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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8화. < Chapter 52. 마지막 체육대회 - 6 >

요르문간드가 게이트를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은 이제 그들과 본격적인 일전을 벌인 이들이라면 누구나가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그렇다고 해도 놈들이 원하는 때에 아무 곳에나 게이트를 형성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정확히 어떤 조건이 선행되어야 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만약 놈들의 맘대로 게이트를 형성할 수 있었다면 이미 문명은 확실하게 붕괴되었을 터였다.

요르문간드에 의한 게이트 임의 발생에 있어서 가장 유력한 안은, 바로 게이트를 불러내고 싶은 그 장소에서 특정한 도구, 혹은 존재를 이용한 소환을 실시하는 것이다.

이전 프랑스 파리에서는 인류의 배신자인 신검 오주영과 봄버걸 미즈시마 엘라 유키가 있었고.

당장 얼마 전 있었던 아프리카 원정에서도 용병 길드 제우스가 있었던 장소에 게이트가 발생했으니, 거의 확실하다고 봐도 좋았다.

그리고 오늘은, 특정한 도구가 아닌 특정한 존재가 게이트를 불러내는 촉매가 된다는 것이 밝혀진 역사적인 날이었다.

“잠깐, 너, 뭐……!?”

“너도 곧 알게 될 거야!”

[보댕 선수, 경기 시합 전에 마법을 발현하는 건…… 어!? 게이트가!]

……그도 그럴 것이, 아델라이드 보댕은 시합장에 올라가기 전에 철저한 체크를 통해 평범한 B급의 공격용 아티팩트 두 개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음이 확인되었으니까.

“게, 게이트!?”

“학생들을 보호해!”

“아니, 늦었……!”

순간이었다.

시합장에서 아델라이드 보댕을 중심으로 발생한 거대한 블랙홀과 같은 검은 구멍은 삽시간에 확장되며 일대를 뒤덮었고, 저항할 틈도 없이 ‘침식’을 시작했다.

현대식으로 건축되었던 거대한 체육관을 갑자기 불길한 기운을 뿜어내는 붉은 바위가 뒤덮고, 자욱한 독무가 끼었다.

마력의 농도가 낮아지는 것과 동시에 존재만으로 인간을 해하는 기운, 마기가 발산되고 있었다.

이 영역 안에 들어오는 것만으로 모든 인간들의 전력은 50% 이하로 하락하고 말 것이다.

“침식형 게이트!”

“혜나야!”

상황을 파악한 강신혁과 백인하가 동시에 게이트의 중심으로 내달렸다.

그러나 그들이 그곳에 이르렀을 때는 이미 아델라이드 보댕이 오혜나를 붙잡아 자신에게로 끌어당긴 후였다.

게이트의 중심부, 즉 아델라이드 보댕이 위치한 시합장에서는 막대한 양의 마기가 분출되고 있었고, 학생의 틀을 벗어난 강함을 자랑하는 오혜나도 어쩔 수 없이 붙들리고 말았다.

이질적인 것은 분명 오혜나와 똑같이 괴로워해야 할 아델라이드 보댕이 지나치게 멀쩡해 보인다는 점인데, 게이트부터가 그녀에게서 비롯된 것을 보면 고민해봤자 바보 같을 뿐이었다.

“너!”

"걱정하지 마, 해칠 생각은 없으니까. 우리 쪽으로 데려갈 뿐이야.”

백인하가 눈을 부릅뜨며 앞으로 나서자, 아델라이드 보댕은 침착한 목소리로 그의 화를 돋우며 자신의 완드로 오혜나의 정수리를 겨누었다.

나머지 한 팔로는 오혜나의 목을 뒤에서 끌어안고 압박하고 있었는데,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인간의 그것이었던 그녀의 팔이 지금은 오우거처럼 근육이 울룩불룩 튀어나와 기형적이었다.

“끅,끄으으......!"

“혜나……!”

오혜나가 괴로워 하며 저항하는 모습에 백인하가 이를 악물었다.

반면 강신혁은 그녀들을 보호하듯이 사방에 생겨나는 몬스터 무리를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염소의 뿔과 머리에, 황동색의 근육질 몸체. 거기에 유황 냄새가 섞인 숨결.

이전에 본 적이 있는 놈들이다 싶었는데, 과연 아프리카에서 발생했던 이레귤러 게이트의 한복판에 나타났던 바로 그 놈들이었다.

평균 SSS랭크의 카오스 솔져.

초인학교의 학생이 아니라, 교사들이라 해도 감히 대항할 수 없는 지옥의 병졸.

‘……망했는데?’

그것이 사방에서 솟구치고 있었다.

강신혁은 사태가 이쯤에 이르러서야 명확히 파악할 수 있었는데, 아델라이드 보댕으로부터 발현되는 마력과는 다른 이질적인 기운이 게이트의 반응과 공명하며 침식을 가속하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내부 마력, 아니 마기도 들끓고 있었는데…… 그것은 그리 인체에 좋은 영향을 끼칠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뭔가 알아챈 모양인데, 걱정하지 마. 난 이미 인간이 아니거든.”

