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4화. < Chapter 54. 학교는 군단이다 - 1 >
야누스가 모습을 드러낸 것과 더불어 신은아가 눈앞에서 사라진 일로 머리가 복잡한 강신혁이었으나, 사실 위기는 그에게만 닥친 것이 아니었다.
그 날, 요르문간드로부터 습격을 받은 곳은 신영과 한국 초인협회 본부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의 초인세력이었으니까.
요르문간드는 그야말로 이때만 기다려왔다는 듯 전력을 쏟아 부어 각국의 초인양성기관과 초인협회를 폭격했다.
피해는 감히 말하건대 역대 최악. 세계3대 양성기관에 꼽히는 미국의 [히어로즈]는 괴멸했고, 영국의 초인협회 본부를 비롯한 세계 각국의 초인협회가 거기에 속한 초인의 30% 가까이를 잃었다.
……한국의 초인협회는 특히 내부에서 거대한 마력폭발이 일어나, 본부 건물의 흔적을 찾을 수도 없이 깨끗하게 날려버렸다.
당시 초인협회가 직접 구금하고 있던 이들 가운데 신은아의 친부모가 있어, 그들이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는 상황이었으나 이미 죽은 그들에게 책임을 물 수도 없고,
그들의 딸인 신은아는 신영에서 일어난 테러 사태에서 모두를 지키고 홀로 폭사한 것으로 알려져 사건은 거기서 종결되고 말았다.
초인협회 본부의 증발로 인해 요 몇 년 가장 강한 초인국가였던 한국은 단숨에 무력이 몇 단계나 추락하고 말았다. 타국에 비해 특히 협회의 위상이 높았던 나라인지라 타격이 더욱 컸다.
그나마 다행한 점은 한국의 미래를 책임질 인재들이 소속되어 있는 신영은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었다는 것이다. 뇌제의 숭고한 희생과, 이번에 갑작스럽게 실제 신분을 드러낸 인형사 신은혁…… 아니, 강신혁이 활약한 덕이었다.
물론 학생들이 별로 죽지 않았다고 해서 이 상황에 정상수업을 진행할 수도 없는 노릇인지라 신영의 학생들에게는 대기령이 떨어졌다.
기숙사 밖으로 나가는 것도 금지되어, 다들 커뮤니티에 모여 떠들거나 기숙사 내에 모여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토론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강신혁은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면.
“차는 입맛에 맞는지 모르겠군.”
“……예, 뭐.”
학교장을 비롯한 학교의 선생들과 면담을 갖고 있었다.
눈앞에는 교장, 그 옆에 교감, 반대쪽 옆에는 3학년 부장, 그 외에는 2학년 부장, 올해 담임인 지민혜, 심지어는 작년 담임인 시아라 베르트랑마저 있었다.
한편 강신혁의 옆에 앉아있는 이도 있었는데, 물론 클레어였다. 소중한 사람을 잃은 것은 그녀도 강신혁과 마찬가지인데, 애써 표정을 꾸미고 있는 것이 존경스러울 정도였다.
“그래서…… 슬슬 본론을 얘기해주셨으면 합니다.”
다만 강신혁은 바로 오늘 츠쿠요에게 들은 얘기도 있고 해서 침착함을 가장하는 것조차 무리가 있는 상황. 다소 차갑게 들리는 투로 대꾸하자, 교장은 몸을 움찔하더니 주위 선생들과 눈빛을 교환했다.
그리곤 어째선지 지민혜를 빤히 쳐다보는데, 교장이 자신에게 발언을 떠넘긴다는 것을 알아챈 지민혜는 인상을 팍 구기며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오늘 자리를 만든 건, 신혁이…… 아니, 인형사 신은혁 씨에게 정식으로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서야.”
“혹시 퇴학인가요? 그간 여러모로 속여 왔으니……."
솔직히 퇴학을 당해도 별 상관없었다. 그가 학교를 졸업하려고 했던 것은 어디까지나 정식으로 초인 명의를 따내기 위해서.
하지만 신은아가 사라지고 히어로 유니버스와 요르문간드의 비밀을 어느 정도 알게 된 지금은, 직함이나 신분 따위에 집착하는 게 바보처럼 느껴졌다.
사실상 자신의 힘을 휘두르는 데에 초인이라는 직함은 별 의미가 없는 것이다. 정 필요하다면 자신을 초인으로 인정해달라고 주장하면 그만. 막말로 신은혁이라는 신분도 그것을 위해 만들지 않았던가. 제2의 신은혁을 만들어내면 될 뿐이었다.
