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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4화. < Chapter 50. 러스티드 랩소디 - 6 >

오염된 가이아 시스템이 심히 맛탱이가 간 중2병 환자라는 것도 중요한 사실이었지만, 강신혁은 그것보다도 그것에 대응하는 비타의 격한 태도를 보고 깨닫는 것이 있었다.

“내 소중한 친구들을, 잘도……!”

“비타, 네가 정면으로 달려가서 뭐할 거야.”

“하지만……!”

여기까지 달려오는 내내 비타는 냉정하고 침착한 모습을 유지했다.

하지만 그녀의 논리에는 가끔씩 비약이 있었고, 때때로 강신혁을 상대로 내보이는 행동에는 이해하기 힘든 점이 있었다.

그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던 강신혁은 그녀와 함께 움직이는 짧은 시간 동안 나름대로 그녀에 대해 판단하고 있었다.

물론 그녀가 자신에게 나쁜 마음을 품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다.

그녀는 아무리 사람처럼 보여도 엄연한 안드로이드였고, 자유의지를 갖고 있지만 강신혁과 클레어의 의지에 반하는 행동을 할 수는 없었으니까.

강신혁은 그녀가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대해, 그녀 자신의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해 관심이 있었다.

10년간 있었던 일이 그녀의 자아에 무슨 영향을 주었는지 궁금했고, 그녀의 행동력의 근원이 궁금했다.

그녀가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특히 신경 쓰였고…… 까놓고 말하면 그녀의 마음이 궁금했다.

그런데 이제야 그녀에 대해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용서 못해요……! 내가 죽일 거야!”

“이 녀석, 그냥 애였구나.”

- 그걸 깨닫기까지 참 오래 걸리셨네요. 하지만 늦게라도 깨달으셨으니 1,000,000HP 보너스!

비타는 자신의 친구들을 구울로 되살려 능욕하는 가이아 시스템을 향해 순수한 분노를 불태우고 있었다.

그녀의 어른스러운 겉모습이나 태도, 말투에 속고 있었지만 그녀의 자아는 아직 청소년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것을 깨닫자 비타가 그를 보자마자 빌딩에 쳐들어가야 한다는 말을 꺼낸 것이나, 앞뒤 가리지 않고 여기까지 달려올 수 있었던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성보다 감성으로 움직이는 아이. 이게 뭐가 안드로이드란 말인가. 기계라니 말도 되지 않는다.

클레어는 강신혁이 상상도 하지 못했던 대단한 존재를 탄생시켰다. 아니, 어쩌면 강신혁의 영향이 더 클지도 모르겠다.

‘관리자님, 괜찮겠죠?’

- 괜찮지 않았다면 관리자가 방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비타는 분명 감성적인 성격이지만, 회원님이 올 때까지 얌전히 기다리는 이성도 겸비하고 있습니다. 이만하면 훌륭하게 자란 아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런 식으로 말하면 제가 아이를 무책임하게 버리고 신경도 안 쓴 쓰레기 부모 같잖아요…….'

스스로 말해놓고 그렇게 틀린 말도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점이 실로 심각하다.

강신혁은 솔직히 반성하기로 했다. 다행한 점은, 이제라도 깨달았으니 더는 실수하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 물러서실 필요는 없습니다, 회원님. 오히려 오닉스가 각성한 지금은 손쉽게 사태를 정리할 수 있겠지요.

‘저도 알아요.’

혈기에 몸을 맡겨 여기까지 달려온 것은 좋지만 대책이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런 아이를 감싸고 책임을 대신하는 것이 바로 부모의 몫이다.

‘소름끼치네.’

인정하기 싫어도 그렇게 생각해버린 이상 어쩔 수 없다.

강신혁은 한숨을 내쉬며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분노하는 비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시, 신혁 님.”

“그냥 아빠라고 해.”

모든 것을 포기한 강신혁이 후련함마저 느껴지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자, 최상층에 올라온 이후로 한 번도 흔들리지 않던 비타의 눈동자에 눈물이 차올랐다.

“윽, 아, 아빠……!”

금세 울먹이기 시작하는 비타를 보며 그는 쓰게 웃곤 다시 한 발짝 앞으로 내딛으며 그녀를 자신의 등 뒤로 돌렸다.

“복수는 내가 대신 해줄 테니까 넌 오닉스랑 같이 저 가이아 시스템 본체를 어떻게든 해. 지금은 그것만 생각해.”

“네, 네……!”

“좋아, 그럼 시작해볼까.”

- 가이아 시스템은 메인 시스템 작성에 큰 공헌을 해주신 모루 님을 진심으로 환영하는 바입니다.

그들의 작당이 끝나기도 전에 오염된 가이아 시스템이 먼저 행동을 개시했다.

비타를 분노케 했던, 그녀의 동료의 사체로 만든 메탈구울 - 놈들을 한데 뭉쳐 전방으로 쏘아낸 것이다.

