고 있는 잠재력은 물론이고, 특성이 성장, 진화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많은 이가 밤잠을 설치며 파고들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특성의 진화에 대해 유의미한 발견을 해낸 이는 없었다.

만약 특성의 진화를 인위적으로 일으킬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단 한 명…….

그렇다. 강신혁밖엔 없었다.

여태까지는.

‘이것도 내 탓인가? 내 능력이 특성을 진화시킬 수 있으니까? 그래서 이런 게 튀어나온 건가? 아니, 하지만 이건 보다 근본적인…… 근본?’

가만히 생각하던 강신혁은 테이블에 놓인 또 하나의 카이랄을 집어들던 윌포드를 보다 문득 물었다.

“그 외에는 없습니까?”

“네?”

윌포드는 고개를 갸웃했다. 능청을 떠는 것처럼도 보였다.

“카이랄의 능력이요. 그 외에도 뭔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만.”

“아, 아아, 그런 말씀이셨군요. 저희에게는 별 의미가 없는 일이라 말씀을 안 드렸는데.”

윌포드가 진하게 웃었다. 그럼 그렇지, 강신혁은 생각했다.

아마도 이쪽이 본론이었겠지, 그는 어차피 주위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부러 은밀한 시늉을 내며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카이랄은 특성의 복사를 가능케 합니다.”

“호오.”

“심지어는, 특성을 갖고 있지 않던 자들도 각성시켜줄 수 있죠. 그렇습니다.”

강신혁의 얼굴이 이채를 띠는 것을 본 윌포드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카이랄은 초인을 만들어내는 기적의 산물입니다.”

“흥미가 생겼습니다.”

강신혁은 다짜고짜 말했다.

“제게 괜히 이것에 대해 말씀해주시진 않은 것 같은데요. 뭘 원하는지 들어봅시다.”

“아까 당신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죠?”

강신혁이 긍정적인 자세로 나오자 윌포드의 기세가 높아졌다.

애초에 영국 왕족에 별 기대를 하진 않았지만, 그런 승냥이 같은 모습이 천박해 코웃음이 나왔다.

그걸 눈치 챘는지 또 어깨를 조금 수그린 윌포드가 큼큼,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몬스터의 마석이 아주 많이 필요합니다. 그것도 가능하면 지능을 가진 몬스터의 마석이요.”

“마기를 품은 놈들 중에 지성 있는 몬스터가 많더군요.”

“바로 그겁니다!”

윌포드가 그것을 덥석 물었다.

강신혁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주억이며 속으로 생각했다. 넌 연기는 하지 마라.

“제가 비밀리에 확보하고 있는 게이트가 있습니다. 강신혁 초인은 그 안에 들어가서 마석을 확보해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어떻습니까?”

“비밀리에? 게이트는 언제 폭주할지 몰라요. 꾸준히 관리해줘야 하는데……."

“폭주의 걱정은 없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카이랄의 제작법이나 사용법에 대해서도 얘기를 나누고 싶은데…… 저와 계약하실 생각은 있습니까?”

윌포드가 의미심장하게 말하며 강신혁에게 카이랄을 내밀었다.

마치 그것이 계약금이라고 말하듯이.

하지만 대충이나마 이것의 구조를 파악한 강신혁은 이게 계약금 따위가 아닌, 그를 옭아매고 속박하기 위한 족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을 알면서도, 받아들였다.

그와 동시에 확신했다.

‘야누스는 이 건에 연관되어 있지 않나보네.’

아니면 철저하게 강신혁의 아군이던가.

파천룡이 이런 자그만 파편 따위에 좌지우지될 리 없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을 테니까.

@@@

카이랄은 흥미로운 물건이었다.

강신혁은 카이랄을 받자마자 윌포드가 그랬듯이 바로 팔뚝에 꽂으려고 했으나, 그는 정확한 방법으로 하지 않으면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며 그에게 정확한 사용법에 대해 늘어놓았다.

사전에 마셔야 하는 약물이나 마력운용법 따위의, 강신혁에겐 코웃음만 나오는 밑작업이었는데, 도저히 일반적으로 연구해선 알아낼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아무튼 그렇게 수고스러운 작업을 마친 후 강신혁이 순순히 카이랄을 흡수하자, 윌포드는 ‘다른 왕족들에게 그랬듯이’ 아주 편하게 그를 대하기 시작했다.

강신혁은 순순히 그의 장단에 맞춰주며 얘기를 조금 더 나눈 후 그와 헤어졌다.

“아, 후배 왔다!”

강신혁이 방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이나희가 그를 덮쳤다.

딱히 이상한 짓을 하려는 것 같지는 않아 받아주자, 이나희가 살짝 눈물이 맺힌 얼굴로 그의 몸을 마구 더듬으며 외쳤다.

“야! 넌 그 이상한 분위기에서 이상한 분위기를 풀풀 풍기는 새끼를 그냥 따라가면 어떻게 해! 존나 걱정했잖아!”

“고마워. 그런데 나 랭킹 1위야.”

“랭킹 1위 몸에는 칼 안 박히냐!?”

이제 어지간한 칼이 아니면 안 박힌다고 대꾸하려고 했는데, 이나희가 말하려는 것이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에 그저 웃어주고 말았다.

그러자 태도가 명백하게 바뀐 이나희가 큼, 헛기침을 하며 괜히 몇 번이가 그의 몸을 더듬고는 물러났다.

“이상한 짓은, 안 당한 모양이네……."

“어땠어?”

한편 그가 들어와도 여전히 의자에 앉아있던 엘레노어는 강신혁이 이나희에게서 풀려나자마자 특유의 보랏빛 눈으로 가만히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요즘은 별로 보지 못했던 그녀의 가라앉은 모습에 조금 걱정하면서도 강신혁은 순순히 대꾸했다.

“대충 꼬리는 잡았어.”

“무슨 일인데!?”

이나희가 펄쩍 뛰어올랐다. 하지만 직후 엘레노어가 가만히 팔을 뻗어 그녀를 잡아 앉혔다.

“말해줬으면 좋겠어. ……왕실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요르문간드에 장악 당했어.”

"......."

“예상하고 있었잖아.”

“왕실이, 이렇게 무력하게 당할 줄 몰랐어.”

“원래 내부의 적이 있으면 철옹성이라도 쉽게 무너지는 법이지."

강신혁은 쓴웃음을 지으며 대꾸하곤 자신의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의 침대에서 자고 있던 헬이 눈을 뜨고는 아장아장 기어와 그의 어깨 위로 올라왔다.

“뀨르르."

귀여운 목소리를 내는 녀석의 턱을 간질여주며 강신혁은 거친 한숨을 내쉬었다.

카이랄에 대해서는 대충 감을 잡았다.

동시에 뜻하지 않게, 요르문간드의 근원에 대해서도 아주 약간 힌트를 찾았다.

마치 잘 찾아오라는 듯이 레일을 깔아주는 듯한 모습이 무척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신혁.”

“걱정 마. 어떻게든 해줄 테니까. 조금 시간이 걸리겠지만…… 아마 올리비아도 구할 수 있을 것 같아."

“앤 무슨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끝내놔.”

하지만 그 전에, 월드 프라이즈가 먼저다.

뱀의 꼬리를 붙잡는 것은 그 뒤의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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