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1화. < Chapter 51. 빛과 어둠 양면이 갖춰져 최강 - 5 >
“아빠!”
“그거 손님 있을 때는 하지 마라.”
클레어의 감독 하에 칵테일을 만들고 있던 비타가 강신혁을 발견하자마자 만면에 미소를 띠며 외쳤다.
아빠라고 부르는 걸 허락해줬다고 해서 아주 노골적으로 태도를 바꾸는 것이 참 귀엽다고 해야 할지, 약삭빠르다고 해야 할지.
“지금은 없으니까 괜찮아요. 머리 쓰다듬어주세요.”
“그래그래.”
강신혁은 잔과 셰이커를 놓고 달려와 머리를 불쑥 내미는 비타를 적당히 쓰다듬어주며 그녀의 차림새를 살폈다. 클레어와 완전히 동일했다.
“귀엽네.”
자신의 머리와 눈색을 고스란히 따온 데다 클레어와 똑같은 옷을 입고 있는 여자.
부모의 업을 계승하는 자식의 모습은 얼마나 흐뭇하고 귀여운가?
……그녀가 열다섯 살 정도만 어려 보였더라면 아슬아슬하게 그렇다고 인정해줄 수도 있었을 텐데.
“그치? 딸이라기엔 좀 무리가 있지만.”
“클레어도 같은 생각했구나.”
“전 두 분 딸이에요.”
이제 당당하게 주장하기로 마음먹었는지 비타가 볼을 부풀리며 주장했다. 글쎄 열다섯 살만 어려 보였으면 납득할 수도 있는데……
“그래서 어때?”
“응, 너보다 잘 만드는 것 같은데?”
“거짓말……."
“10년 동안 사이제논에서 칵테일만 만들었으니까요. 그 외에는 총질이나 해킹도.”
“어느 사이버핑크 세계냐고.”
사이제논에 대해 말하면서도 비타의 안색에는 변화가 없었다.
그녀가 안드로이드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이젠 완전히 평정을 되찾은 모양이었다.
“나노봇은 어때.”
“이제 다 장악했어요. 엄마한테도 많이 드렸고.”
“후후후…… 기대해도 좋아. 너도 아마 깜짝 놀랄걸.”
사이제논은 강신혁에게는 짙은 어둠을, 클레어에게는 초고도문명의 유산을 남겼다.
본래 자신의 연금술로 기계를 만들어내고 다루는 클레어에게 나노봇은 호랑이에 날개를 단다는 표현으로도 부족한 변화를 가져다준 것이다.
만약 다른 이들에게 나노봇의 정체를 들킨다면 조금 난감해지겠지만, 자신의 능력의 일종이라 얼버무리는 정도가 가능할 때까지는 얌전히 연습만 하겠다는 모양이다.
“너는 어떤데? 그 검.”
“맞아요. 아빠의 정신을 오염시킨다거나 하는 일이 없을까 걱정이에요.”
“아, 오염된 거 맞아.”
“네!?”
비타가 경악하며 눈을 커다랗게 떴다. 그 옆에서 클레어가 당장이라도 비명을 지를 것 같은 표정으로 달려와 강신혁의 어깨를 잡고 탈탈 털었다.
“너 그게 무슨, 말해봐, 내가 어떻게 도와줘야,”
“진정해, 클레어.”
강신혁은 검을 얻는 과정에서 사이제논의 모든 마기를 빨아들여, 그것이 현계한도를 초월한 다크 마스터리로 완성되었다는 사실을 그녀들에게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관리자의 말에 따르면 다크 마스터리가 성격에 다소 영향을 준다는 점도…… 자신이 모르고 있었을 뿐 이전부터 라이트 마스터리에 영향을 받고 있었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아항, 그래서 은아한테 그렇게 단호했구나.”
“그럴지도 몰라.”
“은아…… 아, 신은아 님. 강하지만 성격이 조금 이상한 분이죠.”
“은아 앞에선 그런 말 하지 마렴.”
아무래도 비타는 신은아에게는 좋은 감정이 없는 모양이다. 그야 그럴 만도 했다.
“아무튼 준비 됐으면 이제 슬슬 열까? 아, 자기야 밥 먹었어?”
“먹고 왔어.”
“오케이, 그러면 오늘은 홀에 있어줘.”
비타가 자신보다 실력이 좋다고 했으니 자신이 바 테이블에 서고 싶다고 우길 수도 없다.
강신혁은 슬슬 자신이 이 알바에서 해방되는 날이 온 것일까, 생각했다.
잘된 일이다. 강신혁은 졸업 후 이나희와 함께 아티팩트 샵을 열기로 했으니까.
물론 그쪽에도 매일 출석할 셈은 없지만, 마스크드 바커스까지 도합 세 가지 일을 병행하는 것은 단언컨대 무리다.
‘더구나 클레어도 원래는 이런 데서 바나 운영하고 있을 사람은 아니니까.’
