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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6화. < Chapter 50. 러스티드 랩소디 - 8 >

강신혁은 어둠의 공간에서 눈을 떴다.

솔직히 예상하던 그대로라서 조금도 놀랍지가 않았다.

아마도 자신이 지금 눈을 제대로 뜨고 있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그뿐만이 아니다 후각, 통각, 청각에, 아마도 미각까지 맛이 간 모양이다.

있는 힘껏 소리를 지르려 해봐도 입이 움직이는 것 같지도 않고 귀에 뭐가 들리지도 않으니, 확실하다.

‘몸에 감각이 하나도 없으니까 기분이 너무 이상한데. 관리자님…… 관리자님?’

혹시나 해서 불러봤는데 정말로 히어로 유니버스와의 연결도 끊겨있었다.

이쯤 되면 강신혁이 어둠의 공간으로 텔레포트를 한 게 아니라, 그에게 일종의 환각 마법이 걸려있다고 보는 쪽이 더 타당했다.

본래 이런 계통의 능력은 자신의 영력으로 상시방어가 이루어지고 있었기에, 무기력하게 당하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응…… 끄응. 끄으응……! 아, 안 돼.’

강신혁은 영력을 끌어올려보았지만…… 역시나 느껴지지 않았다.

황룡투기는 그나마 약간 운용할 수 있어서, 급한 대로 그것으로 몸을 두르고 강화시켰다.

아무런 감각도 없는 와중에 황룡투기가 본능에 따라 움직여준다는 사실이 오히려 더 놀랍다.

‘내가 키운 영혼의 힘이 한순간에 사라진다는 일은 있을 수 없어. 그러니까 확실히 환각이네. 황룡투기로 어떻게 뚫어볼 수 있을까?’

강신혁은 차분히 자신을 되짚어보며 스스로도 이상하네, 하고 생각했다.

자신에게 있던 능력 대부분이 무효화된 상황인데도 별로 긴장이 되지 않았다.

근 1년, 그럭저럭 많이 구르고 그럭저럭 많이 성장한 덕일까.

무슨 일이 닥쳐도 허무하게 당하지는 않으리라는, 자신에 대한 믿음이 형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감각이 없다 뿐이지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건 아닐 거야.’

그런 생각으로 열심히 몸을 움직여보고, 콩알만 한 황룡투기를 체내에서 마구 회전시키며 스스로를 자극하고 있자니 조금씩, 아주 조금씩 감각이 돌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강신혁의 굳은 의지가, 그를 제어하려는 괘씸한 무언가를 물리치고 자기를 되찾은 것이다.

그러나 기껏 그의 눈이 뜨이나 싶은 그 타이밍에 문득 눈앞이 다시 어두워졌다.

아니, 어두워진다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아무것도 없던 공간에, 새로운 어둠이 생겨났다는 표현이 옳았다.

‘이거…….'

시각도 제대로 확보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그것을 알았느냐고 하면, 그저 그렇게 느껴졌다고밖에 답할 도리가 없다.

그러니까 아마도 이것은 순수한 어둠의 기운 그 자체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것은 강신혁이 피할 틈도 없이 날아들어, 그를 덮쳤다.

그리고 보다 더한 어둠이 펼쳐졌다.

‘뭐지 이거, 무한 츠쿠요미 같은 건가.’

강신혁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느껴지는 황룡투기의 양은 아까보다도 더욱 적다.

이걸 가지고 또 라이브 버라이어티 쇼를 하다 보면 다시 감각을 되찾을 수 있겠지만, 그렇게 했다간 다시 또 어둠이 덮쳐와 리셋될 것만 같다는 강한 예감이 들었다.

다른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 이 어둠에 저항하기 위한 다른…….

‘응?’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문득 또 새로운 무언가가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어차피 피할 수도 없기에 단단히 각오를 하고 받아들였다.

다시 또 더한 어둠이 닥쳐오는 것일까 했는데 아니었다.

그 ‘기운’은 그의 뇌리로 흡수되어, 신비하게도 닫힌 그의 망막 안에 자그마한 상영관을 열었다.

지지직, 초점이 어긋난 것처럼 화면이 흔들리다가 이내 맑아지며 흑백의 영상이 비추어졌다.

‘이건…… 아, 아아.’

이젠 익숙해진, 모루 시절의 기억이었다.

이 검을 만들던 당시의 기억일까 싶었는데 그렇지 않았다.

……이 검을 만드는 계기가 된 시절의, 기억이었다.

그것은 소중한 아내와 딸이 죽던 때의 기억이다.

평화롭던 세계에 침략해온 적, 요르문간드에게…… 아니, 아니다.

