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5화. < Chapter 52. 마지막 체육대회 - 3 >
[지금부터 전 학년이 참가하는 기마전이 시작됩니다!]
기마전이 시작된다는 방송에 관중석의 환호성이 높아졌다.
틀…… 아니, 중년층 이상만 반응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전 연령층이, 그것도 초인이고 비초인이고 가리지 않고 환호하고 있었다.
강신혁은 그것을 보며 비로소 어째서 이번 체육대회까지 이런 구시대적인 종목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인지 깨달았다.
“그런가, 보는 입장에서는 이런 게 재밌는 건가……."
“시뇨기, 가자! 청춘을 불사르러!”
“너 이 새끼 조금 전까지만 해도 싫어하더니 지금은 완전히 즐기고 있잖아.”
백인하의 분위기를 타는 능력은 어떤 의미로는 경지에 올라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사실 강신혁도 백인하와 비슷한 부류였으므로, 못 내키는 척 하면서도 어깨를 들썩이며 백인하와 함께 앞으로 나섰다.
“혜나가 백팀이었지, 참.”
문득 반대편에서 오혜나의 모습을 발견한 백인하가 아차, 하고 중얼거렸다.
원래 기마전은 힘들고 덥고 더러운 탓에 남학생들이 주로 참가하는데, 속은 연약해도 겉으로는 드세 보이길 좋아하는 오혜나는 자신이 1학년에서 제일 강하다는 이유로 참전을 선언한 것이다.
시커먼 사내놈들 사이에 맑게 피어있는 오혜나의 모습이 가련하고 아리땁기 그지없었으나, 강신혁은 오혜나를 오시하며 엄격한 목소리로 말했다.
“스승은 제자에게 언제나 넘을 수 없는 벽으로 존재해야 하는 법. 단숨에 짓눌러주지.”
“꼰대시뇩……."
“이상한 별명 추가하지 마라.”
기마전에서는 매년 이변이 일어난다.
예를 들면 3년 전 기마전에서는 당시 신입생이었던 더글러스 페인이 혼자서 적 진영을 모조리 휩쓸어버려 단숨에 기사학과의 에이스로 등극한 일이 있었고.
2년 전에는 바로 그 더글러스 페인이 대장 기수로 출전했다가 어째선지 혼자 거꾸러지는 바람에 그가 속했던 백팀이 허무하게 지는 일이 일어났다.
무엇을 감추랴, 당시 더글러스 페인이 거꾸러진 것은 당시 1학년이었던 엘레노어가 청팀으로 참여한 것을 보고 당황해서였다.
지금의 오혜나처럼, 1학년 시절의 엘레노어 역시 당당하게 기마전에 나섰던 것이다.
아마 당시에 강신혁이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얌전히 지내기는 개뿔을 얌전하게 지내냐며 그녀를 타박했으리라.
작년에는 물론 강신혁과 백인하가 이변의 주인공이었고, 올해에는 놀랍게도 오혜나가 1학년임에도 불구하고 대장 기수 자리를 차지하고 나와 사람들을 놀랍게 했으나…….
“그러나 그 이변은 만용이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아, 좀 그만하라고.”
[기마전 시작합니다!]
경기가 시작되었다. 강신혁은 백인하의 등을 박차고 허공으로 달려 나가 맞은편에 제일 가까운 곳에 있던 백팀의 머리띠를 모조리 수거했다.
그때 주위에서 마법이 발동하며 그의 머리에 묶인 머리띠를 잡아당기는 힘이 발생했다.
직접 공격마법은 허용이 안되는 것으로 아는데, 그를 대상으로 삼은 게 아니라 그의 머리띠를 대상으로 해서 아슬아슬하게 허용이 된 모양이었다.
강신혁은 영력으로 그 마법을 분석하고, 허공에서 몸을 튕겨 마법이 날아온 방향으로 내달렸다.
“야 저게 뭐야! 우리 기마전하는데 저 새끼 혼자 하늘을 달리고 있잖아!”
“야, 우리도 날아! 날아!”
하지만 기마전에는 말의 등에서 떠나 땅바닥에 떨어지면 그대로 아웃이라는 룰이 있다.
마법학과 학생이 하늘을 날기 위해선 결코 짧지 않은 캐스팅이 필요할 뿐더러, 대부분 몸치인 마법학과 학생들은 다시 말의 등으로 복귀하기도 힘들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백팀이 당황하는 사이, 강신혁은 감히 자신의 머리띠를 빼앗으려 한 마법학과 학생의 머리띠를 움켜쥐고는 재차 허공을 박차 허공에서 화려하게 회전하며 백인하의 등으로 복귀했다.
[아, 신인왕! 신인왕 막 나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이 백팀이 신인왕이 있는 쪽으로 포위해 들어옵니다!]
