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8화. < Chapter 51. 빛과 어둠 양면이 갖춰져 최강 - 2 >
다음날, 강신혁은 클레어와 비타를 배웅하고는 홀로 등굣길(방을 나와 2학년 A반까지 대략 5분 정도 걸렸다.)에 올랐다.
어젯밤, 클레어의 얘기를 듣고 그녀의 생각은 얼추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자신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외려 기쁜 마음도 들었다.
다만 그녀의 행동은 지나치게 난폭하고, 서두른 감이 있었다. 어쩌면 서로 첫사랑이라 더더욱 서툴렀던 것인지도 모른다.
- 두 번만 서툴렀다간 회원님을 의자왕으로 만들겠습니다.
‘생각 읽지 마요.’
강신혁은 그녀의 생각을 완전히 긍정할 수는 없었지만, 자신이 그녀의 근본적인 불안을 해소해줄 수 없는 것도 사실이었기에 앞으로 같이 생각해보자는 식으로 얘기를 마무리했다.
문제는 신은아였다.
클레어와의 갈등은 깔끔하게 해소할 수 있었는데, 신은아와는 어젯밤 헤어진 이후로 연락이 닿지 않았다.
강신혁이 몇 번이나 메시지를 보냈음에도 그녀가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야 그녀는 어마어마한 각오를 하고 덤벼든 것인데 강신혁이 단호하게 거절했으니, 그녀가 여자로서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는 것도 당연한 일이기는 했으나…….
“이런 일은 빨리 정리를 해두는 게 은아를 위해서도 좋을 듯싶은데……."
그냥 이쪽에서 쳐들어갈까? 설마 쫓아내진 않겠지.
강신혁은 신은아로부터의 대답이 오지 않는 메신저 화면을 뚫어져라 노려보며 생각했다.
어째서 이 문제로 자신이 고생을 해야 하나 싶기도 했지만, 사랑하는 손녀…… 아니, 소중한 친구를 위한 일이니 모르는 척 얼렁뚱땅 넘어갈 수도 없는 일이었다.
“왜 여자친구랑 싸운 다음날 아무리 카톡을 보내도 답장이 없어서 뿔난 사람처럼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어?”
옆에서 불쑥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옆을 돌아보니 해맑게 웃고 있는 카렌의 얼굴이 두 눈 가득 들어왔다.
“아."
인사와 아는 척의 중간쯤에 있는 감탄사 한 마디로 반응을 마친 강신혁이 다시 스틱으로 고개를 돌리려니 카렌이 그의 어깨를 덥석 붙들었다.
“아? 아아? 단장님한테 다 들었어, 너 어제 나만 빼놓고 몰래 파티했다며! 그래놓고 나한테는 그런 심드렁한 태도!”
“스테이터스 평균 S랭크 찍고 나면 너도 끼워줄게.”
“으, 진짜 솔직하게 말해주네……."
어쩔 수 없다. 카렌은 신원이야 그야말로 확실한데다 엘레노어를 따르는 만큼 누구보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이지만, 본인의 능력이 아직 많이 부족해서 마스크드 바커스로 활동하기엔 무리가 큰 것이다.
“하지만 오혜나는? 백인하 이거라 챙겨주는 거지, 그지!”
“걔 너보다 세.”
“컥!"
강신혁은 카렌이 상스러운 손짓을 하지 못하게 그녀의 손을 붙잡으며 팩트를 날렸다.
카렌은 강신혁에게 손을 붙잡혀서인지, 마주한 진실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였는지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그 자리에서 심호흡을 했다.
“잠깐만 신혁아, 나 명치 맞은 것 같아 숨 좀 쉬고…… ”
“그러게 왜 판도라의 문을 열어.”
그가 딱한 표정을 지으며 카렌의 등을 두드려주자 카렌의 얼굴이 더욱 붉어졌다. 그녀는 동요를 필사적으로 감추며 말을 이었다.
“아니, 걔 센 건 알고 있었는데 그 정도로?”
“어, 심지어 점점 성장속도가 빨라지더라.”
물론 오혜나도 아직 모든 스테이터스를 S랭크 이상 달성한 것은 아니지만, 이미 마력과 민첩은 S랭크였다.
백인하와 비슷한 성장 방향성이었는데, 성장속도마저 그와 비슷하다면 1년 이내에 이 학교의 학생들과는 비교를 불허하는 수준으로 성장해줄 터였다.
하지만 카렌은, 특성은 물론이고 스테이터스도 아직 A랭크와 B랭크 사이에 있는 것들이 많았다. 이 정도로도 2학년 10위 안에 드는 실력이지만 말이다.
“힝, 작년엔 너도 나랑 실력이 비슷했었는데……. 나만 놔두고 멀리 가버리는 거야?”