그녀들은 나라에 위기가 닥쳐왔음에도 자기들끼리 다투기 바쁘던 인간들의 욕망 탓에 희생당한 것이다.

'.......'

대장장이는 젊어서부터 뛰어난 능력을 지닌 인재였고, 좋은 무기를 만들어낼 것을 요구받았다.

대장장이는 자신이 만든 무기가 세상을 구하는 데 쓰이리라 믿으며 열심히 쇠를 두들겼지만, 무엇보다 소중했던 가족을 잃은 후에야 자신이 착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몬스터들의 침략에 점점 줄어드는 인간의 영역, 그 안에서 땅따먹기를 하겠다고 갈라진 인간들의 투쟁 속에서,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 대장장이의 가족은 그렇게 허무하게 목숨을 잃었다.

그래도 그때까지는 아직 그에게 순수함이 남아있었다.

가족이 죽은 것도, 나라가 망한 것도 전부 침략자들 탓이라 여기고, 세상을 구하려는 용사들을 위해 다시 망치를 붙잡았다.

하지만 체계가 무너진 세상에서 대장장이가 만들어내는 무구는 실로 가치가 높은 물건이었고, 사람들은 그것을 놓고 싸웠다.

몬스터가 아니라, 사람이 사람에게 검과 창을 겨눈 것이다.

‘나라’니 ‘세상’이니 하는 개념은 더 이상 인류에게 남아있지 않았다.

하다못해 ‘가족’이라는 단어의 의미조차 희미해진 시대였다.

오직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나’였다.

대장장이는 뒤늦게 자신이 잘못 생각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자신과 가족을 먼저 지켜내지 않고선 아무 의미도 없다는 것을.

그러나 그것은 너무 뒤늦은 깨달음이었고, 모든 것에 지친 대장장이는 자신을 두고 다투는 인간들을…… 괴물들을 피해 홀로 도망쳤다.

그리고 모두가 죽었다.

아마도, 그 혼자만이 남았다.

그렇게 몇 년을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끝에, 사람이 아무도 없는 대피소를 발견한 것이다.

-정말로 우스운 건, 그 지경이 되어서도 다시 망치를 붙잡았다는 거지만.

‘아아…… 이거, 이거 엄청 기분 안 좋아.’

비록 메시지를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강신혁은 지금 이 순간 자신과 모루의 동화율이 대폭 상승했음을 느꼈다.

그렇지 않고선 자신이 이미 잃어버린 ‘아내’와 ‘딸’ 때문에 이렇게 슬퍼질 리가 없었다.

여태까지는 가족에 대한 기억을 대부분 떠올려내지 못했다.

아마도 모루의 자아를 이루는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기에 최대한 그가 자연스럽게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시점까지 동기화가 늦추어지고 있던 것이 아닐까.

하지만 이 빌어먹을 검 새끼가 자신이 품고 있던 기억을 냅다 그에게 꽂아버린 것이다.

그의 정신에 악영향을 미치기 위해.

짙은 어둠으로, 마기로 물들이기 위해.

‘완전 마검이잖아 이거.’

이 검은 대장장이가 만든 검 중에서도 그의 한과 분노, 절망이 가장 짙게 깃든 검이었다.

대장장이는 그것을 깨닫고 이것을 버렸지만 어째선지 다른 세상, 사이제논으로 넘어오고 말았다.

하필이면 또 이런 검에 영력이 많이 담겨, 자아를 얻는 바람에…… 사이제논의 가이아 시스템을 분열시킬 정도로 영향력을 발휘하고 만 것이다.

가이아 시스템에 영향을 끼치는 검이라니 이게 말이 되는가 싶지만, 냉정히 생각해보면 아마도 원래 사이제논에는 마기가 짙었을 것이다.

어쩌면 이 검이 사이제논으로 넘어온 것 역시 그 탓일지도 모른다.

이것이 가이아 시스템을 오염시켰는지, 오염된 가이아 시스템이 이 검을 얻고 제대로 흑화해버린 건지는 몰라도…… 이 검이 품고 있는 어두운 감정은 오염된 가이아 시스템이 이 세상을 어긋난 방식으로 지배하도록 만들었다.

‘오염된 가이아 시스템이 나를 인식한 것은 아마도 그래서겠지. 설명되지 않는 부분은…… 여전히 조금 있지만, 지금 내가 알 수 있는 건 아닐 테고.’

강신혁이 소설 속 정의로운 주인공이었더라면 ‘에잇, 이런 검 따위!’하면서 반으로 부러트리는 장면이 꼭 나와 줘야 할 것만 같은 그런 사악한 검이었지만(덤으로 그 전개가 있은 후 부러진 검이 어째선지 평범한 농촌 소년or소녀의 손에 들어가며 새로운 적이 탄생한다.) 그는 검에게 조금 고마운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희미할 뿐이었던 아내와 딸의 얼굴이 이 검 덕분에 생생하게 떠올랐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이건 주인을 너무 우습게 보는 거지.’