뭐라? 강신혁이 고개를 드니 오혜나를 위시하여 백팀의 말들이 기세등등하게 모여들고 있었다. 더욱이 일시에 날아드는 마법의 힘이 그의 머리띠를 잡아당겼다.
“어쭈?”
“어쩔까, 점프할까?”
“그래서야 작년하고 똑같잖아. 정면으로 돌파한다!”
그것은 지난 1년 사이 바뀐 강신혁의 상황을 증명하는 말이기도 했다.
아직 모든 것을 정면으로 헤쳐 나갈 자신이 없어 정공법보다는 꾀나 샛길에 의존했던 작년과 달리, 올해는 그냥 당당하게 행세해도 모두를 무릎 꿇릴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달려, 백인하!”
“오케이!”
사방에서 잡아당기는 힘 때문에 아까 했던 것처럼 윈드 마스터리에 의존해 하늘을 달리는 것은 불가능. 그렇다면 백인하와 일체가 되어 움직이는 수밖에!
백인하는 그의 마음을 읽은 것처럼 가장 가까이에 있던 백팀 기마로 돌진했다.
당황하며 손을 뻗어오는 백팀 기수를 가볍게 회피하며 머리띠를 획득, 그 후 다른 백팀 기마로 돌진했다.
족히 수십 기 이상의 기마에 포위당한 지금, 무려 각개격파를 시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럴 수가, 신인왕! 각개격파를 시도합니다! 굉장히 무모한…… 말씀드리는 와중 벌써 다섯 기 격파! 아니, 여섯 기!]
해설은 어느 순간인가부터 강신혁의 격파 수를 카운트하는 기계가 되고 말았다.
전열이 너무 빠르게 무너지고 있어, 포위망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틈에 같은 청팀의 기마가 바깥에서부터 달려들었으니, 바로 도우진을 위시로 하는 A반의 기마들이었다!
“다 꺼져!”
“A반 놈들은 죽으면 미네쌤이랑 대련이다! 죽지 마라!”
“가라 도우진, 너로 정했다!”
“우진 우진!”
“방금 누구냐 씹새야!”
마치 강신혁이 포위당하기를 기다렸던 것처럼 뾰족한 창 대형을 만들어 돌진해오는 A반 기마의 기세는 거센 폭풍과도 같았다.
강신혁은 그제야 처음부터 같은 반 놈들이 자신을 희생양으로 삼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럴 수가, 백팀 혼란스러워합니다! 놀랍게도 2학년과 3학년 기마가 이미 대부분 리타이어! 찔러 들어가는 창을 막기 위해 외부로 모여드는 기마들…… 아, 신인왕이 수십 기를 추가로 거꾸러트렸습니다!]
그러나 놈들의 계산은 어긋날 것이다.
강신혁은 혼자서 이 포위망을 와해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100년은 이르다, 제자야.”
“이이익!”
주위에 몰려있던 기마를 모조리 쓰러트리고 돌진해온 강신혁이 던진 말에 오혜나가 이를 악물고 능력을 발동했다.
주위 모든 것을 동결시키는 그녀의 능력은 그와 알게 되고 반년 간 가파른 발전을 거듭해, 굉장히 빠른 속도로 주위의 모든 것을 멈추는 지경에까지 이르러 있었다.
만약 이전의 냉각 능력에서 벗어나지 못했더라면 직접 공격으로 간주되어 아웃이었을 텐데, 실로 경악스러운 성장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강신혁은 이미 그녀의 능력을 충분히 파악하고 있는 상태였고, 영력을 꺼낼 것도 없이 체내의 황룡투기의 흐름만으로 그것을 떨쳐낼 수 있었다.
“아."
"후."
오혜나의 동결 능력에는 아직 중대한 단점이 남아 있었다.
그것은 바로 적아를 구분알 수 없다는 것.
주위의 모든 대상을 정지시키는 바람에 자신의 기마까지 얼리고 만 그녀는 능력을 개무시하고 날아드는 강신혁을 막기 위해 손을 휘두르는 것 외에 별 방법이 없었고,
강신혁은 숙련도 SS랭크에 이른 황룡투의 능력으로 그녀의 손을 우습게 쳐내고 그녀의 머리에서 머리띠를 걷어냈다.
[이럴 수가, 결국 포위망이 완전히 와해되고, 백팀의 대장 기수가 머리띠를 빼앗겼습니다! 청팀의 승리!]
- 와아아아아아아아아!
관중석에서 거센 환호성이 일었다. 강신혁은 백인하의 등에 올라탄 채 사방으로 손을 흔들어주면서도 생각했다.
“왜 저렇게들 좋아하는 거야, 대체.”
