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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1화. < Chapter 50. 러스티드 랩소디 - 3 >

빌딩 안에는 자욱한 안개가 끼어있었다.

강신혁은 그 안개가 모두 고밀도의 마기임을 알아차렸다.

단지 그것뿐만이 아니라, 대상에게 파고들려고 하는 의지가 느껴졌다…….

“설마 살아있나?”

“나노봇입니다.”

비타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염된 가이아 시스템이 생산한 나노봇이 공기 중에 무수히 퍼져 있어, 저희에게 침입해 마기를 주입하려고 하는 거예요.”

“오우.”

처음 이 세상에 진입했을 때부터 그랬지만 본격적으로 강신혁이 감당할 수 없는 얘기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마력기계는 제아무리 정밀한 설계도로도 나노 단위의 제작은 힘들다고 들었는데, 마력이 아니라 아예 마기를 다루는 나노봇? 이곳에 있어야 했던 것은 자신이 아니라 클레어가 아니었을까?

“가이아 시스템의 본체와 연결이 끊긴 후 독자적인 발전을 거듭하여, 보다 좁은 범위에서의 보다 강제적인 지배권을 확립하기 위해 생산한 로봇. 저항군은 대부분 여기에 무너졌어요. 제가 버틴 까닭은……."

“안드로이드니까?”

“네. 가이아 시스템은 모든 나노봇을 일일이 통제할 수 없지만 저는 제게 접촉한 나노봇의 권한만 해킹하면 되었으니까요. 그렇게 나노봇을 다수 제게 복속시켰습니다.”

강신혁은 그 나노봇을 보여 달라고 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물었다.

“그게 가능하면 이 안의 나노봇을 모조리 네 걸로 만들 수도 있는 거 아냐?”

“몇 번인가 그렇게 나노봇을 확보한 후, 가이아 시스템은 저를 건드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지금도 마기가 제게 침범하지 못하고 있죠.”

비타를 중심으로 30센티미터 반경에는 안개가 끼지 못하고 있는 것은 그게 이유였던 것인가.

당연하지만 강신혁 역시 마기로부터 무사했는데, 그는 마기로 가득찬 환경에서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알고 당장 영력을 자신에게 둘렀기 때문이다.

덤으로 거기에 라이트 마스터리를 응용해 미약한 빛을 두르니, 마치 여름날 전등에 달려든 벌레들이 타죽는 것처럼 사방에서 치직, 칙, 하는 소리가 나고 있었다.

만약 할 수만 있다면 그도 이것들을 다뤄보고 싶었는데, 아마 무리일 것이다. 나중에 샘플이나 가져가서 클레어에게 보여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래서 네 동료들은 어디에……."

“경계하세요, 이제 곧 실력행사로 나올 겁니다.”

비타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상황이 돌변했다.

비타는 물론이고 강신혁의 몸에 침입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얼마 되지 않아, 사방에 퍼져 있던 안개가 갑자기 한 점에 뭉쳐 일정한 형태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것은 굵고 둥그런 원통 형태를 띠고 있었는데, 마치 대포처럼 보였다.

“신혁 님!”

“좋았어!”

그 안에서 마기가 집중되는 것을 모를 강신혁이 아니다.

그는 곧장 품에서 포이보스를 꺼내들어 광탄을 쏘아냈다.

지나치게 빠른 반응에 사방으로 흩어지려는 그것을 광탄이 모조리 추적해 부숴버렸다.

안개 형태로 자욱하게 퍼져있을 땐 몰라도 한데 뭉쳐있다면 광탄 하나로도 몰살할 수 있었던 것이다.

“대단하십니다, 신혁 님……!”

“가자, 왠지 엄청 몰려올 것 같은데.”

그들이 앞으로 나아가자, 신기하게도 지하 2층을 가득 채우고 있던 안개가 스멀스멀 뒤로 물러나는 것이 보였다.

나노봇으로는 아무리 애써봤자 대항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차린 가이아 시스템이 물리고 있는 것이리라.

대신, 위에서 쿵! 쿵! 하고 묵직한 뭔가가 바닥을 찧는 소리가 났다.

주기적으로, 점차 더 크게 울리는 소리.

- 보다 보안 등급이 높은 개체가 접근해오고 있군요. 시스템 전체도 아니고 고작 시설 하나를 관리하는 데 일부러 관리 개체의 등급을 나누는 비효율적인 방식을 택하다니, 정말로 이곳의 분체는 본체와는 정반대의 천박한 발전방식을 택한 모양입니다.

“죄송한데 뭐가 어떻게 천박한 건지 모르겠어요.”

강신혁은 오히려 조금 두근거렸다.