강력한 마기가 만들어내는 인력이 메탈 구울들을 구기고 뭉쳤다. 마기에 오염된 금속의 기괴한 움직임 속에서 메탈 구울들이 마구 구겨지며 썩은 피를 사방에 뿌리며 날아들었다.

- 어째서 하나하나 게임 속 보스 몬스터가 펼치는 공격 같은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진지하거든요?”

"큭......!"

비타는 그 가운데에서 망자의 눈알이며 내장이 튀어나오는 모습에 분노를 참지 못했으나, 강신혁은 그저 가만히 포이보스를 들어 올려 광탄을 쏘아낼 뿐이었다.

그가 포이보스로 쏘아낸 일발은 광(光)탄이며 성(聖)탄.

심지어는 극천신주의 서포트까지 받아 한층 빛의 크기를 불린 그것 앞에서는 메탈 구울을 뭉쳐 만든 특대형 마기 탄환도 버티지 못하고 녹아 사라지고 말았다.

- 라이트 마스터리(SSS) 스킬의 숙련도가 S랭크로 성장합니다! 빛이 전혀 없는 공간에서도 찬란한 빛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됩니다!

강신혁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몇 발이나 탄환을 더 쏘아냈다.

가이아 시스템의 메시지를 나타내고 있는 모니터 중앙부에 박힌 검을 노린 것이지만, 그 전에 사방에 둘러쳐져 있던 파이프가 일제히 휘둘러지며 그것을 막아냈다.

“그리고 이젠 저 파이프끼리 뭉쳐 새로운 메탈데스나이트를 만들어내든가 하겠지.”

- 모루 님, 가이아시스템 중추에 접근하기 위해선 먼저 가이아시스템의 관리자 인증을 해야 합니다. 지금부터 인증 절차를 수행하겠습니다.

“어……."

강신혁의 예상은 조금 틀렸다. 사방에 널려있던 파이프들이 각기 붙들고 있던 사체들을 사방으로 뻥뻥 튕겨내는가 싶더니, 마치 먹잇감을 노리는 뱀처럼 머리를 들고 강신혁을 향해 쇄도하기 시작한 것이다!

“관리자 인증!? 저게 관리자 인증이라고!?”

- 아무래도 회원님을 새로운 메탈데스나이트로 만들려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빠!”

비타가 나노봇들을 쏘아냈지만 가이아 시스템이 직접 컨트롤하고 있는 파이프를 해킹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대신 오닉스가 가시를 늘려 쏘아냈다. 파이프 중 일부가 오닉스가 쏘아낸 가시에 붙들려 다른 파이프와 뒤엉키는 모습에 비타가 눈을 빛냈다.

“지금이라면! 아빠, 엄호해주세요!”

“그래.”

강신혁은 길게 말하지 않고 자신의 나머지 권총, 에레보스를 꺼내들었다. 에레보스는 어둠의 힘을 다루는 권총.

포이보스처럼 어둠을 지워내는 힘은 물론 없지만, 이것에는 어둠을 집약시키는 힘이 있었다.

즉 어둠을 한데 모아 묶을 수 있다는 얘기이고, 이것은 물론 마기에도 해당되었다!

- 모루 님 이외의 침입자를 우선 격퇴합니다!

비타와 오닉스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자 최상층 전체에 빨간 불이 들어오며 가이아 시스템의 대응이 격렬해졌다.

모니터에 긴급 알람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며, 이미 나와있던 파이프들뿐만 아니라 이곳저곳에서 벽과 바닥을 뚫고 튀어나온 전선 따위가 강신혁과 일행을 묶으려 움직이고 있었다!

‘나에 대한 집착이 너무 심한데, 대체 날 붙잡아 뭘 하려는 거지?’

- 관리자의 추측으로는, 아마 회원님께 이 망한 세상의 새로운 창조주와 같은 역할을 기대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창조주?’

강신혁은 여기저기 탄환을 쏘아내 수십 개의 전선을 묶거나, 마기를 정화시키거나 하며 바쁘게 움직이면서도 관리자의 말에 꼬박꼬박 대꾸하고 있었다. 가만히 듣고 넘어갈 만큼 단순한 얘기가 아니었다.

‘전 그냥 대장장이 능력을 갖고 있을 뿐인데, 대체 뭘 어떻게 하면 저렇게까지 맛이 가는 거죠?’

- 가이아 시스템은 히어로 유니버스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가이아 시스템의 본체에서 어설프게 지식을 얻어 독립한 가이아 시스템의 분체가, 여러 세계에 영향을 끼치는 아티팩트를 만들어내신 회원님을 새로운 세계의 중추로 삼으려고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중간에 여러 가지 정보가 빠진 것 같은데. 단순히 좋은 아티팩트를 만들어낸다는 이유만으로 절 확보하려고 한다고요? 농담이죠?’