그녀의 칵테일 바 개업에 그녀 자신의 바람이 3할 정도 있다면, 나머지 7할은 신은아에 대한 걱정이나 강신혁에 대한 관심이다.
그리고 그것이 대부분 해소된 지금, 클레어를 이 칵테일 바에 붙들어두고 있는 것은 남은 3할, 그녀의 로망뿐인 것이다.
더구나 지금은 칵테일 바를 지키고 있어줄 누구보다 믿을 만한 인재가 생겨났다. 클레어가 만들어낸 존재인데다, 심지어는 그녀가 직접 가르치기까지 했으니 클레어의 대리인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언제나 착용하는 가면을 쓰고 신은혁으로의 변화를 완료한 후, 문으로 향했다.
“그럼 연다?”
“저는 준비됐습니다.”
“아니, 넌 아직 준비가 안 됐어.”
"네? 엄마?”
비타가 주먹을 불끈 쥐며 새로운 일터에서의 각오를 표현하고 있는데, 클레어가 그 옆에서 자신의 머리를 포니테일로 묶더니 비타에게 다가가 그녀의 머리를 어째선지 트윈테일로 묶었다.
설마 바텐더 1호, 2호로 구분하고 싶은 것일까.
지금 그녀에게 다가갔다간 자신의 머리도 세 갈래로 나뉘어 묶이는 것이 아닐까 두려워져, 간판을 오픈으로 바꿔놓고는 그녀들에게서 살짝 떨어진 곳에 위치했다.
“홀만 맡는 건 처음인데. 청소라도 할까?”
가만히 있는 게 뻘쭘해져 말을 걸었더니, 두 갈래로 나뉜 제 머리가 마음에 들었는지 손으로 양쪽 머리를 번갈아 만져보던 비타가 그에게 살짝 미소 지으며 대꾸했다.
“청소라면 이미 완벽하게 끝내놨습니다. 인간이 가장 편안하게 머무를 수 있는 환경을 시뮬레이션하고 나노봇을 이용해서……."
“점점 만능처럼 느껴지는데, 혹시 그걸로 요리도 가능해?”
“해드릴까요?”
“진짜 만능이었네.”
다만 처음부터 이 정도 수준이 가능했던 것은 아니고, 1차적으로 강신혁의 특성으로 강화를 받은 다음(영구 강화가 되었다.) 오닉스의 금마력에 의해 2차 변이가 일어나고, 마지막으로 클레어가 자신의 특성을 활용한 프로그래밍으로 나노봇의 구조를 뜯어고친 후에야 이런 만능기가 완성되었다고.
강신혁은 그 말을 듣고 가만히 생각하다가, 아직 손님이 오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는 클레어에게 물었다.
“그거 나희 선배가 룬으로 더 강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룬을 새길 수만 있으면? 규모가 너무 작아서 간단하지는 않을 거야.”
“그럼 해보자. 하는 김에 나희 선배한테도 좀 떼어주고.”
“나노봇이 무슨 장터 호떡도 아니고……. 물론 그 생각은 나도 하고 있었는데.”
그럴 것이다. 이나희의 특성은 희귀할 뿐더러, 그 활용법에 있어 클레어와 제법 흡사하니까.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그야 물론 다르지만, 능력의 발현 형태가 비슷하기에 비슷한 전법을 구사할 수 있고, 성장방식 또한 마찬가지.
이나희가 작년 2학기 이후로 급성장한 것은, 비단 특성의 진화 때문만이 아니라 클레어와 만나 그녀에게 여러 가지를 배웠기 때문이기도 한 것이다.
“하지만 정식으로 넘겨주는 건 나희가 졸업한 이후에.”
“그래, 그게 좋겠네.”
“이것도 다루기 쉬운 건 아니니까. 그동안은 일단 가르쳐야지…… 아.”
- 딸랑
“언니, 저 왔어요!”
대화를 나누고 있던 그때 바의 단골이 된 초인, 임하연이 문을 기운차게 열고 들어왔다.
그녀 뒤로도 젊은 남녀 초인이 우르르 들어오는데 보아하니 그녀가 속한 길드의 멤버들이었다.
“은혁 씨 오늘 있네! 프렌치키스 한 잔…… 어라, 잠깐만!”
홀에 나와 있는 강신혁을 보며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곧장 그에게 주문을 하려던 임하연이, 뒤늦게 비타를 발견하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예쁜 언니가 늘어났는데!?”
“오, 진짜네.”
“잠깐만, 서두르지 마. 설마 이분은 남친 없겠지? 없다고 말해줘요.”
“바텐더를 꼬실 목적으로 온 자식들은 다 나가.”
겉으로 보기엔 클레어만큼이나 성숙해보이지만 실제로는 사춘기에 불과한 비타를 보호하며 남자들을 째리는 클레어.
강신혁은 손님들을 반쯤 강제로 자리에 앉히며 쓴웃음을 지었다.
“다들 아시다시피 제가 앞으로 좀 많이 바빠질 예정이라.”