포이보스에 광탄을 장전하고, 거기에 라이트 마스터리와 영력의 힘을 집중시킨다.

거기에 황룡투기를 더하니, 포이보스 본체에 황룡이 새겨지는 것은 물론이고 빛으로 이루어진 탄에도 용이 꿈틀거리며 자리를 잡았다.

‘확실히 능력이 성장했어. 이전엔 빛은 물론 다른 에너지 자체에 황룡을 새긴다는 게 불가능했는데.’

황룡은 능력이 극한으로 발현되었을 때에 나타나는, 말하자면 ‘풀차지(FuH-charge)’ 각인과도 같은 것.

특성이 진화하기 전부터 그의 감정이 고조되거나 강적을 상대하거나 할 때 간간이 나타나곤 했던 것인데, 이젠 숨을 쉬듯 자연스럽게 용을 다룰 수 있게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요즘은 능력을 구사할 때마다 이상하게 간질거리는 느낌이었다.

한 발짝만 더 나아가면 될 것 같은데 그러지 못하고 정체하는 느낌.

특성의 발현은 최고조다. 지금 자신이 더 보탤 수 있는 것이 없다.

하지만 그런데도 뭔가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신혁 님, 옵니다!”

비타의 뾰족한 목소리에 긴장을 곤두세운 직후, 천장이 쿵! 하는 굉음과 함께 뚫렸다.

그 아래로 떨어져 내리는 것은 비타와 굉장히 흡사한 이목구비를 갖춘 안드로이드였는데, 다만 덩치가 위아래로 엄청 불어나 있어 압도적이었다.

특히나 몸에 덕지덕지 달라붙은 칼날이며 총구 따위가 비인간적인 인상을 강화시켰는데, 놀라운 점은 사방으로 흩어져가던 안개가 그것에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침입자를 발견, 즉시 제재합니다!]

“뭣, 큭!”

놈은 모여든 마기를 곧장 레이저의 형태로 쏘아내 강신혁과 비타를 공격했다.

그는 이런 상황에 대비해 준비한 거대한 사각방패를 꺼내 자신과 비타를 가리듯이 세우고는 거기에 영력을 씌웠다.

자신이 생각해도 초월적인 반응속도로 방패를 치켜든 즉시 마기가 방패를 덮쳐왔다.

마기는 레이저처럼 한 점에 집중되어 방패를 녹이려 들고, 방패를 덮은 영력은 영혼독으로 바뀌어 마기를 갉아먹었다.

‘만들어둬서 다행이다, 방패.’

하지만 안심할 수는 없다.

얼핏 보면 대등해보이나 무려 SS랭크로 완성된 방패가 마기의 레이저에 버티지 못하고 조금씩 뚫리고 있었던 것이다.

방패에는 조예가 없어 다른 무구들보다 완성도가 덜하다고는 해도 이건 굴욕이었다.

심지어 영혼독까지 있는데!

‘광탄으로 마기를 전부 흩어내려 해도, 그 중심에 저놈이 버티고 서 있는 게 걸려. 어쨌든 저걸 직접 쪼개버려야 하는데.’

차라리 극천신주로 마기를 흡수해? 물론 좋은 생각이지만 극천신주도 공격성을 띤 에너지에는 타격을 입는다. 그는 우선 극천신주를 꺼내 벨트에 장착하며 생각을 정리했다.

그때였다.

“이제 해킹 준비가 되었습니다, 신혁 님!”

“비타?”

“시작하겠습니다!”

방패에 의해 보호받고 있던 비타가 한 손을 앞으로 뻗었다.

강신혁은 그녀가 여태껏 확보한 나노봇을 어떻게 했는지 알 수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아야 할 작은 입자의 덩어리가 희뿌연 광채와 함께 그녀의 손으로부터 튀어나와, 레이저를 쏘아내느라 그 자리에 고정되어 있던 안드로이드에게로 빠르게 흡수된 것이다.

아마도 저 나노봇에는 영력이 포함되어 있으리라, 확신할 수 있었다.

‘아니, 가만히 보고 있을 때가 아니지.’

강신혁은 방패를 그 자리에 강하게 꽂아 넣어 비타의 몸을 가려주고는, 자신의 몸을 허공에 내동댕이치듯 튀어 올랐다.

안드로이드는 비타보다도 강신혁을 노리고 있었던 것인지 그가 움직이는 방향으로 총구를 비틀었다.

열선이 세로로 죽 그어지며 건물 내부를 엉망진창으로 휘저었지만, 그것이 강신혁에게 향하기 전 돌연 허공에서 흩어지고 말았다.

비타가 주입한 나노봇이 놈을 곧장 해킹하기 시작한 탓이다.

“합!”

