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6회. < Chapter 54. 학교는 군단이다 - 3 >
이번 테러로 인해 각국의 초인병력은 적게는 20%부터 크게는 50%까지 감소했다.
미국이나 러시아와 같은 초인강국은 전문적으로 초인을 양성하는 과정에서 다수의 대형 길드가 탄생했기에 그나마 타격이 적은 편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길드는커녕 타국의 지원을 받아 간신히 초인협회를 운영하는 수준이던 많은 국가가 기반을 잃고 좌초했다.
그리고 초인강국에 한 발을 걸치고 있던 영국과 프랑스와 같은 나라도 사태가 심각하기는 매한가지였는데, 그들은 당연히 한국이 그러하듯 자국의 초인양성기관을 운용해 몬스터에 맞설 것을 결의하는 것과 동시에 타국으로 나가있는 초인들에게 소환령을 내렸다.
“신영의 유학생 비율은 60%니까 말이지……. 이 애들이 전부 빠져나가는 건, 확실히 좀.”
물론 그것은 신영에 속해있는 유학생들도 마찬가지여서, 그 건으로 인해 신영의 교무실에서는 새벽같이 교직원 회의를 소집해 의논하고 있었다.
어제 백인하와 엘레노어에게 얘기를 들었던 강신혁도 클레어와 함께 참여했다. 선생들이 여기저기서 그들을 힐끗거리고 있었지만 이해했다.
“그렇다고 붙잡을 수도 없잖아요. 제 나라를 위해 행동하는 거니까요.”
“정부와 상의해야 하지 않을까요? 학생은 물론이고 가족들에게도 모두 한국 국적을 줘서 한국으로 데려오는 거죠.”
“끄응, 그걸 해당 국가에서 가만히 놔둘까요?”
신영의 교직원들 가운데에도 외국 출신이 상당히 많았지만, 그들 대부분은 이미 한국으로 귀화했기에 모두 신영에 남을 것을 결의했다.
한국에 대한 애국심보다는, 신영이라는 집단에 대한 소속감 때문이었다.
“지금이 무슨 중세시대도 아니고, 학생들한테 무슨 애국심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무기술 단련 교과목 담당인 공준표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강신혁은 개인적으로 공준표를 싫어했지만 그의 말은 옳다고 여겼다.
국민에게 무턱대고 애국심을 강요하던 시대는 한참 전에 지나갔다. 개인주의가 만연하는 시대, 개개인의 소속감은 끽해야 가족에 한하고, 거기서 더 나아가봤자 자신에게 이익을 주는 집단까지다.
즉 신영도 그들에게 이익을 줄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그들의 고향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너무 극단론이 아닐까 싶은데요, 공 선생님……."
“신영에 남아있는 쪽이 학생들에게 이득이 된다는 사실을 알려주기만 하면 되는 겁니다. 물론 아까 폴 선생님 말처럼 가족을 데려와 국적을 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죠. 적어도 국력이 한국보다 떨어지는 국가에 속한 학생들은 상당히 혹할 겁니다.”
"으음......."
“선전을 해야겠네요.”
강신혁이 짧게 한 마디 하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강신혁은 그 와중에 노골적으로 그를 피해 고개를 돌리는 공준표를 보며(공준표는 그에게 작년 어느 시점인가부터 전혀 말을 걸지 못 하고 있었다.) 피식 웃곤 말했다.
“학생들 모두 불안해하고 있을 겁니다. 체육관에서 있었던 테러도 그렇고, 학생도 선생도 제법 죽거나 다쳤고……. 그러니 앞으로의 신영이 어떻게 변할지 확실하게 알리고 학생들을 붙들어둘 필요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혹시 강 교관이 직접?”
“네."
학생들에게 제시할 수 있는 메리트는 모두 강신혁이 쥐고 있으니 이런 일에 그가 빠질 수는 없다.
이전 클레어가 교장을 상대로 했던 말이 농담이 아닌 셈이다. 강신혁을 끌어들이기로 결정한 시점에서, 그들은 강신혁을 신영의 중심으로 만든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실은 어제 몇몇 학생들과 얘기를 나눴습니다만.”
“오오.”
“여태껏 수업에서 해왔던 것처럼, 현장에서 활약하는 학생들에게 점수…… 마일리지를 주는 겁니다.”
“마일리지?”
“그에 따라 보상을 얻을 수 있게 하는 거죠. 강자와의 1대1 교습이 되어도 좋고, 혹은 스킬 스톤이 되어도 좋고, 혹은 제가 만든 아티팩트가 되어도 좋습니다.”
"오오오......."
그건 마치 게임 같은데, 하고 선생 중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강신혁은 부정하지 않았다. 이래서야 마치 게임이었다.