“힝 좀 제발, 그 되도 않는 연극도 좀…… 에휴.”
강신혁은 한숨을 내쉬며 카렌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 순간 그의 손에서 시작된 황금의 흐름이 삽시간에 카렌의 몸 전체로 퍼져나갔다.
“……응? 어라?”
카렌은 그 순간 자신의 신체감각이 한계를 넘어 미지의 영역에 이르는 것을 느꼈다. 심지어는 그 느낌이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강신혁은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카렌을 보며 검지를 세워 자기 입술에 지그시 눌렀다.
“비밀이다.”
“으, 응! 비밀!”
강신혁의 특성에 대해서 잘은 모르지만 그가 자신에게 뭔가 좋은 것을 해줬다는 건 알아차릴 수 있었다.
카렌의 표정이 금세 밝아지자 강신혁 역시 작게 웃었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성장시켜주는 것은 그에게도 좋은 일이다.
더구나 바로 얼마 전 영력과 황룡투기가 무려 SSS랭크에 도달했으니 그녀에게 버프를 걸어 유지시키는 것 정도는 쉬운 일이기도 했다.
“헤…… 고마워. 신혁이 너, 엄청 달라졌어.”
“더 멋져졌지?”
“응. 엄청……."
태클을 기대하고 한 말에 긍정이 돌아오면 반응이 곤란하다.
그렇다고 ‘나에게 반하지 마라~’같은 개소리로 대꾸할 수도 없어 슬그머니 그녀와 거리를 벌리려는데, 기쁨을 주체하지 못한 카렌이 냅다 그의 곁에 달라붙었다.
“같이 가자!”
“까분다.”
“이거 츤데레인가 하는 그거지? 다 알아요, 누나가. 안 그러면 이런 거 해줄 리가 없잖아!”
“그거 백인하한테도 해준 거다.”
그의 버프를 받고 기분이 한껏 좋아진 카렌이 반쯤 억지로 그의 팔짱을 끼자 더 이상 ‘강신혁 n다리설’의 n을 하나 늘리고 싶지 않았던 강신혁은 기겁하며 그녀로부터 벗어나 먼저 교실 안으로 들어갔다.
카렌이 그 뒤를 따라 능글능글 웃으며 들어가자 그 안에 불퉁한 표정을 짓고 있는 도우진이 있었다.
“뭐야, 도우진 무슨 일 있었어?”
“몰라, 묻지 마.”
“얜 또 왜 이러지.”
아마도 바깥에서 둘이 실랑이를 벌이는 것을 본 거겠지, 그녀보다 먼저 도우진의 따가운 시선을 받아낸 강신혁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다 네 잘못이니까 그렇게 알아라."
"?"
그날 대련 수업 중에 강신혁은 오랜만에 도우진으로부터 도전을 받았지만, 자신이 카렌에게 관심이 없는 것과는 별개로 자신에게 도전해오는 사람을 대충 상대할 수는 없었으므로 자근자근 밟아주었다.
도우진은 무척 서러워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아프니까 청춘이지 않겠는가. 아마 괜찮을 것이다.
@@@
체육대회, 그와 함께 열리는 투왕전 등의 행사에 대한 알림이 그날 오후 중으로 이루어졌다.
2학년이 되었으므로 당연히 신인전에는 참가가 불가능하고, 기사학과이니만큼 투왕전과 기사왕전에 나누어 참가할 수 있는데……. 이건 당연한 일이지만, 3학년도 참가하는 행사인 만큼 2학년 중에서는 정말 난다 긴다 하는 학생들만 가능성을 점쳐볼 수 있었다. 애초에 실기(중에서도 대전) 능력이 떨어지는 학생은 참가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투왕전에 출전하는 학생은 강신혁, 백인하, 도우진, 카렌 스트링필드로 총 네 명, 맞지?”
“넵.”
“좋아, 그러면 투왕전과 기사왕전에 참가하는 사람들만 남고 다들 귀가하도록.”
2학년 A반의 담임의 이름은 지민혜.
30대의 젊은 여성으로, 타격 계열 A급 특성을 지녔으며 현역으로 하이랭커에 속해있어 신영에서도 가장 강한 교사 중 하나였다.
뛰어난 인재들을 가르치려면 뛰어난 교사가 붙어야 한다는 뜻에서 그녀가 선발된 것인데, 굉장히 미안한 말이지만 이미 강신혁과 백인하가 그녀에게 도움을 받을 만한 일은 없었다.
지민혜 역시 실기를 몇 번 해보면서 그 사실을 빠르게 깨달은 모양으로, 그녀가 담당하는 대련 수업에서는 아예 강신혁과 백인하를 조교 역으로 빼낼 정도였다.
