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0화. < Chapter 53. 소실 - 2 >
“은아잖아.”
야누스가 반가운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신은아는 여전히 그녀를 노려보며, 양손에는 황금의 뇌전을 뭉쳐내고 있었다.
과거 강신혁이 보았던 것 중에서도 특대급의 마력이 담겨 소용돌이치는 뇌전.
신은아는 원래부터 강했지만, 특히 요즘 강한 자들과 연전을 치르며 더더욱 빠르게 강해지고 있었다. 지금 그녀가 만들어낸 뇌전이 그녀의 성장을 증명하는 듯했다.
“역시 빠르네. 은아는 뭐, 결국 우리편이니까 죽일 수는 없지만…… 그래도 안 돼. 여기 있는 것들은 전부 지우고 갈 거야.”
“누구 맘대로.”
재차 야누스의 손이 휘둘러지는 그 순간, 신은아의 손에서 뇌전이 발출되었다.
강신혁조차 제대로 막아내지 못했던 그녀의 검격을 신은아가 쏘아낸 뇌전은 어떻게든 저지할 수 있었다!
"응?"
야누스가 눈을 조금 크게 떴다. 그녀는 검격이 막힌 데에는 개의치 않고 자신의 손에 쥐고 있는 검을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살피고 있었다.
그러다 이내 답을 얻은 듯, 눈을 가늘게 뜨고 웃으며 신은아의 모습을 살폈다.
“과연, 네가 갖고 있었지.”
“..읏!?”
신은아 역시 느낀 모양이었다. 자신의 앞머리를 만지며 야누스를 견제하는 모습에 강신혁도 퍼뜩 깨달았다.
신은아는 신살검에 쓰인 드래곤 하트의 일부로 만들어진 머리띠를 하고 있다!
강신혁의 손에 들려있던 때에도 신살검은 그녀의 머리띠와 공명을 일으킨 적이 있다. 그리고 마음에 영 들지는 않지만, 원주인인 야누스의 손에 들린 지금은, 보다 강한 공명을 일으켜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해를 입힐 생각은 없었지만 말이야, 이렇게 된 이상 그거, 다시 받아가야겠어. 미안해, 은아.”
“절대 못 줘.”
“원래 내 거였잖아. 나한테 빌렸던 거라고 생각하고 돌려줘.”
야누스가 작게 웃으며 재차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아까보다 강한 영력의 폭풍이 휘몰아쳐 일대를 휩쓸었다!
그러나 신은아는 강신혁이 전부터 짐작하고 있었듯, 영력을 다루진 못해도 영력에 저항하는 방법만은 터득하고 있었다. 처음 나타났던 모습 그대로 허공에 둥둥 뜬 채 야누스의 압박을 견뎌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강신혁이라고 가만히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야누스가 신은아에게 집중하는 사이 그는 주인도 몰라보고 덤벼들다가 신은아의 뇌전에 얻어맞고 튕겨난 두 개의 검을 회수한 것이다.
영력으로 두 검을 재차 완벽하게 정복했다. 영력을 자신보다 더욱 잘 다루는 상대와 싸우는 것은 처음이라 실수했을 뿐, 이젠 그렇게 멍청하게 검의 소유권을 빼앗기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결국 이 둘로는, 야누스에게 대적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은아!”
“응!?”
강신혁은 두 검을 곧장 신은아를 향해 내던졌다.
영력과 황룡투기가 충만하게 담긴 두 개의 검은 그의 명령을 알아들었다는 듯 쏜살같이 날아들어, 신은아에게 도달한 순간 그녀를 지키려는 듯이 그녀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그 순간 신은아는 자신의 체내에 새로운 힘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두 검이 일시적으로 신은아를 주인으로 삼아 기동하며, 특히나 그녀가 다루는 뇌전의 힘이 증폭되고 있었다.
열과 빛, 그리고 뇌전. 신은아가 다루는 힘에는 이 세 가지가 모두 포함되니, 단순히 두 개의 검을 장비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녀의 전력으로 두 배 이상으로 뻥튀기되고 있었다.
“후배, 굉장해……!”