“같이 신나서 날뛰어놓고 혼자 현탐이냐.”
- 회원님의 활약에 감동한 관리자의 1,000,000HP 보너스!
“오.”
“왜?"
“아니, 그냥. 기분 좋아서.”
분명 저 관중석 어딘가에 클레어가 있겠지. 클레어가 보고 기뻐했다면 강신혁도 이렇게 오버한 보람이 있으리라.
“아빠 멋져요오오오!”
"풉."
그때 어디선가 들려온 비타의 목소리에 강신혁은 사레가 들렸다. 그녀의 큰 목소리에 주위 사람들이 곧 그녀의 모습을 발견하곤 눈을 휘둥그레 떴다.
시원시원한 이목구비가 워낙 아름답기도 했지만, 다 큰 성인 여성이 아빠 멋지다며 연호하고 있었으니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곧 옆자리에 있던 클레어가 그녀를 툭 치며 ‘아빠가 아니라 오빠라고 해야지!’라고 하자 그제야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듯 오빠라고 고쳤지만, 주목도는 점점 더 높아질 따름이었다.
더욱이 그녀가 아빠라고 부른 대상이 누구냐가 문제였는데, 방금 기마전에서 가장 큰 활약을 한 것이 강신혁과 백인하였으니 자연히 둘 중 하나로 후보가 압축되는데…….
- 슥
그 타이밍에 백인하가 강신혁에게서 슬쩍 떨어졌다. 비타는 여전히 강신혁을 향해 손을 흔들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대상이 명확해지자 무수한 사람들의 시선이 강신혁에게로 쏠렸다.
“야…… 저 미녀는 또 누구냐?”
피아를 식별하고 강신혁을 확실히 적으로 규정한 백인하가 지금 당장에라도 그를 찔러 죽일 것 같은 표정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강신혁은 급격히 피곤해진 표정으로 고개를 휘휘 저을 따름이었다.
“클레어랑 같이 있는 거 보면 모르냐? 괜찮아, 그런 관계 아냐……."
“뇌제 누님도 클레어 누님이랑 같이 다니지만 너 노리고 있잖아.”
“아니, 아무튼 아니라고.”
비록 비타의 등장으로 강신혁에게 쏠리는 관심이 더욱 증가하기는 했지만, 아무튼 무사히 기마전에 이겼다.
오늘 경기는 아직 릴레이가 남아있었지만 이건 백인하가 나가기로 되어 있었으므로 강신혁의 일정은 여기서 끝이 난 셈.
아직 오전이었지만, 강신혁은 담임에게 미리 말을 해두어 자유행동을 허락받았다.
내일부터는 투왕전의 예선이 기다리고 있으니 준비해두고 싶다는 이유였지만, 사실은 클레어와 합류하기 위해서였다.
“그럼 난 간다, 잘 뛰어라.”
“아니 시뇨기, 나한테 저 미녀 소개시켜줘야지!”
“너한테만은 절대로 안 줄 거니까 그렇게 알아라.”
“저 미녀가 네 딸이라도 되냐!?”
하여간 이런 쓸데없는 부분에서 예리하다니까.
강신혁은 릴레이만 아니었어도, 하고 분해하는 백인하를 깔끔하게 무시하며 비타와 클레어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런데 그들과 합류하기 전에 강신혁을 붙잡는 이가 있었으니, 기마전에서 그를 상대로 분투했던 오혜나였다.
“왜?"
“오, 오늘. 찾아가도 돼?”
누가 들으면 데이트 신청인 줄 알겠지만 강신혁은 그녀의 말의 진의를 알았다. 신인전을 앞두고 긴장하고 있다는 뜻이렷다.
어쩌면 기마전에서 강신혁에게 대패했기에 더욱 불안해진 것일지도 모른다.
강신혁은 그런 그녀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오늘 여친이랑 데이트할 거라 안 돼.”
“죽어!”
오혜나가 달려드는 것을 가볍게 저지한 강신혁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럴 땐 좀 백인하한테 어필하라고, 밥통아. 불안하다는 티를 팍팍 내면서 안겨봐.“
"오빠는 내일 기사왕전이니까……."
“난 투왕전인데, 망할 놈아.”
“선배는…… 예선이잖아. 기사왕전은 내일 본선도 치르는데.”
하긴 강신혁은 어차피 투왕전에서 지는 것을 상정하지 않고 있었으니.
그는 결국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럼 따라와, 밥 같이 먹자.”
"응?"
“오후 중에 빨리 끝내자고. 데이트는 해야 될 거 아냐.”
“하여간……."
오혜나는 투덜거리면서도 순순히 그를 따라왔다.
클레어는 강신혁의 뒤로 따라붙는 오혜나의 모습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지만, 이내 피식 웃으며 그녀를 반겨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