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3화. < Chapter 52. 마지막 체육대회 - 1 >
[아비수스(Abyssus)]
[????]
[????]
“이거 안 되겠네.”
과거 모루가 만들었던 비운의 역작, 어둠과 절망으로 담금질된 장검을 보며 강신혁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능력도 제대로 알 수 없는 이 무구를 어떻게 쓰겠는가.
비록 전생이라고는 하나 자신이 직접 만들어낸 무구인데 그 능력을 알 수 없다는 것은, 이것이 현계한도를 초월했음은 물론 이미 과거의 무구와는 다른 무언가로 완벽히 변이, 혹은 진화했다는 얘기였다.
물론 이것이 완성되었던 초기의 능력치는 모루의 기억을 뒤져 떠올려낼 수 있었다. 분명…….
[디스팔로르(Dispalor)]
[SSS]
[특수능력 - 미몽(連夢), 암염(暗染), 심마(心魔)]
*미몽 : 검과 맞닿은 이 모두를 벗어날 수 없는 꿈속으로 끌어들인다. 꿈에 빠지면 빠질수록, 현실은 썩어 들어간다.
*암염 : 모든 것이 어둠으로 물든다. 어둠의 힘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되며 어둠 속에서 누구보다도 강대해질 수 있으나, 완전히 어둠으로 물들게 되면 끝이다.
*심마 : 마음의 악을 키운다. 적으로 인식한 자 모두를 크게 약화시키며 정신적으로 취약한 상태로 만든다. 마음이 완전히 무너지면 잡아먹는다.
“크학!"
강신혁은 기억을 되새기다 말고 각혈했다. 무기가 품고 있는 지나친 어둠을 버틸 수 없었던 탓이다.
물론 이 무기를 만들 때의 모루의 정신 상태가 얼마나 심각했는지는 알 수 있으나, 그렇다고 쳐도 이건 심하지 않은가!
더욱 두려운 점은 이 무기가 이미 이름마저 바뀔 정도로 변이를 거쳤다는 점이다.
저기서 한층 진화된 능력은 무엇일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다.
“하지만 투왕전에서 이걸 이대로 써먹으면 안 된다는 것만은 분명하네……."
애꿎은 학생들을 죽일 일이 있나.
비록 검이 품고 있던 마기는 모조리 빨아냈지만, 그렇다고 검의 어둠의 힘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이 검은 언제든지 다시 마기를 만들어낼 가능성을 품고 있는 요물이었다. 마족들을 상대로 휘두르는 거라면 몰라도 인간을 상대로 하기엔 지나치게 가혹하다.
강신혁은 얌전히 그것을 다시 인벤토리 안에 집어넣었다.
지금 자신에게 있는 검이 뭐가 있던가, 생각하다 보니 오주영이 남긴 엑스칼리버가 생각났다.
마족의 육신과 융합한 오주영 본체가 들고 나타났던 [엑스칼리버 - 디스페어]와, 자신을 아버지라고 부르던 그 마족, 갑주 괴인이 들고 있던 [엑스칼리버 - 라스]의 조각.
디스페어는 아직 써먹지 못한다. 지금도 시간이 날 때마다 그것을 들고 그 안에 담긴 오주영의 사념과 씨름하고 있지만, 아직 정복까지는 지난했다.
반면 라스는 제법 만만했다. 확실히 오주영의 특성 엑스칼리버의 힘을 담고 있으며 그의 사념 또한 깃들었지만, 한 번 박살이 난 덕에 자의식이 거의 소멸하기에 이른 것이다.
“흠…… 그럼 이걸로 새로 만들어볼까.”
강신혁은 자리를 잡고 앉아 용암 대검의 파편을 쥐고 집중했다.
그 안에 담긴 오주영의 힘을 강하게 느꼈다.
희미한 사념이 뻗어 나와 감히 강신혁의 정신을 오염시키려 들었지만, SSS랭크의 영력을 지닌 강신혁에게는 우스운 도전이었다.
오히려 어설프게 머리를 내민 그놈을 붙들고 자신의 영력을 침투시켜 근원을 샅샅이 훑었다.
오주영의 특성 [엑스칼리버]는 강신혁의 수호황룡과도 어느 정도 통하는 면이 있는 대표적인 강화 계열 특성.
비록 검에만 한정된다고는 하나, 물질의 한계를 뛰어넘어 진화시키는 그 특성은 매우 강렬하다.
특히나 마족과 섞여 마개조된 특성의 힘은, 순수한 ‘빛’과 ‘성스러움’을 잃은 대신 공격적인 성질이 극도로 강화되어 현계한도를 우습게 뛰어넘었다.
하긴 그렇다는 것을 알기에 오주영이 요르문간드로 넘어갈 생각을 한 것이겠지만.