적들을 상대로 활약해서 점수를 벌고, 그렇게 획득한 점수로 자신을 강화할 수 있는 스킬이나 아이템 따위를 구비하는 것…… 이게 게임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젊은이들을 상대로 엄청 잘 먹힐 만한 제안이군요. 문제는 바로 그 상품의 준비가 됩니다만……."
“저도 준비하겠지만 선생님들도 많이 도와주셔야겠지요. 정부와의 협약도 필요할 테고요.”
“신영의 학생들은 이미 전선에 나서는 초인들과 비슷하거나 뛰어넘는 수준의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들을 지켜내기 위해서라면 정부도 패를 아끼지 않을 겁니다.”
거기서 강신혁은 크흠, 하고 헛기침을 하며 한쪽 구석에 가만히 있던 이만우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러자 이만우가 이제야 떠올랐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나와 말했다.
“신혁이는 이번 월드 프라이즈에 출품할 거요.”
“월드 프라이즈라면…… 그 월드 프라이즈 말씀이십니까, 이만우 선생님?”
“월드 프라이즈가 하나밖에 더 있나.”
월드 프라이즈. 작년에 열린 월드 루키즈 크리에이터 경연대회의 어른 버전으로(이쪽이 원조였다.), 무려 5년에 한 번씩만 개최되는 세계적인 아티팩트 경연이었다.
각국의 내로라하는 장인들이 이 대회에 나가며, 수단과 목적을 가리지 않고 보다 강한, 보다 혁신적인 아티팩트를 만들어내는 것을 지향점으로 삼는 대회다.
“신혁이 실력이야 아는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겠지만, 그걸 학생들이 알고 있느냐는 별개지. 월드 프라이즈 챔피언이라는 타이틀은 신영을 더 매력적인 장소로 만들어주지 않겠나?”
“하지만 이만우 선생님, 지금 시국이 시국인데 월드 프라이즈가 열릴까요……?”
조심스럽게 묻는 시아라 베르트랑. 하지만 강신혁은 그녀의 엉덩이 뒤에서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리는 듯한 환각을 보았다.
이 여자는 이만우를 매우 존경하며 따르고 있는 것이다. 다른 이가 보면 살짝 오해할 만큼!
그러나 이만우는 그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가 담판을 짓고 왔네. 시국이 시국일수록, 이지 않겠나. 세상이 험난해지면 무기의 가치는 올라가는 법이야.”
“아니 누구랑요.”
본능적으로 태클을 거는 강신혁. 이만우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꾸했다.
“후원자들이지 누구긴 누구겠냐. 그럴 거면 미국에서 열어달라, 프랑스에서 열어달라 말이 많았지만 결국 돈을 가장 많이 낸 국가에서 하게 됐다.”
“잠깐만, 결말이 알 것 같으니까 말하지 말아 봐요, 선생님.”
그 순간 강신혁은 어제 엘레노어가 눈물지으며 했던 말이 뇌리를 스치고 대퇴부를 걷어차는 것을 느끼고 벌떡 일어났다.
그러나 이만우는 매정하게도 그가 했던 예상 그대로의 답안을 입에 냈다.
“영국이다.”
“내 그럴 줄 알았지……!"
강신혁은 이제야 모든 것이 이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아티팩트 경연대회의 후원자 가운데 영국 왕실이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작년도 월드 루키즈 크리에이터 경연에도 영국 왕실이 후원을 했던 것이 분명했다. 어째서 엘레노어가 그곳에 왔는가를 생각해보면 자명한 것이 아닌가!
까딱하면 당시 요르문간드와 손을 잡고 침입해 엘레노어를 노렸던 사람들도 그 라인을 타고 잠입했던 것일 수도…… 아니 잠깐만.
‘그럼 위험하잖아.’
- 대회 자체가 노려질 가능성이 있겠군요.
물론 강신혁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뚜렷한 가능성을 쥐고 있으면서 모르는 척 하는 것은 그의 성질에는 들어맞지 않는 일.
어차피 자꾸 자신과 엘레노어를 이상하게 엮는 놈들과 결판을 내려면 영국에는 한 번쯤 갈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으니, 차라리 좋은 기회였다.
“그런데 그, 강 교관이 쓰는 무구들은 전부 스스로 제작한 겁니까?”
딱 봐도 심상치 않은 이번 건에 대해 강신혁이 깊이 생각하던 그때, 한 교사가 아직 입에 붙지 않는 어색한 존댓말로 질문을 던져왔다.
“네, 뭐.”
“오오!"
강신혁이 확답을 주자 대번에 교무실의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물론 그들이 강신혁이 지닌 무구의 정확한 등급을 알지는 못하지만, 그가 신은혁을 자칭하던 시절부터 두루 사용하던 다양한 아티팩트들의 능력이 엄청나다는 것만은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앞으로 저희 무구도……!”