강신혁은 너무 격상의 상대를 만나는 바람에 제 전력을 발휘하지 못했지만, 원래부터 무한한 뇌전의 힘을 다루는 그녀에게는 그야말로 호랑이 등에 날개를 달아준 격!
야누스 역시 신은아와 두 검의 조합이 빚어낼 결과물을 익히 예상한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신살검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아, 모루. 그런 귀찮은 짓을 하다니.”
“야누스……."
끝까지 자신에게 적의를 드러내지 않는 야누스를 보며 강신혁은 마지막으로 입을 열어 부탁했다.
“물러나주면 안 될까?”
“왜 이걸 모를까. 이렇게 만든 것은 전부…… 너인데!”
협상은 결렬되었다. 야누스가 검을 내지르는 순간 신은아가 재차 뇌전을 뿜어냈고, 아까보다 훨씬 강력해진 뇌전은 야누스의 움직임을 봉쇄해내고 있었다!
그러나 야누스의 한계가 그 정도가 아니라는 것쯤은 강신혁도 신은아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야누스는 줄곧, 그들을 봐주고 있었던 것이다.
“조금 아플지도 몰라, 그래도 죽이지는 않을 테니까.”
짧게 말한 직후, 야누스는 쥐고 있는 검에 자신의 영력을 집중시켰다.
그 순간 강신혁은, 검에서 울려 퍼지는 오주영의 비명 소리를 들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분명 오주영의 능력으로 인해 신살검은 새로운 권능을 얻고 진화했지만, 야누스는 오주영 따위가 감히 넘볼 수 없는 강자.
오직 오주영의 능력만을 취하고 놈의 영혼을 소모재로 써먹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영력을 능수능란하게 다뤄 오주영의 영혼의 파편을 불태우는 것으로!
아이러니하게도 강신혁은 자신의 영력으로 그것을 관측하며, 새로운 영력의 깨달음을 얻고 있었다.
“아아아아아!”
그때 예상외의 일이 하나 더 발생했다.
어디선가 튀어나온 작은 인영이 미친 듯이 야누스를 향해 덤벼든 것이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사태. 스스로 죽으러 가는 것이나 다름없는 꼴에 강신혁은 다급히 그 자를 막아섰으나,
“끄아아아!”
“뭣!?”
순간 자신을 비롯해 일대의 모든 것을 ‘정지’시켜버리는 권능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멈춰버리고 말았다.
야누스를 상대로라면 몰라도 고작 이런, 이런…….
“오혜나!?”
“끄아아아아아아!”
그렇다. 지금 이곳에서 ‘동결’이나 ‘정지’의 힘을 지닌 이는 오혜나밖에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었지만, 어떻게 그녀 따위가 강신혁을 멈출 수 있단 말인가?
야누스와의 일전으로 기운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헤일로의 나뭇가지와 융합한 극천신주가 아직 무한한 에너지를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 그를 멈추려면, 그녀 ‘혼자만’으로는 결코 불가능하다!
“혜나야!”
“끄아아아아아아!”
답은 곧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녀가 들고 있던 푸른 대검이었다.
과거 오주영에게 직접 선물 받았다는 아티팩트. 중요한 자리에는 언제나 그것을 갖고 나가며, 당연히 신인전인 오늘도 그것을 갖고 나왔다.
강신혁에게는 손끝도 대게 해주지 않았고, 외부에서 영력으로 살펴본 결과 별 문제를 느끼지 않았으니 그도 간섭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설마 그 안에 오주영의 능력이 담겨있었다는 것을 그 누가 알았을까?
‘아니, 분명히 없었어. 확실해.’
아무리 그래도 강신혁이 그 정도로 얼빠진 놈은 아니었다. 오혜나의 대검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그래. 오늘 그녀가 신인전 결승무대에 올라가기 전까지는, 확실하게.
‘아델라이드 보댕, 그 씹어죽일 엑스트라 년이.’
이제야 깨달았다.
아델라이드 보댕이 오혜나를 인질로 붙잡고 생쇼를 하며 시간을 끌었던 이유를. 그년은 그때부터 이미 수작질을 부리고 있었던 것이다!
“신혁아, 부탁한다!”
순식간에 주위 모든 것을 동결시키고 야누스를 향해 일직선으로 질주해가는 오혜나. 백인하 역시 그녀의 능력이 폭주한 탓에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바보 같으니.”