‘아니, 하지만 나는 둘 다 원해.’
인간이던 시절의 오주영이 만들어냈던, 빛의 성검 엑스칼리버.
마족이 된 오주영이 자신의 혼의 일부를 담아 제련한, 뒤틀린 파괴의 절망의 검 엑스칼리버.
그 두 가지 모두 놈의 혼에 새겨져 있는 능력이었으니, 강신혁이 얼마든지 그것을 끌어낼 수 있을 터였다.
지금은 아니지만, 놈이 만들어낸 엑스칼리버를 더 모으다 보면 가능할 것이다.
‘이 검에 담긴 힘은 분출하는 화산에서 비롯되는 폭발력과 열기, 순수한 불의 정……. 이걸 이대로만 살려도 SSS+랭크는 어렵지 않겠네.’
강신혁은 마이룸으로 들어갔다.
신염의 화로는 지나치게 거대하고 화려해서, 마이룸 정도가 아니면 만족스럽게 써먹을 수가 없었다.
우선 신염의 화로를 배치하고, 신염의 보주를 비롯한 보주들을 모조리 화로에 배치한다.
마침 자신이 만들려는 것이 불의 검이니, 신염의 화로로 제련했을 때의 상승효과는 가히 기가 막힐 터였다.
전생의 자신이 쓰던 모루를 전생과 달리 젊은 손으로 몇 번이고 매만져보고는, 각오를 다지듯 망치를 들었다.
“후우우......."
- 룬을 쓰는 어린 불여우에게는 부탁하지 않으십니까?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실력이 빼어나게 성장했습니다만.
“오주영의 사념에 휩쓸릴지도 몰라요. 제가 완벽하게 장악하기는 했지만 선배는 또 다르니까. 그래서 제련을 마쳐서 오주영의 흔적을 모두 지워낸 다음에, 그 다음에 부탁하려고요.”
- 회원님께는 계획이 다 있군요.
재료로는 뭐가 좋을까, 한참을 고민하다 뇌리에 불꽃이 번뜩였다.
그러고 보면 이번에 사이제논에서 획득한 아주 기이한 금속이 있지 않던가.
신은아가 전리품이라며 건네준 것으로, 본래는 마기와 더불어 특수한 힘을 갖고 있었지만 신은아가 발한 번개 탓에 삿된 기운은 모조리 소멸하고, 특이하게 변이된 금속이었다.
그것은 인벤토리에서 꺼내들자 과연 끊임없이 황금의 스파크를 튀기고 있었다.
[뇌신의 손바닥]
[SSS]
[본래 강대한 마기의 집합체였으나, 터무니없는 양의 뇌전을 흡수해 근본적인 변이를 이루었다. 매우 무겁고 단단한 금속으로, 에너지를 흡수해 뇌력으로 변환하는 성질을 띤다.]
강신혁이 영력을 주입하자 일부는 튕겨내고 일부는 흡수하여, 그것을 다시 번개의 힘으로 변환한다. 극천신주와 비슷하지만 한계는 분명했다.
그래도 무기의 재료로는 이만한 것도 없었다.
- 검의 조각은 불의 성질을 띠고 있고 이 금속은 번개의 성질을 띠고 있습니다만, 이 둘을 합치실 생각입니까?
“불을 그대로 살려도 좋지만 그래서야 재미가 없잖아요. 뇌전도 막대한 열에너지를 품고 있기는 마찬가지에요. 적어도 마이너스가 되지는 않을 거예요.”
강신혁은 두 금속을 화로 안에 무턱대고 던져 넣고는, 그 외에 다른 비장의 재료를 꺼냈다.
이전 슈와 함께 진행한 차원 퀘스트에서 거대한 불도마뱀, 불포식자를 잡고 얻은 놈의 뼈와 피.
포식의 흑염창을 만드느라 뿔은 다 써버렸지만, 아직 많은 양의 피와 뼈가 남아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당시 놈에게서 측정불가 등급의 전리품인 [혼염의 심장]을 얻었는데, 이것도 아직까지 써먹지 못하고 있었다.
“그냥 이것도…… 끄응, 아니다. 과욕을 부리면 안 되니까.”
그 당시와 비교해 강신혁의 실력이 많이 늘어나긴 했지만 아직 이걸 다룰 수 있을 역량은 되지 않는다.
뭣보다 이건 그보다 이전에 빛의 바실리스크를 잡고 얻은 [빛의 볏]과 더불어 써먹을 계획이 있으니 얌전히 보관해두기로 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불포식자의 뼈, 특히 놈의 피다.
불포식자의 피는 열기를 품은 무구를 만들 때 쓰기에는 그 이상 없는 재료다.