“그건 선생님들이 벌어들이는 마일리지 나름이죠.”
“……네?”
갑자기 먼눈이 되는 선생들. 강신혁은 눈을 가늘게 떴다.
“선생님들이라고 차별대우를 할 생각은 없어요. 마일리지 제도는 전원한테 똑같이 부과되어야죠. 아, 물론 기본적인 장비는 만들어드릴 생각입니다만, 그 위를 노리신다면야 노력하셔야겠죠.”
참고로 강신혁이 생각하는 기본적인 장비란 A+랭크에서 S랭크에 이르렀다.
이 정도 급수가 되면 기본은커녕 가장 잘 나가는 길드의, 가장 높은 위치인 정예부대원 정도 되지 않으면 만져보기도 힘든 수준이었다.
다만 아직까지도 그의 능력을 잘 모르는 교직원들은 진짜 대단한 아티팩트를 얻으려면 어떻게든 마일리지를 쌓아야 한다고 굳건하게 믿으며 눈을 빛내기 시작했다. 강신혁에겐 어찌되든 좋은 일이었다.
“그래서, 신혁아.”
“네, 선생님.”
이만우는 자신에게 예의를 갖추는 강신혁을 보며 묘한 표정을 짓다가는, 이내 크흠,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이번 대회는 겸양 떨 거 없다.”
“난리 날 텐데요?”
“이 이상 어떻게 말이냐?”
“하긴 그것도 그런가.”
하지만 강신혁이 정말로 전력을 다해 만든 아티팩트라면 아마도 현계한도를 돌파해버릴 텐데, 이만우라고 해도 차마 거기까진 예상하지 못할 터였다.
다만 자신의 능력을 알리고 신영을 선전하기 위해서라면, 확실히 어느 정도는 능력을 보여주어야 할 터. 강신혁은 자신을 진지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이만우에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알겠습니다. 나희 선배를 말려 죽이는 한이 있어도 제대로 된 걸 만들어보죠.”
“흠, 우리 나희는 말리는 게 아니라 기왕이면 찌워줬으면…… 헛.”
언제나처럼 이나희를 강신혁에게 붙여놓으려, 요즘 들어서는 할아버지가 해도 위험한 19금 농담을 하려던 이만우가 갑자기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강신혁의 옆에 붙어있던 클레어가 매서운 시선을 보낸 탓이었다.
“하하, 농담일세, 하하하.”
“해도 되는 농담과 하면 안 되는 농담이 있어요, 응? 안 그래도 나희는 앞뒤 가릴 줄 몰라서 성가신데……."
“오오, 내 손녀딸이 아주 잘 하고 있는 모양…… 헉, 아, 아닐세. 아니야.”
신영의 그 누구도 감히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이만우를 쥐 잡듯이 잡을 수 있는 사람은 달리 없을 터. 신영 교직원 간의 위계서열에 큰 변화가 닥쳐온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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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 앞으로는 제가 전투교관으로서 재직하게 되었습니다. 신영은 세상에서 가장 강한 초인들의 기관이 될 겁니다. 학생 여러분은 전선에 나서는 순간부터 모두 한 명의 초인으로 대접받게 될 것이며, 그만큼 위험하지만 확실한 대가를, 인류의 최전선에 서 있다는 명예를 손에 쥐게 될 것입니다.”
그 날 오후, 강신혁은 전교생 앞에 섰다. 집회 장소는 요르문간드에게 보라는 듯이 그때 습격을 받았던 체육관을 선택했다.
그날 습격을 받아 거동이 불편하지 않은 한 모든 학생이 이 자리에 참석했다.
그리고 그것은 유학생들도 마찬가지. 이미 돌아오라는 얘기를 들었을 텐데도 그들이 이 자리에 모였다는 것은, 공준표의 말마따나 그들이 신영과 자신들의 모국을 놓고 저울질을 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다만 저들이라고 자신의 가족과 친지가 살고 있는 모국을 버리는 것은 힘든 일일 터, 강신혁은 신영이 정부와 협의해 마련한 구제조치를 당당히 밝혀 그들의 선택을 도왔다.
강단에 선 강신혁에게 쏟아지는 학생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건대, 저들 모두를 신영에 붙잡아두겠다는 한국 정부와 신영 교직원들의 욕심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닌 듯 보였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놀라운 성과를 보여주는 학생에게는, 마스크드 바커스의 입단 기회를 부여할 예정입니다.”
어제 카렌과 백인하로부터 들었던 가장 큰 ‘메리트’, 하지만 강신혁 자신은 어딘가 이해할 수 없었던 그것을 제시한 순간.
체육관이 들끓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