- 가이아의 분체의 판단은 과격하나 완전히 틀린 것만은 아닙니다. 언젠가는 회원님도 자신의 진정한 능력을 이해하게 되실 날이 올 겁니다.

강신혁은 입술을 삐죽였다.

지금 관리자는 강신혁의 능력과 자격이 부족하다는 얘기를 돌려서 하고 있는 것이다.

모루와의 동화율이 100%가 되면 그땐 관리자와 모든 것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게 될까?

- 아뇨, 그것을 넘어 이전에 없던 경지에 도달해야 합니다.

‘알았어요, 알았다고.’

관리자의 태도는 전에 없이 단호했다. 강신혁은 한숨을 내쉬곤 고개를 저어 지금 쓸데없는 생각을 모두 털어냈다.

“일단 정리하고 생각할까. 저걸 클레어랑 같이 뒤져보면 뭐가 나와도 나오겠지.”

- 침입자를 배제! 침입자를 배제!

붉고 짜증나는 경고등과 시끄러운 알람의 연속. 강신혁은 계속해서 양손의 총을 쏘아내 가이아 시스템의 움직임을 구속했다.

탄환과 파이프, 어둠과 빛이 교차하는 전장에서 비타와 오닉스는 어떻게든 가이아 본체에 접촉하기 위해 악을 쓰고 있었다.

“직접 접촉하면 해킹할 수 있어?”

- 뀨웃!

“좋아, 아빠가 길을 열어주셨으니 가자!”

강신혁이 쏘아낸 에레보스의 탄환이 둘의 머리 위를 스치고 지나가며 둘에게 쇄도하던 전선과 파이프의 움직임을 복잡하게 꼬아버리고, 직후 날아든 광탄이 일시적으로 모든 어둠을 지워버렸다.

- 뀨!

실로 절묘한 기회. 오닉스는 자신의 능력을 일시에 방출하여 모든 금속으로 이루어진 것들의 움직임을 틀어막고, 확고한 하나의 루트를 만들어냈다.

비타는 그것만 기다렸다는 듯이 오닉스를 집어들고는 전면의 모니터를 향해 냅다 내던졌다!

- 뀨우우우웃!

“해킹해!”

모니터에 찰싹 달라붙은 오닉스에게서 뻗어 나온 가시가 사방의 모니터와 천장, 바닥 따위를 마구 부수며 그 안으로 파고들어 헤집기 시작했다!

비타는 여태까지 확보한 나노봇을 모두 오닉스의 보조로 내보냈다. 마기를 빨아들여 무력화하고 전자 시스템의 방어벽을 허무는 나노봇, 오닉스는 그것들의 도움을 받아 순식간에 시스템의 핵심에 도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닉스가 해킹을 개시하려던 바로 그때, 여태까지 모니터에 얌전히 꽂혀있던 칠흑의 검이 돌연 진동하기 시작했다.

- 회원님!

“알고 있어요!”

강신혁은 이를 악물고 재차 탄환을 쏘아냈다. 그의 몸을 휘감으려는 파이프들을 모조리 무시하고!

여태까지 극천신주에 담아낸 모든 기운을 소모해 만들어낸 탄환은, 그와 모니터에 박힌 검을 일직선으로 잇는 빛의 통로를 만들어냈다.

그 탓에 강신혁의 전신을 파이프가 칭칭 감는 것을 피할 수 없었지만, 이미 그의 목적은 완수한 후였다.

- 공간이동……!?

오염된 가이아 시스템이 발하는 경악성에 강신혁은 웃고 말았다. 잘도 기계 주제에 사람 흉내를 낸다 싶었다.

- 공간조율(SSS) 스킬의 숙련도가 B+랭크로 성장합니다! 타인의 간섭을 무시하고 보다 먼 거리를 정확하게 이동할 수 있게 되며, 자신을 중심으로 반경 50미터 안에서 보다 강력한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다. 강신혁은 자신이 쏘아낸 빛의 통로를 따라 순식간에 수십 미터를 이동했다.

마기로 가득 찬 이 공간에서는 여태까지 공간이동을 할 수 없어 그렇게 애를 먹었지만, 그의 눈에 닿는 범위 안에서, 순간이나마 마기의 영향을 받지 않게 된 범위 안에서는 얼마든지 이동할 수 있었던 것이다!

“체크메이트다!”

강신혁은 눈앞에 보이는, 끊임없이 마기를 뿜어내고 있는 칠흑의 검을 붙들고 단숨에 뽑아냈다.

가이아 시스템이 그렇게나 지키려고 하던 검을 너무나 쉽게!

- 이런.

오염된 가이아 시스템이 짧게 탄식했다.

- 기껏 얻은 생명의 주인을 이런 식으로 소모하다니.

그리고 칠흑의 검이 주인을 집어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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