“끄아아앗……!”
오혜나가 지금 폭주하는 이유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신살검에 붙들린 오주영의 사념이 구조요청을 보내고 있는 탓이겠지.
아델라이드 보댕을 통해 오주영의 사념이 오혜나의 대검으로 건너갔고, 지금 그것이 오혜나를 잠식해 신체의 한계도 고려하지 않고 폭주하며 내달리고 있는 것이다.
오직 신은아만을 경계하며 힘을 끌어올리고 있던 야누스도 곧 오혜나의 접근을 깨달았다. 영력을 다루는 이 답게 곧장 상황을 파악한 야누스는 흐음,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웃었다.
“이거랑 같은 파장이네. 죽여 둘까.”
“어딜!”
한순간, 매우 많은 일이 동시에 일어났다.
야누스가 오혜나에게 검을 겨누는 순간 강신혁이 자신에게 걸려있던 권능을 가까스로 풀어내고 그녀의 앞을 막아섰으며, 그것을 본 신은아 역시 눈에 불을 켜며 자신이 만들어낸 최대의 번개를 야누스에게 떨구었다.
그리고 오혜나는 거침없이 검을 내질러 자신의 앞을 막아선 강신혁을 찔렀다.
“망할 년, 이럴 줄 알았다.”
강신혁은 대검을 타고 자신의 체내로 흘러들어오는 이질적인 사념을 느끼며 욕설을 내뱉었다.
하여간 이 망할 꼬맹이랑 엮인 일 중에 제대로 풀린 일이 없었다.
백인하 때문에 나까지 이게 무슨 고생이냐, 진짜.
하지만 그래도 결과적으로는, 뭐, 잘된 일이었다.
“후배!”
“큭, 나 멀쩡하니까 야누스나 막아!”
복부를 관통당한 강신혁을 보고 세상이 끝났다는 듯이 절규하는 신은아의 모습에 강신혁은 다급히 외쳐 그녀를 말렸다.
아, 하지만 지금 그를 보고 기겁할 사람이 또 있었지. 클레어가 지금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지 돌아보는 것도 무서웠다.
[이거, 이건 뭐야……!]
그래도 당장은…… 감히 자신의 영혼을 집어삼키려 드는 망령을 먹어치울 때였다.
영력을 다루는 자신에게 영혼의 힘으로 승부를 걸다니, 분수를 모르는 것도 정도가 있지 않은가!
[큭!? 이래서야 저 괴물이랑 똑같은!]
‘뭐긴, 네가 번지수 잘못 찾았다는 뜻이지.’
오주영이 요르문간드에서 무엇을 찾고 있었는지는 대충 알 만 했다.
아무래도 야누스에게 작업을 치려 한 모양인데 저렇게 쥐어 짜여 소멸하기 직전의 상태. 본체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개체도 강신혁에게 파괴당했고, 이젠 급한 대로 강신혁의 몸이라도 차지하려는 모양이었지만…….
정말로 아이러니하게도 강신혁 역시 야누스의 모습에서 깨달은 영력의 운용법이 있었다. 물론 그는 야누스보다 영력이 훨씬 딸리지만, 그에게는 영력뿐만 아니라 황룡투기도 존재하는 것이다……!
- 에너지 그 자체에 대한 파괴적인 깨달음으로 인해 영력과 황룡투기가 SSS+랭크로 성장합니다!
- 영혼독 스킬의 숙련도가 대폭 상승하여 SSS랭크가 되었습니다!
[큭! 크하아아악!?]
영력을 독으로 변환시켜 자신의 내부로 파고든 사념을 녹여내면서, 황룡투기로 그것을 감싸 압박한다.
그리고 끝내 자신의 영력의 덩치를 불려 그것을 잡아먹는다. 강신혁은 야누스에게 배운 대로, 아니 그녀보다 훨씬 과격한 방식으로 오주영의 사념을 처리했다.
자신의 내부에서 오주영의 사념이 깔끔하게 소화되어 사라지는 순간, 이전 엑스칼리버를 영력으로 관조했던 그때처럼 오주영이 갖고 있는 능력의 근원에 대한 깨달음과 같은 것들이 그의 뇌리를 스쳤다.