불포식자의 뼈 역시 무척이나 단단하며 열기에 대한 무지막지한 저항력을 뽐내니, 이것으로 검손잡이를 만들고 검의 중심을 잡기에 적절했다.
모든 재료를 준비한 강신혁은 작업에 돌입했다.
금속을 녹이는 것부터가 보통 일이 아니었지만 신염의 보주를 끼워넣은 신염의 화로 앞에서 결국 모든 것이 공평하게 녹아내리고 있었다.
“좋아, 그러면 그 사이……."
망치와 정을 들고 뼈를 다듬었다.
뼈 중 일부는 갈아서 화로에 넣는 것으로 재료의 성질을 강화시켰고, 개중에서 가장 커다란 뼈로 검의 토대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50센티미터를 넘기는 매끈하고 날렵한 손잡이, 그 위로 양끝을 뾰족하게 갈아낸 가드, 그 중앙에서 뻗어 나오는 탄탄한 검의 심지.
영력과 황룡투기를 충분히 담아 그것을 만들어낸 강신혁은 그것을 틀에 넣고 완전히 녹은 쇳물을 부어 대검의 형태를 완성시켰다.
그리고 검이 적당히 굳은 시점에 본격적으로 피의 담금질을 시작했다.
겉으로 보면 단순히 무기를 찍어내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지금 강신혁의 작업에는 막대한 양의 영력과 황룡투기가 소모되고 있었다.
뭣보다 중요한 것은 신염의 화로다. 화로는 금속을 녹여내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작업이 이어지는 내내 작업물을 대상으로 ‘신염’을 뿜어내고 있었다.
검의 조각이 품고 있던 불의 정, 철판이 품고 있던 흡수하여 발산하는 번개의 힘, 불포식자의 뼈와 피가 더하는 혼염의 힘까지.
그것을 강신혁은 신염의 힘을 빌어, 모조리 한데 묶어 새로운 무언가로 승화시키는 작업을 수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 화아아아
담금질이 완벽히 끝났을 즈음엔 검신은 피처럼 붉은 색을 띠게 되었다.
검붉은 손잡이에 붉은 검신을 보고 있자니 그것만으로도 제법 모양새가 났는데, 가끔씩 스파크가 튀기는 것이 거기에 신비로움을 더 했다.
놀라운 것은 그 스파크가 붉은 빛을 띠고 있었다는 점이다. 과연, 강신혁이 공들여가며 귀한 재료를 한데 모아 영력을 퍼부어댄 것도 허사로 끝나지 않은 듯했다.
그러나 진짜 그의 실력이 발휘되는 것은 지금부터.
강신혁은 대검을 들고 연마 작업을 개시했다.
날을 갈아내는 것은 연마기 따위가 아니라, 강신혁 본인이 만들어낸 빛의 날이었다.
워낙에 검의 강도가 뛰어난데다, 뇌신의 손바닥이라는 기적의 산물이 혼입된 결과 모든 종류의 에너지를 흡수하게 된 이 검은, 당연하지만, 충격에너지마저도 완벽하게 흡수한다.
아무리 최고급 마석을 투자해 만든 마도 연마기라 해도 검을 깎아내지 못할 터였다.
따라서 순간이지만 검이 지닌 흡수의 힘을 뛰어넘을 수 있는 빛의 힘을 활용해 검을 연마하는 것!
- 지이이이잉
연마라기보단 빔으로 거대 괴물을 파괴하는 듯한 폭력적인 소리가 방 안을 가득 메웠다.
이만한 고에너지가 아니고서야 감히 검을 가공할 수도 없기에 어쩔 수 없는 일. 강신혁은 최대한 작업에 집중하려 노력했다.
작업은 무려 몇 시간 동안이나 계속해서 이어졌다. 강신혁은 연마 과정에서 떨어져 나온 부스러기들을 일부러 한데 모아두고 있었는 데, 그것은 이나희에게 부탁하여 룬 인챈트를 하는 과정에서 써먹을 생각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렀을까? 비로소 강신혁의 손에서 빛이 사라지고, 그의 손에는 오직 붉은 날의 대검만이 남았다.
- 파직, 파지직!
대검이 뿜어내는 붉은 스파크는 연마를 거치기 이전보다 더욱 강렬해져, 이젠 강신혁이 제어하지 않으면 공간 전체를 소멸시켜버릴 기세였다.
아직 이나희와 함께 해야 하는 마감 작업이 남기는 했지만…… 강신혁은 1차적으로 완성된 검의 능력이 궁금해져 시스템 메시지 창을 불러냈다.
“어……."
인챈트의 결과에 따라선, 이것도 투왕전에서 써먹지 못하게 될지도 모르겠는데.
강신혁은 반쯤 울상을 지으며 마이룸을 나왔다.
시간이 흘러, 비로소 체육대회의 막이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