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그인하자마자 VIP-273화 (273/345)

273화. < Chapter 50. 러스티드 랩소디 - 5 >

“엘레베이터잖아.”

강신혁이 멍하니 뱉은 말에 비타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무엇입니까? 아…… 지금 깨달았습니다. 그렇군요.”

“방금 그 간격은 뭐야?”

강신혁이 눈을 가늘게 뜨며 묻자 비타가 수줍어하며 대꾸했다.

“엘레베이터는 현 시대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클레어 님께서 입력해주신 데이터베이스에서 정보를 검색했습니다.”

“또 엉뚱한 부분에서 안드로이드 티를 내고 있네…… 오닉스, 이거 타도 괜찮은 거냐?”

- 뀨웃!

오닉스는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태까지의 노멀 오닉스와는 다른, 슈퍼해커 오닉스로 진화했음을 증명하듯 가시를 길게 늘이며 격한 자기주장을 하고 있었다.

“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여태까지 빌딩 본체는 해킹이 불가능했는데, 이 엘레베이터에는 나노봇으로 접속이 가능하네요.”

강신혁이 오닉스와 눈싸움을 하던 중, 성큼 다가선 비타가 엘레베이터 내부로 나노봇을 내보내 살피더니 믿음직스럽게 단언했다.

그러나 강신혁은 비타를 수상쩍은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뭐가 됐든 그 앞에 해킹이라는 단어만 붙여놓으면 설명이 되는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아까 보셨듯이 이 빌딩은 가이아 시스템 그 자체입니다, 신혁 님. 벽돌 하나하나에 시스템이 내장되어 있다고 봐도 틀리지 않아요.”

하긴 그렇지 않고서야 갑자기 벽돌이나 타일 따위가 유리창을 대신해 건물을 수복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냉정히 말하면 그건 시스템이라기보단 하나의 살아있는 생물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해킹도 가능하다고?”

“여태까지는 불가능했지만, 이 고슴도치가.”

- 뀨!

자기를 부르는지 아는 듯 오닉스가 잘난 체를 했다. 오늘따라 녀석의 자기주장이 격렬하다. 과연, 지나치게 심연을 들여다본 결과 오닉스도 심연에 삼켜진 것일까.

어쩌면 이 슈퍼해커 모드는 녀석이 먹어치운 가이아 시스템을 대상으로밖에 활용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여기서는 녀석을 믿고 움직여도 될 것이다.

“이건 뭐 금속을 다루는 정도가 아니잖아.”

- 관리자가 추측컨대 오닉스 역시 회원님의 특성에 영향을 받아 진화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굉장히 설득력 있는 발언이었다.

하긴 오닉스도 그의 특성의 효과를 가장 오랫동안 받아들인 이 중 하나였으니, 완전히 새로운 능력을 얻어 진화하는 것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여전히 자그마한 흑백의 고슴도치였지만, 이제 녀석은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강력한 힘을 손에 넣은 것이다.

아마 비슷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클레어도 엄청 좋아하지 않을까 싶었다. 이것을 알게 된 후의 그녀의 반응을 떠올리니 급박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절로 입가가 느슨해졌다.

“신혁 님, 서두르죠. 제 예상이 맞는다면 이 엘레베이터는……. 오염된 가이아 시스템의 간섭이 있기 전에 서두르는 게 좋겠어요.”

“그렇지, 그래."

- 뀨!

둘은 곧장 엘레베이터에 올랐다. 그제야 자신의 몸통에 구멍이 뚫렸다는 것을 알아차린 걸까, 천장이 무너지며 온갖 기계 언데드가 몰려들었지만 놈들이 안으로 들어오기 전에 엘레베이터 문이 깔끔하게 닫혔다.

메탈구울 한 마리가 내뻗은 팔이 하나 끼었지만 강신혁은 라이트 마스터리로 그것을 깔끔하게 지워냈다.

- 우우웅

엘레베이터는 곧장 상승하기 시작했다. 엘레베이터의 구조는 굉장히 깔끔하고 또 눈에 익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강신혁이 이미 알고 있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이건 신영 기숙사에 있는 엘레베이터 아냐?”

- 뀨!

“그럼 이걸 설마 네가 만들었다고?”

- 뀨우, 뀨뀨뀨우뀨웃!

오닉스는 ‘단지 자유롭게 건물 구조를 변화시키는 시스템의 특성을 살짝 건드려 내부를 커스텀했을 뿐’이라고 답했지만 강신혁은 이미 그게 무슨 말인지 알아먹을 수가 없다.

세상에나, 아무래도 오닉스의 능력은 강신혁이 상상할 수 있는 범위를 이미 벗어난 상태였던 모양이다!

-쿵!

"응?"

그런 그때였다.

돌연 큰 소리와 함께 엘레베이터 천장이 찌그러지며, 묵직한 진동이 엘레베이터를 뒤흔들었다.

쭉 상승해가던 엘레베이터가 멈추고, 이어서 쾅, 쾅, 하고 이어지는 묵직한 연타.

뭔가가 엘레베이터 위로 떨어져, 천장을 두들기고 있었다!