"꼭 우승을 거두지 않더라도, 순위권에 드는 것만으로 장학금과 부상 등의 혜택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야. 더구나 투왕전과 기사왕
전에서 우승을 거둔 학생이 이미 로열 클래스에서 살고 있는 경우, 2위가 그 혜택을 물려받게 되어 있으니 다들 끝까지 노력할 수 있도록."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노골적으로 강신혁과 백인하를 따로 내버려두고 도우진과 카렌에게 진지한 눈빛으로 대회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었으니까.
어쩌면 교사들 사이에는 자기네 반에서 몇 명이나 로열 클래스에 입성했느냐를 놓고 우열이라도 가리는 것일까? 자신이 떠올린 가설이지만 제법 설득력이 있었다.
강신혁이 어이가 없어 고개를 젓고 있는데 문득 지민혜가 그를 보며 물었다.
“그런데 신혁이, 넌 기사왕전에는 참가하지 않는 게 확실하지?”
“네, 선생님.”
“인하는 둘 다 나가고 싶은 거고?”
“네. 저 투왕 겸 기사왕 할 거에요.”
“그래그래, 개소리는 그쯤하고. 아, 신혁이는 이제 가도 돼.”
지민혜는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를 휘휘 쫓아냈다.
먼저 돌아가는 길에 고개를 갸웃하고 있자니, 곧 백인하로부터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백인하 : 나 투왕전 사퇴 당함.]
[나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백인하 : 지금부터 때리러 가도 되냐? ㅋ개수만큼 때릴 거다.]
[나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백인하 : 50대 다 개새꺄.]
[나 : 그걸 세고 있냐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래도 지민혜는 투왕과 기사왕을 모두 자신의 반에서 뽑아내고 싶었는지, 백인하가 대회 하나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반 억지로 그에게 투왕전을 사퇴하도록 만든 모양이었다.
물론 아무리 그녀가 권했어도 백인하의 의지가 굳건했다면 무리였을 터.
애초에 백인하가 대회 두 개를 전부 나가려 했던 것도 사내아이다운 유치한 자존심이 한 몫을 하고 있었던 탓인지라, 이성적으로 따지면 지민혜가 권하는 대로 하는 쪽이 낫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지민혜의 권유에 못 이기는 척 투왕전을 사퇴한 것이겠지.
[나 : 근데 기사왕전도 만만치 않을 텐데. 지민혜 쌤은 아직 우리 엘리 실력을 모르나보네.]
[백인하 : 너는 몰라도 엘레노어 누님은 내가 꺾고 만다.]
강신혁과 엘레노어 중, 그나마 백인하가 승리할 가능성이 높은 쪽은 엘레노어가 맞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얘기고, 절대적으로 따지면…….
[백인하 : 그러니까 특훈. 너 때리러 간다고 했잖아.]
[나 : 그래 임마, 죽어라 특훈하자. 근데 오늘은 안 돼.]
[백인하 : 여자냐? 여자지! 이 중차대한 시점에 여자를 만나러 가겠다고 친구를 버려? 네가 그러고도 인간이야? 어?]
[나 : 내일 보자.]
강신혁은 백인하와의 대화를 마치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차라리 정말로 클레어와 데이트하는 것이라면 얼마나 마음이 편하겠는가.
하지만 그 전에 어떻게든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으니까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나 : 지금 만나러 갈게.]
[나 : 사람 없는 데로 가. 공간이동으로 갈 테니까.]
그렇게 두 줄을 보내놓고 공간조율을 발동할 준비를 했다.
설마 이렇게 다짜고짜 통보할 줄은 몰랐던 것이겠지, 생각보다 빠르게 답장이 왔다.
[은아 선배 : 잠깐만, 30분만! ]
[나 : 5분.]
[은아 선배 : 못 씻었단 말이야!]
[나 : 안 씻어도 예쁘니까 걱정하지 마.]
[은아 선배 : 20분!]
[나:OK, 20분.]
[은아 선배 : 미워!]
진즉 이렇게 할걸.
강신혁은 속이 시원해져 만족스레 한숨을 토해냈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내 성격, 조금 달라지지 않았나?
- 그건 바로 회원님께서 다크 마스터리를 익히셨기 때문입니다. 라이트 마스터리를 익히셨을 때까진 지나치게 순한 맛이었지만 다크 마스터리가 조화를 이루어 매운 맛이 첨가된 것이지요.
“아니 거짓말.”
- 정말입니다.
“차라리 평소처럼 HP 보너스라도 줘요!”
- 진짜입니다.
……아니, 설마.
어쨌든 20분은 금방 흘렀고, 그는 곧장 공간이동을 실시해 신은아의 곁으로 향했다.
어쩌면 당연하게도, 그곳은 호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