“아니, 아니 그건 아니고!”
그런데 강신혁의 입에서 나온 퇴학이라는 말에 지민혜를 비롯해 선생들이 펄쩍 뛰며 손을 내저었다. 웃음이 나올 만큼 속내가 빤히 드러나는 모습이었다.
“오해 없도록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
“네."
“우린 네가 신영 학생들의 전투교관이 되어줬으면 좋겠어.”
“전투교관……."
단어가 갖는 차가운 인상에 강신혁은 인상을 찌푸렸다.
신영은 엄연히 미래에 활약할 초인을 길러내는 양성기관이었지만, 그래도 엄연히 학교였다. 학생들은 어디까지나 ‘학생’이었고, ‘병사’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가 말한 교관이라는 말은 강신혁에게 절로 후자를 연상시켰다.
“작년처럼 학생들이 게이트에 투입되는 건가요.”
“작년은 애교야. 어디까지나 이쪽에서 사전에 안전한 곳만 골라서 투입할 여유가 있었으니까.”
물론 강신혁과 백인하는 이레귤러 게이트에 투입되는 신세가 되었지만, 사실 그들 같은 지극히 특수한 케이스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학생들은 본인의 전투능력과 맞는, 혹은 다소 떨어지는 수준의 게이트에 투입되어 비교적 안전하게 게이트를 공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젠 얘기가 달라졌잖아? 더 이상 신영은 교육기관으로 남아있을 수 없게 된 거야.”
“그럼 무슨 군사시설이라도 되나요?”
“까놓고 말하면 그렇네.”
교장, 신윤학이 입을 열었다.
“무척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젠 우리 학생들의 미래를 기다리고 있을 수가 없어. 우리에게 요구되는 건 지금이네. 한국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가 그런 상황에 처했지.”
“하."
요르문간드 테러 당시 당연히 그도 체육관에 있었고, 현역에서 물러난 지 한참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을 지킨다고 나서 왼팔을 잃었다
다만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던 선생들 중에도 목숨을 잃은 이가 제법 되니, 팔 하나로 끝난 그는 오히려 선방한 축에 들었다.
물론 그는 강신혁이 SSS랭크의 몬스터들을 종잇장 찢듯이 찢어버리는 것도 아주 똑똑히 지켜보았고, 그가 야누스와 대치하며 그를 막아내는 것도 보았다.
하지만 그가 강신혁을 높이 평가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단순히 그런 강함 때문만이 아니라…….
“얘기를 들었네.”
“무슨 얘기요?”
“자네, 1학년의 오혜나 학생을 가르치고 있다면서."
"......."
“그녀의 가파른 성장세에는 우리도 주목하고 있었지. 단지 그 요인을 자네에게서 찾을 생각을 못 했을 뿐. 알고 보니 간단한 얘기였어. 오혜나 학생뿐만 아니라 자네와 연관된 이들이 대부분 빠르게 성장했더란 말이지.”
응, 뭐 언젠간 들킬지도 모르겠다고는 생각했다.
까놓고 말해 도우진한테까지 가끔씩 지속성 버프를 걸어주며 성장을 유도한 부분이 있었으니까, 그와 친한 이들은 거의 대부분 그의 특성의 수혜를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그걸 학교 측에서 눈치를 채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강신혁이 그것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이자 다시 옆에서 지민혜가 몸을 내밀며 말했다.
“능력을 깊게 캐물을 생각은 없어. 다만, 그 능력을 조금이나마 학생들을 위해 써주었으면 좋겠어. 부탁할게. 이대로 전선에 내몰려봤자 학생들 대부분 개죽음을 당하고 말 거야. 너도 알잖아?”
“그래서 교관인가요.”
확실히 그의 능력을 제대로 구사하고자 한다면 교관이라는 직함은 적격이었다.
물론 그의 친인들에게 하듯 24시간 유지되는 버프를 학생 전원에게 거는 것은 단언컨대 무리지만, 일정 시간 동안 버프를 걸어 수련시키면서 성장을 촉진시키는 정도는 어려울 것도 없었다.
다만…… 강신혁은 어제 이야기를 나누었던 츠쿠요가 한 말을 떠올리며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이대로 가다간 그녀가 말했던 것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가능하면 학생들이 다룰 무구도 부탁하고 싶어. 아, 물론 대가는 얼마든지 치를게! 그 부분은 이만우 선생님도 모셔서 같이 얘기하자.”
“이건 우리가 나름대로 궁리해본 조건이니 검토해보겠나? 강신혁 군은 아마 이번에 신설된 초인법 특례 조항의 첫 번째 수혜자가 될 거야.”