“……이거 무슨 영화에서 봤는데.”

- 뀨웃!? 뀨뀨우우!

오닉스가 가시를 뻗어 측면의 벽에 꽂아 넣자 즉석에서 엘레베이터가 보강되며 재차 상승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적은 그에 굴하지 않고 점점 더 거세게 천장을 두들기더니, 급기야는 천장에 작은 구멍이 뚫리며 톱날처럼 날이 삐죽삐죽 솟은 검이 천장 아래로, 즉 그들의 머리 위로 쑥 튀어나왔다!

“잠깐만, 저 검……?”

강신혁은 다급히 영사를 뻗어내 그 검을 붙들었다.

짧은 순간 흘려낸 영력으로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조악하기는 하나 이 검은 ‘모루’의 기술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하지만 어딘가 어설픈 것을 보면 모루 본인이 만든 건 결코 아니고, 기이한 인공미가 감도는데…….'

설마 오염된 가이아 시스템이 저것을 만들어냈단 말인가? 과거의 모루가 버린 검을 주워내, 그것을 양산하기라도 했단 말인가?

점점 뭐가 뭔지 알 수 없어 신음을 흘리는데, 놈이 검을 휘감은 영사를 쉽사리 끊어버리고는 검을 그야말로 톱처럼 마구 휘저어 기어이 천장에 구멍을 뚫었다!

- 카아아아아아!

검은 금속의 갑옷을 입은 채, 불에 타들어가는 터미네이터 못지않은 흉악한 기계해골을 장착하고 있는 괴물이 엘레베이터 안으로 떨어져 내렸다.

단지 그뿐만이라면 상관없겠지만 놈의 갑옷 내부에는 전신에 마기로 구동하는 기관이 몇 개고 부착되어 있어 놈이 발산하는 마기를 끔찍한 수준의 물리력으로 치환해주고 있었다.

“고스트라이더?"

“메탈 데스나이트예요!”

“굉장한 이름이네, 메탈구울이 있는걸 보고 혹시나 하긴 했지만!”

놈의 이름을 듣고 데스메탈을 떠올린 강신혁은 결코 나쁘지 않을 터다!

하지만 놈은 기타를 뜯으며 절규하는 대신 기괴한 톱날검을 마구 휘두르며 그를 덮쳐왔다.

강신혁은 곧장 그로잉 사이드를 들어 올려 놈을 막아냈지만, 생각보다도 상대의 힘이 거셌다.

"쯧......!"

놈의 힘이 너무 강해 양손이 아니고선 대적할 수 없다.

강신혁은 라이트 마스터리를 최대한도로 발휘해 대낫에 주입하며 강하게 휘둘렀지만, 놈 역시 기민하게 반응해 톱날검으로 대낫을 받아냈다.

- 끼기기기긱!

- 뀨뀨웃!

둘의 충돌 탓에 엄한 엘레베이터 내부 벽만 잔뜩 긁히며 구멍이 났다.

오닉스가 계속해서 그것을 보강하고 있었지만 둘의 기세가 너무 험해 이대로 가다간 엘레베이터가 추락할 지경!

강신혁 역시 그것이 놈의 목적임을 바로 깨달았지만, 놈의 기세가 너무 강렬해 그 뜻대로 놀아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썩을, 오닉스 녀석을 믿는 게 아닌데!’

모든 공포영화와 공포게임에서 가장 많은 이가 죽어나가는 장소가 엘레베이터인데 어째서 그것을 간과했을까.

강신혁은 최대한 엘레베이터에 상처가 나지 않게 조심하며 놈을 밀어붙였지만, 천장이 휑하니 뚫린 엘레베이터의 상승 속도는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비타, 이 자식 해킹은!?”

“죄송해요, 신혁 님! 마기가 너무 강해서 나노봇이 뚫고 들어갈 수 없어요!”

그야 그렇겠지! 오닉스와 비타가 힘을 합친다면 어떻게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오닉스는 엘레베이터가 부서지지 않게 지키는 데만도 필사적인 것이다.

강신혁은 이를 악물며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허리춤의 극천신주는 계속해서 놈의 마기를 빨아들이고 있지만 이 속도로는 역부족이다.

‘젠장, 헤일로가 준 나뭇가지를 진즉 융합시켰어야 했는데…… 제일 잘 만들 수 있는 타이밍으로 미룬다고 너무 늦장을 부렸어.’

아니 하지만, 그러나 방법은 있을 터다.

뭐가 있을까, 뭐가…… 다크 마스터리 구입? 아니, 지금 그걸 산다고 해봤자 엘레베이터가 긁히는 걸 피할 수는…… 그렇지!

“하아아아아압!”

강신혁은 그 즉시 극천신주에서 발생하는 에너지원을 영력과 황룡투기로 바꾸어 사방에 흩뿌렸다.

아니, 정확히는 엘레베이터 내부에 흡수시킨 것이다!

- 캬아아아아아아악!

메탈 데스나이트는 데스메탈 밴드의 보컬 못지않은 사우팅을 내지르며 강신혁을 몰아붙여왔다.