“아니, 널 걱정하는 건 아니지. 기분 나쁜 착각이야.”

강신혁은 침착하게 대꾸하며 자신의 장갑을 꺼내어 꼈다.

적이 무장을 하는 것을 가만히 두고 보는 멍청이가 있을 리 없는데, 어째선지 그 누구도 강신혁의 행동을 막지 못했다.

“신혁이, 너!”

“선배……!”

그것은 강신혁의 드높은 영력이 만들어낸 기사였다.

거대한 존재감이 상대의 인식을 왜곡시켜, 그의 행동에 절대적인 우선권을 얻도록 만드는…… 현실조작의 영역에 아슬아슬하게 발을 걸친 권능.

존재의 격을 높이는 영력이 극에 이르면 이런 일도 가능했다.

강신혁이 무장을 완료한 다음에야 간신히 입을 열 여유를 얻은 아델라이드 보댕이,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그를 노려보았다.

“당신, 들킬 텐데?”

“새삼스럽게.”

역시, 알고 있었나. 그야 요르문간드는 그의 정체를 일찌감치 간파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으니, 요르문간드와 한편으로 보이는 그녀가 알고 있어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강신혁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옥으로 변모한 체육관에서 모두가 혼란에 빠져 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지금 사태의 중심에 있는 것은 그들이다. 들키지 않기를 기대하는 것은 과욕이었다.

굳이 신은혁의 무구를 쓰지 않는 것도 가능하지만, 학생의 규격을 벗어난 - 이미 학생의 규격에서는 벗어났지만, 탑 랭커급의 무력을 구사하는 것은 또 얘기가 다르다. - 힘을 다루는 시점에서 이미 ‘일코’는 글렀다고 봐야 한다.

“너희가 상황을 이렇게 만들어놓고 말이야.”

강신혁은 짓씹듯 내뱉으며 품에서 검을 한 자루 꺼냈다.

검손잡이부터 검신까지 전부 피처럼 붉게 타오르는 아름다운 대검.

한없이 열정적이면서도 기이한 고요함이 감도는 그것은 검신 전체에 룬이 빼곡히 새겨져 있었는데, 주기적으로 그것이 황금빛을 발하며 신성한 기운을 뿜어냈다.

특이한 것은 가드 부분의 중앙에 구멍이 뚫려 있어, 거기에 붉은 구슬이 박혀있다는 것. 당연히 그것은 신염의 보주였다.

신살검의 구멍을 본 따 만든 것으로, 신염의 보주가 지닌 힘이 무기 전체에 공급되며 그것의 위력을 크게 강화시켜주고 있었다.

[아스트라페]

[X랭크]

[특수능력 - 신벌, 뇌염, 강림, 신위]

*신벌 : 지정한 상대를 신의 번개로 벌한다. 모든 종류의 부정한 기운을 지닌 존재에게 치명적인 추가 피해를 입힌다.

*뇌염 : 낙뢰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불꽃이다. 이 무기는 번개의 속성을 띤 화염을 끊임없이 생산해 검신에 축적하며, 그것을 지배하고 위력을 증폭시킨다.

*강림 : 전신을 뇌염으로 치환한다.

*신위 : 무기의 주인은 모든 능력이 증폭되며, 무기가 부러지지 않는 이상 적에게 굴하지 않는다.

[손에 쥐고 있는 것만으로 필멸자들을 압도하는, 번개를 벼려내 만든 검. 다만 검을 다룰 자격이 부족한 이는 검을 손에 쥐는 것만으로 한 줌 재가 되어버리고 말 것이다.]

다시 봐도 학교 대회에서 써먹을 만한 무기는 아니다. 마지막 룬 작업을 마친 이나희가 덜덜 떨었던 모습을 떠올리며 강신혁은 낮게 웃었다.

클레어와 이나희를 포함한 일행은 지금 브리짓과 함께 있다.

오늘 그녀를 봤을 땐 또 귀찮은 녀석이 나타났다고 생각했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고 보니 그녀가 있어주는 것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백인하, 싸움은 내가 맡을 테니까 넌 오혜나 구해서 빠져.”

“알았어.”

백인하에게 일방적으로 선언한 강신혁이 대검을 쥐고 자세를 취했다.

아델라이드 보댕에게 빈틈이 보이기만 하면 공격해 들어갈 생각이었는데, 경악스럽게도 오빠인 나탄 보댕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자세가 안정적이었다.

더구나 게이트와 공명하고 있는 탓인지 마기가 점점 더 부풀어 오르고 있기까지. 강신혁은 헛웃음이 나왔다. 아무리 요르문간드가 이질적인 집단이라고 해도, 멀쩡한 인간을 저렇게 갑자기 강하게 만들어놓는 것은 불가능하다.