“그야 그렇지. 세계랭킹 2위 됐잖아.”
“아니, 왜 여기 있는 거야? 세계랭킹 2위 한가하네.”
“안 말해줬으면 잊어먹을 뻔 했어.”
강신혁도 같은 의문을 세계랭킹 1위인 신은아를 상대로 품을 때가 있지만 막상 이 녀석들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 약이 올랐다.
“그래서 앞으로는 제가 없을 땐 비타가 있을 겁니다.”
“이름이 비타야? 어쩐지 이국적이더라.”
“뇌제랑은 무슨 관계예요?”
“아니 설마, 이 바 전투력 또 강해지는 거야? 대체 이 바에 모여서 뭘 하는 거야?”
“아, 알았다. 마스크드 바커스 뉴 멤버 아냐?”
강신혁 역시 능력을 발동하면 금안이 되지만 그를 신은혁으로 아는 이들은 대부분 그 사실을 모른다.
흑발에 금안을 지닌 능력자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단연 신은아이니, 비타를 보고 신은아를 떠올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아뇨, 저는 뇌제라는 분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굳이 관계가 있는 사람을 찾는다면……."
비타가 강신혁을 힐끗했다. 그의 이름을 직접 입 밖에 내려다, 손님들이 강신혁을 다른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자제한 것이다.
그러자 손님들의 반응이 가관이었다.
“아니 또야? 또냐고!”
“어이어이 젠장 믿고 있었다고!”
“그 브리짓 폴센까지 꼬셔놓고 또!”
“바텐더, 신입 바텐더가 남친을 노리는데 이거 어떻게 할 거예요, 네?”
“둘이 깨졌어? 그럼 나도 되지 않나?”
반은 자포자기, 반은 즐기는 모양새였다. 비타가 그들의 반응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라하고 있자니, 클레어가 곰돌이 젤리를 여럿 튕겨 손님들의 마빡을 가격했다.
“그런 거 아니니까 신경 끄고 술이나 주문하셔. 그리고 안 깨졌으니까 내 남친 노리지 마.”
“가드 단단하네~”
“그럼 난 보드카 마티니. 젓지 말고 흔들어서!”
“비타, 저 녀석 이마에 총이나 쏴버려.”
아직 초저녁인데 벌써 어디서 한 잔들 하고 온 것만 같은 텐션이었다.
강신혁이 한숨을 내쉬며 비타를 바라보니, 그녀는 즐거운 듯 입가를 기울이고 있었다.
“이 바, 마음에 들어요.”
“후흐, 다행이네.”
클레어도 결국 웃어버렸다.
강신혁은 그로부터 당분간 모양새를 지켜보고 있었지만, 비타가 능숙하게 해내는 것을 보며 안도했다.
무슨 자식을 처음 유치원에 보내는 부모도 아니고, 스스로도 그것이 웃겼다.
- 흠…… 700.000HP 보너스!
“댁은 또 뭘 평가하고 있는 거야.”
그렇게 마지막 손님이 떠나고 청소까지 끝나 바를 닫을 때가 되어서, 클레어는 조금 중요한 문제를 깨달았다.
평소였으면 둘이서 같이 정리하고 함께 2층의 방으로 올라가는데…… 비타가 이대로 계속 함께 있으면 강신혁과 좋은 시간을 보낼 수가 없다!
곧장 강신혁에게 달라붙을 생각이었던 클레어는 마음이 다소 급해진 나머지 무리수를 두고 말았다.
“어, 비타, 안 졸리니?”
“네? 엄마, 저는 딱히 수면을 취하지 않아도……."
“클레어……."
클레어의 어설프기 짝이 없는 딸 격리 작전에 강신혁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고개를 갸웃하는 비타에게 강신혁이 어떻게 얼버무려야 할까 고민하던 그때, 돌연 비타의 얼굴이 새빨개져 그 자리에서 일어섰다.
“조, 졸려졌어요. 먼저 가서 잘게요.”
"......."
"......."
차라리 당당하게 말하는 쪽이 덜 쪽팔렸을 것이다.
당연히 강신혁과 클레어의 얼굴도 그녀 못지않게 붉어졌다.
비타가 허겁지겁 자리를 떠나자, 강신혁은 클레어에게 비난의 눈길을 주며 말했다.
“비타는 이미 망한 것 같지만 나중에 태어날 둘째 교육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라도 여러 상식을 배울 필요가 있겠어."
“네……."
클레어가 모든 변명을 포기하고 고개를 숙인 그때, 바 중앙에 홀연히 누군가 나타났다.
“클레어, 나 술 줘.”
“아……."
“후배, 빨리 와서 들어줘. 나 오늘 협회에서 엄청 속상한 일이 있었는데……."
“아니, 은아 선배는 왜 이 늦은 시간에 와서 당당하게 직장 투정을 시작하는 건데……."
비타에게 푼수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쫓아낸 보람도 없어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