그야 라이트 마스터리로 전환하던 에너지 대부분을 다른 데 투자했으니 강신혁이 일시적으로 밀리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는 놈이 엘레베이터를 부수지 못하게 하는 데에만 집중하며 엘레베이터에 계속해서 영력과 황룡투기를 주입했다.

그 결과,

불안한 연기를 뿜어내며 조금씩 하강하던 엘레베이터가, 한순간 황금으로 번쩍이더니…… 갑자기 무시무시한 속도로 솟구쳤다!

- 키아아아아악!

“못 막아, 병신아!”

메탈데스나이트가 짜증스러운 괴성을 내지르며 톱날검을 마구 휘둘렀지만 강신혁은 침착하게 놈을 막는 데에만 집중했다.

오히려 놈의 동작이 커지며 발견한 빈틈에 영사를 쏘아내 놈을 점점 더 움직이기 힘들게 옥죄는 데에 성공하기까지!

그로부터 몇 초 지나지 않아 엘레베이터가 멈추었다.

“최상층이에요, 신혁 님!”

“좋아, 나가자!”

- 뀨웃!

엘레베이터가 열리고 비타가 먼저 튀어나가자 강신혁 역시 오닉스와 함께 뒤로 펄쩍 뛰어 물러났다.

메탈 데스나이트는 자신을 엘레베이터에 묶어두고 있는 영사를 찢어내려 발악을 했지만, 영사가 찢어지기 직전 날아든 그로잉 사이드가 놈의 몸통을 찢고 엘레베이터 벽에 틀어박히며 놈을 그곳에 고정시켰다.

“그대로 지옥 끝까지 꺼져버려!”

강신혁은 황금으로 물든 두 눈을 빛내며 영력을 폭주시켰다.

그의 특성을 받아들여 그의 뜻대로 움직이는 엘레베이터가, 움직이지 못하는 메탈데스나이트를 끌어안고 그대로 수직강하했다!

- 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놈의 비명소리가 점점 멀어져갔다. 오닉스가 잽싸게 엘레베이터가 사라진 빈 공간을 벽으로 메꿔버렸다.

“후, 격렬했던 네놈의 락-소울은 내가 계승해주지……."

- 의외로 여유로우시군요, 회원님. 영화의 한 장면 같았던 전투에 감탄한 관리자의 500,000HP 보너스!

여유롭기는 관리자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죽이지는 못했는지 HP가 들어오지 않았지만, 지금은 놈을 죽이는 것보다도 가이아 시스템을 어떻게든 하는 것이 중요했기에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강신혁은 그로잉 사이드를 지금 회수할까 하다가, 혹시나 놈이 다시 나타날 것이 걱정되어 일단 놔두기로 했다. 언제든 원하는 때에 회수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비타, 최상층인데 뭐 특별한 건……."

그런데 짧았지만 무척 격렬했던 전투를 마치고 돌아서니, 비타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강신혁은 일단 주위를 살폈다.

최상층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천장을 투명한 유리가 뒤덮고 있어 안개가 자욱한 하늘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는데,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라 한쪽 벽면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기계장치였다.

마구 뒤얽힌 전선, 정체를 알 수 없는 금속으로 만들어진 수천, 수만 개의 모니터, 곳곳에 솟아난 파이프와, 그것을 통해 뿜어져 나오는 음산한 기운 - 마기.

그중 일부는 하늘로 솟아 몽글몽글하니 뭉쳐 안개며 구름 따위를 만들어내고 있었으며, 그중 일부는 벽면을 타고 흘러 건물 내부로 마기로 공급하고 있었으며, 그중 일부는 또 다른 파이프를 통해 이 빌딩 어딘가에 있을 생산시설로 보내지고 있었다.

하지만 뭣보다 압권인 것은 벽면 중앙의 모니터에 꽂혀 있는 한 자루의 검이었다.

"......저거."

기억났다.

강신혁은 인상을 참혹하게 찌푸리며 제 얼굴을 쓰다듬었다.

“모코우드, 스코바……."

비타가 힘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이다 싶어 머리를 굴리던 강신혁의 눈이 비타의 시선이 닿은 곳을 따라갔다.

그곳에는 말라비틀어진 시체들이 있었는데, 놀랍게도 파이프는 그들의 몸에도 꽂혀 있었다.

과연 주입하는 것인지, 무언가를 뽑아내는 것인지 생각하던 찰나.

- 반갑습니다, 모루.

꺼져있던 벽면의 수만 개 모니터에 일제히 불이 들어오며, 기계음이 귓가를 두드렸다.

- 가이아 시스템의 중추에 방문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아무래도 개구라같은데, 하고 생각하면서도 강신혁이 앞으로 한 발 내딛은 순간.

곳곳에 널브러져 파이프와 연결되어 있던 시체들이, 일제히 꿈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서는 것이 보였다.

물론 그 중에는, 비타가 구하려 애쓰던 그녀의 과거 동료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큭, 내 동료들을……! 가이아!”

- 아무래도 가이아 시스템을 오염시킨 것은 마기가 아니라 중2병인 것 같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회원님.

“아무 것도 말하지 마요, 관리자 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