가이아 시스템을 호구 잡았다고 해서 검을 만든 본인까지 낚으려고 하다니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처음 이 어둠 속에 갇혔을 때는 강신혁도 조금은 헤맸지만, 검이 그의 뇌리에 때려 박은 기억 탓에 동화율이 높아진 지금은 오히려 이것의 한계며 대응책이 확실하게 떠올랐으니까.

‘왠지 싫네, 관리자 뜻대로 되는 것 같은 느낌인데…….'

그래도 어쩔 수 없다.

강신혁은 작게 심호흡을 하고…… 모든 어둠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굉장히 중2병 같은 문구지만 농담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이 모든 어둠을 자신에게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 공간은 비어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어둠으로 가득 차 있을 뿐이다.

그것을 인식하면, 이 에너지를 빨아들이는 것도 너무 간단한 일이었다.

‘하아아아아아!’

물론 평범한 사람이라면 어둠을 스스로 받아들인 시점에서 검에게 휘둘리게 될 뿐이지만, 강신혁은 이 검을 만든 장본인일 뿐더러 모든 에너지의 상위호환이라 할 수 있는 영력의 주인이고, 하물며 어둠의 반대되는 속성인 빛을 다루는 능력마저 갖추고 있었다.

극천신주를 다루는 동안 얻은 깨달음의 일부나마 적용할 수 있다면, 어둠을 받아들여 자신의 것으로 삼아 컨트롤하는 것은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들어온다. 으, 너무 많은데.’

굉장히 부정적인 에너지를 품고 있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이 검은 그가 만든 검중에서도 최상위권을 달리는 명검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작정하고 그의 모든 한과 분노를 결집해 만들었으니까.

더욱이 그 검이 오랜 세월 한 세상의 정점에 꽂혀있다 보니 검의 영성이, 격이 더욱 높아지기까지 했다.

그래서 품고 있는 마기…… 어둠의 양도 어마어마하게 많을 수밖에 없었다. 무방비 상태에서 받아들였더라면 강신혁의 몸이 펑 터져 버렸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검의 능력이 그가 어둠을 보다 잘 다스릴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었다.

‘나지만 잘도 이런 걸 만들었네.’

강신혁은 쓰게 웃었다.

당시의 그에게는 차오르는 감정을 모조리 쏟아낼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만든 직후 이것만은 절대 히어로 유니버스에 팔 수 없다고 생각해 버렸지만, 그래도 결국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었으니.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이제, 이것이 또 폭주하지 않도록 확실히 고삐를 조이는 것뿐이다.

빨아들이고, 압축하고, 정제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이 과정을 무수히 반복하며 검에 담긴, 이 세상에 담긴 어둠을 모조리 받아들였다.

시야가 밝아지기 시작한 것은 작업을 시작하고 족히 몇 시간은 지났다 싶은 시점이었다.

아니, 하지만 아마 실제로는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이 어둠에는 공간을 왜곡하고, 시간을 왜곡하는 힘이 있으니까.

요르문간드 놈들이 게이트를 만들어내는 것도 어둠의 힘의 연장선에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젠 강신혁도 그것을 알 수 있었다.

“아."

그리고 그는 완전히 눈을 떴다. 여전히 빌딩의 최상층이었다.

그의 손에는 멋들어진 칠흑의 장검이 들려, 우웅, 슬픈 것인지 기쁜 것인지 알 수 없는 울음을 토해내고 있었다.

풀풀 솟아나던 마기는 이제 느껴지지 않는다.

모두 그의 안에 있었다.

- 다크 마스터리(SSS)를 익혔습니다. 입수 환경, 익히고 있는 스킬과 특성의 영향을 받아 희귀도가 X-랭크로 성장합니다! 스킬의 숙련도가 SS랭크로 성장합니다. 영력과 황룡투기가 SSS랭크로 성장합니다!

“바른대로 말해 봐요.”

이 공간의 모두가 상황파악을 하지 못하고 침묵하던 그때, 강신혁은 조용히 관리자에게 따졌다.

“알고 있었어, 모르고 있었어.”

- 아, 알고 있었습니다.

관리자는 솔직히 고백했다.

- 삼, 3.000.000HP 보너스……?

“뭐든지 다 그걸로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지 마요.”

세상의 모든 어둠을 빨아들인 탓에, 멸망한 세상에도 여명이 찾아오고 있었다.

- 시스템 오류! 시스템 오류!

“너도 조용히 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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