그의 한 손에 들려있던 포이보스에서 광탄이 튀어나와 안드로이드에게 매달려 있던 총구 안으로 쏙 들어갔다.

직후 일어나는 폭발에 놈은 아예 사격을 멈추고 용에 달린 칼날들을 뽑아들었다. 마치 고슴도치가 적을 맞이해 가시를 세우듯 칼날들을 일제히…… 고슴도치?

“오닉스!”

- 뀨우우웃!

강신혁은 포이보스를 집어넣고 오닉스를 불러내는 것과 함께 그로잉 사이드를 꺼내어 쥐었다.

오닉스가 한 발 앞서 안드로이드에게로 돌진하자 놈이 칼날을 녀석에게 향했으나, 오닉스는 기다렸다는 듯 그것을 덥석 물었다.

“신혁 님, 다시 움직임을 멈추겠습니다…… 지금!”

“오케이!”

절묘한 타이밍에 적이 멈추었다. 강신혁은 떨어져 내리는 기세를 모조리 담아내 대낫을 적의 정수리에 꽂아 넣었다.

물론 적이 인간도 아니고 머리에 낫을 꽂는다고 죽을 리는 없다.

있는 힘껏 힘을 주어 대낫을 그대로 그어 내린다!

- 콰지지지직!

거대 안드로이드의 몸통 위로 깔끔한 직선이 내달렸다.

강신혁이 바닥에 착지했을 땐, 이미 안드로이드의 몸통이 반으로 갈라져 바닥에 몸을 눕히고 있었다.

- 뀨우우우!

“자, 잠깐…… 나노봇을!”

오닉스는 칼날부터 시작해 안드로이드의 몸통을 본격적으로 시식하기 시작했고, 비타는 당황하면서도 안드로이드에게서 나노봇을 모조리 회수했다.

기분 탓이 아니다. 비타에게 회수되는 나노봇의 양은 명백히 늘어나 있었다.

“해킹한 거지?”

“네, 그렇습니다. 처음 나노봇을 빼돌렸을 때부터 구상하고 있었는데, 신혁 님 덕에 성공할 수 있었어요.”

“내 덕에?”

“네. 마기를 빠르게 몰아내야 하는데, 신혁 님의 빛 덕분에.”

“아."

절로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영력은 비타도 다루는 것 같으니, 자신과 다른 점을 꼽자면 그에게, 포이보스에 있는 빛의 힘 뿐이었다.

“여태까지는 실험할 기회도 없었어요. 가이아 시스템이 저를 대비해 시스템을 강화할까봐……."

“즉 오늘 끝을 볼 각오로 해킹했다는 얘기네.”

“네. 신혁 님께서 조금 도와주신다면, 이 빌딩 내의 모든 개체를 이렇게 정지시키는 게 가능할 것 같습니다.”

조금 더 들어보니 제아무리 비타의 능력이 출중해도 가이아로부터 나노봇 이상 등급의 로봇을 빼앗아오는 것은 불가능하고, 지금처럼 일시정지를 시키는 정도가 한계라는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네가 다 먹어, 오닉스.”

- 뀨웃!

오염된 가이아 시스템이 만들어낸 기계는 오닉스에게 여태껏 겪어보지 못한 별미. 녀석은 완전히 시스템이 정지된 로봇을 정신없이 뜯어먹었다.

쇠가 아닌 부분은 알아서 걸러내고 쇠만 골라먹는데, 녀석이 먹고 지나간 잔해가 조금 무서웠다.

“그러면 앞으로 나아가죠, 신혁 님. 가이아가 방어를 강화하기 전에 승부를 봐야 합니다.”

“음…… 잠깐만, 그 전에.”

어째서 아깐 이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하면서도 그는 비타에게 손을 뻗었다.

그러자 비타가 본능적으로 그에게 머리를 내밀었다.

“……아니, 그, 나노봇을.”

“네!? 아, 알겠습니다!”

설마 쓰다듬어주길 원했던 것일까.

강신혁은 이 안드로이드가 정말로 기계가 맞는 것인가 다시 한 번 고뇌하면서도, 그녀가 뽑아낸 나노봇 무리에 전체적으로 빛을 덮어 씌웠다.

“이런 식의 강화도 가능하군요! 마기를 효과적으로 몰아내고 적을 정지시킬 수 있겠습니다.”

“아니, 기다려봐.”

이건 맛보기에 지나지 않는다.

강신혁은 무수한 나노봇을 일일이 인식하려 노력하지 않고, 그저 이것들을 모두 자신의 아군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손을 크게 펼치며, 일정 영역 안의 모든 아군에게 자신의 특성을 부여한다는 생각을 했다.

수호황룡이 발동했다.

결과는 지극히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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