즉 아델라이드 보댕은 이미 한참 전부터 요르문간드와 붙어먹고 있었다는 얘기다.

……어쩌면 나탄 보댕보다도 빨리. 나탄 보댕을 요르문간드에 끌어들인 것이 그녀일 가능성조차 있었다.

"너......!"

사방에 적이 가득한 와중에도 여유로워 보이는 강신혁의 모습에 적잖이 화가 난 모양으로, 아델라이드 보댕이 오혜나에게 겨누었던 완드를 그에게로 돌렸다.

“언제까지 그렇게 서 있을 수 있을지 보자…… 고!”

완드 끝에서 검은 불꽃이 피어나 강신혁에게 작렬했다.

그는 그것을 신경 쓰지 않고 질주했고, 검은 불꽃은 그대로 강신혁을 집어삼켜…… 붉은 화염 덩어리로 화한 강신혁에게 흡수되어 사라졌다.

붉은 불꽃의 번개가 지상을 질주했다. 곧게 내민 대검을 중심으로 뇌염과 일체화된 강신혁이 빛과 같은 속도로 아델라이드 보댕의 복부를 강타했다.

“끄아아아아악!”

“백인하!”

“오케이!”

기회만 엿보고 있던 백인하가, 적의 품에서 오혜나가 풀려나는 순간 곧장 그녀를 확보해 뒤로 빠졌다.

사방에 널려 있는 카오스 솔져들이 그를 노리고 덤벼들고 있었으나 백인하 역시 강신혁과 본격적으로 특훈을 개시하고부터 터무니없이 강해진 터!

특히나 원래부터 그의 강점이었던 민첩에 한해서는, 강신혁의 버프를 받고 특성을 발동할 경우 이미 현계한도에 근접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러 있었다.

오혜나를 안고 빠르게 움직여 카오스 솔져 무리의 포위망을 돌파하는 백인하의 모습은 그야말로 번개 그 자체였다.

“오빠, 선배는……!”

“우리가 걱정할 군번이 아냐!”

백인하는 오직 오혜나를 지키는 데에만 집중했다. 일행이 어디 있는지 파악하고 그들과 합류할 목적으로 재차 발을 놀렸다!

한편 강신혁은 아델라이드 보댕을 그대로 끝장낼 기세로 그녀의 머리통을 향해 대검을 내리쳤다.

그러나 그녀를 그대로 반으로 토막 낼 것만 같았던 뇌염의 대검은 중간에 허공을 가르고 툭 튀어나온 장검에 의해 가로막히고 말았다.

“안녕.”

나른한 여성의 목소리가 강신혁의 귓가를 두들겼다.

“유예가 끝났어. 반전의 시간이야.”

“너……."

강신혁은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섰다. 자신과 검을 마주한 상대의 강함을 느꼈기 때문에?

아니, 그렇지 않다. 게이트가 더 열리기 시작한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몇 걸음 물러서자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보다 뚜렷이 보였다. 허공에, 점점 더 많은 게이트가…… 그래, 문자 그대로 피어나고 있었다.

그것들은 아델라이드 보댕을 중심으로, 그녀가 만들어낸 최초의 게이트를 촉매로 삼아 점점 더 많이, 중복되어 탄생하고 있었다.

꽃밭에서 한순간에 만개하는 죽음의 꽃무리. 커다란 검은 점들이 허공에 곰팡이처럼 번지며 현실을 침식해온다.

“여기에서 떠나 있는 게 좋아, 모루. 균형을 맞추려면 많이 죽여야 하거든. 그러니까, 응? 아니면 같이 할까?”

그 아래 한 자루 검을 들고 나타난 여성이 느른하게 웃으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을 잘 알기라도 하는 듯한 투에 강신혁이 뭐라 대꾸하려던 그때.

“전 약속을 지켰습니다. 이제 당신이 약속을 지킬 차례에요, 야누스.”

간발의 차로 강신혁에게서 살아남은 아델라이드 보댕이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간신히 어깨를 펴고는 그렇게 주장했다.

“어머, 그랬지.”

야누스라고 불린 여성은 그 말을 듣고 크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지극히 자연스럽게 자신의 검을 그녀의 미간에 꽂아 관통시켰다.

“컥, 허윽……!?”

“미안, 약속은 거짓말이었어. 널 이쪽에서 죽여두지 않으면 게이트가 허무하게 닫힐 수 있으니까 말이지.”

강신혁은 조용히 관리자를 불렀다.

“차원 퀘스트는?”

- 죄송합니다, 회원님.

관리자가 조용히 보고했다.

- 연결이 끊긴 것 같습니다.

“그렇게 자신하더니, 한 번 저지를 것 같더라.”

강신혁은 한숨을 쉬며 검을 들었다.

이젠 자신의 정체를 들키고 자시고의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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