이제 한 걸음, 딱 한 걸음만 더 나아가면 오주영의 능력의 본질을 깨닫고, 그것을 자신의 능력에 적용할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강신혁은 이미 그 한 걸음에 필요한 것을 갖고 있었다.
“모루, 괜찮아?”
어처구니없게도 야누스는 그를 향해 걱정스러운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지금 이 체육관 한복판에 게이트가 열려 무수한 사람이 죽었는데, 그들을 죽이는 것은 당연하다는 듯이 말한 그녀가, 강신혁이 복부를 관통당한 데에는 걱정해 마지않는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다.
아니, 그러고 보면 그녀뿐만이 아니던가.
그녀를 비롯해 다른 히어로 유니버스의 회원들도…… 그래, 츠쿠요만 해도. 다른 인간, 다른 존재의 죽음은 지극히 가볍게 취급하던 이들이 강신혁에게만은, 정확히는 모루에게만은 정중히 대하지 않던가.
그래서 그는 모두 좋은 이라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그들 가운데에는 야누스와 같은 짓을 태연히 저지르는 이가 있을지도 몰랐다.
꼭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여태껏 그가 보고 판단한 것이 그들의 본모습이라고는 결코 단언할 수 없었다…….
“괜찮아.”
강신혁은 뇌리에 휘몰아치는 무수한 망념을 떨쳐내고 한 마디로 짧게 대꾸했다.
그의 복부에 꽂혀있던 대검은 곧 스르르 빠져나갔다. 그와 함께 그에게 검을 찔러넣은 장본인, 오혜나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는 것이 느껴졌다.
“나, 나 무슨……."
“네 잘못 없는 거 아니까 흔해빠진 리액션 하지 말고 정신 차렸으면 저 뒤로 물러나 있어라.”
그야 언뜻 보면 스승의 복부를 찔러버렸으니 주제에 되도 않는 얀데레 패륜짓이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그에게 최고로 영양가 높은 스팀팩을 꽂아준 셈이었다.
“서, 선배, 나, 아빠가,”
“그게 흔해빠진 리액션이라고, 망할 제자년아.”
실제로 그녀에게 복부를 관통당한 상처는 황룡투기의 작용으로 벌써부터 빠르게 아물어가고 있었다.
황룡투기는 처음에는 트롤에게서 얻은 재생력이었다. 재생력이 SSS랭크라고 생각해보면, 실제로 이런 상처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물론 그에게 상처를 입힌 이가 얼마나 깊은 마력을 갖고 있는가, 얼마나 높은 격의 영력을 갖고 있는가에 따라 또 달라지겠지만 적어도 오혜나는 그런 고수가 아니었으니까.
“선, 배……."
“나중에 얘기해라. 지금은 네가 끼어들 때가 아니니까.”
차가운 목소리로 그녀를 물리며 강신혁은 자신의 복부의 상처를 확인했다.
그야 아직 완치까지는 무리였지만 이제 움직이는 정도는 무리가 없다.
신은아와 야누스는 서로를 향해 이를 갈면서도, 공통적으로 강신혁을 걱정하는 눈길을 보내오고 있었다.
적아가 다 자신의 눈치만 보고 있다니, 이런 코미디가 세상에 또 있을까.
기왕 이렇게 된 것 그냥 흔한 코미디처럼 이쯤에서 어설프게 막을 내려도 좋다면 누구도 상처 입지 않고 끝날 텐데.
아니, 이미 굉장히 많은 사람이 죽고 다쳤지만.
“야누스, 다시 물어볼 필요는 없지?”
“그래, 모루. 미안, 이제 진짜 급해졌거든.”
아까 신은아와 대적하며 기운의 1차 해방을 했다고 한다면, 야누스는 이제 2차 해방을 거듭하며 본신의 기운을 더더욱 크게 끌어올렸다.
그녀의 존재만으로 침식된 게이트 전체가 울렁거리며 기절하는 이가 속출할 정도였으나.
강신혁은 그런 압박감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품에서 자신이 야누스에게 대적하기 위한 마지막 희망을 꺼내들었다.
우습게도 그것은 절망과 나락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