강신혁이 문서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홀로 생각에 잠겨있자, 그를 대신해 클레어가 그것을 받아들어 꼼꼼히 훑었다.
“이 특례로 신혁이를 정식 초인으로 인정해주는 거군요. 하지만 이렇게 되면 외부에서 신영을 신혁이의 길드로 생각해도 무리가 없을 것 같은데. 선생님들은 정말 괜찮아요?”
“아, 그건……."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인식은 어찌되든 상관없습니다. 사실상 앞으로 수 년, 어쩌면 수십 년 이상 정상적인 초인교육은 불가능하게 된 상황이니, 그때까지 신영의 이름이 남아있기라도 한다면 감지덕지겠지요.”
“그래요……. 신혁이한테 나쁠 건 없겠네요.”
자연스럽게 강신혁을 대리하는 그녀의 모습에 그 공간에 있던 이들은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다른 누가 봤더라면 보호자라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겠지만, 실제로 둘은 연인 사이인 것이다.
“신혁아, 어떻게 할래?”
제안을 모두 읽고 잠시 생각하던 클레어가 강신혁을 돌아보며 물었다.
강신혁은 그녀가 자신이 이 제안을 받아들였으면 하고 바란다는 것을 깨달았다.
"클레어 생각은 정해진 것 같은데.”
“네가 한다면, 나도 옆에서 도울게. 안 그래도 이 상황에 바를 경영하는 건 무리고.”
“……그래.”
강신혁이 학생들의 전력을 강화시키고 무기까지 마련해준다면, 학교는 군대가 될 것이다.
그야 확실하게 학생들은 강해질 것이고(어쩌면 선생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말이다.) 요르문간드에 수월히 대적할 수 있게 되겠지만, 그렇게 되면 츠쿠요의 말이 그대로 현실로 옮겨오는 것이나 매한가지.
강신혁이 조절하지 않는다면 그들의 힘은 점점 더 커져만 갈 것이고…… 요르문간드의 위협에서 벗어나는 순간이 오게 된다면, 그들이 다른 곳에 눈을 돌려도 이상할 것이 없다.
“비약인가.”
"응?"
“아니, 아니야.”
강신혁은 뇌리에 남아 그를 괴롭히던 츠쿠요의 말을 고개를 저어 털어냈다.
그녀의 말은 그저 가능성에 불과할 뿐더러, 어차피 요르문간드를 없애고자 하는 강신혁에게는 처음부터 고민할 필요가 없는 제안이기도 했다.
“좋아요, 하겠습니다.”
“오!”
끝내 강신혁이 고개를 끄덕이자 선생들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강신혁이 신은아와 깊은 관계라는 사실을 알고 있던 이들 중에는 상심한 그가 아예 모습을 감출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던 이마저 있었기에, 원래는 그가 학교에 남겠다고 답해준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지경이었다.
“다만 휴일은 많이 필요합니다. 재량권에 대해서도 다시 얘기를 나눴으면 좋겠네요.”
“그건 얼마든지 강신혁 교관의 뜻에 맞춰드리지요.”
“우릴 강하게 만들어준다는데 무슨 조건이든 못 들어주겠어?”
조건을 수락하자마자 자신보다 나이가 까마득히 강신혁에게 존대를 해오는 교장의 태도에도 놀랐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지민혜가 덧붙인 말이었다.
“……우리?”
“그래요.”
강신혁이 눈을 가늘게 뜨며 반문하자, 부끄러워하는 지민혜 대신 그의 1학년 시절 담임이었던 시아라 베르트랑이 입을 열었다.
“사실 교관에게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전선에 나서는 우리 선생들의 교육도 부탁하고 싶거든요.”
“아니…… 뭐?”
“앞으로의 신영은 운명공동체에요. 다른 학생들과 선생을 구분하지 말고 평등하게 교육해줬으면 합니다. ……강해져야 하는 건 모두 마찬가지거든요.”
강신혁은 그 자리에 모여 있던 모든 선생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는 것을 깨닫곤 크게 동요했다.
그야 물론 그의 능력이라면 저들도 강화시켜줄 수 있겠지만, 아니 정말……?
“앞으로 잘 부탁해요, 교관.”
“강신혁 교관만 믿겠습니다!”
“하여간 초인들이란, 덩치만 큰 애라니까.”
여기저기서 던져지는 말을 듣고 강신혁이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짓고 있자니 옆에서 클레어가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강신혁도 그 말에 지극히 공감했다.
강신혁이 가면을 벗어던지고, 정식 초인으로 승격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